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 일본 영해 침범 해보자 어떤 반응 하는지

이시우 (사진가, www.siwoo.pe.kr)

 

그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됐던 이시우씨의 ‘푸에블로호사건과 유엔사②-위기절차’를 하나로 엮어서 <종합>편으로 다시 싣는다. 공안당국으로부터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진작가 이시우씨의 ‘푸에블로호사건과 유엔사’ 첫 번째 글은 이미 푸에블로호사건 39주년인 지난 1월23일 ‘푸에블로호사건과 유엔사①-영해문제’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바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 편집자 주 

                    <차 례>

들어가는 말
1. 미국의 위기조치절차
2. 푸에블로위기절차 1단계 - 상황의 발전
1) 유엔군사령관
2) 군사정전위원회
3) 작전통제권
4) 일본기지 사용권
3. 푸에블로위기절차 2단계-상황평가
4. 푸에블로위기절차 3단계 - 조치개발
5. 푸에블로위기절차 4단계 - 조치선택
6. 푸에블로위기절차 5단계-실행계획
7. 푸에블로위기절차 6단계-실행
맺는 말
<자료1>
<자료2>

이 글의 1편은 푸에블로호사건의 영해문제를 다룬 글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멀지 않은 시간에 이 글이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개인 신상에 생긴 일로 이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복원하고 조건을 마련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집의 서가에 있는 자료에 접근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어떤 부분은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미흡함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차후에 보충되길 기대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너른 양해를 바란다. / 필자 주

들어가는 말

벨 사령관이 유엔사강화론을 이야기하며 가장 강조하여 언급한 것이 ‘위기관리’라는 단어이다. 정전상태의 한반도에서 정전시 위기가 전쟁으로 발전하는데 시간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위기관리는 미군용어로는 위기조치절차이다. 유엔사와 미국, 남측정부를 일방으로 하고 인민군과 북측정부를 다른 일방으로 하여 발생한 수많은 위기 중 가장 극적인 작통권 행사가 이루어진 사건들은 모두 북.미 사이에서 일어났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EC-121기 격추사건, 판문점 미루나무벌채사건 등은 유엔사를 앞세운 미국의 위기조치절차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사례이다. 그러나 이들 사례에 대한 분석과 연구는 웬일인지 거의 전무하다. 푸에블로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문서가 공개되어 있고 그나마 몇 가지 자료가 더 존재하므로 푸에블로사건을 통해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위기절차를 어떻게 진행해나가는지를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쿠바위기나 통킹만위기와 마찬가지로 푸에블로위기 역시 미국은 사건의 유엔 회부, 군사조치의 병행, 국내법 절차를 위한 국회와의 조율 등 보편적인 과정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푸에블로위기를 비롯한 한반도위기에서 다른 나라의 위기조치절차와 차이가 나는 특수성이 있다면 유엔사와, 이로부터 연유하는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이다. 일본기지 사용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총리에게 협의가 아닌 통지의무만 있으며, 한국에는 협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위기절차가 진행되었음이 기밀해제문서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관계는 한국의 경우엔 유엔사가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은 1950년 이승만-맥아더 공문에 의해, 일본의 경우엔 유엔군활동을 지원한다는 1951년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을 통해 밑받침되고 있다.

비엩남전쟁에 병력을 파병해준 한국은 미국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줬기 때문에 군사부분에서도 한미동맹은 굳건히 과시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청와대습격사건에 대한 무관심과 푸에블로사건에 대한 과도한 대응은 한미동맹에 의혹을 던지게 했으며 실미도부대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핵개발 시도에 이르기까지 한미관계의 불협화음은 위험수위로 치달았다. 지금의 한미관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위험수위였다.

이라크파병 후에 촉발된 작전통제권 환수는 비엩남파병 당시 주월한국군사령부에 대한 작통권 환수와 비교할만한 공부사례가 될 만하다. 작통권 환수문제가 가장 많이 고민되고, 논의되고, 일정 부분 설득되기까지 한 계기엔 청와대습격사건과 이틀간격으로 발생한 푸에블로호위기의 처리과정에서 확인된 미국의 태도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북의 기습에 보복하기 위한 절박한 필요에서 촉발된 작통권 논의였지만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이를 쉽게 포기한다. 이틀을 두고 발생한 두개의 위기는 미국의 본질을 여과없이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의 차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통권문제를 공부하는데 있어 푸에블로위기만한 사례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군의 위기조치절차는 미합참의 합동문서에 정리되어 있다. 6단계를 거쳐 진행되는 위기절차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절차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위기조치가 개발, 선택되고 군사력을 움직이게 되어 있는 이 절차는 현실에서는 군사력을 이미 배치시켜놓고 위기절차를 다시 논의하기 시작하고, 여의치 않자 모든 조치 계획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난다. 처음부터 위기에 대해 군사조치절차를 시작하는 것이 무리였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백악관의 위기해결팀은 다른 어떤 해결보다 군사조치를 당연한 전제로 시작했다. 그러나 군사력은 위기해결에 유연성을 준 것이 아니라 경직성을 제공했다. 평화가 목적뿐 아니라 수단에서도 관철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한편 미국의 위기조치과정에서 한국군의 작통권에 대한 부분은 지극히 작은 것이었다. 백악관에서 한국군은 통제와 억제의 대상으로서만 등장한다. 이것은 한국군이 작통권을 환수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부분으로 판단된다. 위기의 발생 순간부터 양국간에 긴밀한 토의가 필요했으나 한국은 이미 미군의 군사력이 배치된 뒤에야 사건을 공식통보 받았다. 작통권 환수는 그러한 의무조차 벗게 해준다는 점에서 작통권 환수 이후의 체계는 1978년 이후 연합사체계보다는 1978년 이전 유엔사체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푸에블로위기는 그런 점에서 연합사해체 이후에 미군이 어떤 식으로든 강화하려는 유엔사체계를 상상해볼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미국의 위기조치절차

푸에블로호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전쟁절차가 아닌 위기조치절차로서 시작되었다. 1968년 당시 미국의 위기조치절차는 정교하게 수립되어 있지 않았다. 우선 미국의 위기관리와 관련된 역사를 개괄해 보자.

1947년 미의회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창설한다. 그러나 이것은 백악관참모조직의 일부로 간주되진 않았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의 국가안보보좌관들은 NSC참모와 백악관참모조직의 가교 역할을 했다. 1950년대 긴급메세지가 백악관에 도착하는 속도에 불만을 가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문에 국가안전국(NSA)은 크리티콤(CRITICOM) 통신시스템을 만들었다. 국가안전국이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누군가 최초로 정보를 입수했다면 10분 이내에 주의를 요하는 경고메세지가 백악관에 도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경고 메시지는 ‘크리틱CRITIC’으로 불렀고, 존슨 대통령은 크리틱메세지에 대해서만큼은 자기에게 꼭 전화를 해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케네디취임 후 NSC지원조직을 상당수 폐지, 4~5명이 책임지던 일을 국가안보보좌관 번디 수하로 통합시켰다. 문민대통령인 케네디를 불신하던 주한유엔군사령관 출신의 렘니처 합참의장과 CIA에 의해 이루어진 쿠바붕괴작전 중 일어난 피그스만의 재앙으로부터 백악관의 상황실이 생겨났다.

번디는 “백악관에 위기대책반만 있었어도 대실패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케네디에게는 군인들에게만 군사문제를 맡길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이 형성되었다. 케네디는 군정보조직의 계통적인 보고보다, 군비서관인 클리프튼 소장에 의한 개인적인 첩보수집 보고를 선호했다. 이는 전쟁대통령이었던 링컨의 전쟁지휘경험으로부터 전쟁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하기 위해 적용했던 ‘방향성 있는 망원경’으로서의 정보참모를 선호하던 전통과 이어져 있었다.

위기관리에 대한 총책임자로서의 미 대통령의 통치차원의 위기관리는 레이건 저격미수사건이 계기가 되어 레이건시대에 만들어 졌다. 레이건 1기에 활약한 리치빌 같은 위기관리 전문가는 과거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해서 위기관리 도구를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행정부 이양 때문에 그 의도는 매번 좌절되고 말았다. 위기관리 시스템 정립과 기획을 떠맡은 포인덱스터와 리치빌은 백악관 길 건너편에 자리한 구 정부청사 208호실을 개조하여 1983년 상황실 산하의 위기관리본부(Crisis Management Center : CMC)를 열었다.

그 뒤 레이건 대통령의 위기관리 특보였으며 그 후에는 NSC 사무국장을 역임한 로드 맥대니얼이 백악관 상황실에 위기관리 모델을 정착시켰다. 대통령들마다 받아들이는 뉘앙스는 달라지지만, 그 모델은 위기가 발생한 기간에 상황실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매뉴얼이 되었다. 위기조치의 한 부분으로서 군사적 위기조치에 관한 절차는 1997년 발표된 합동문서에서 최근의 완결판을 보게 된다.

이것은 1983년 골드워터 니콜스 의원에 의해 제정된 국방재조직법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군사적 조치의 조언자로서 합참의장의 지위를 다시 회복한 민군정상화 이론을 배경으로 한 교범이다. 이는 케네디와 존슨 등으로 이어지는 문민대통령들의 개별적인 정보보고와 조언을 방지하고 민군간의 관계를 재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푸에블로위기는 위기절차가 정리되기 이전의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6단계로 이루어진 현재 미군의 위기조치절차를 기준으로 푸에블로사건 당시를 재구성해 봄으로서 미국이 스스로 정립한 기준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드러내게 하고자 한다. 우선 위기절차 6단계를 요약한 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공부를 준비해보자.

<표1> 위기절차 6단계 요약

시차별 단계의 개요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

6단계

상황발전

위기평가

조치개발과정

조치선택과정

실행계획

실행

사건

◦국가안보와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의 발생

◦대통령,합참의장 총사령관의보고, 평가를 수령

◦합참의장의 경고명령발송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정제되고 우선순위가 메겨진 위기조치를 보여준다.

◦총사령관은 경계명령과 계획명령을 받는다.

◦대통령은 작전명령을 실행하기 위한 결정을 내린다.

조치

◦세계적 상황에서 인정된 문제의 모니터

◦총사령관의 평가제출

◦자각의 증가

◦보고의 증가

◦합동참모의 상황평가

◦합동참모의 가능한 군사조치조언

◦대통령, 합참의장의 평가

◦발전된 방책들을 총사령관이 평가요청메세지에 의해 하부에 임무할당

◦총사령관 평가승인메세지 보고

◦창조되거나 변형된 시차별부대전개목록

◦수송사령부의 전개평가준비

◦위기조치평가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조언

◦합참의장은 대통령에 의해 위기조치가 정식으로 선택되기 전 실행계획을 시작하기 위한 계획명령을 보낸다

◦총사령관은 작전명령을 발전시키고 시차별부대전개목록 정교화 한다.

◦병력준비

◦국방장관의 권한에 의해 합참의장은 실행명령을 보낸다.

◦총사령관 작전명령을 실행한다.

◦합동작전계획실행체계의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한다

◦합동계획실행위원회는 실행상태를 보고한다

◦재배치계획을 입안한다.

결과

◦국가와 연관된 사건의 평가. 대통령과 합참의장에게 사건을 보고

◦대통령과 합참의장 군사적 위기조치개발을 결정

◦총사령관은 위기조치 건의와 함께 예하사령관들의 평가를 보고.

◦대통령은 위기조치를 선택.

◦경계명령에 대통령에 의한 위기조치 선택을 담아 합참의장이 발표

◦총사령관은 예하부대로 작전명령을 보낸다.

◦위기해결

◦병력의 재배치

Joint Pub 5-0, Doctrine for Planning Joint Operations,  and Joint Pub 5-03.1 (to be published as CJCSM 3122.01), JOPES Volume I, 합동문서 5-0 합동작전 계획을 위한 교리와 합동문서5-03.1(합참의장 매뉴얼로 발표된) 합동작전계획실행체계 1장

2. 푸에블로위기절차 1단계 - 상황의 발전

연합사 겸 유엔사의 위기조치절차에 따르면 일상적 위기는 유엔사의 초기위기조치반(Early Crisis Action Team)이 관리한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초기위기조치반의 능력을 넘어서게 되면 위기조치반(Crisis Action Team)으로 넘어간다. 위기조치반장은 데프콘 상향조정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유엔사령관은 위기상황이 초기위기조치반을 벗어나는 순간 미국정부와 하나의 위기관리지휘체계에 있게 되며, 유엔사령관은 백악관 국가지휘센타의 중요 구성원이 된다.

위기조치계획절차는 일반적으로 국가지휘센타에 사건이 보고됨과 함께 시작한다.(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위기는 이미 유엔사령관이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조치 1단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황발생을 계속 모니터하고 한시라도 빨리 문제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동적인 모니터와 평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전수칙에 따라 즉각적인 대응들이 이루어진다. 아직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나 방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루어지는 즉각조치란 점에서 이들 초기조치는 평상시의 준비정도를 그대로 표출한다.

위기절차 1단계의 조치들은 그 자체로 오히려 위기를 격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엄격한 자제를 필요로 하나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이를 통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위기절차 1단계의 초기대응에서 향후 군사대응체계의 본질적인 문제가 사실은 다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에블로위기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초기의 혼돈에서 모든 문제가 초래됐고 상황이 정리되면서 만들어진 계획과 방책들은 장황했지만 결국 모두 폐기되어야 했다. 푸에블로위기절차 1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황모니터는 푸에블로가 북측영해 안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에서 영해에 대해 정리된 바가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선입견과 그것이 초래한 주관적인 가설, 그리고 너무 많은 정보보고들로부터 문제는 엉뚱하게 번져갔고, 결국은 위기조치절차를 시작하지 아니한 것만도 못한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미국은 북이 주장하는 영해에 대해 무조건 인정해야 했고, 사과까지 하는 정치적 굴욕으로 매듭지어졌기 때문이다. 위기절차 1단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조기경보기와 NSA수준의 도청 등 정보자산을 꼽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선입견을 반성하고 통찰하는 능력이다. 그때 비로소 정보들도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푸에블로위기 1단계는 보여준다.

푸에블로위기절차 1단계에서 선입견과 상황의 발전을 본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던 요소는 4가지이다. 유엔사령관, 군사정전위, 작전통제권, 일본기지사용권이다.

(앞으로의 서술에서 등장하는 시간은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통일하여 표기한다. 미국의 문서에는 동부표준시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시간과 비교하여 14시간 늦다.)

1) 유엔군사령관

1997년 발간된 위기조치절차를 확인해 보면, 1단계 동안 이루어져야 할 핵심 내용은 총사령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황모니터와 조치이다.

1단계에서의 초점은 일반적으로 전구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정부의 군사적 조치에 대한 책임을 가진 총사령관이다. 고려하고 있는 조치나 이미 취해진 조치에 대한 총사령관 평가는 위기를 빨리 돌파하기 위한 총사령관의 앞으로의 결심에 결정적이다.... 합참의 상황모니터는 지역총사령관으로부터의 보고를 요구하며, 교전수칙 아래 취해진 총사령관의 조치를 평가하며, 추가적인 정보수집을 명령하며, 필요하다면 상황발전에 대해 국가통수권자에게 조언한다.... 1단계인 상황발전단계의 끝은 사건이 보고되고, 총사령관의 평가가 국가군사지휘본부(NMCC)를 통해 합참의장과 대통령에게 제출될 때이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1월23일 1시경부터 각 기관에 상황이 보고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위기절차 1단계에서 유엔사령관이 교전수칙 아래 취한 조치와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자. 우선 그가 취한 조치중 하나를 보자.

