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모두에게 잘 할 수 없는 이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했다. 지옥은 아마 작은 방 안에서 타인과 단 한 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서로를 의식하며 영원한 시간을 보내는 형태일 거라는 상상과 함께 나온 말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이 사람과 단 1초도 떨어지지 않은 채 밥을 먹을 때에도 씻을 때에도 화장실을 갈 때에도 함께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숨이 막히지 않을까.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 외에도 타인의 '존재' 자체가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불러온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얼굴 표정과 시선, 감정 등을 감지하는 데 특화되어 있으며 우리 뇌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각종 사회적 단서들을 수집하고 퍼즐 맞추기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주어진 정보로 눈 앞의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판단해 0.03초 내에 첫인상을 형성하고, 눈 앞의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론하며(마음 읽기),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추론해 자기 검열과 행동 조절을 수행한다.

타인이 존재하는 우리는 단 한 시도 눈치 보기를 멈추지 않으며 마치 셜록 홈즈처럼 열심히 탐정놀이를 한다. 이는 주의력, 논리력, 추론능력 등 매우 고등한 인지능력을 요구하는 과정들로,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뇌가 유독 발달한 이유 역시 이런 '사회생활'을 잘 해내기 위해서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이를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밥 먹듯이 타인의 눈치를 보고 신경쓰면서 살지만 온갖 고급 능력들을 전부 동원해야하는 만큼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을 신경 쓰면서 항시 다소 과부하 상태가 되는 것은 사회적 동물로써 짊어져야 하는 숙명 또는 저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사람 한 명을 대할 때에도 위와 같은 복잡한 뇌 기능을 풀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동시에 신경쓰려고 하면 금세 피곤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좋은 기계도 계속해서 풀로 돌리면 금방 망가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결국 인간관계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있다면 좋지만 시간도 자원도 노력도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만이라도 잘 하자고 하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도 현실적인 목표 설정과 적당한 노력하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왜 모두를 다 챙기지 못하는 걸까?' 같은 고민이나 자책은 넣어두도록 하자. 인간이니까 그런 거다.

모두에게 똑같이 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목표임을 깨닫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 외에 사람들에게 '잘 한다'는 것의 기준을 수정하는 것도 좋다. 흔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끈끈한 관계를 좋은 관계의 기준으로 삼곤 하지만 진짜 삶의 질에 도움이 되는 관계의 특성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정말 끈끈해야 할 것 같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이 선을 침범당했다고 느끼면 행복도와 관계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마다 기초대사량이 다르듯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인간량(예컨대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명은 만나야 외롭지 않은 반면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두명만으로도 충분하죠)도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친밀함이나 좋은 관계의 기준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큰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년에 한 두 번 안부인사만 전해도 좋은 관계, 가끔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은 관계, 또는 속마음까지 다 내비쳐서 좋은 관계 등 관계에도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객관적인 조건이 비슷하다면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행복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그 비결은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잘 가지치기 함으로써 모든 관계에서 지나치게 애쓰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일수록 관계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쌓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인간관계 때문에 지쳐있는 상황이라면 내게 필요한 가지치기는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구글은 AI가 노동을 보조해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할 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AI가 사람들의 업무를 대신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단순 반복 업무만을 대체할 것이라 말하죠. 하지만 상황이 이리 낙관적이기만 할까요?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Photo by patricio davalos on Unsplash

<구글: 일할 때 AI가 필요한 순간>

1)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없거나 지식이 부족할 때 (ex. 수만 개의 데이터에서 특정 숫자 찾기)
2) 일을 빨리 해야 할 때
3) 재미없고 반복적이고 이상하거나 위험한 일일 때

경제학에서는 기술을 노동 대체형 기술과 노동 기여형 기술로 구분합니다. 구글의 낙관적인 태도는 AI를 '노동 대체형' 기술이 아닌 '노동 기여형' 기술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일만 AI가 대체한다고 했을 때 불가능한 결과는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이미 기계가 많은 단순 반복적인 일을 대체해왔습니다. 사람들은 기계가 대신 일하니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삶이 질이 높아질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웬걸,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는커녕 일자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효율"을 최선에 두며, 기업의 주인은 노동자가 아닌 최대의 이익을 바라는 주주입니다. 두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4시간씩 일을 시키기보다는 한 명을 8시간 동안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 한 명은 해고했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Photo by Jorge Salvador on Unsplash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AI는 노동을 대체할 것입니다. 그게 자본가와 주주가 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AI가 일을 대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나, 그 난이도에 따라 대체되는 순서에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AI가 어떤 일부터 대체하게 될지 하나씩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I가 어떤 일을 대체할까?

"3년 후 AI 초격차 시대가 온다"는 AI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5개로 정의합니다.

1) 인식
2) 예측
3) 자동화
4) 소통
5) 생성

다섯 가지 일 중 AI가 비교적 잘하는 것은 자동화, 예측, 인식입니다.

