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변화 어떤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권총을

통합논술 세미나
〈미디어의 이해〉 1. 미디어와 사회변화

■ 책 소개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매클루언 지음/김상호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의 이해>는 1964년에 나왔다. 이 책은 출판 당시 미국 대학생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지닐 정도로 널리 읽혔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잊혀져 ‘학문의 관’ 속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미디어의 이해>는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왜 그럴까? <미디어의 이해>는 출판 당시보다 30년 뒤의 시대를 더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구촌’이라는 말도 마셜 매클루언이 처음 썼다. 따라서 그는 “미래를 너무 앞서 예견해 되레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학자”라는 말도 듣는다.

매클루언의 문장은 난해하다. 특유의 기발하고 대담한 가설을 툭툭 던지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잡지 <라이프>는 매클루언을 “커뮤니케이트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 풀무질

미디어를 적극적인 창조의 매체, 의사소통을 위한 새로운 채널로 표현한 고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 이종근 기자

1957년 7월7일 미국의 유명 언론인 제임스 레스턴은 <뉴욕 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 텔레비전을 줄곧 시청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쥐 한 마리가 어린 소녀와 다 자란 고양이에게 덤벼들었다. 쥐와 고양이 모두 별일은 없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를 상징하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 사건을 여기에 기록해 둔다.”

<미디어의 이해> 1판 서문은 이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쥐가 고양이를 공격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폭력물이 많은 텔레비전이 사람은 물론 동물의 행동까지 바꿨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건, 문제는 ‘폭력물’이 아니라 ‘텔레비전’ 그 자체라는 점이다.

<미디어의 이해>의 핵심 주장은 미디어는 어떤 내용을 담아 나르는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시각·청각·촉각 등 오감의 비율을 바꿔 감각·사고·행동을 변화시키며, 결국 새로운 사회 환경을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메시지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이해>는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선언한다. 더구나 이 책이 주장하는 미디어에는 비행기·도로·시계·만화·사진·전신·타자기·전화와 숫자 등 인간이 고안한 도구나 기술도 들어간다. 인간의 신체 및 감각기관의 기능을 확장하는 것은 모두 미디어다.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이며 문자는 시각의 확장, 의복은 피부의 확장,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 결정론자’, ‘기술 유토피아론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미디어 결정론자라는 비판도 받아

많은 사람들은 미디어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미디어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클루언은 달리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계 그 자체보다 자신이 기계로 한 일이 그 기계의 의미나 메시지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기계가 우리가 타인과 맺는 상호관계와 우리 자신 내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방식들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 기술이 콘플레이크를 바꾸는 것이든 캐딜락을 바꾸는 것이든 전혀 상관이 없다.”

모든 미디어나 기술의 메시지는 결국 미디어나 기술이 인간의 삶에 일으키는 규모·속도·패턴의 변화다. 철도가 이동·수송·바퀴·길 등을 인간 사회에 처음 들여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도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도시, 새로운 노동, 새로운 여가를 창조해 인간 활동의 규모를 확대하고 속도를 가속화했다. 이는 철도 가설 지역이 적도인지 한대인지, 또는 철도라는 미디어가 운반하는 화물의 종류가 무엇인가와도 별 관계가 없다. 비행기 역시 어디에 쓰이든 상관없이 수송을 가속화함으로써 철도에 바탕을 둔 도시·정치·인간관계의 근본을 흔들었다.

나폴레옹이 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화약의 문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인쇄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인쇄술의 발달로 똑같은 사상이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지방 사투리로 나뉘어 있던 프랑스 국민은 모두 동일한 종류의 사람이 됐다.

미국의 경영인 데이비드 사르노프는 “현대 과학의 산물들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가치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천연두 바이러스나 총기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디어 내용은 육즙이 흐르는 고깃덩어리

그 어떤 기술도 지금 우리의 현재 상태에 단순히 그 새로운 기술만을 추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의 등장은 신문과 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 환경에 단지 새로운 미디어가 추가되는 게 아니라 전체 미디어 환경을 바꿔버렸다.

영화는 기술적으로는 정지된 사진 24장을 순식간에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컷과 컷의 연결이라는 편집 과정을 거치면 새로운 구성과 창조성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인구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단지 수가 증가한 탓이 아니라 전기·전자 기술 발달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아주 가깝게 생활하게 됐기 때문이다.