이때(1시31분)가 돼서야 태평양에 주둔한 미군은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긴급 풀래시(속보) 메시지들이 공중을 오갔다. 한국에만 5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무장지대 근처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당시 비엩남전이 한창이었으므로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공군력은 미약한 상태였다. 한국에 주둔한 미 공군의 전력은 리퍼블릭 F-105 선더치프 폭격기 6대뿐이었다. 이들 선더치프는 1인승 단발 폭격기 중에서는 가장 대형으로, 약 8.3톤 무게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들 폭격기에는 핵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위기사태 발생시 중국의 목표지점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핵무기를 해제하고 공대지 미사일로 대치하려면 몇 시간이 걸렸다.

물론 한국의 활주로에는 어두워지기 전에 푸에블로에 닿을 수 있도록 전투준비가 완료된 한국 전투기들과 요격기들이 210대(F-4) 있었다. 한 미국공군폭격기 조종사는 “한국이 푸에블로를 구조할 수 있게 허가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및 한국에 주둔하는 UN군을 지휘하는 미국의 찰스 H 본스틸 3세 육군장성은 그 요청을 거절했다. 한국공군이 ‘필요 이상으로 과잉’ 반응함으로써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NSA1, p372, 제임스 뱀포드, 서울문화사)

유엔사령관은 이미 평상시에 정리된 위기조치 옵션 중 중국에 대한 핵폭격도, 비무장지대에서의 반격도, 한국공군에 대한 출격명령도 실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공군이 요청하고 유엔사령관이 거절했다던 한국공군의 출격은 실제는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있다.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장지량의 증언을 들어보자

23일 오후3시경. 나는 김포 11전투비행단 긴급 출격대기실에 나가 북한 전투기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비상대기하며 전 기지를 진두지휘했다. 이때 오산의 미공군 314사단장으로부터 긴급 전화가 걸려왔다. 314사단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장,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동해상으로 전투기를 출격시키시오!"
"전투기 출격이오?"
"지금 이 시간 미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 해상부대에 체포(납치)돼 원산항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소. 빨리 전투기를 출격시켜 방어하시오."

한국공군은 도쿄의 미5공군사령부와 그 휘하의 오산 314사단장의 작전지휘를 받게 돼 있었다. 314사단장은 "직접 미공군기가 출격할 수 있지만 우리 정보함이 납치돼 간 델리키트한 문제 때문에 한국 공군의 출격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목소리가 다급한 것으로 보아 미국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즉각 전투기 3개 편대의 출격을 명령했다. 이때 동해상으로 출격한 조종사로부터 무전연락이 왔다.

"미 정보함이 이미 북한 방공선(防空線) 안으로 끌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일촉즉발의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북한 방공선 안으로 쫓아 들어가면 원산 청진 신포에 주둔해있는 북한 전투기들이 출격해 대응해올 것이고 그러면 동해상에서 공중전을 벌여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자문했다. 아군기가 북한 방공선 안에서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북한 전함을 부수고 푸에블로호를 견인해 나온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다. 결단의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냉정하게 출격한 전투기 3개 편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푸에블로호가 북한 방공선 안으로 들어갔으면 돌아오기 바란다."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나는 최소한 국제법 조항에 기대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방공선 안으로 우리 전투기가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면 물어보나마나 전쟁이다.

(장지량장군 회고록, http://kookbang.dema.mil.kr/기획연재 기획시리즈, 그때그이야기, 제3화 빨간마후라, 351)

뱀포드의 책과 장지량의 증언의 공통점은 미공군이 한국공군에 출격요청을 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작전통제권을 가진 유엔사령관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과 유엔사령관이 아닌 미공군의 작전통제에 의해 실제 출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월25일 요코다의 5공군으로부터 태평양사령부로 보내진 전문에 의하면 장지량의 증언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5공군사령관 맥키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고, 푸에블로의 비통한 호출에 응답할 의무가 있었고, 조사를 수행했으며, 그리고 결론 내렸다. “아무런 요청도 없었기 때문에 항공호위도, 국내방어태세도 제공되지 않았다.” 5공군은 배의 임무를 통지받지 못했다. 그 당시 임무는 배의 명령의 실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오직 소수의 정보, 작전장교들이 임무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과 다른 5공군대원들은 푸에블로가 나포되는 동안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Telegram from 5AF to CINCPACAF, January 25; ibid.,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Vol. I, Part A [through January])

맥키 5공군 사령관의 공식전문에 전제된 분위기에 의하면 유엔사령관에게 한국공군의 출격요청을 한 사실도 부정된다. 책임을 지게 될 공식기록에 보고 될 수 없는 정황도 있음을 고려한다면 매키 사령관이 미공군이 아닌 한국공군에게 출격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은 역으로 성립될 것이다. 당시 5공군사령관 매키의 통제아래 출격명령이 있었음은 휠러 합참의장의 발언을 통해 확인된다. 25일 03시에 있었던 NSC의 푸에블로2차회의에서 대통령이 사건당시 30분이나 비행기출격이 부재했다는 언론보도를 토대로 군을 추궁하자 휠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휠러 합참의장 : 5공군사령관은 비행기급파명령을 하달했으나 곧 그 지역 적공군력의 우세와 어둠이 다가왔기 때문에 명령을 유보했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I, 1:00 p.m. Top Secret.)

위기절차 1단계에서 즉응조치로 비행기급파명령을 내린 것은 유엔사령관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5공군사령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5공군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한국공군에게 출격명령을 내렸다는 장지량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장지량의 증언이외에 이를 교차확인 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했으므로 현재로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은 유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지량의 증언이 사실일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판단을 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 사건이 된다. 태평양사령부의 지휘선과 유엔사령부의 지휘선의 혼란이 그것이다.

한국공군은 유엔사령관의 통제를 받으면서 주한미공군의 통제도 받는다. 당시 오산기지는 일본의 5공군 산하였고 1986년에야 7공군으로 독립된다. 주한미공군과 주일미공군은 태평양공군사령부의 지휘를 받으므로 주일미공군에서 주한미공군을 통해 한국공군을 움직일 수는 있다. 최소한 주일미공군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니 월권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사령관은 요코다5공군사령부도 지휘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동일인물이지만 유엔사령관으로 모자를 바꿔 쓰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 오끼나와까지 이르는 전구의 총사령관이 된다. 장지량의 출격명령은 공식지휘체계보다 사적인 인간관계에 기초한 지휘체계가 우선한 사건이며, 결과적으로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한을 가진 유엔사령관에 대한 항명이 될 것이다.

한국공군 출격의 또 하나의 문제는 지휘선의 혼란 문제와 더불어 교전수칙(Rule of Engagement) 없는 출격이었다는 점이다. 교전수칙은 무력충돌시 무력대응절차를 규정한 규칙이다. 장지량의 순간적인 회항판단은 출격을 명령한 주한미공군이 아닌 장지량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 참모총장이 미군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전쟁으로까지 가지 않도록 용단을 내린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공군은 장지량에게 교전수칙 없이 출격명령을 내렸고, 장지량 역시 교전수칙을 묻지도 않았다. 지시된 교전수칙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 임의로 ‘국제법’에 근거한 교전수칙을 적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지량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유엔사령관의 위기1단계의 즉응조치는 지휘통제에서 크게 실패한 것이며, 통제의 실패는 심지어 위기관리가 아닌 위기심화를 초래할 뻔한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2월7일 본스틸 사령관이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을 같이 만나고 나서 그 대화 내용을 태평양사령관과 휠러 합참의장에게 보고한 전문에도 장지량의 출격명령에 대해 감사를 표시한다든가 문제를 삼았다든지 하는 언급은 등장하지 않는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Military Cables, Vol. II, February 1968 to March 1968. Top Secret; Eyes Only.)

물론 이 만남의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국방장관을 제외하고는 푸에블로위기를 논의한 한국군 고위층과의 유일한 사적 만남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유엔사령관이 일부러 문제 삼지 않으려고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장지량의 한국공군 출격명령은 공식평가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만큼 민감한 문제이며, 본스틸 유엔사령관의 위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만한 사건으로 판단된다.

현재 비무장지대와 해상에서는 유엔사교전수칙이 적용되고 있다. 유엔사교전수칙은 꾸준히 발전되어 왔지만 모든 우발상황에서의 교전수칙을 준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푸에블로사건처럼 미국이 직접 개입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고, 미군의 합동성이 강화되었지만 군종간의 갈등이 여전히 강한 까닭에 미군내에서의 협조조차 원할 치 않을 상황에서의 교전수칙은 더 많은 우발성, 우연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군이 집행을 해도 유엔사교전수칙에는 변함이 없다. 우발상황에서의 교전수칙의 적용은 현장지휘관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나 어쨌든 그 최종지휘책임자는 유엔사령관이다. 미국정부와 합참, 태평양사령관과의 관계 속에 끼어있는 유엔사령관은 정전위기관리책임자로서 너무 많은 제한에 갇혀 있는 것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 당시에도 총사령관-합참의장-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미군의 지휘계통은 문제를 일으켰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부터 일주일만인 1968년 1월31일 북비엩남의 구정총공세가 발생한다. 당시 백악관은 합참의장으로 이어지는 보고계통을 무시하고 전투중인 총사령관에게 직접 보고를 요청함으로써 합참의장과 불화가 발생한 것이다.

1968년초 베트콩이 감행한 구정대공세 기간에 아트 맥커퍼티는 그 공격에 대한 첫 번째 보고서가 상황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군 관례를 침해한 적이 있다. 1월31일 오전 5시30분... 맥커퍼티는 비엩남의 미군사령관인 윌리엄 웨스트 모어랜드와 통화를 나눈 뒤, 대통령의 화를 피해가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소식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합참의장인 휠러 장군은 상황실이 그날 늦게 치열한 전투를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월트 로스토에게 질책을 퍼부었다.

(백악관상황실, p231-232, 마이클 K 본, 북키앙)

합참의장 휠러의 문제제기는 상황에 대한 1차보고의 책임선이 총사령관-합참의장선임을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장지량사건은 이같은 지휘선이 한반도의 본스틸 유엔군총사령관에게도 무시되거나 혼란되어 있었던 증거이다. 이는 푸에블로호를 책임지고 있던 NSA와 해군간, 의사소통의 부재는 물론이고, 사건지역에서 책임을 져야할 총사령관들에 대한 소통도 부재했음을 의미한다. 훗날 해군의 오웬스 제독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푸에블로호사건은 군함의 정보수집활동을 지시하는 NSA와 선원에 대한 행정적 관리책임이 있는 해군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되었음을 나타낸 사건이었다. 이 결과 일본과 한국에 있던 미군사령부는 푸에블로호의 임무를 몰랐고 어느 부대도 경계태세를 취하거나 피격시 근거리에서 함정을 보호할 수 없었다.

(불확실성의 제거, 윌리암 오웬스, p194-195, 21세기군사연구소)

위기조치절차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자 기본요소인 지역총사령관의 소외는 1983년 미국방재조직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미군의 지휘체계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병폐였다. 과거 미군은 통합사령부기획(Unified Command Plan)에 따라 전 세계를 몇몇 지역으로 나누고는 이들 지역을 담당하는 통합 및 특수 사령관을 임명해 이들로 하여금 해당지역의 군사자원을 작전통제토록 하고 있었다. 지역통합사령부내에 있는 각군 소속의 전력은 각군 구성군사령부로 조직화 되어 있는데 이들을 각군 구성군 사령관이 지휘하고 있었다. 따라서 각군 구성군사령관의 경우는 작전명령과 관련해 지역의 통합사령관에게 책임을 지며, 장비 훈련의 측면에서는 소속군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총사령관에겐 임무만큼의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지역통합사령관의 경우는 모든 군사작전을 지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투와 관련해 엄청날 정도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반면, 휘하 구성군 사령부에 대해 임무에 상응하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Reorganizing the Joint Chiefs of Staff, 합동성강화 미국방개혁의역사, 고든 나다니엘 리드만, p125, 연경문화사)

위기조치절차를 진행하는 중심주체는 백악관회의이다. 정전위기관리의 책임자가 유엔사령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위기관리체계에서 지역총사령관으로서의 지위와 역할만이 있을 뿐이다. 위기발생초기에 상황을 장악할 수 없었던 본스틸 유엔사령관은 그 뒤의 처리과정에서도 주도권을 놓치게 된다. 이는 판문점미루나무사건 당시의 스틸웰 사령관의 주도적인 작전통제와는 비교가 된다. 공식지휘체계보다 유엔사령관 개인의 지위와 능력에 의해 위기관리의 주도권행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을 주목해 둘 필요가 있다.

벨 사령관의 유엔사령부강화론은 이같은 역사적 교훈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엔사는 북과도 싸워야 했지만 때론 남과도 싸워야 했다. 한국군이 유엔사령관의 완벽한 작전통제 아래 있는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던 ‘위기관리의 위기’에 비교해 본다면 작통권 환수가 가져올 미래의 ‘위기관리의 위기’에 대해 유엔사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기관리 1단계에서 교전수칙에 따른 유엔사령관의 대응이 위기의 심화로 가지 않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유엔사령관 자신이다. 미국과 한국정부의 어떤 위기조치도 합의되지 않는 시점인 위기조치절차 1단계야말로 지휘통제의 모순이 가장 심각하게 분출될 수밖에 없는 단계이다. 정전위기관리의 책임자인데도 그에게 작전통제권이 반쪽만 존재한다는 것은 한쪽 팔을 묶고 싸움에 나가라는 것임을 누구보다 사령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판문점미루나무벌채위기에서도 확인된다.

키신저 : 스틸웰이 이 편지를 김(김일성:역주)에게 보내고 싶어 한다. 왜 스틸웰이 김에게 이 편지를 보내야만 되는가? 무슨 뜻이 있는가?
하비브 : 스틸웰은 유엔사 사령관이고, 김은 북한군 사령관이다. 또 김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키신저 : 이미 백악관과 국무부를 통해 이 살인 사건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이 나갔다. 스틸웰의 성명이 왜 또 필요한가? 스틸웰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아브라모위츠 : 없다. 워싱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일랜드 : 더 이상 편지 전달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나무를 잘라버리는 계획을 준비하라고 스틸웰에게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Minutes of Washington Special Action Group, August 19, 1976./신동아 2000.4월호, p570 ~ 599 재인용)

유엔사령관이 정전위기책임자로서 생각하는 바와 백악관에서 생각하는 그의 권한 범위에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유엔사령관에게는 백악관에도 없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푸에블로위기 4차회의에서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북의 영해 안으로 북이나 유엔에 공식통고 없이 키티 항모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1950년 안보리결의에 의해 이미 유엔사에 부여된 교전권에 의해 어떤 절차도 필요 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맥나마라 : 우리는 공식통고 없이 이 지역 안으로 키티호크 항모를 이동할 수 있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V, 8:30 a.m. Top Secret.)

유엔사령관은 미국 백악관 위기관리체계에서 일개 지역사령관에 불과하지만 유엔사령관이란 존재에 의해 백악관 어느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즉시교전권을 소유하고 있다. 1950년 유엔안보리의 참전결의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벨 사령관뿐 아니라 누구라도 유엔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전이란 비정상상태에 의해 비정상적인 전쟁권을 유엔사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에 대한 지휘통제의 모순이 가장 집중된 정점에 유엔사령관이 있다. 이것은 유엔사령관에게 큰 불행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겐 더 큰 불행이다.

