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제가 구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극복하고 저 자신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까요?

질의응답

“저는 구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극복하고 저 자신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까요?”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우리는 그분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느끼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시간에 당신의 방법으로, 언제나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확신시켜 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울적하거나 외로울 때마다 그분의 사랑을 구하는 기도가 저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줄리아 엠, 16세, 미국 버지니아주

구주께 좀 더 다가가십시오

얼마 전에 선교사 준비반 수업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뜰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이야기되었는데, 그중에는 이웃에게 봉사하기,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기도로 도움 구하기, 경전 읽기, 선교사 되기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는 우리의 가능성을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산티아고 지, 17세, 미국 애리조나주

계명을 지키십시오

저는 가끔 구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는 제가 주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회개함으로써 이런 느낌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감독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감독님은 주님께서 자신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자크 디, 15세, 코트디부아르 아비드잔

회개가 열쇠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구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 이타적인 행동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죄를 회개함으로써 그분의 속죄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구주의 사랑을 깨닫는 열쇠는 바로 회개입니다.

쿠스탄 자매, 23세, 필리핀 세부 선교부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한 가지 방법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면 다른 사람들을 북돋아 주게 되며, 그러면 우리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건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힘들었을 때, 저는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 달 동안 매일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자 제가 가치 있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는 게 더 쉬워집니다. 다른 사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도록 돕는다면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이미 더블유, 15세, 미국 미네소타주

  • 회개를 했지만 아직도 죄책감을 많이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골로새서 3:12~14

Introduction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는 점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 잘못에 대하여 아무런 반성도 없이,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을 반복한다면 성경이 말씀한 바와 같이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이 흔히 송년회, 망년회 등등의 이름으로 이곳 저곳에 모여서 지난 한 해를 되짚어 보곤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망년회는 어떻습니까? 한해를 돌아보는 깊은 반성은 없이, 술에 만취해서 비틀거리며, 퇴폐적이고 추잡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지난 한해에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은혜와 축복이 어떠한가를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으며, 맡겨주신 사명에 대해 충성했는가, 또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섬김으로 살았는가를 차분히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12월을 지내며 지난 한해를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복음성가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 뒤를 돌아 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 뿐입니다.

쓰리고 아픈 마음 가눌 길 없어서

골고다 언덕길을 지금 나아옵니다.

한해를 뒤돌아보니 허물과 부족함 뿐이었습니다. 주의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며, 주께서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로 살기를 원했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헌신이요, 부족할 뿐인 충성이었습니다. 지혜롭지도 못했고, 용기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리고 성도들 앞에 송구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확신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부족했고, 허물 많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나를 용납하시고, 내게 새로운 힘과 능력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일어서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비전을 향해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을 풍족하고, 우리가 실력있고, 똑똑하고, 또 우리를 통해서 위대한 업적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에 어느 누가 당당하게 나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말씀에 보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에도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무능함에도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비록 충성스럽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성되이 여겨 사명과 직분을 맡기심으로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해를 뒤돌아 보며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한 없이 사랑하신다는 이 위로의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으로 남은 나날들을 아름답게 보내시고, 다가오는 새해를 믿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Main Subject