토스터·세탁기·진공청소기 등 ‘일손을 덜어주는’ 전기기구는 일손을 덜어준 것보다는 하녀의 도움 없이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데 그 핵심 역할이 있다.

가장 큰 적은 전혀 눈으로 볼 수 없고 또 인식되지도 않는다. 모든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대응, 즉 ‘중요한 것은 미디어들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다’라는 식의 대응은 기술에 관해 전혀 모르는 멍청이들이 보여 주는 감각 마비 상태다.

왜냐하면 미디어의 내용이란 도둑이 집 지키는 개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육즙이 흐르는 고깃덩어리처럼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기술의 효과들은 견해나 개념 차원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감각 비율이나 지각 패턴을 아무런 저항 없이 서서히 변화시킨다. 그리고 미디어 또는 인간의 확장들은 ‘어떤 것이 일어나게 하는’ 주체이지 ‘어떤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주체는 아니다.


■ 마치질

인터넷 시대의 예견자 매클루언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인간·사회 및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 설명에 몰두했다. 그에 따르면 미디어는 사람의 오감(시각·청각·미각·촉각·후각) 사이의 균형을 바꿔 한 감각을 으뜸으로 만들어 인간의 감각·사고·행동을 바꾼다. 따라서 미디어는 인간에게 새로운 환경을 가져다준다. 새로운 미디어가 새로운 감각 균형을 만들고, 새로운 감각 균형은 새로운 환경을 만든다는 뜻으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한마디 말에 요약되어 있다.

매클루언은 역사발전도 미디어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의 생각에 알파벳과 같은 음성자모,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마르코니의 전신 발명은 인류 사회의 형태와 문명·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① 문자 이전 시대: 언어에만 의존하던 구두 커뮤니케이션 시대

② 문자 사용 시대: 음소문자(알파벳)나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

③ 활자 시대: 인쇄기 발명으로 개인주의 발달

④ 전자 미디어 시대: 전보 발명으로 시작. 요즘의 인터넷 시대

시대마다 인간의 감각과 사고 패턴이 바뀐다.

① 문자 이전 시대: 구두 커뮤니케이션. 복수 감각형. 비논리적.

② 문자 사용 시대: 문자 커뮤니케이션. 시각 단일형. 논리적.

③ 활자 시대: 문자 커뮤니케이션. 시각 단일형. 논리적.

④ 전자 미디어 시대: 구두 및 문자 커뮤니케이션. 복수 감각형. 비논리적.

문자가 없던 시대에는 오직 입에 의존해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의 제스처를 봐야 하므로 시각을,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므로 청각을 활용했다. 상황에 따라 후각과 촉각·미각도 동원했다. 인간이 가진 감각을 모두 사용했고 오감 사이의 균형이 맞았다. 그래서 매클루언은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을 ‘고결한 원시인’이라고 불렀다.

문자 사용 시대에는 책이나 문서를 읽어야 하므로 사람들이 시각만 이용했고 오감 사이의 균형이 깨졌다. 그러나 이 시기만 해도 아직 구어 전통이 강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도 인간 감각의 균형은 유지했다.

활판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감각 균형은 완전히 깨졌다. 인쇄물은 눈으로만 봐야 하므로 시각을 강하게 사용하게 됐다. 책 내용은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시간적·순차적·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메시지를 감각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졌다. 책을 통해서 인간은 처음으로 혼자서 읽고 생각할 수 있게 됐으며, 그 결과 개인주의가 싹텄다.

전기·전자 미디어는 또 다른 시대를 열었다. 텔레비전은 화면을 봐야 하므로 시각을, 소리를 들어야 하므로 청각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통신위성을 비롯한 각종 도구는 인간의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무너뜨렸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 다른 나라의 소식과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이른바 ‘지구촌’이 탄생했다. 이런 경향은 인터넷의 발달로 더욱 강해졌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달해서 사이버세계가 완벽하게 작동하면 인간은 청각과 시각은 물론 후각·미각·촉각도 모두 사용할 것이다.

1964년에 초판이 나온 <미디어의 이해>는 2011년 현재의 인터넷 시대를 분석하는 데 유효하다.