미군에선 ‘전쟁절차’란 말 대신 ‘숙고된 계획절차’란 말을 사용한다. 전쟁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여 합법성을 얻지 못하면 전쟁의 문턱에도 가지 못한다. 물론 군사력만 믿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나 실패하기 쉬울 뿐 아니라 그 후과는 더 감당하기 힘들다. 때문에 유엔사령관이 가진 즉시교전권은 미국이 가장 빠르고 쉽게 전쟁의 문을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전쟁의 수단을 가진 자가 인내와 굴욕과 양보와 관용의 가시밭길을 걸어야하는 평화의 길을 선택하기란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유엔사령관의 불행을 막기 위해 작통권이 유엔사로 다시 통합되든지, 한국의 불행을 막기 위해 유엔사가 해체되든지, 양자택일의 길만이 한국에서의 정상적 지휘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2) 군사정전위원회

한반도 정전상태를 반영하듯 모든 위기절차는 군사정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푸에블로사건도 위기해결의 가장 유력한 수단은 군정위로 지목되었다. 그것은 미국과 함께 북도 합의가 일치하는 지점이었으나 푸에블로위기 1단계에서 미국이 군정위에 대해 취한 태도는 선전을 위한 것이었지 해결을 의도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음의 과정을 따라가 보자.

1월23일(22:55) 국무부가 주소미대사와 주한미대사, 주일미대사에게 동시에 보낸 전문에서 국무부는 푸에블로사건을 정전위반사건으로 해석했고 판문점의 군정위 채널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 유엔사를 통해 즉각 군정위 미팅을 요청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이미 서울사건과 연관된 일을 알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며, 비록 공격인지 나포인지 명백하진 않지만 정전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우리는 여하간 군정위 채널을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Secret; Flash; Exdis.)

이것은 다음날인 24일 (14:58-16:30) 백악관에서 열린 푸에블로 1차회의에서 국무장관 러스크에 의해 다시 확인되었다.

러스크는 배와 선원들의 구조문제는 공격으로부터 발생한 보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대안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대통령에겐 1.미군이 북을 치는 것, 2.설득을 통한 해결, 3.북한선박중 하나를 나포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소련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그리고 소련이 그것은 북과 직접 대화해야한다고 알려왔을 때 존슨은 ‘우리에게 다른 채널이 열려있냐고 물었다.’ 러스크는 답했다. 오늘 밤 청와대 공격건으로 양측 군정위가 만난다. 우리는 그때 배 문제를 거론할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 Top Secret.)

이처럼 첫 번째 실현 가능한 해결책으로 모색된 것은 유엔사군정위를 통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위기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기 전이었다. 1월24일(11:21) 국무부에서 주한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에는 유엔사군정위 수석대표에게 정전위에서 사용할 단어까지 지정해주면서 유엔사의 입장을 통제했다.

1. 유엔사군정위 수석대표는 북의 서울습격과 푸에블로나포 모두에 대해, 그리고 한국인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양쪽 다 균형을 유지할 것과 우리는 후반에 더 중요한 것을 첨부할 것에 대해 강하고, 위엄있고, 딱딱한 성명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2. 만약 북이 정전협정 아래 푸에블로의 제기된 정당성에 의문을 표한다면 당신은 질문을 무시하라. 그리고 이것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라.

4. 당신은 다음의 단어들로 진술을 끝내야 할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직접 다음과 같이 말하라는 미국정부의 지시를 받았다. 작년, 그리고 특히 바로 며칠 전의 사건들은 한반도 상황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했다. 북정권은 정전협정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자극, 사보타지, 암살 등의 군사행동에 관여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아무런 협박도 하지 않는다. 만약 북정권이 이지역의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같은 행동을 지속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북정권에 달려있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27-14 KOR/UN. Secret; Flash.)

전문에서 한국과 미국은 어떤 협박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문건은 누가 봐도 협박처럼 들린다. 이에 대해 북측대표인 박중국 역시 ‘미친개’ 운운하는 놀라운 설전으로 응수해왔다. 그러나 판문점회의에서 언제나 되풀이되는 이런 논쟁이 장애물은 아니었다. 장애물은 미국이 취한 외교위기조치의 결과 때문이었다. 이것은 유엔사가 유엔의 기관인지 미국의 기관인지에 대해 미국이 가진 근본적인 혼란으로부터 초래된 것이었다. 우선 외교조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자. 25일(22:30) 백악관에서 진행된 푸에블로 4차회의에서 유엔카드에 대한 입장은 유엔대사 골드버그의 입장을 통해 뚜렷해진다.

로스토우 대통령특보 : 우리는 유엔에서 우리의 손을 묶을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골드버그 유엔대사 : 안보리로 가기위해 우리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손을 묶을 위험이 있다. 남한은 유엔을 듣기 이전에 북에 대해 감정적이다.
존슨 대통령 : 유엔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도박을 해야 하나?
골드버그 유엔대사 : 배의 송환을 요구하는 결의를 주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북의 조치를 비난하기 위해 유엔에 요구하는 결의안을 건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전협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련은 결의안에 비토할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외교적 필요를 만족시킬 것이다.
(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V, 8:30 a.m. Top Secret.)

미국의 유엔카드는 유엔헌장 제51조 자위권 발동이 아닌 유엔안보리를 통한 해결원칙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걸프전까지 제51조를 주목하지 않았다. 골드버그 대사의 외교적 위기조치로서 ‘북 비난’ 대신 ‘배 송환’ 만을 요구하자는 주장은 가장 현실적이고 정제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유엔까지 가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정전협정으로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유엔안보리에 요구하는 것이 격에 맞는 것인지 또한 의문이다.

유엔사령관이 정전협정에 따라 사과하고 배를 송환받으면 되는 절차가 아직 유효했던 당시를 회고해 볼 때 그의 건의는 아이들끼리 놀다가 빼앗긴 장난감을 돌려받으려고 전국회의를 소집하는 격이다. 골드버그 대사의 유엔카드는 매우 구체적인 건의인 것처럼 보였지만 유엔안보리의 의제조차 되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장고 끝에 허수가 된 셈이다. 결국 이렇게 심사숙고 된 유엔카드는 토의조차 제대로 안된 채 의제에서 밀려났다.

1월25일 전문104660을 유엔에 이들 가이드라인을 상세히 하고, 결의안 초안을 발송했다. 골드버그의 편지는 안보리 의장에게 보냈고, 그의 성명서는 2월 12일, 국무부블루틴안의 유엔사보고서는 26일과 27일 기조가 작성됐다. 비록 푸에블로나포가 안보리에서 토의되었다할지라도 결의안을 채택하기 위한 투표는 없었다. 대신 안보리에서는 캐나다가 사적인 참가국들 사이에 토론된 문제를 제의한 제안이 채택되었다. 협상은 1월28일 열렸으나 계속되지 않았고 문제도 안보리의 고려사항으로 복귀되지 않았다.

(Yearbook of the United Nations, 1968, pp. 168-173)

원래 유엔카드의 목적은 군사조치를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지만, 안보리에서의 실패는 군정위회의의 기조를 바꾸었다. 푸에블로사건이 유엔기관으로서의 유엔사가 아닌 미국기관으로서의 유엔사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문항씨가 평가하듯 이것은 유엔사의 정체성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이었다. 자기논리의 완벽성을 추구하다 스스로 함정에 빠지듯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푸에블로위기를 미국 최대의 굴욕으로 만든 것은 군사력에서의 실패도 외교력에서의 실패도 아니었다. 유엔사에 대한 태생의 혼란을 정리하지 못한 인식의 오류 즉 착각이었다.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승무원 송환협상에서 유엔사정전위 스미스와 인민군정전위 박중국 사이의 설전중에 스미스가 ‘푸에블로호는 유엔사 소속배가 아니다’라고 하는 발언은 국무부가 주한미대사를 통해 내린, 사용할 단어까지 지시한 훈령에서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군부가 아닌 국무부가 주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입장은 수정되지 않았으며 더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나게 되었다. 북은 스미스의 논리를 받아치며 유엔사군정위 대표도 유엔사 소속이 아닌 미국정부의 대표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스미스자신이 유엔사정전위 대표가 아닌 미국정부의 전권대표임을 확인하였으며, 비공개회담은 유엔군사령관이 아니라 미 국무성의 지시에 의해 미국정부 대표 자격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도 유엔사군정위 대표가, 유엔사가 아닌 미국대표로서 사과문에 서명함으로써 지역총사령관인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사령관의 권한은 철저히 부정되었다. 유엔사는 곧 미군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유엔사 수석대표의 제의로 1차 회의가 2월2일 열렸다. 유엔사측 스미스 수석대표는 푸에블로호는 유엔사에 소속하지 않은 배라고 말했다... 2월4일 열린 2차 회의(정전위 제261차 본회의)에서 북측은 푸에블로호가 유엔군사령부에 소속하지 않는다고 한 1차 회담 때 유엔사측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응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 합중국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하며 쌍방이 적절한 대표를 다시 임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 신동아 4월호, 판문점 산증인 제임스 리 증언)

2월5일 있었던 제3차 회의에서는 스미스가 상부의 지시대로 스미스는 군정위의 유엔측 수석대표이지만, 푸에블로호사건을 협상하는 전권을 행사하는 미국정부의 대표라고 했다... 박중국은 스미스가 푸에블로호 사건은 인민공화국과 미국정부 사이에 협상해야 하는 것이고 스미스가 미국정부를 대표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못 박았다... 미국은 시초부터 푸에블로호가 유엔사 소속이 아니고 태평양사령부 소속이라고 주장하고 미국국무성이 협상을 전적으로 취급했기에 결과적으로 미국정부가 사과한 것이다. 시작을 잘못한 것이다.

(JSA-판문점(1953~1994) p33~41, 이문항, 소화, 초판)

2월5일 한국은 2월 들어 진행되는 북미비밀협상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한국도 참가하는 군정위로 복귀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문제를 완곡하지만 강하게 언급하였다.

나는 이미 포터 대사를 통해 미국과 북 사이의 비밀협상에 대해 당신에게 알린 바대로 나의 관점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반복해서 말하진 않겠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Head of State Correspondence, Korea, Park Correspondence, Vol. I. Secret.)

2월6일 (22:50) 정일권 총리, 주한미대사, 유엔사령관이 만난 후 주한미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정리된 관점은 북미간 비밀협상이 아닌 한국도 참여하는 유엔사를 통한 군정위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령관은 난처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비록 내가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장관들의 처지를 편하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길 원해도 그것은 일상적인 토의를 수행하는 나의 권한범위 내에 있지 않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Secret; Immediate; Nodis.)

정전위기 상황에 대한 책임이 유엔사령관에게 있음에도 그는 일상적인 토의 외에는 자신의 권한밖에 있다고 한 것이다. 정전관리책임자로서의 일상적인 토의의 핵심주제는 바로 위기관리이다. 이는 명백한 책임방기이자 회피이다. 북의 군정위 제안은 과거에 유엔사나 한국군의 헬기나 비행기가 북 영공에 잘못 들어가 격추됐을 때 그랬던 것처럼,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해서도 유엔사측이 정전협정 위반을 시인하고 사과하며, 앞으로 그런 침입을 다시 하지 않을 것에 대한 보장을 하라는 식의 요구를 똑같이 제시한 것이었다. 이는 즉 푸에블로호 사건을 과거의 다른 사건들처럼 정전위를 통해서 협상하자는 것이었다. 남측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국무부 또한 처음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유엔기관으로서의 독자성과 독립성을 갖고 있지 못한 유엔사는 국무부의 지휘를 받게 되는 구조자체에 의해 모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유엔사문제는 지휘차원에서 볼 때는 합참문제이다. 전략차원에서 볼 때는 국방부문제이며 정책차원에서는 국무부문제이다.

유엔사가 유엔 산하기관인지 미국 산하기관인지에 대해 가장 큰 혼선과 혼란을 보여온 것은 바로 미국 자신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용산기지사령부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연합사 해체와 더불어 정전유지를 명분으로 유엔사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그것이 결국 미국이 작통권 환수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음모로 해석되는 배경에는 자신들도 정리하고 있지 못한 혼돈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푸에블로사건은 유엔사령관이 미국이 처한 위기 앞에서 한반도 정전관리책임자가 아닌 미군의 일개사령관으로서의 제한된 권한밖에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학습시켜 주었다.

3) 작전통제권

1월24일(08:30)에 유엔사령관은 한국국방장관에게 첫 비밀브리핑을 했다. 사건발생으로부터 20시간이 지난 하루 뒤에야 한국은 정식통고를 받았다. 이 시점은 이미 유엔사령관이 교전수칙에 따라 1단계 초기조치가 진행된 뒤였다. 이 자리에서의 한국국방장관의 발언은 매우 큰 불만이 실려 있었다.

‘한국국방장관은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었고 박 대통령 암살을 겨냥한 북의 습격이후 판문점미팅과 일상작전단계 유지를 제외하고, 작은 일만을 한데 비해 푸에블로사건은 한국군에 사전통지도 없이 오산에 F-105를 가져왔고, 엔터프라이즈 항모를 이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을 위험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지적했다.

(Department of State, INR/IL Historical Files, Pueblo, 23 January 1968 to December 1968.)

1단계의 초기조치가 F-105와 엔터프라이즈항모의 전진배치였다. 미국으로서는 초기조치일지 모르나 상대국과 주변국이 느끼기엔 전쟁돌입으로 판단하기 충분한 조치였음을 한국국방장관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재전 장군의 증언에 의하면 26일에 본스틸 유엔사령관은 데프콘2를 명령한 것으로 되어있다. 데프콘을 상향조정하는 것에 대해 본스틸은 한국군 누구와도 상의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26일 이전 지휘계통에서의 유일한 접촉은 24일 국방장관과의 만남이었다.

한편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의 출격명령사건은 그것이 사실로 알려졌다면 한국정부로서는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통권이 유엔사에 있다고는 하나 전쟁으로 비화할 순간까지 가는 동안 한국의 국방부장관은 어떤 지휘체계선상에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유엔안보리 결의도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이는 무력을 통한 위협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헌장 2조4항의 위반이며, 무력시위는 유엔안보리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유엔헌장 7장42조의 위반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1950년 한국전 참전에 대한 유엔안보리결의를 정전상태라는 이유로 계속 행사하고 있으며, 유엔헌장 제51조 자위권조치의 무리한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사건 후 일주일간의 위기조치절차는 한국군의 작통권 여부와는 거의 관계없는 것들이다. 유엔사를 통해 미국은 얼마든지 유엔헌장규범의 제약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유엔사의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행사는 한국군과 함께 전쟁을 하기 위해 지휘통제한다는 개념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발을 묶어 놓고 억제시키는 개념이었다. 이는 유엔사의 위기관리개념에 전제되어 있는 생각이었다.

