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몇 채 지어질 전망

건설·부동산 관리회사 ‘데이비스랭드앤씨아’ 이문수 대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안에 무주택자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혼자 무려 1083채를 소유한 사람도 있고 산꼭대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로 2007년 기준으로 100만채의 집이 남아도는데도 841만가구가 무주택이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집이 없거나, 집이 있더라도 돈이 없어 셋집을 떠돌고 있다. 집없는 사람들은 내집 마련을 못해 한숨을 쉬지만 부지런히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들은 미분양 때문에 억장이 무너진다. 엄동설한이 다가오는데 ‘뉴타운’이 들어서는 지역의 세입자들은 수도나 전기가 끊긴 폐허 같은 집조차 떠나질 못하고 굴지의 건설사들도 부도로 쓰러진다. 주택의 수요·공급만이 문제가 아니다. 신도시개발, 뉴타운 건설, 문화도시 등으로 새 건물이 선을 보이지만 고가의 비용으로 지은 건축물조차 전문가들로부터 ‘도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집이 몇 채 지어질 전망

서울의 명소가 된 에르메스사 건물 앞에서 “건설사는 건설만, 설계사는 설계만 하는 전문성이 이뤄질 때 주택 문제도 해결된다”고 강조하는 이문수 데이비스랭드앤씨아 대표. <김세구선임기자>

왜 집은 많은데 집 없는 사람은 늘어날까. 왜 막강 파워를 자랑하던 건설사들이 망할까. 왜 우리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근사한 명품 건물이 드물까. 대통령과 정부는 건설경기를 부양한다는데 국민 반응은 썰렁할까….

서울대 공대와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15년간 미국 건축회사에 근무했으며 세계적인 건설 및 부동산 개발, 투자를 계획·관리하는 데이비스랭드앤씨아 코리아의 이문수 대표를 만나 ‘한국 주택과 건설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없는지’를 물어봤다. 그는 “집을 제대로 지을 생각보다 이익만 추구하고 건설과 금융까지 모두 독식하는 건설사들의 욕심이 오늘의 주택문제의 주범”이라면서 주택은 물론 각종 건축물에도 개발부터 마감까지 전과정에 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 컨설팅이라는 것이 국내에는 아직은 생소한데 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주택이건 대형건축물이건 구상단계에서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 과정마다 전문가들이 개입해 전문화된 관리와 컨설팅 서비스를 합니다. 즉 프로젝트 입안단계에서 융자 및 비용 요청, 일반적인 건설감리는 물론 완공된 건물의 보수와 유지관리까지 책임지는 거죠. 집을 하나 지어도 곳곳에서 문제나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설계나 시공과정에서 추가비용이 들기도 하는데 과정마다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비용도 절감하고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해결하는 일을 합니다. 건설은 어느 과정에서 중지되거나 깨질 수 있으니까 항상 단계마다 꼼꼼하게 살펴 건축주가 최고의 이익과 만족을 얻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한국에선 흔히 CM이란 용어로 부르기도 합니다.”

-12조~13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송도신도시 프로젝트부터 캐나다대사관, 도산공원 앞 에르메스 빌딩까지 다양한 고객과 일을 했던데왜 정부부터 개인까지 값비싼 컨설팅비를 주고 일을 맡깁니까.

“작은 집을 하나 지어도 땅 구입, 설계, 건축, 마감에 이르기까지 돈을 마련하고 관청에 가고 설계사나 건설업자들과 만나야 하는 등 일도 많습니다. 우리는 과정마다 견적을 내서 가장 합리적인 비용을 제시하고, 예술성과 미학을 강조하는 설계사의 고집도 꺾어주고, 건축법 등 각종 법적 문제도 해결해주는 일을 하니 오히려 시간과 비용면에서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제 고객들이 알게 된거죠.”