■ 담금질

컴퓨터 게임을 없애면 폭력이 사라질까?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귀국한 뒤 하루 종일 게임에만 빠져 있던 23살 박아무개씨였다. 그는 칼싸움 게임인 ‘블레이블루’에 너무 몰입했고 “제일 처음 본 사람을 죽이겠다”며 집에 있는 칼을 들고 집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게임 중독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부작용은 사회적 문제다. 친구와 모든 인간관계를 끊은 채 게임만 하다가 자살한 명문대생도 있다. 젊은 부부가 게임 속 아기 캐릭터를 키우느라 진짜 자식을 돌보지 않아 굶겨 죽인 사건도 있었다.

도둑의 변화 어떤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권총을

인터넷게임 중독자의 뇌는 마약 중독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텔레비전의 폭력성도 예전부터 문제였다.

미국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8000번의 살인과 10만번의 폭력 장면을 목격한다고 한다.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가 어린이 707명을 장기간 추적 조사했더니, 하루 3시간 이상 영상물을 시청했던 어린이들이 10대 후반~20대 전반기에 범죄를 저지른 비율이 1시간 미만 시청 어린이보다 4배 이상 높았다.

미국 연구팀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12~17살 청소년 2003명을 대상으로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 등 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20여개를 보여주고 조사했다. 그 결과 이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한 청소년이 그러지 않은 또래들보다 3년 뒤 임신 가능성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비판과 반박이 반복된다. 청소년들이 폭력물을 보지 못하도록 15금, 19금 등 등급 판정을 한다. 컴퓨터 게임의 경우 한국에서는 11월부터 심야시간대에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 접속을 막는 셧다운제를 실시한다.

그러나 마셜 매클루언의 논리에 따르면 텔레비전이나 게임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게임이나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문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방송사가 대중의 교양을 높이려고 위대한 사상가들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만 하루 종일 방송한다면 그 누가 볼까? 컴퓨터 게임 내용이 수학이나 과학·영어 문제만으로 이뤄져 있다면 청소년들은 눈길을 거의 주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나 텔레비전은 사회가 꺼리는 내용을 담지 않는다면 존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도 셧다운제나 텔레비전·영화의 관람 등급 제한 효과는 의문시된다.

예를 들어 셧다운제만 해도 청소년들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얼마든지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 스마트폰 게임은 규제 대상도 아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관람 등급을 설정해도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받아 볼 수 있다.

컴퓨터가 탄생하는 순간, 컴퓨터를 이용한 게임은 숙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마치 총이 발명되는 순간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나 적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애국적 군인뿐 아니라 흉악한 권총 강도도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짧은 말 속에는 방대한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매클루언은 “현대 과학 기술이 만들어낸 기술이나 도구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몽유병자의 소리’라고 거칠게 비난했던 것이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다음 지문을 읽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시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사례를 들어 보시오. (600자).

예를 들어, 햄버거 가게를 생각해 보자. 롯데리아나 버거킹 같은 햄버거 가게에 있는 의자와 탁자는 보기에는 예쁘고 깔끔하게 생겼지만, 엉덩이를 걸치는 부분이 작고 등받이가 딱딱해서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불편하다.

이것은 패스트푸드 가게 주인이 무심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패스트푸드 매장은 손님 회전이 빨라야 한다. 주문하자마자 햄버거와 음료수를 건네면 사람들은 그걸 들고 자리에 가서 엉덩이만 걸친 채 빨리 먹어치운 후 가게를 나서야 한다. 그래야 다음 손님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 있다.

손님이 편하게 앉아 쉬면서 햄버거를 즐긴다면 패스트푸드점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회전’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점은 많은 돈을 들여 산업디자이너를 고용해 엉덩이도 다 들어가지 않는 손바닥만한 바닥에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패스트푸드점에는 항상 최신 댄스곡이 흐른다. 빠른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의 식사하는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 작업 시간 내내 빠른 음악을 틀어주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햄버거를 먹을 기회를 박탈당해버린 것이다.

정재승 <과학콘서트> 3악장 ‘자본주의 심리학’ 중에서

2. 원자력은 에너지 효율이 높다. 우라늄 1㎏은 석탄 260만t, 또는 석유 91만ℓ와 같은 에너지를 낸다. 또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아 지구온난화 효과도 없다. 그러나 핵폭탄은 인류 자체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원자력은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유용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 견해를 <미디어의 이해>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원자력 이용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쓰시오. (800자)

3.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철도가 놓여 있다고 하자. 매클루언은 이 철도를 따라 운행하는 열차에 실려 있는 화물이 석탄인지 석유인지 아니면 철광석인지 혹은 사람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에 대해 글쓴이의 찬반 의견을 쓰시오. (12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