전시작통권의 핵심은 작전명령(OPORD)과 배치명령이다. 작전명령은 전투를, 배치명령은 병참을 결정한다. 전쟁의 운명은 전투 이전에 병참에 의해 이미 대부분 결정된다. 배치명령은 외교와 군사, 경제의 끝없는 갈등 끝에 행사되는 가장 힘든 명령이며, 배치가 시작되면 그 다음부터는 군사의 원리만으로 주도된다. RSOI와 같은 증원절차가 가장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배치명령은 합참의장이 내린다. 실행명령은 지역총사령관이 실행하게 된다. 작통권의 핵심을 배치명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역사령관인 유엔사령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미합참의장에게 있는 것이다. 판문점미루나무 벌채위기시 회의록에 의하면 데프콘 상향조정에 대해서도 미합참의장이 명령하며 그것은 유엔에 통보조차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키신저 : 언론 발표문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다 드러내면 안 된다.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기 때문에 데프콘3으로 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클레멘츠 : 유엔에도 통보해야 하는가?
하비브 : 안 해도 된다. 전에도 유엔 통보 없이 데프콘3으로 간 적이 있다.
할러웨이 : 스틸웰은 합참의 명령을 받지 유엔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Minutes of Washington Special Action Group, August 19, 1976./신동아, 2000.4월호, p570 ~ 599 재인용)

유엔사령관의 정전시위기관리 권한은 유엔과 아무런 관계없이 미합참의장의 작전통제를 받으며 미합참의장은 유엔사란 존재를 통해 유엔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작통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유엔사 외엔 없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이 시스템에선 조족지혈에 불과한 것이다. 유엔사령관이 위기관리를 위해 지휘를 통합한다는 것은 결국 미합참의장에게로 지휘가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사가 해체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박정희 정부는 1968년 1월의 두 사건을 계기로 작통권 환수를 신중하지만 절박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1월28일 청와대긴급안보회의에서 실미도부대가 수행하게 될 북 보복작전이 결의되고 난 뒤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나는 별도로 김일성 숙소를 타격할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가장 신임하는 전투 조종사 몇 명을 마음속으로 지목해 놓고 계획을 진행했다. 어느 날 나는 참모차장과 주요 참모부장만을 한정시킨 가운데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공군타격대 2개 편대를 편성한다. 1편대장은 내가 직접 맡겠다. 휴전선을 넘다 보면 북한의 대포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부 맞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목표 지점에 도달할지 모르지만 김일성 숙소를 부수고 돌아올 것이다.”

(http://kookbang.dema.mil.kr /그때그이야기/제3話 빨간 마후라 -100-특공대 훈련)
그러나 2월7일 장지량 공군참모총장과 본스틸 유엔사령관과의 사적 만남에서 장 총장은 내심을 숨기고 유엔사령관의 마음을 떠보지만 유엔사령관은 엉뚱하게 결론을 내린다. 다음은 본스틸이 이 모임 후에 요점을 정리하여 태평양사령관과 합참의장에게 보고한 전문이다.

장 총장에 의해 표현된 바에 의하면 그는 최근 위법을 저지른 북에 대항하여 징벌조치를 요구하는 지도적인 한국인들이 신문에서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미국정부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행동과 의지는 일부 한국인들에게 신뢰의 상실과 불안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국민들은 반미감정이 없음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장 총장은 민중의 요구에 동의하는 ‘어떤 고위층 사람들’이 원인이 된 대중적인 압력을 두려워한다. 장은 일방적인 응징조치가 한국에 군사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Military Cables, Vol. II, February 1968 to March 1968. Top Secret; Eyes Only.)

장 총장이 우려했다는 ‘어떤 고위층사람들’이란 자신을 비롯한 박정희 대통령 같은 고위층사람들이었다. 이재전 예비역육군중장의 증언을 들어보자.

미·북 간의 지리한 송환협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서종철 1군사령관이 내게 “큰일났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각군 총장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평양폭격 등 군사보복작전을 강구해 보라는 지시를 하는 바람에 보복작전이 추진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는 1군 참모회의에서 “전쟁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보복은 만용일 뿐”이라며 사령관께서 어떻게 해서든 박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서종철 1군사령관의 설득과 야전군의 반대로 보복작전 추진은 흐지부지됐지만 자칫 대통령의 즉흥적 지시와 무모함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을 불러올 뻔했던 것이다.

(/그때그이야기/제1話 溫故知新 박정희의 1.21 ‘보복작전’ 지시)

그러나 2월5일 박 대통령이 존슨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역시 정중하고 예의바른 문체로 바뀌어 있었다.

전문에 대해 대통령특별보좌관인 로스토우(W.W Rostow)는 코멘트를 적어 존슨 대통령에게 전달했는데 그것은 박 대통령의 답장에 “대단히 예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과 “남을 기습공격한 북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탄원”하는 편지라고 지적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Head of State Correspondence, Korea, Park Correspondence, Vol. I. Secret.)(Ibid.,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Cactus II, Cactus Seoul Cables, January 29 to February 9, 1968)

2월6일(22:50) 정일권 총리, 주한미대사, 유엔사령관이 만난 후 주한미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 의하면, 한국전쟁부터 유엔사와 충돌을 겪어온 정 총리의 기본인식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대북공격으로 무장된 주권의식, 유엔과 미국의 역사적 설정을 넘어서는 헌법에 반영된 이래 유지되어 온 한국만의 자기암시적 인식과 작통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토인 판문점에서 북미사이에 미팅이 진행되고 있다... 북에 의한 무수한 위반이 있었고, 오직 한국만이 모든 세계가 알고 있듯이 국제협정에 의해 영속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보복수단이 없다. 유엔사가 한국정부의 손을 묶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대는 보복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이상적인 상황에서 멀다. 총리가 말했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Secret; Immediate; Nodis.)

그는 판문점을 한국영토로 규정했다. 대한민국헌법 3조에 의하면 판문점뿐 아니라 북측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한국영토이다. 그러나 이것은 1950년 유엔과 미국에 의해 이미 부정된 바 있다. 유엔사령관의 권한도 한국헌법의 영토조항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설정 가능한 것이었다. 정 총리는 누구보다도 한국전쟁 당시 함흥시청 접수과정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지만 그의 자기암시적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었다. 유엔사작통권에 대한 불만 또한 정 총리로서는 38선 북진결정 때부터 오래 묵은 것이었다. 정일권, 포터, 본스틸의 만남에서 정일권이 푸에블로만을 신경쓰는 미국에 노골적이고 강렬한 불만을 토로했고 이는 뜻밖에 유엔사령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엔사령관은 작통권 중지까지 검토한 것이다.

본스틸은 보고했다. “유엔사는 임무를 유지할 것이며, 작전통제를 중지하고, 전선사단이나 바다접경을 통해 최상의 넓은 실행가능한 보복을 할 것이며, 모든 가능한 지원과 설비가 제공되는 한국의 국내안보계획을 최대한 넓고 가능하게 유지할 것이다. 만약 다른 사건이 생긴다면 한국은 행동할 것이다. 그들은 제한된 보복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Secret; Immediate; Nodis.)

한국은 유엔사를 통해 미국에 대침투작전을 지원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실미도부대를 연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유엔사령관은 이같은 요구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태평양사령관은 한국의 보복심을 위한 비정규전의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제시하며 문제점이 많음을 지적했다. 같은 4성장군인 유엔사령관과 태평양사령관사이에 이견이 발생한 것이다. 2월9일(18:05) 태평양사령관 샤프가 합참의장 휠러에게 보낸 전문에 의하면

질문이 있다. 그것은 한미연합비정규전계획참모와 검은작전(Black Operation)의 생산이 미국에 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이같은 비판의 줄기를 효과적으로 떼어낼 수 있을 것 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은 군사지원프로그램의 중요한 증가와 게릴라개념과 요구에 의한 대침투작전(CIGCOREP) 장비의 항공이동, 주한미군의 영구적인 추가주둔을 포함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특별한 척도들에 비추어서 검토되어야만 한다. 1953년 정전협정의 신중한 위반에 미국이 기꺼이 협력해야 하는가와 만약 그래야 한다면 북에 대한 비정규전작전이 성공하기 위해 어떤 근거 있는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Vance Mission to Korea (B), February 9 to 15, 1968. Top Secret; Priority; Noforn; Specat Exclusive.
(*CIGCOREP:Counter Infiltration-Counter Guerrilla Concept and Requirement Plan)

유엔사령관이 추천한 게릴라침투작전과 같은 비정규전(UW:unconventional warfare) 개념은 최근의 5029작계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당시로서 이 제안은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주장 앞에 좌초된 것이다. 사이러스 밴스와 박정희 대통령 간의 회담준비과정에서 작통권문제는 예리하게 제기됐다. 2월11일(01시10분) 사이러스 밴스와 박정희 대통령의 회담을 위해 한국외무부 담당자와 만난 내용에 대해 포터 대사가 국무부로 보낸 전문에 의하면 한국군의 작통권 문제제기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에 진격해 들어가는 것 까지를 염두에 둔 급진적인 것이었다.

a. 작통권에 대한 질문 : 그는 말했다. 한국정부는 유엔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룰을 약간 바꿔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한국 영토 안으로 침입자들이 깊숙이 공격해왔을 때도 한국군사령부는 한국전투부대를 움직이기 위해 총사령관의 허가를 구해야하는 처지에 있다는 그의 설명을 들으니 이상했다. 침입자에 대항해 한국사령관이 즉각적인 배치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 위해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 같은 목적을 위해 한국군은 자신의 작통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것을 유엔사령관에 통지하는 것으로 하고, 또한 침입자들이 한국영토 안으로 모험을 해왔을 때나 한국군과 미군에 의해 개입될 때, 게임의 룰을 맹렬한 추적의 원칙이 적용되도록 허락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정지하지 않을 것이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Secret; Immediate; Nodis; Cactus.

그러나 웬일인지 작통권문제는 본회담에서 제기되지 않았다. 구정공세로 인하여 비엩남전 최대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긴박한 요구는 비엩남으로의 한국군 5차 파병논의였고, 나중에 취소하게 되는 5차파병과 연례한미국방장관회담을 개최하는 것에 양국은 합의했다. 2월13일(01시47분) 사이러스 밴스와 박정희 대통령의 회담 내용에 대해 포터 대사가 국무부로 보낸 전문을 보자.

반대보고서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상호방위조약개정 또는 유엔사령관의 작통권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시도하는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Cactus IIa, Cactus Seoul Cables, February 10 to February 28, 1968. Secret; Immediate; Nodis; Cactus.

남측의 보수세력은 남북 대치의 위기상황에서 작통권 환수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작통권문제는 뜻하지 않게 의제에서 사라졌다. 북에 대한 보복공격심리가 불타오르던 조건에서 미국의 작통권포기는 남북대결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것은 평화적 힘이 받침 되지 않는 작통권 환수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호전적 지도력이 주도하는 작통권 환수가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 있는 반면, 평화적 지도력이 주도하는 작통권 환수만이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할 것이다. 작통권 환수와 자주국방론은 자주에서는 일치하지만 국방력강화에서는 불일치하는 개념인 것이다.

4) 일본기지 사용권

한국정부에 위기상황에 대한 통고도 없이 이미 이루어진 위기조치절차 1단계의 진행상황은 유엔사의 일본기지 사용권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음 기록을 보자.

23일 괌도에서 B-52전략폭격기가 오끼나와의 카데나로 이동배치 되었다.
(

팀스피리트, p75-77 재인용, 韓桂玉, 軍事民論 49호, 1987)

B-52의 이동이 주목받은 것은 전략핵폭격기라는 명성만큼이나 전쟁의지를 시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25일(09:50) 백악관 푸에블로3차회의록에 의하면 23일 B-52의 일본배치는 재확인된다.

대통령 : B-52를 몇 대 보낼 수 있는가?
맥나마라 국방장관 : 오끼나와에서 쉽게 전개될 수 있다. 비행시간은 약 2시간 30분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II. Top Secret.)

맥나마라의 답변에서 이미 23일경 B-52가 일본기지에 도착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건 발생 당일 북측지역에 접근하지 않고도 무력시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거리에 전략핵폭격기 B-52를 배치할 수 있는 유연성을 일본기지는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기지를 제공받을 수 있음과 더불어 자위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23일 1시부터 태평양사령부 전체에 긴급전문들이 오가고 통신회수가 급증했다. 14시36분경 미 본토, 일본, 오끼나와, 한국 등 태평양지역미군은 일제히 긴급체계에 들어가고 일본 자위대도 그에 준해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NSA1, 뱀포드, 서울문화사, p380)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일본 자위대도 경계태세에 들어 간 것이다. 유엔군사령관에겐 일본자위대를 ‘지원’이란 명분하에 움직일 수 있는 법적권한이 있다. 이같은 권한이 가능한 것은 1951년 9월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일본정부는 한국에서의 유엔군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시설과 역무를 제공한다”고 양국이 서명하였기 때문이다. 유엔사령관은 2시36분경 유엔사령관으로서 지위를 확인하는 작전통제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태평양사령부의 긴급체계발동의 결과로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호는 방향을 비엩남해역에서 원산으로 바꿔 구축함 2척과 함께 긴급항해 했다.

핵항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전갑판에는 마하 2 속도를 자랑하는 F-4B 팬텀기 24대를 포함, 60대의 공격용 전투기가 대기중이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가 푸에블로에 관한 혼란스런 메시지들을 받았을 때는 너무 멀리 떨어져, 푸에블로가 원산에 끌려 들어가기 전에 전투기들을 파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남은 곳은 엔터프라이즈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오끼나와뿐이었다. 12대의 F-105 전투기 선발대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활주로를 질주했다. 조종사들은 곧장 푸에블로로 날아가 북의 어뢰정을 공격한 후, 재급유를 위해 한국의 오산공군기지로 돌아오는 작전을 원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먼저 오산 공군기지에 가서 재급유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한편 카미세야의 도청요원들은 SC-35와 다른 호위선들이 약 5분마다 해안의 사령부로 무전을 보낼 때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푸에블로의 항로를 긴밀히 추적했다. 16시30분경 미공군 간부들은 푸에블로가 북영해 안에 있다는 소식을 카미세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러자 모든 지원활동이 취소되었다. 주한미공군의 F-4기들은 핵무기 대신 재래무기로 바꿔 싣는 작업을 마치기도 전이었고, 오끼나와의 F-105기들은 오산의 재급유기지까지 아직 한 시간 떨어진 거리를 비행중이었다. 이들은 예정대로 한국에서 재급유는 하되 북에 대한 공격은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NSA1, 뱀포드, 서울문화사, p380-382)

워싱턴에서는 어떤 조치도 결정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발생하자 일본의 기지와 영해, 영공은 모두 개방되었다. 유엔사의 일본기지사용권이야말로 정전위기에 대한 군사조치의 핵심으로 간주되고 있다. 1월 25일(00:30-01:45) 워싱턴에서의 1차 푸에블로회의에서의 다음 대화를 보자.

휠러가 말했다. 한국과 그 인근 지역 안에서의 우리의 군사적 강도를 강화하고, 한국과 그 인접지역에 공군과 해군을 추가로 보낼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은 우리가 이러한 강화조치에 일본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차이를 벌일 수 있을 것이다. 비거국무보좌관은 우리는 일본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카젠바흐 국무차관은 말하길 “우리는 사토 총리에게 대통령 편지나 가능하다면 대통령 사절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f Pueblo Group, January 24, 1968, 10:30 a.m.

1월26일(03:26) 백악관가족식당에서의 푸에블로 5차회의에서 러스크 국무장관은 일본기지 사용은 허가사항이 아닌 통고사항임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쪽보다 국무부쪽이 유엔사에 관한한 더 정확히 알고 있음을 증명한다.