  • 자동화: 항상 같은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업무는 자동화하기 쉽습니다. Input 데이터가 정형화된 업무 또한 자동화에 용이합니다. (ex. 자동차 번호판 숫자 인식하기)
  • 예측: 방대한 양의 정제된 데이터를 활용하면 다음에 올 값과 상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ex.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 추천하기)
  • 인식: 추천과 마찬가지로 빅 데이터를 학습해 처음 보는 input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ex. 강아지 사진을 강아지 폴더에 자동으로 분류하기)

반면, AI가 아직 잘 못하는 것은 소통과 생성입니다.

  • 생성: 이미지/영상 등 숫자보다 변수가 많은 결과물을 생성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ex. 사람의 움직임을 학습해 똑같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영상 만들기)
  • 소통: 소통에는 인식과 생성이 모두 필요한데, 인식이 100%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고, 생성이 부자연스럽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ex. 사용자의 목소리에서 감정을 인식해 적절한 답변하기)

AI가 잘하는 "자동화, 예측, 인식"과 관련된 직업이 AI에게 먼저 대체될 것입니다. 특히, 항상 같은 결과를 만드는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되기 쉽습니다. 2013년 미국 노동 통계국 연구에 따르면, 시급이 20달러 미만인 노동자의 업무가 자동화될 가능성은 83%인 반면, 시급 40달러 이상인 노동자는 대체될 가능성이 4%입니다.

반면, AI가 아직 잘 못하는 소통, 생성과 관련된 직업이 가장 대체되기 어렵습니다. 소통과 생성 모두 input이 비정형적이어서 AI가 쉽게 학습할 수 없거나 output이 복잡해 AI가 쉽게 수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을 그 원인 별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a. 창의적인 일

"이런 input은 넣을 생각을 못했어!"

창의성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들을 접목할 때 발생합니다. 무엇을 어디에 접목할지 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영감"이죠. AI가 아무리 모방에 능하다고 하지만, 뜻밖의 영역에서 영감을 얻는 창조성을 모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AI가 고흐의 그림체를 사진에 적용하는 등 예술적인 표현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고흐가 고유의 스타일을 개발하는 과정은 AI가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예술가의 역할은 AI에 아무도 넣어볼 생각을 하지 못한 데이터를 넣고 마음에 드는 결과를 선택하는 것이 될지 모릅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피카소 스타일의 양양이 (https://app.runwayml.com)

그래서 살아남을 사람: 작가, 예술가, 미술가, 조각가 등.

b. 사회적인 일

"Input이 너무 지저분해.."

종합적인 지각이 한꺼번에 필요한 일은 AI가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미묘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직업은 가장 늦게 대체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사람은 "카페에서 내 옆 테이블에 앉은 잘생긴 남자가 신문을 읽으며 친구와 뉴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1초 만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생존 본능에 따라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빠르게 파악합니다. 그런데 AI가 이 정보를 인지하려면 무려 5가지의 input을 분석해야 합니다. 

시각 정보 1. 인물 인식: "남자", "잘 생겼다"는 정보. 잘생겼다는 것은 얼굴의 대칭성과 보편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대칭성, 보편성에 관한 배경지식 필요.

시각 정보 2. 객체 인식: 공간 정보, 신문, 테이블이 무엇인지 알아야 함.

시각 정보 3. 동작 인식 : 시간에 따른 시각적 정보의 변화를 인식해야 함.

음성 정보 4. 소리 구분 : 지금 들리는 음성 정보가 뉴스라는 것을 파악해야 함.

기타 정보 5. 인간관계 : 두 사람 사이의 역학을 인지해 그들 간의 관계를 알아내야 함.

종합적인 정보를 빠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배경 지식까지 필요합니다. 매번 새로운 반응이 등장하는 사회적인 상황에 적절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AI를 만들기는 쉽지 않죠. 사회적인 상황은 항상 예측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살아남을 사람: 정치인, 영업직, 서비스직 등.

c. 감정적인 일

감성적인 input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 합격한 상황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모두 슬픔을 표현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것은 기쁨입니다. 실제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AI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또한, 감성적인 반응에는 지연이 있으면 안 됩니다. 감성은 즉흥적인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어야 하죠. 감성적인 소통에는 실시간성이 중요한데, AI가 감성을 분석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면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반응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말이죠.

그래서 살아남을 사람: 심리상담가, 무속인, 양육과 관련된 직업, 연예인, 인플루언서, 연기자, 가수

마무리하며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은 창의적인 일, 사회적인 일, 감성적인 일입니다. 창의적인 일은 "생성"과 관련이 있고, 사회적인 일, 감성적인 일은 "소통"과 관련된 일입니다. 모두 AI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못하는 일이죠. 

그러나 비정형적인 input을 쪼개어 정형적으로 만들고, 모든 정보를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연산력이 받쳐준다면 AI가 감성적인 소통까지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미래에는 어려울 거예요. Input 정보를 쪼개고 인식하는 것부터 난관이고, 인간의 실력을 따라잡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