1.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로새서 3:12)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는 어떤 존재인가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형편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없고, 힘없다고 우리의 가치를 초라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인생길을 뒤돌아보니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죄요, 허물 뿐이라고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요, 거룩한 존재요, 또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정말로 멋진 집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은 성도들을 지칭할 때에 거룩하신 마포중앙교회 성도님들.. 이라고 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거룩이라는 말은 아무데나 갖다 놓는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너는 거룩한 자다.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거룩이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허물과 실수가 많은 존재들입니다. 죄가 가득한 존재들입니다. 작은 것에 분노를 참지못하며 성급하게 화내는 성숙하지 못한 인격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거룩하다고 여기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값을 어떻게 매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존귀한 자도 자기의 가치를 형편없이 깎아내리면 그는 형편없는 모습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근사하고 멋진 사람입니다. 양복을 입고 있을 때는 회사에서 꽤 잘나가는 사람입니다. 기획과 능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예의도 알고, 법도 알고, 점잖은 신사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비군복만 입히면 그 사람의 행동이 완전히 바뀝니다. 다리도 짝다리는 합니다. 괜히 건들건들합니다. 소변도 아무데서나 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예비군복에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그 옷에 맞추어 자기의 인격의 가치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짓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자녀는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은 늘 소심합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합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할 수 없게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는 것은 그의 삶에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참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 가치를 잘 알지 못하고, 형편없이 취급한다면 그의 인생은 보잘 것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의 신앙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를 적어도 하나님이 택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아끼시며 사랑하는 자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존감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당당히,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자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다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다면 사랑받는 자답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큰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1.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렇지 않는 자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보다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로새서 3:12)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답게 사는 것을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 여러 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넓은 가슴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로 밴댕이 속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밴댕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릅니다. 강화도에 밴댕이가 많이 난다고 해서 언젠가 밴댕이 회를 먹으러 갔었습니다. 한껏 기대를 갖고 밴댕이 회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맛을 보았는데, 제 입에는 이 맛도 아니고 저 맛도 아니고... 맹맹했습니다. 거기까지 간 열정이 아까웠고, 횟값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 때 왜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장사하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밴댕이는 성질이 무척 급하답니다. 그래서 그물에 걸리면 도무지 참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물에서 끓어 올리게 되면 즉시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밴댕이 회는 입에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 들은 것으로 횟값은 건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로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참지 못하고, 분노하며, 격분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에게도 엄청난 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넓은 가슴을 갖지 못하고, 밴댕이 소갈딱지를 갖게 되면 자신도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냐? 그렇다면 너희 가슴을 넓게 하라 관대한 마음을 가지라.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평양보다 더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드립니다. 강으로 통해 흘러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바다인가 봅니다. 바다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처럼, 성도들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돌맹이 하나 던진들 무슨 표가 나겠습니까? 돌맹이 하나 던졌다고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바다같이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는 한 없는 평안이 찾아오게 될 것이요,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능력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고,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때로는 그 말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분노가 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다보다 넓은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참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심히 존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존감을 인식하고 바다같이 넓은 가슴으로 모든 것에 겸손하며, 긍휼하며 참아 인내하시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2.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어떠해야 합니까? 본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바울은 사람들이 네 마음에 고통을 주고, 슬픔을 주고 상처를 주게 되면 그것을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사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용서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용서를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기꺼이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그런 사람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면서도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은혜가 더 귀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더욱 넘치는 축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결코 복수하거나 보복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만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용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상처준 일과 그런 말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기억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서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온갖 모욕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을 벌거벗겼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그것을 나눠가지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함이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고, 조롱하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도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용서해야 합니다. 절대로 용서못해, 어디 두고보자. 이래서는 안됩니다 허물을 기억에서 지워주어야 합니다. 지난 일을 다시 들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말을 지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서로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쌓이고 묵어있는 모든 허물과 실수를 다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목사에게 상처받은 것이 있습니까? 목사의 목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습니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잘 한다고 했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혹은 목사의 설교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고통을 당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걸고 말씀을 드리는데, 일부러 여러분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습니다.

비록 목사가 부족해서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을 금쪽같이 귀하게 여기시고,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심을 기억하시고, 부족한 목사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뿐 아니라 이 한해를 지내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준 모든 사람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평안이 넘쳐나고 우리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심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2.3.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1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아님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가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사랑이 없었습니다. 다툼이 많았고, 갈등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은사가 많고, 역사가 많이 일어나도 사랑이 부족했을 때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책망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서신서를 기록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땅히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신앙의 근간이요, 뿌리입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신앙은 사상누각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위대한 사역자들이 그 교회를 세우고, 또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같은 분이 에베소 교회를 개척해서 세웠습니다. 3년 동안 특별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같은 목회자가 그 곳에서 사역했습니다. 후에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좋은 신앙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풍성한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견고한 교회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단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교회의 정통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처음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탁월한 말씀이 있다고 해도, 효과적인 조직과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교회는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생명을 걸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랑을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고백하고 선포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를 대할 때에 사랑의 말로, 사랑의 표정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따뜻한 사랑이 교회를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직장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사랑의 고백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것입니다. 사랑의 섬김이 무너진 곳을 세워가며 견고하게 할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어도 사랑합시다.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죽기까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심령들이었는데,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그로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손해를 감수하시고, 기꺼이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는 곳에 내어줍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물고 뜯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사랑이 식어진 그곳에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Conclusion & Blessings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무능했는가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지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왭니까?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우리의 무능함에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세상의 어떤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연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입니까?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밴댕이 소갈딱지로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고 함께 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바다 보다 넓은 가슴으로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우리의 삶에 손해를 끼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향해서 복수하겠다는 생각, 언젠가 두고 보자는 마음을 버리고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고 다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므로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부서진 것을 새롭게 하며, 온전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정말로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에게 있는 행복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의 자존감을 분명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처럼 넓은 가슴으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행복한 저와 여러분, 온 교회가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