맥나마라 국방장관 : 우리는 그 지역에 확실히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속도가 필요하다. 합참의장은 B-52 26대 즉 오끼나와에 있는 15대와 괌에 있는 11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존슨대통령 : B-52를 보내라
러스크국무장관 : 우리는 이것을 하기 전에 사토총리와 접촉해야 한다...
맥나마라 국방장관 : 먼저 사토총리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 다음 B-52를 움직일 것이다.
러스크국무장관 : 그것은 허가요구사항이 아니다. 통지사항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이것은 판문점미루나무 벌채위기 때에도 마찬가지로 확인되었다. ‘통지(notice)’가 ‘조언’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통지’가 더 정확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비브 : 일본과도 상의해야 한다.
키신저 : 그렇게 하자. 진행해라.
아브라모위츠 : 공군 병력을 임시로 이동하는 것은 일본과 상의하지 않아도 된다.
하비브 : 일본에 조언(advise)만 하면 될 것이다.

(Minutes of Washington Special Action Group, August 19, 1976./신동아2000.4월호 p570 ~ 599재인용)

유엔군 지원을 위한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일본정부에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 27일(01:08-02:02) 백악관 내각실에서 있었던 푸에블로7차회의를 보자.

비거국무부장관 : 일본과 접촉했다. 그들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우리가 추가로 오끼나와에 B-52를 보낼 것이라는 우리의 통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II, 11:00 a.m. Top Secret.

유엔사에 부여된 권한과 달리 미국은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를 위해 기지사용문제를 일본에 상의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벨 유엔사령관은 최근 서울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력 증원 및 전투 지속능력을 보장하는데 핵심은 유엔사-일본정부간 합의된 SOFA 조약입니다. 일본 내 기지 접근은 유엔사 임무에 중요합니다. 유엔기지 사용 불가 시 우리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미국 혹은 다국적군의 전력을 신속히 전개할 수가 없습니다. 동맹국을 신속히 지원할 수 있는 매카니즘은 억제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매카니즘은 유엔사를 통해 가능합니다.

(http://www.goodneighbor.or.kr/content.php?mode=list&c_idx=c0009&c_type=02&str_block=kor/2007년 2월10일검색)

유엔사-일본정부간 SOFA 같은 것은 없다. 유엔사는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SOFA와 같은 공식협정을 체결할 수가 없다. 그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기지 사용권은 일미안보조약과 일미SOFA와 일미가이드라인을 통해서도 보장된다. 그러나 벨 사령관은 이같은 매카니즘이 유엔사를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기지 사용권과 더불어 유엔사의 즉시교전권, 북점령권, 자위대동원권에 대한 지휘를 통합할 수 있는 지휘체계가 바로 유엔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신방위대강은 1951년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을 더 구체화시켰다. 유엔사의 잊혀졌던 지위만 다시 부활시키면 된다.

지금까지 자위대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은 남극 관측 협력활동과 함께 ‘자위대법’ 8장 ‘잡칙’ 100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방위출동, 재해파견이 ‘본래임무’인 반면 평화유지활동은 ‘부수임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자위대를 중동지역에 파견하기 위해서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이나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 같은 특별법이 제정돼야만 했다. 그러나 ‘신방위대강’에서 자위대의 해외활동을 ‘부수임무’가 아닌 ‘본래임무’로 격상시킴으로써 자위대는 유엔안보리의 결의 없이 미국과의 협의만으로도 자유롭게 해외파병을 단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부수임무’로 파견되던 시절에 비해 훈련과 장비도 훨씬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신동아 2005년 2월호, 조성렬, p172-186)

위기조치절차 1단계는 가장 혼돈된 상황이면서 앞으로의 위기조치절차를 규정하는 시작이란 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단계이다. 미국이 이미 군사조치에 들어간 상태에서 가장 호전적인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었던 한국의 국방장관조차 전쟁을 위험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때는 미국이 백악관점심회의에서 충분한 대안을 수립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한국에 알리지도 않고 전투기와 항모를 배치, 전쟁태세에 돌입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음날 24일 오전 10:30에 열린 백악관에서의 푸에블로그룹미팅이 끝날 때까지도 합참의장 휠러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고 따라서 유엔사령관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왔을 때 아무런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이것이 1단계의 전형적인 상황이다.

휠러가 말했다. “우리의 한국사령관은 이미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최근상황에 대해 한국사람들과 함께 강력하게 행동해야할지 냉정해야 할지를 질문해 왔다.”
휠러는 말하길 그는 지금 특별한 군사조치를 건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f Pueblo Group, January 24, 1968, 10:30-11:45 a.m Top Secret.)

3. 푸에블로위기절차 2단계-상황평가

2단계에서는 총사령관의 평가보고가 있고, 계속해서 상황에 대한 보고와 인식이 증가한다. 합참 역시 평가에 들어간다. 한편 합참에서 당시로서 가능한 군사조치도 조언을 해야 한다. 이들을 종합하여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고 대통령 역시 평가가 완료되었을 때, 형식적으론 2단계가 종료된다. 통상 위기조치 2단계인 위기평가단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지역총사령관이다. 위기상황이라는 촉박한 시간 속에서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총사령관의 평가야말로 가장 유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2단계 위기 평가단계는 군사적 옵션을 개발할 수 있는 국가통수권자에 의한 결정과 함께 끝난다. 국가통수권자의 결정은 위기조치를 개발하기 위한 특별한 지침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총사령관의 초기평가는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평가는 오직 상호고려 속에서 총사령관의 평가가 만들어져야 할 시간 부족의 상황에서 초기의 전문적인 건의이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2007.1.20검색)

이는 1976년 8월18일 미루나무 벌채사건시 스틸웰 유엔사령관이 데프콘3으로의 격상을 백악관에 건의하는 등 초기부터 작전의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주도하고 지휘한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푸에블로호 사건 당시에는 본스틸 유엔사령관의 주도적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25일 새벽 2시 본스틸 유엔사령관이 함참의장과 태평양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에 의하면 유엔사령관은 한국 국방장관과의 면담을 토대로 푸에블로사건이 아닌 청와대사건을 중심으로 위기 상황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워싱턴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스틸은 자신의 권한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위기관리그룹에서 그의 지위가 밀려나게 되는 근거가 아니었을까? 그의 평가를 보자.

가까운 장래에 보트상륙부대를 포함하는 북의 증강된 보복팀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하여 나는 한국국방장관과의 오늘아침 토의에서 그가 과소평가된 숫자라고 한 것과 잘 훈련된 북측팀의 영향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았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Events Leading up to; . . . . Secret; Immediate; Limdis; Specat; Exclusive.

위기조치에 대한 1차평가자로서 그의 방책건의는 한국의 상황에서 매우 절실한 것이었지만, 워싱턴에서 논의 되고 있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져 있었고 지엽적이었으며 더구나 정확히 말하면 푸에블로사건에 대한 방책이 아니라 청와대습격사건에 대한 방책이었다.

나는 지금 나이키-허큘러스 사이트와 특수무기 저장지역의 지역방위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7사단에 더하여 다른 대대를 고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위의 관점에서 미8군의 약간의 증강에 관한 신속한 결정을 건의한다. 특히 지역안보강화를 건의한다. 우리는 또한 바다침투위협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적인 미해군 감시비행과 두 대의 미구축함의 지원에 의해 앞으로 지원되는 것까지 포함하여 가용범위의 한국해군과 공군원천에 대해서도 곧 건의할 것이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Events Leading up to; . . . . Secret; Immediate; Limdis; Specat; Exclusive.)

위 문서는 보안등급이 Specat이다. Specat은 특별범주가 추가된 1급비밀(Top Secret by adding a Special Category)을 뜻한다. Limdis(limited distribution)는 분배선의 제한 즉, 대외비를 뜻한다. 나이키시리즈 중에서 나이키-허큘러스는 핵탄두겸용 지대공미사일이다. 나이키-허큘러스 사이트는 산꼭대기에 위치하는 방공미사일기지를 말하며 특수무기 저장지역으로 표현된 곳은 핵탄두 저장시설일 것으로 추정된다. 7사단 지역증강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당시 7사단 주둔 지역인 의정부 호명산에서, 동두천, 포천 불무산으로 이어지는 방공라인에 이들 시설이 배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8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유엔사령관으로서 이들 핵사이트와 시설에 대한 방어력 증강을 언급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미해군 감시비행과 두 대의 미구축함의 지원안은 워싱턴에서는 25일 아침 8시 국무부 카젠바흐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위기모임에서 휠러 합참의장이 처음 제안했다. 합참의장이 방책을 제안하기까지 미합참 위기조치반이 안을 만들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스틸은 유엔사령관으로서 합참의 제안을 받아 다시 한국군사력과 연계된 방책을 마련하고 있던 중으로 볼 수 있다. 24일 국무부는 포터 대사에게도 왜 북이 푸에블로를 나포했는가와 미래에 그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25일 11:05 주한미대사 포터는 국무부에 이 사건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했다. 포터 대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두 사건(박정희 대통령 공격과 푸에블로호 나포)이 명백히 연관되어 있다. 북은 애먹이는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다음 그들은 아마도 배와 대원을 돌려줄텐데 그러나 그것은 미국을 가능한 한 굴욕감을 주는 상황 아래서일 것이다. 이것은 결국 남비엩남에 대한 우리의 지원을 보이지 않게 손상시킬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포터는 북에 의한 침략과 전복활동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n Pueblo Crisis, January 24, 1968, 6:00 p.m.]. Top Secret.

푸에블로의 도청장비에 대한 책임부서인 NSA의 평가도 제출됐다.

1월24일 NSA국장은 DIA의 특별보안국과 합참에 배와 그들 장비의 소실로 인한 충격을 평가하고 있는 합참에 두개의 보고서를 해저전신으로 통신했다. 통신보안측면에서 국장은 푸에블로의 나포는 현대사에서 유래가 없는 중요한 정보타격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신호정보를 생산하기 위한 미국의 능력에 전체적인 손실과 충격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Both in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 Codeword Material, Vol. I, Part B [through January])

NSA는 대원들이 돌아온 후 과도한 기구와 재료들의 불필요한 나포가 암호영역에서 지속된 가장 중대한 손실로 결론이 났음을 보고한 후 분석을 준비했다.
("Cryptologic-Cryptographic Damage Assessment: USS Pueblo, AGER-2, 23 January-23 December 1968"; NSA, Center for Cryptologic History, Historical Files, Carton VIII)

각 부서의 평가서가 완성되어 갔지만 백악관의 푸에블로그룹은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스틸 유엔사령관을 중심으로 군사적 조치를 위한 준비는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같은 시간에 워싱턴의 회의에서는 정확한 상황인식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다음을 보자.

로스토우 대통령특보 : 나는 첫 접촉이 22시라는 당신들이 합의한 문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첫 번째 구조신호를 23시28분에 받았다고 들었다. 맥나마라는 그것을 23시54분이라고 했다. 나는 0시32분에 배가 사건으로부터 떠났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맥나마라는 배가 사건 종료된 시간이 0시25분이라고 했다. 역사적인 정확도의 문제를 위하여 우리는 정확한 시간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맥나마라 국방장관 : 우리는 NSA도청에 의해 계속해서 조사되고 있는 추가정보를 받을 것이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n Pueblo Crisis, January 24, 1968, 6:00 p.m.]. Top Secret.)

1월25일(08:00-09:30) 국무부 카젠바흐사무실에서 대통령 없는 푸에블로위기 1차모임은 정확한 평가가 나오기 전에 이미 가능한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고 유엔에서의 결의안을 얻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이야기되다가 유엔에서 결의안을 얻지 못했을 때의 대안이 없음을 알고 유엔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대비라도 하자는 분위기로 급반전된다. 그것은 군사조치였다.

니츠 : 맥나마라 장관에 의해 건의된 병력소집, 병력이동 그리고 또 유엔이 우리 상황을 거둬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처음의 두 가지 조치를 취하는 데는 아무런 모순도 없을 것이다.
러스크 국무장관 : 그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어느 것이든 대비해야 한다. 병력소집은 우리의 외교를 더욱 신뢰할만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예를 들면 베를린위기 때 예비군소집은 러시아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만약 우리가 유엔에 간다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억제받는 동안 다른 측면에서 아무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서 우리는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n Pueblo Crisis, January 24, 1968, 6:00 p.m.]. Top Secret.)

결국 유엔카드의 중요성을 가장 많이 역설했던 러스크에 의해 유엔카드는 군사조치카드에 밀려났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리포드 차기국방장관 내정자 : 우리는 생겼던 감정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안보리로 가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최상의 길일 것이다. 우리 상황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북은 아마도 계속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영해를 위반했다고. 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상황을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만약 무턱대고 군사력의 이동을 재촉하면 그것은 우리가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뒤집힐 것이다. 우리 상황을 안보리에 제출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다는 것과 세계 대부분이 알게 한다는 것, 미국국민들이 바로 다음 4-5일 동안 가라앉게 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시리즈의 처음일 뿐이다. 한 가지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 명백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바로 다음하나가 보다 명백해 지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나는 주요 군사조치를 위한 기초로서 이 사건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걱정스럽다. 리버티호의 경우와 같이 이것은 명백하질 않다. 만약 우리가 직면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뒤에 보다 나은 상황이 될 것이다.
맥나마라 국방장관 : 나는 우리가 무엇을 얻을 것인지, 무엇을 잃을 것인지 알지 못하고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n Pueblo Crisis, January 24, 1968, 6:00 p.m.]. Top Secret.)

정확한 상황인식과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이루어지는 위기조치는 이미 보유한 패권적 군사력에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과, 오히려 거꾸로 패권적 군사력에의 유혹 때문에 객관적인 상황인식과 평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위기회의기록을 통해 얻는 교훈일 것이다. 유엔카드도 군사조치카드도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말게 된다. 객관적 상황인식에의 결여와 국가의 위신과 군사력을 앞세운 성급한 위기조치들의 운명을 여실히 보게 된다.

러스크 : 우리는 어떻게든 북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난폭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로스토우 : 우리는 유엔에 단지 구걸이나 함으로써 미국국민들에게서 약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n Pueblo Crisis, January 24, 1968, 6:00 p.m.]. Top Secret.)

백악관의 평가작업과 동시에 진행되는 군사조치에 대한 조언이 각 부처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NSA의 경우를 보자.

마셜 카터 중장은 NSA 본부건물 9층의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한국시간 밤 8시30분). 그곳에서 작전지휘관인 공군소속 존 모리스 소장이 카터를 맞이했다. 카터의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앞에 선 사람들 가운데는 K그룹의 진 셰크와 B그룹 책임자인 미트재슬로, 그리고 루이스 토르델라도 포함되었다. 푸에블로는 NSA와 해군의 합동작전이었으므로 카터는 이일의 대부분, 특히 무엇보다도 이같은 위험한 임무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자신이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시아 공산권의 신호정보 분석 책임자인 B그룹의 밀트재슬로는 NSA가 ‘조치’를 요구하며 보냈던 이전의 경고메세지 사본을 카터에게 건네주었다.

그때까지 카터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카터 장군은 이를 읽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생각하기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가장 위대한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고 셰크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 방의 어느 누구도 이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그들 스스로 알게 된다 해도 나나 여러분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에 대해 지극히 당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메시지가 우리를 살려줄 것으로 본다.”