-미국에서 15년간 일했고 1994년 귀국 후 대우건설에서도 5년간 일해 국내외 사정을 잘 알 텐데 한국 건설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우리는 건설회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어느 동네에 어떤 아파트를 지을 것인지의 프로젝트 구성부터 자금을 마련하거나 은행 등 금융권에 지급보증을 서는 것, 그리고 분양까지 거의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일을 하다 보니 부실공사, 분양가 문제, 최근의 미분양 사태까지 발생한다고 봅니다. 외국의 경우 시행사가 구매자 욕구나 시장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탄탄한 계획서를 마련하면 큰 주택업체나 건물이 필요한 곳에서 ‘이 정도면 내가 사겠다’고 선매도 의사를 밝히고 그 증서만으로 보증보험회사서 건설자금을 즉시 구할 수 있어요. 그럼 건설사에서는 문자 그대로 ‘건설’에만 충실해 좋은 건물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 최고의 작품이 나오는 겁니다. 건설사는 삽질과 망치질만 잘하면 되는데 우리는 건설사 파워가 너무 커서 ‘래미안’ ‘자이’ 등 브랜드만으로 가격이 좌우되니 문제죠. 그동안은 아무 동네에나 아무 개성 없이 튼튼하게 짓지 않아도 잘 팔리는 시대였지만, 이제 건설사들이 아파트 대량공급으로 돈벌던 시대는 지났어요. 건설회사와 금융권이 서로 지급보증하고 돈 빌려주며 서로 목을 죄는 상태가 되니 건설사 부도는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과거 건설사의 횡포가 너무 컸죠. 우리나라에서 특히 건설회사가 건강해지고 국민들이 제대로 된 아파트나 집에 살 수 있으려면 부실한 건설사들은 사라지고, 건설사는 본연의 임무인 건설만 하도록 관행이 바뀌어야 합니다.”

-미분양 아파트의 해법은 없을까요. 정부는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세금으로 마련된 주택기금을 포함해 2516억원을 들여 2026채의 지방 미문양 아파트를 사들여 임대아파트로 활용한다는데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미분양 아파트는 불경기가 원인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건 하자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변 시세에 비해 분양가가 너무 높다거나, 구조가 나쁘다거나…. 미분양 아파트는 정부가 사들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팔려 나갑니다. 건설사에서 싸게 팔든지 아니면 수요자들이 새롭게 발생하겠죠.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정서상 임대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미국을 비롯, 특히 북유럽 선진국 등에서는 공공임대주택비율이 최소 30%이고, 중산층들도 월세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고작 2%입니다. 그런데 미분양아파트의 물량을 정부가 구입해 임대아파트로 변경하면 제돈 내고 들어온 주민들과 임대주민들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을 테고, 어느 정도 임대료를 받을지 모르지만 그것조차 낼 형편이 못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정부가 알았으면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재개발에서 공원이나 도로 확장은 기반시설로 필수조건이라 생각하면서 임대주택은 혐오시설로 생각하더군요. 임대주택 물량이 아직은 너무 적으니까 그곳에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전체 주택의 절반이 임대주택이라면, 너도나도 다 임대주택에 산다면 혐오시설이란 오해를 받을 리 없겠지요. 무엇보다 서민이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만 임대주택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이 문제라면 명칭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얼마전 임대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을 일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무시하거나 ‘물이 흐려진다’며 임대아파트 건립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부에선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너무 많은 건축규제가 오히려 건설경기를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있고 또다른 시각으로는 규제를 완화하면 ‘강부자’들과 특정 건설사들의 배만 불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건설회사들의 목적은 이윤 추구인데 정작 이윤이 남지 않는다면 집을 지을 이유가 없겠죠. 또 소비자가 원하는 고품질 주택건설을 위한 기술연구개발도 소홀히 할 거라고 주장도 합니다. 제가 일해보니 건축에 관련된 규제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상반된 시각이 나오는 것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그만큼 우리나라가 획일적이라는 겁니다. 돈많은 이들을 위한 고급주택과 무주택자들에게 내집마련을 위한 주택정책이 달라야 하는데 그게 너무 혼재되어 있어 양쪽 다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송도신도시, 인천제2연륙교 등 정부 프로젝트 외에 골드만삭스 한국지사 오피스, 에르메스 사옥 등 이른바 명품 건물에도 참여하셨던데 한국도 두바이처럼 근사한 건축물이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때가 올까요. 더구나 요즘처럼 불황에 가능한 일입니까.

“송도신도시는 아마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멋진 곳이 될 겁니다. 분당, 일산처럼 조급하게 만들어지거나 미학적 관점이 부족한 곳이 아니라 곳곳에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능성과 미학적인 면, 활용도면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되고 있으니까요. 도산공원앞 에르메스빌당의 경우 건축주가 너무 엄격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써서 정말 심신이 피곤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탄생해 명소가 되었고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합니다. 무엇보다 건물이 아름답다고 소문난 후 주변에 유사한 건물이 많이 생겨 땅값이 올라 건축주도 만족했을 겁니다. 이처럼 화려한 명품 건물과 어느 곳에서라도 국민 모두가 따뜻하게 잠들 집이 고루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에서도 현명한 정책을 내놔야겠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도 건축학도입니다만 한국의 건축가들은 32세만 넘으면 관리자가 되어 설계를 하지 않더군요. 시공사는 바른 계획을 짜고 건축가는 설계 잘하고 건설사는 성실히 망치질하고 감리사는 꼼꼼하게 살피면 얼마든지 집 걱정도 없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같은 불경기가 오히려 건축이나 건설경기엔 훨씬 기회가 되고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