브리핑 후 NSA간부들은 향후조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재슬로는 일본에서 배너호를 당장 소환해 푸에블로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구축함을 한두 대 더 보내 이를 보호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57시간 이내에 작전을 완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 남쪽의 신호정보 정찰비행을 늘리고 북한지역에는 무인비행체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뿐 아니라 존슨 대통령은 초고속 고공정찰기인 SR-71을 북한상공에 보내 푸에블로와 승무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작전을 개인적으로 승인했다. 또 다른 중요현안은 푸에블로에서 투척된 기밀문서를 회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세크는 푸에블로사건 이후 험악해진 상황에서 배너호를 투입하는 계획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세크는 “재슬로 우리는 이번 사태의 대응에 매우 신중해야 하네. 알다시피 그들이 푸에블로에 그런 짓을 했다면 우리는 ‘그런 바보짓을 하다니’ 라고 말할 걸세. 게다가 그 계획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네” 라고 했다. 결국 배너는 38선 이남의 해군기동부대의 안전한 보호권 내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NSA1, 뱀포드, 서울문화사, p385)

대통령이 위기조치를 발전시킬 것을 결정하는 3단계 이전에 2단계 상황에서 합참의 ‘위기조치팀’을 비롯, 각 안보기관의 ‘위기조치팀’과 ‘작전단’에서는 지역총사령관이 취한 교전수칙과 그외 실행된 조치에 대해 평가하고 그를 바탕으로 이미 존재하는 작전계획과 개념계획을 검토하며, 배치가능한 부대와 가용한 수송자원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게 된다. 25일(00:30-01:45) 푸에블로그룹 1차회의에서 맥나마라는 선택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맥나마라는 이날 오후에 군사적 압력을 적용하기 위해 우리에게 열려진 옵션이 매우 좁을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아마도 어떻게 북이 반항할 것인가와 그들의 미래의 반항에 끌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에게 즉시 우리의 명확하고 확고한 의사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f Pueblo Group, January 24, 1968, 10:30 a.m. Top Secret.)

휠러는 1차회의까지 건의할 조치를 정리해오지 못했었다. 그가 발표한 안은 합참참모들이 정리한 정도의 일반적인 안이었지만 결국 이 건의안은 거의 마지막까지 가서 10대 대응방안의 골간이 된다.

휠러 : 우리는 다음의 것 중 어떤 것이나 아니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1. 한국과 그 인근지역에서의 우리의 군사적 강도를 강화하고, 한국과 그 인접지역에 공군과 해군을 추가로 보낼 수 있다.
2. 우리는 이 지역에서의 우리의 해군력 우위를 사용하여 수상과 수중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a. 바다에서 북한 배를 발견하여 나포하거나 침몰시키기. 그 목적은 바다에서 북에게 가치있는 어떤 것을 나포하거나 파괴시키는 것이다.
b. 선택된 만에 표준기뢰나 마크36폭탄으로 기뢰를 부설하여 북을 봉쇄하기. 잠수함 역시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c. 북의 연안해로 나가는 통항선박에 응징을 가하거나 그 같은 모든 통항을 봉쇄하기.
d. 선택된 목표물을 공군이나 해군이 타격하기. 원산항은 잘 방어되어 있기에 험악한 목표이다. 철길이나 연료탱크는 다른 목표이다.
e. 비무장지대를 따라 고립된 포스트를 공격하기. 비록 휠러 제독은 이 제안을 명백히 하진 않았지만 그는 아웃포스트를 공격할 수 있고 초병을 체포할 수 있다고 말했다.
f. 사진수색은 어떤 다른 조치이전에 착수해야한다. 무인비행기부대는 오끼나와에 이동해 있고 RF4는 남한에 있다. 이들은 날씨만 허락되면 사용할 수 있다.

헬름스 CIA국장은 ‘검은방패’(Black Shield)는 24시간 안에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다.(위 자료)

* 검은방패는 1964년 쿠바사태 때 CIA에 의해 1967년 카데나에서 첫 임무를 수행했고 1968년 1월26일부터 북 정찰을 시작했다.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Country File, Korea--Pueblo Incident--Miscellaneous, Vol. I.) 블랙실드 임무개시일을 24일로 기록한 문서는 미 국무부 동아시아과가 1972년 작성한 대북한 현안 보고서 초안으로, 이 비밀 문건 가운데 '미 정찰기의 정보 수집 활동' 항목은 1급비밀(top secret)로 분류되어 있는데, 미국이 북한 상공에서 정찰기를 통한 정보 수집 활동을 개시한 것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일어난 이튿날인 1968년 1월24일부터이며, 그 이후 '왕비늘(Giant Scale)'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전략 정찰기 SR-71을 동원해 정찰 활동을 계속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류이다. 1월29일 정보이사회는 1월26일 북상공에 대한 블랙실드 비행에 의해 모아진 정보의 예비평가를 포함한 메모랜덤을 발표했다.

맥나마라는 취할 수 있는 조치로서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했다.

1. 외교적 해결
2. 군복무기간연장 같은 현재의 대통령권한을 이용하여 우리의 총 군사력을 증강
3. 기뢰와 해상봉쇄 등을 이용한 외국배의 항행을 제한하는 것 같은 미군사력의 사용

(Johnson Library, National Security File, Files of Bromley Smith, Meeting of Pueblo Group, January 24, 1968, 10:30-11:45 a.m Top Secret. Notes of this meeting were also drafted by George Christian.)

이들은 모두 평상시에 준비되어 있는 조치들이다. 이것이 최종조치로서 확정되는가 안 되는가는 평상시 위기조치능력의 안정성과 신뢰성의 기준이 될 것이다. 러스크는 25일 백악관 내각실에서 진행된 푸에블로 3차회의에 좀더 정리된 유엔카드를 건의했고, 맥나마라는 시급한 비행기 배치문제를 건의했다. 본스틸은 5일전쟁 계획을 건의했다.

주한미군 및 유엔군을 통수하는 찰스 본스틸 장군은 “우리는 F-4기들을 잔뜩 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름대로 5일전쟁에 뛰어든다면 그들은 <타임>과 <라이프>지에 무시무시한 사진들을 제공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NSA1, p385, 제임스뱀포드, 서울문화사)

1976년 1월1일 한미1군단장 홀링스워즈 9일전쟁, 같은 해 7월29일 후임 쿠시먼 1군단장의 9일 이내에 전쟁완료가 가능함을 주장한 바 있다. 쿠시먼은 재래전으로 인민군 격파가 가능하며 핵공격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http://blog.naver.com/21mole?Redirect=Log&logNo=60015526866)/2007.1.10검색

푸에블로위기 당시 본스틸의 주장에 따르면 9일전쟁보다 훨씬 짧은 5일전쟁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스틸의 5일전쟁 계획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의 위기조치 건의는 선택되지 않은 셈이다.

25일(09:50) 백악관 내각실에서 이루어진 푸에블로 3차회의에서 대통령은 위기절차는 2단계에서 3단계로 발전된다.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방장관은 초기계획수립을 시작하였고, 남한에 비행기의 급파를 위한 필요서류를 작성했고, 부대들의 활동을 제안했다. 대통령은 그에게 만약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 제안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구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처리하기 위해 보다 충분하게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 첫째로 밥(맥나마라) 나는 비행기의 이동이 준비되길 원하며, 내일아침 식사 후에 이 결정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가 되길 바란다.
2. 이 조치를 준비하는데 요구되는 임시조치를 취하라.
3. 나는 300대의 비행기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얻 어라.
“당신은 이 미팅에서 끝났을 때면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II. Top Secret.)

이동은 배치를 의미한다. 대통령은 다음날 아침까지 비행부대의 급파를 위한 배치준비 완료를 요구했다. 아직 전체적인 군사조치가 건의되지 않았고 그 우선순위도 정해지지 않은 단계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치준비에 들어가기 위한 명령을 내린 것이다.

1997년 위기계획에 관한 합동문서(Joint Pub 5-03.1)에 의하면 위기절차 2단계동안 진행되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기조치계획 동안 어떤 시점에서 국가통수권자는 가능한 군사적 조치를 위하여 선택된 부대들이 준비하기에 적합한 상태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태는 부대의 즉응력을 증가시킨다. 경계상태 지정과 특별한 배치능력태세를 명령함으로서, 선택된 부대의 임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향상된 즉응조치는 어떤 단계라도 취해져야 할 것이다. 배치준비명령과 배치명령은 배치능력태세의 증가 또는 감소, 병력의 배치 또는 재배치, 합동임무군과 그들 사령부의 건설 또는 해체, 미국의 의지를 착수하거나 종결시키기 위한 조치를 경고해왔다. 부대의 배치태세 변화는 미국이 군사작전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두 개의 명령은 합참의장에 의해 발표되거나 국방장관에 의해 특별히 인가된다. 부대즉응력의 단계는 전개능력태세에 의해 정의된다. 배치준비명령과 배치명령은 모든 전투사령관과 국가안보국, 중앙정보기관들에 제출된다. 국무부장관, 백악관 상황실, 적절한 다른 기관들은 복사본을 받는다. 명령은 증가하는 배치능력태세와, 병력배치와 미국의 의지를 군사작전으로 만들기 위한 신호를 발하게 될 준비된 조치의 실행을 지정한다. 이것은 기다렸던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합참의장과 국가통수권자는 비밀과 공포 그리고 가능한 조치를 위하여 신중하게 선택된 무장병력의 필요에 대하여 그들에 대한 요구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작전비밀은 생명이며 연습되어 있어야 한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2007.1.20검색)

푸에블로위기 5차회의에서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전부대에 배치명령을 발표하지 않고 각 부대마다 따로따로 명령을 내리는 것에 대해 러스크국무장관이 의문을 제기하자 맥나마라는 간단히 답변했다. 기밀유지였다.

러스크 국무장관 : 나는 당신이 왜 이들 각 분대마다 알려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전투 계획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맥나마라 국방장관 :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곳으로 새나갈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이러한 기밀유지는 미군으로서는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들 군사력 배치를 위한 작전계획은 짧게 잡아도 수개월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군사작전이다. 이같은 대규모 군사배치는 숨겨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명령은 여러 나라의 부대에까지 전달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도 얼마나 오랫동안 파병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언론과 이에 따른 여론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경우 여론의 지지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 단계에서 여론의 지지대신 압력이 가중될 경우 지휘관은 ‘여론의 지지’와 ‘기밀의 유지’라는 선택의 중간에서 여론의 지지를 위한 성급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안겨준다. 결국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가 이 단계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졸고 RSOI에 대하여,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3108)

배치명령은 1단계에서 5단계까지 언제든 가능하지만 5단계를 넘어가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기절차 2단계에서 이미 최고의 비밀이 요청되는 배치명령까지 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벨 유엔사령관이 지적했듯이 정전상태인 한반도의 상황은 정전시위기가 곧 전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위기조치절차 2단계에서의 배치명령은 돌이킬 수 없는 전쟁으로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합동문서에서 정의했듯이 군사작전을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이 상황은 한국정부에겐 어떻게 적용될까? 25일(17:25) 국무부에서 주한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은 “Eyes Only 눈으로만 읽으시오”로 시작하는 배포금지, 급전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슨대통령은 한국과 인접지역에 미국의 지상주둔비행기와 항모비행기(아마250-300대)를 신속히 보내기 위한 결정을 고려중이다. 최고의 보안상태에서 박통에게 물어보라. 이 전개가 그에게 어떤 문제를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 당연히 한국에 추가되는 비행기에 대한 숙박과 편의는 수립된 채널을 통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긴급한 질문은 박통이 이같은 전개를 어떤 정치적 문제로 바라보는가이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27-14 KOR/UN. Top Secret; Immediate; Nodis.

한국의 대통령과 한국정부는 위기절차에 전혀 개입할 여지없이 배치명령이 내려지는 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통보받는 것이 최대의 예우이다. 이같은 상황은 작통권을 환수받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적 이해관계를 가진 일방이란 사실만으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4. 푸에블로위기절차 3단계 - 조치개발

위기절차 2단계는 대통령이 위기의 군사적 해결을 결심했을 때 끝이 난다. 그 결심은 합참의장에게 위기조치를 개발할 것을 명령하게 하고 3단계는 위기조치개발에 대한 합참의장의 명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합참의장의 경고명령이 각 부대로 발송되고, 발전된 방책들을 총사령관의 평가요청메세지에 의해 하부로 임무할당하며, 총사령관의 평가승인메세지가 보고 되며, 새로 만들어졌거나 기존의 것을 변형한 시차별 부대전개목록이 작성되며, 수송사령부의 전개평가가 준비되며, 위기조치가 평가된다. 이 모든 과정의 결과로서 유엔사령관은 위기조치를 건의하게 되고 예하사령관들의 평가를 보낸다. 합참의장이 대통령에게 제시할 위기조치안을 만드는 단계이다.

3단계의 시작은 ‘경고명령’이다. ‘경고명령’이란 미합참(JCS) 문건에 의하면 ‘다음에 올 작전과 명령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D-day H-hour까지 완벽한 전쟁작전을 준비하라는 특별명령이 하달되는 것이다. 일단 경고명령이 하달되면 방책개발을 수행할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 것이 전구사령관(한반도의 경우에는 주한미군사령관겸 유엔사령관)의 역할이 된다. 이 명령서는 여러 명의 국방부 고위관리들의 손을 거쳐 재검토되고 대통령이 최종승인을 내리면 즉각 전달된다.

1997년 위기계획에 관한 합동문서(Joint Pub 5-03.1)에 의하면 군사적 임무를 계획하라는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합참의장은 보통 경고명령을 발표한다. 만약 병력배치준비나 배치명령이 유지되고 있다면 국방장관의 승인이 요구된다. 경고명령은 위기절차가 아닌 숙고된 절차 즉 전쟁절차의 계획지시와 동등하게 다뤄진다. 예를 들면 이 경고명령 메세지는 다음의 것들을 포함한다.

- 상황 서술
- 지휘관계 수립
- 임무, 목표 그리고 가정을 선포
- 실행가능한 작전계획과 개념계획을 요구
- 병력과 수송자산 또는 총사령관의 특별요구 등에 대한 배치
- 배치일(C-day)과 배치시간(H-hour)의 시안을 수립하고, 총사령관의 건의를 간청
- 계획을 목적으로 한 예상되는 D-day 확인
- 관리, 병참, 공사, 민사 그리고 작전주제에 대한 지침토의

한편 경고명령은 총사령관이 위기조치들을 발전시킬 것과 대통령에 의한 승인을 명확히 요청해야 할 것이다. 이들 초기 명령에 언급된 메시지는 추가정보와 지침을 전달한다. 경고명령은 이미 합참과 대통령에 의해 확인되었거나 고려된, 앞으로의 위기조치에서 총사령관이 주목하고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총사령관은 할당된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이미 위기조치를 선택했다면 그들은 실행계획을 시작하기 위한 지시를 발표해야 할 것이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

푸에블로위기 3단계에 대해서는 위에 든 NSA의 조치개발과정이 확인된다. 유엔사령부에서는 위기조치팀(Crisis Action Team:CAT)이 조치개발을 담당한다. 한국합참에도 똑같이 위기조치팀이 움직이는데 문제는 이 두 단위가 어떻게 통합되는 가이다. 1978년 이후의 연합사체계에서는 위기조치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한국대령이 이 과정에 참가는 하나 데프콘 상향조정을 건의하고 한국합참에 알리는 것은 미군인 위기조치팀장의 임무였다.

그는 구두로 합참에 통고하는데 연합사의 결정과 한국합참에의 통지사이의 간격이 문제였다.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이 배제된다는 데 작통권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이것은 연합사 이전에도 문제였고 작통권 환수 후에도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3단계에서는 4단계에서 선택될 유용하며, 가능한 조치가 풍부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구에 포함된 한.일.미 3국의 가능한 위기조치가 모두 제시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작통권 환수논의에서는 한미 관계만이 부각되어 있지만, 한반도위기조치에서 일본의 지위와 역할은 무시될 수 없다는 것은 미국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한.일.미군의 지휘통합이 필요한 것인데 현재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유엔사이다. 만약 3단계에서 한.일.미를 통괄하는 유용하며 가능한 조치가 충분히 제시되지 못한다면 4단계에서 조치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게 된다. 조치선택의 핵심은 우선순위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미군이 유엔사강화론으로 경도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5. 푸에블로위기절차 4단계 - 조치선택

위기조치절차 4단계는 건의된 위기조치들이 대통령에게 제출되었을 때 시작된다.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정제되고 우선순위가 메겨진 위기조치를 제시한다. 합참의장은 대통령이 이들 조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조언을 한다. 합참의장은 대통령에 의해 위기조치가 정식으로 선택되기 전에 이미 실행계획을 시작하기 위한 계획명령을 하달한다. 마침내 대통령은 위기조치를 선택한다. 모든 군대에 경계상태로의 돌입을 지시하는 경계명령이 내려지고 이 경계명령 속에 대통령에 의해 선택된 위기조치가 합참의장에 의해 발표된다.

합참의장은 총사령관으로부터 예하사령관들의 평가를 받는다. 합참은 건의를 평가하게 된다. 위기조치는 정련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새로운 위기조치들은 변화된 상황의 관점에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명백히 최상의 위기조치가 없을 때, 대통령에게 나열된 건의목록을 주게 될 것이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

푸에블로위기회의에서는 4단계에 해당하는 위기조치선택과정 없이 곧장 5단계의 끝인 경계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결국 실행명령까지 내려진 6단계의 상태에서 4단계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위기조치선택과정을 밟게 된다. 우리는 이 과정에 대한 해설을 6단계에서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6단계이후에 대통령은 소위 출구전략을 제기한다. 전쟁을 어떻게 매듭을 짓고 빠져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비엩남전에서 홍역을 앓고 있던 존슨 대통령에게는 절실한 문제였고 이후 걸프전, 유고전등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고민된 조치선택사항이었다. 그러나 국방장관도 합참의장도 전쟁을 시작하는 건의안만 제시할 뿐 결국 출구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조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구전략을 확정할 수 있어야 건의된 조치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조치 선택기간 동안의 활동의 초점은 합참의장과 대통령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합참의장은 대통령에게 군사적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합참의 다른 대원들의 자문을 거쳐 총사령관에 의해 건의된 위기조치를 평가한다. 합참의장은 총사령관과 합동계획실행위원회에 계획명령과 함께 발표할 지침이 될 조치를 선택해야 한다. 계획명령은 실행계획을 촉진시킬 뿐 대통령의 위기조치승인을 대신하진 않는다.

대통령은 위기조치를 선택하고, 실행계획의 시작을 지시한다. 대통령의 결정을 받아서, 합참의장은 선택된 위기조치를 조언하는 총사령관에게 경계명령을 발표한다. 국방장관의 허가와 함께 합참의장은 배치준비명령이나 배치명령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총사령관과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다른 대원들은 계류중인 결정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함께 배치계획과 고용계획을 계속 작성한다.

4단계에서 보고가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합참의장은 대통령이 결정하기 전에 계획명령을 발표한다. 의지는 실행계획을 촉진시키고 위기로 발전될 사건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임무의 유연성을 허락한다. 그것은 전투정보 네트웤에 의하거나 자동디지털 네트웤에 의해 총사령관이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모든 대원들에게 복사본과 함께 구두로 발표한다. 계획명령은 합참의장과 합동계획실행위원회 사이의 최초의 기록전달이다. 이 상황에서 총체적인 계획정보는 변화될 것이다. 초기에 주었던 합참의장의 지침을 단지 업데이트하기 위하여 이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계획명령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다음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 계획을 위한 자원과 병력을 확정.
• 목적, 임무, 강제를 정의.
• 합참에 의한 미래의 계획지침을 유지하고
• 작전명령의 제출을 위한 데드라인을 줄 것이다.

조치절차중 대통령의 결정을 받았을 때 합참의장은 경계명령을 발표한다. 명령은 위기해결을 위한 상세한 군사적 해결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결정한 기록전달이다. 경계명령의 내용은 바뀌어야 할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만일 이미 발표된 정보라면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계획명령의 형식과 비슷하고, 작전설명의 명백한 상태 즉 경고명령 메시지와 국방장관에 의해 허가된 적이 있는 선택된 위기조치에 대한 실행계획은 제외된다.

4단계는 대통령이 위기조치들을 선택하고 실행계획을 시작하는 결정과 함께 종결된다. 경계명령에는 결정내용이 포함되어 발표된다.

백악관에서 열린 아침 4번째 푸에블로미팅(한국시간 25일 22:30분)에서 4단계가 대체로 완료된다. 아마 완료됐다기보다는 생략된 채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조치선택과정은 6단계가 종료된 뒤에 가장 많은 시간 논의 되게 되며 결국 군사조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6. 푸에블로위기절차 5단계-실행계획

실행계획은 총사령관과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대원들이 계획명령이나 경계명령을 받았을 때 시작된다. 실행계획단계에서 지원부대사령관은 대통령이 선택한 위기조치를 작전명령으로 전환시킨다. 5단계는 숙고된 계획절차, 즉 전쟁절차의 계획발전단계와 그 기능이 비슷하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상세계획이 대통령에 의해 지시되었을 때 승인된 위기조치를 실행한다. 실제병력, 유지, 그리고 전략수송자원이 확정되고, 작전개념은 작전명령포맷에서 서술된다.

실행계획 동안 취해지는 조치는 다음과 같다. 실행계획단계는 3가지 주요임무인 실행계획, 병력준비, 배치능력태세보고를 포함한다.

- 실행계획은 대통령이 지시하였을 때 실행할 수 있는 작전명령의 시차별 전개 계획이다.
- 작전명령은 존재하는 작전계획의 변형과, 존재하는 개념계획의 확장,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계획의 결함으로부터 계획을 수립함으로서 발전된다. 이해하다시피 완성되는 속도는 초기 계획의 량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조치는 경계명령이든 계획명령이든 실행계획으로 시작된다.
- 병력준비는 계획된 작전에 참여하도록 지정된 실제부대와 그들의 배치태세에 초점이 맞춰진다. 배치능력태세에 대한 5가지 범주는 부대의 상태와 장비, 부대 배치능력, 전략수송부대의 위치, 중개하는 수송지원부대의 위치 그리고 상륙항등을 서술한다. 배치태세는 국방장관의 지시에 의해 변한다.
- 합참의장의 경계명령을 받은 후에 사령관들은 특별배치능력태세의 조기달성이나 미달을 보고하기 위하여 합동문서1-03.8로 상황보고를 발표한다. 새로이 확정된 병력들은 지시된 배치능력태세를 완수하는데 기대되는 시간을 보고한다.

실행계획임무기간의 중요성은 총사령관과 예하사령관과, 지원하는 사령관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은 가장 큰 병력, 시간, 강제 등 지침을 얻기 위해 계획명령이나 경계명령을 검토한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병력과 유지요구 그리고 기본병력과 수송자원들을 위해 위기조치발전 3단계에서 했던 계획을 업데이트하고, 조정한다. 모든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대원들은 부족분과 한계를 확인하고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다. 서비스부대사령관과 총사령관예하의 구성군사령관들은 계획을 위한 병력을 확인하는 원천이다.

실행계획은 가장먼저 배치되는 부대에 집중된다. 실행계획은 총사령관에 의한 작전명령준비의 결과이다. 예하사령관들과 지원부대사령관들은 지원작전명령을 준비한다. 합참의장은 현재의 부족분을 해결하고 합동계획실행위체계에서 총사령관의 작전명령의 발전을 모니터한다. 또한 합참의장은 적합성과 가능성을 위한 마지막 공정을 검토하고, 상황의 상태에 대해 대통령에게 군사적 조언을 준다.

미군수송사령부는 지원부대사령관에 의해 확정된 수송요구에 대하여 수송자산을 충당하고, 승인된 위기조치와 작전명령을 지원할 효과적인 육.해.공 수송을 제공한다. 부대에 포함되지 않은 유지임무대원들의 이동을 위한 공중과 바다의 수송로를 건설하고, 공중과 바다수송을 위한 일정도 만든다. 초점은 공중으로 7일, 해상으로 30일 걸리는 이동의 초기 증가이다.

합동계획실행위원회는 합동계획실행체계 절차를 사용하고, 보급된 시차별 부대전개목록 개요 안에서 지침을 만들고, 시차별 부대전개목록을 더 다듬는다.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각 단계의 시점에 대해 한번은 언급을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사전논의절차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서 묘사되어왔다. 위기동안 그들은 사실 공동으로 수행되거나 우세한 조건에 의지하여 제거되기조차 한다. 예를 들면 1단계 총사령관의 평가는 3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발전된 사령관의 평가 안에서 건의된 위기조치로서 기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특별한 형식이 없는 합참의 경고명령은, 합참의장의 계획명령이나 경계명령을 받은 첫 통신기록이다. 그들 명령은 이미 발표된 조치이거나, 지원부대사령관이 실행계획으로 사용할 위기조치가 포함된 것이다.

위임된 병력에 대한 대통령의 결정은 2단계를 통해 5단계까지 압축하여 사건발생 이후 짧게 이루어지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위기조치절차의 유용성을 충분히 인식하기 위하여 시간은 제약없이 어떤 특정 단계와도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격한 시간 제약은 위임병력에 대한 결정을 포함하여 위기관계자들에게 구두로 정보전달할 것을 요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실제 연습에서는 보안전화를 사용한다.

1월25일과 26일(미국은 25일 낮)사이에 연속하여 진행된 푸에블로위기 4차회의와 5차회의를 통해 5단계 과정들이 대부분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는 5단계 종결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경계명령이 결정된 뒤에야 4단계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조치선택과정이 시작된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2단계에서 5단계는 압축할 수 있다. 즉 합리적인 선택 이전에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병력배치준비에 들어갈 수 있으나 불행하게도 상대방은 그 배치단계를 전쟁의 신호로 파악하고 반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전쟁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도 생각지 못한 단계에서 군사적대응의 일정에 쫓겨 배치에 들어갈 때는 실패가 기다린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25일 밤에 이루어진 푸에블로위기 4차회의 내용을 보자. 여기에서는 맥나마라와 휠러가 대통령에게 5단계를 종결하는 실행명령을 내리도록 요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며, 예비군소집은 공식발표를 통해 하는 것으로 최종결정하지만 역시 비행기의 이동은 기밀유지를 위해 사후보도하기로 한다.

맥나마라 : 나는 지금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추가로 나는 예비역부대를 소집할 권한을 갖게 될 대통령의 서명을 위한 실행명령을 가지고 있다.
맥나마라 : 추가로 난 내가 원했고, 조지 크리스챤이 검토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는 두 가지 보도발표문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보도발표는 소집을 알린다. 둘째, 보도발표는 남한에 추가부대의 실제 파병을 알린다. 우리는 공식통고 없이 이 지역 안으로 키티호크항모를 이동할 수 있다. 키티호크는 김빠지는 시간없이 이틀을 있게 된다. 합참은 엔터프라이즈항모의 이동을 윈치 않는다. 다른 배와 함께 그것을 재배치하려는 노력은 낭비가 될 것이다. 우리는 303대의 비행기를 남한에 보내길 원한다. 우리는 332대의 비행기를 소집할 것을 제안한다.
맥나마라 : 북의 공군력은 남의 공군력보다 실질적으로 앞서있다. 만약 우리에게 고민이 있다면 병력증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골드버그 유엔대사 : 나는 공식발표 없이 소집할 것을 건의하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공식발표 없이 조치를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을 외교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집은 유엔으로 가기 전에 나의 입장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줄 것이다. 난 소집과 우리가 외교적으로 하려는 것 사이에 어떤 충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점에서 나는 톰슨대사와 의견이 다르다.
맥나마라 : 난 우리가 소집없이 하는 것보다는 소집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어떤 것을 하는 일에 근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소집할 것을 건의한다. 나는 비행기의 실질적인 이동에 대한 공식적인 보도는 연기할 것이다. 여러분의 정보에 의해, 나는 남비엩남에 가는 도중에 있는 폭탄 10,000톤을 남한으로 돌리도록 명령했다. 우리는 남측에 충분한 폭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소집을 발표해야 한다. 이것은 누설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집에서 호출 받아야 한다.
러스크 : 오늘 소집령을 발표할 것이다. 난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하기 전에 갈 것이다. 내일 저녁에 우리는 남측에 이들 분대를 실제로 보낸다는 발표를 할 것이다.
조지 크리스챤 : 대통령은 실행명령에 사인해야 한다. 공식발표 없이 우리가 소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맥나마라 : 대통령은 예비군 소집권한을 가지고 있다. 지금 복무하는 사람들의 근무기간 연장법을 요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V, 8:30 a.m. Top Secret.)

5단계에서는 계획명령, 작전명령 그리고 최후에는 경계명령이 만들어 진다. 계획명령과 경계명령은 조치의 수신자가 되는 총사령관에 보내지고, 그들의 계획지침을 전방의 예하사령관들에게 보낸다. 지원부대사령관들은 배치, 재배치 그리고 병력의 재고용을 위한 절차를 공급하는 시차별 부대전개목록의 개요장을 발표한다. 개요장은 개요와 지시를 구성군사령관, 지원부대사령관들, 다른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대원들--수송배치, 보고, 요구확인, 일반적인 시차별 부대전개목록데이터의 관리와 관련된--에게 준다.

작전명령은 실행계획단계에서 생산된다. 합동문서1-02는 작전명령을 “조정된 작전실행의 영향력을 위하여 사령관이 예하사령관들에게 발표하는 지시”라고 정의한다.

합동문서(Joint Pub) 1-03.8은 작전계획보고서1의 보고를 위하여 포맷을 제공하고, 합동문서 5-03.1(합참의장매뉴얼3122.01로서 발표된)과, 합동계획실행체계 1장은 간략한 사례를 보여준다.

지원사령관의 작전명령은 목표지역작전수행을 위한 개요, 주요병력목록, 병참지원작전을 위한 관리계획과 함께 발표된다. 이동 목록과 일정에 합동계획실행위원회의 대원들이 접속하기 위해 합동계획실행체계 안으로 들어간다. 하위지원사령부들은 총사령관에 의해 요구된 것을 지원하는 작전명령을 발전시킨다. 적합성과 가능성 검토를 위해 그들은 완전한 작전명령의 복사본을 합참의장에게 전한다. 만약 작전명령이 합참의장의 경계명령에 포함된 지침과 반대라면, 또는 환경변화 했고, 작전명령의 조정이 요구된다면 합참의장은 총사령관에게 그 차이를 통고한다. 한국시간으로 25일 밤과 26일 새벽 연이어 개최 된 푸에블로위기 4차회의와 5차회의를 거치고 나서 경계명령은 하달된다.

맥나마라와 휠러는 키티호크를 기동시킨다. 또한 휘하 부대의 사령관들에게 경계를 발령했다. “언제든 당신은 세계위기 속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탱크를 선적하고 우리의 호위와 비행기를 준비해야만 한다.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지 마라.”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V, 8:30 a.m. Top Secret.

맥나마라 : 우리는 B-52에 경계명령을 내릴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발표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오늘밤 그들을 경계상태에 둠으로서 우리는 그 시간을 감소시킬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이리하여 경계명령이 하달된 것은 26일, 사건발생 3일후이다. 5단계는 대통령이 작전명령 실행을 결정하였을 때나, 보류상태에 위치할 때나, 어떤 다른 방법에 의해 진행중인 결정으로 취소되었을 때 종결된다. 26일, 대통령이 작전명령 실행을 결정함으로써 5단계가 종료된 것이다.

7. 푸에블로위기절차 6단계-실행

지역 총사령관 즉 유엔사령관이 실행명령을 받으면서 6단계는 시작된다.

대통령은 최종결심이 서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전쟁결심을 합의하고 전쟁에 돌입하는 이유를 합리화시키는 이른바 ‘국가안전지시’라는 이름의 공식적인 대통령 명령서의 초안을 작성하라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참모들에게 지시한다. 이것은 보통 역사적인 기록문건이 된다. 흔히 생각하듯 전쟁발발계획은 명확한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순차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이해의 편의상 단계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전쟁이 결정되는 단 한번의 토의나 회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상황이 서로 맞아 들어간 어느 시점쯤에서 전쟁의 윤곽이 확실해진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합참의장이 유엔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경고명령을 전달하는 시점이 전쟁결심과 계획이 확고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한두 쪽에 불과한 간단명료한 일급기밀문서인 국가안전지시(NSD)를 전시내각에 제출하고 그럼으로써 전쟁은 실행되는 것이다. 합참의장은 실행명령이 담긴 오렌지색 표지의 일급비밀문서를 국방장관으로부터 승인받아 전구사령관에게 기밀로 전송한다. 이제 전선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졸고 RSOI에 대하여,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3108)

실행명령에 의해 목적이 달성되거나 실행명령이 취소될 때 6단계는 끝이 난다. 푸에블로위기의 경우엔 후자에 의해 끝이 났다. 26일 (03:26) 백악관 가족식당서 진행된 푸에블로 5차회의에서 맥나마라는 실행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군사적 권한만을 계속 요구한다. 그는 당일 제출할 건의도 작성하지 못할 만큼 바쁘게 움직일 뿐 이후계획과 조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3단계조치개발과 4단계조치선택 과정을 생략한 채 실행명령이 주어졌을 때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 급박한 실행 앞에 어떻게 굴복해 가는지를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빗나가는 대화는 잘 보여준다.

대통령 : 공군명령이 취소된 이유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맥나마라 국방장관 : 그것은 어둠과 최소한의 노력을 해볼 여명시간 때문이었다. 또한 강대한 적의 병력이 있다. 그래서 사령관은 그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느꼈고 명령을 취소했다.
대통령 : 어떻게 배와 대원들을 송환시킬 것인가?
맥나마라 : 1.우리는 임무의 연장에 대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2.개별적인 예비병 소집을 위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의회에서 투표를 얻기 위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보급을 증가시키기 위한 특별권한을 요청할 것이다. 나는 만약 우리에게 수송능력이 부족하다면 민간항공기를 소집 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을 의회에 요청할 것이다...입법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준다. 나는 15만 예비군소집에 대한 권한을 요청할 것이다.
대통령 : 지금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우리가 배를 빼내올 것인가를 알고 싶다.
맥나마라 : 합참은 복무기간 연장을 원한다. 해병은 매달 훈련된 대원 1600명을 잃고 있다. 각하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복무기간연장을 통해 우리의 무장력의 질을 더 빨리 향상시켜야 한다.
대통령 : 우리가 거기서 모든 우리 대원과 비행기와 이들 기간연장을 획득했을 때, 그 다음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맥나마라 : 각하 우리는 오늘 건의안을 만드는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맥나마라 국방장관 : 우리는 7일 이외의 어떤 군사조치도 계획하지 않을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II, 11:00 a.m. Top Secret.

휠러와 맥나마라는 7일 동안의 계획밖에 없었고 자신들은 그 이상의 계획을 갖지 못한다고 버티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독주 앞에 이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도 않았다. 맥나마라의 정신상태는 다른 안보위원들의 신중한 문제제기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주술에 걸려 있는 듯하다. 대화가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만을 주문 외우듯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군사조치를 강력히 반대하던 클랔 클리포드 차기 국방장관 내정자마저 이미 고속으로 진행되는 군사조치의 현실 앞에 굴복하고 만다.

골드버그 대사 : 아마추어로서 나는 당신이 고민하길 원하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린 최근의 군사적 태세에 존재하는 모든 틈에 깃발을 꽂기 위해 이 사건에 체포된 것처럼 보이는 단계를 밟는 것을 회피하길 원한다. 우리는 우리 군사프로그램의 갭을 메우기 위해 사용하는 우리의 어떤 조치를 통해 그 단계가 나타나길 바라지 않고 있다.
골드버그 대사 : 북한의 어떤 것을 체포하는 것은 제한적 보복법에 의해 인정된다. 그러나 기뢰매설은 전쟁법 사안이다. 이것은 신중한 보복이 아니다.
맥나마라 : 우리는 그 지역에 확실히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속도가 필요하다. 합참의장은 B-52 26대, 즉 오끼나와에 있는 15대와 괌에 있는 11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휠러 합참의장 : 여기 전술항공기의 이동에 관하여 제안된 일정이 있다. 우리는 서태평양의 병력을 8일 동안 사용하는 명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 3일에 당신은 28대의 F-104와 14대의 정찰기 그리고 28대의 F-105를 갖는다. 이튿날 이후로 당신은 미국전투력의 대부분을 갖는다. 이것은 28대의 F105, 18대의 F-100, 그리고 17대의 F-4D이다. 7일후 당신은 최초의 전투태세를 갖게 될 것이다.
클락 클리포드: 이것은 간첩선이다. 만약 당신이 간첩을 잡았다면 당신은 그를 그 안에 둔다는 것이 세계의 일반적인 정서이다. 북은 우리가 그들의 영해를 침략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지원할 수 있는 명백한 상황에 있지 않다. 우리는 최후통첩을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문서들을 단지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공표한다면 블랙메일처럼 좋지 않다. 우리가 비행기를 보내는 것 자체가 공표가 될 것이다. 북은 더 오도록 어떤 것을 지시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길 원한다. 나는 소련과 다시 접촉하기를 건의한다. 나는 유엔으로 가는 것을 건의한다. 난 우리가 조용히 상황만들기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프랭클리 나는 또 다른 전쟁으로 우리를 인도할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위치를 최소한으로 되돌려 세우는 것이 낫다. 간첩선의 나포는 우리에게 전쟁으로 가게 할 만한 가치는 아니다.
(맥나마라가 비행기 이동을 위한 그의 일정을 손으로 써서 요약한 군사적 제안을 이어갔다)
맥나마라 : 일요일에 13대, 월요일 16대 + 레인저호로부터 66대, 화요일 66대, 수요일 30대, 목요일 24대,-- 이틀후(토요일) 우리는 비엩남으로부터 18대의 비행기를 보낼 것이다. 18대는 재배치된 것이고, 그들이 비엩남에 도착하여 재배치될 때까지 비엩남에서 보내진 않을 것이다. 26대의 B-52는 엔터프라이즈항모 갑판에 소속된 총 347대의 비행기를 이끌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 모든 문제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조치는 새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빈틈없이 새나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기자들은 그것을 냄새 맡을 것이다. 우리는 이동하기 위해 오늘 부대에 경계명령을 내릴 것이다.
대통령 : 클라크 당신은 이것에 합의하는가?
클락 클리포드 : 반대하진 않는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I, 6:30. Top Secret.

회의의 분위기에서 이해가지 않는 것은 질문을 하던 대통령마저 결국은 맥나마라와 휠러가 주도하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동조하여 판단을 정지하고 결과적으로 군사적 조치로 급속히 기울어 가는 것이다. 처칠은 사령관들에게 끝없는 질문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알도록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전쟁지도력을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존슨의 질문은 맥나마라나 휠러의 답변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대통령은 어느 순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대통령 :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자각시키기 위해 우리의 군사력을 이동시켜야 한다. 나는 이미 하던 대로 기지에서 병력을 이동시킬 것이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들을 움직일 것이다. 나는 군사적 관점에 의해 유도할 것이다. 우리를 방어하자. 도청에 의하면 북은 충분한 동원상태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난 북을 폭격하기 위해 B-52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난 그들을 유리한 지점에 배치할 것이다. 합참의장은 그들이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징벌하고 경계를 높여야한다.)
휠러 합참의장 : 정확하다. 각하. 당신은 북이 1950년 포대를 움직여 DMZ를 관통한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B-52와 전투기, 폭격기가 지상군을 후원하길 원한다.
대통령 : 당신은 그들을 가지고 필요하다면 DMZ를 적들이 통과하기 전에 분쇄해야 할 것이다.
클락 클리포드 : 버즈휠러는 매우 논리적인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깊은 걱정거리이다. 나는 대통령이 개연성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북이 거대한 군사행동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괴롭히기에 착수한 것뿐이다.
나는 배와 83명의 승무원에 대해 마음 속 깊이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한국전쟁을 재발시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 1:26 p.m. Top Secret.

대통령 : 나는 지금 28대의 전투기와 14대의 수색정찰기를 보내는 것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맥나마라 :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동의 시리즈이다. 나는 우리가 오늘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일 낮에 건의할 것이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I, 6:30. Top Secret.

26일 (08:30-09:45) 백악관에서 있었던 푸에블로위기6차 회의에 의하면 한국과 비엩남에서 벌어진 두개의 위기를 다루는 미국이 사실은 하나의 위기에 대한 목적도 제대로 수립하기가 어려운 상황임을 드러낸다. 군사력의 동원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쟁목적이다.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군사조치와 방책이 달라지며 어떻게 빠져 나올 것인가 하는 출구전략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남전에서의 실패는 원산앞바다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이미 실행명령은 발령됐는데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직 정리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처음의 목적이었던 배와 선원의 송환에서 국제냉전대결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맥나마라 : 커다란 위험은 소련과 북비엩남이 우리가 하는 어떤 것을 약해짐의 신호로서 해석하게 되는 것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견고하지 않으면 비엩남전쟁은 더 늘어질 것이다.
클락 클리포드 : 나는 이 문제를 달리 본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대원과 배를 돌려받는 것이었다고 일단은 가정해보자. 그것을 종결지을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실질적인 대규모 군사조치를 취하지 않고 배와 대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대통령은 ‘억제’에 성공했다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로스토우 : 그들은 우리가 비엩남에 긴장하고 있고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중한 병력시위는 적절하다... 만약 이런 노력이 실패한다면 그리고 배를 토해내도록 착수해야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중량급의 항공호위가 필요하다.
대통령 : 오직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거기에 비행기를 더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클라크의 질문에 대한 답인가? 톰슨 주소미대사는 말한다. 이것은 그들을 더욱 참호 속에 숨게 할 것이라고.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VI, 6:30. Top Secret.

1월26일 백악관에서 비이성적인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엔사령관은 지역데프콘2를 명령했다. 9공군 소속부대들이 1월31일까지 태평양에 전개되었고, 4전술전투비행단은 72대의 F-4D를 보냈고, 354전술전투비행단은 18대의 F-100을 보냈고, 363전술수색비행단은 6대의 RB-66을 보냈고, 추가로 몇 개의 9공군은 임무수행을 위해 113전술전투비행단과 107, 113, 121, 177전술전투단에서 증원공군예비군을 소환했고. 334, 335전투분대의 F-4팬텀전투기들을 지원작전을 위하여 남측에 배치했다. 오끼나와 카데나기지에서는 CIA의 비밀병기인 A-12가 북영공으로 첫 비행사진수색명령을 받았다. 여기서 촬영한 필름은 일본의 요코타 공군기지로 즉각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분석가들은 북이 향후의 공격에 대비해 군대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445군수비행단은 26일 투입되어 1969년 6월 2일 임무해제 될 때까지 17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했다.

30일(03:40-05:25) 백악관가족식당에서 있었던 푸에블로 9차회의에서는 26일 푸에블로 6차회의에서 휠러 합참의장이 제안한 이래 자문그룹의 조치평가 등을 거쳐 니콜라스 카젠바흐 국무차관이 정리한 10단계 대응방안이 메모형식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이 과정은 위기조치절차 3단계와 4단계에 해당하지만 이미 배치명령이 발하여 전쟁 상태에 들어간 상태에서 다시 절차를 거꾸로 밟아가고 있는 셈이었다. 어쨌든 방안을 보자.

①소련에 실질적 또는 잠재적 군사조치 가능성 통보〓소련의 개입을 막기 위해 소련에 대북 군사력 증강조치를 통보한다. 군사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을 경우 소련에 대한 통보는 비공식채널을 이용한다. 공식통보할 경우 소련의 국가적 위신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②공중 정찰 실시〓미군과 한국군이 군사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비무장지대(DMZ) 이북과 (북) 내륙 80㎞ 지점까지 정찰을 실시한다. 북은 정찰기 격추를 시도할 것이나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은 적다.
③정보수집함 배너호를 푸에블로호 납치해역에 투입〓배너호는 북 영해 12해리 밖에서 활동하되 구축함과 순양함 그리고 남측함정도 호위토록 한다. 전투기도 출격, 공중순찰을 실시한다. 위험성은 양측 공중전력의 충돌 가능성. 그 경우 국제적 비난을 받거나 송환협상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 북이 배너호를 격침할 가능성도 있다.
④푸에블로호에서 버린 암호관련 장비 수거〓소해정과 소형 잠수함 등을 동원한다. 북의 공격가능성은 낮다. 장비를 수거할 경우 푸에블로호가 북 영해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용할 수 있다.
⑤원산항에 기뢰부설〓북에 어떤 도발도 묵과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조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하는 A-6 항공기가 17번 비행해 83개의 기뢰를 투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측 전력의 손실은 거의 없을 것이나 유엔에서 반대가 심할 것이다.
⑥북한 함정 나포〓푸에블로호 승무원과 맞바꾸기 위해 북 선박을 나포한다. 북은 이를 거래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⑦제한적 대북 공습〓원산 공군기지와 문평리 해군기지를 대상으로 92대의 전폭기를 동원한다(합참은 북의 모든 군사공항을 상대로 한 공습을 선호한다).
소련과 중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은 약하다. 승무원 귀환가능성은 약해지고 북의 보복가능성도 크다. 너무 위험한 방안이다.
⑧DMZ를 월경한 기습〓미군과 한국군을 동원, 예컨대 DMZ에서 10㎞ 이북에 있는 북 6사단의 지휘부를 점령해 파괴한다. 공격에서 철수까지 24시간 내에 끝내는 기습공격이다. 소련과 중국의 개입가능성은 적다. 아측 피해도 클 것이다. 확전 위험이 있다.
⑨원산항 해상봉쇄〓미군과 한국군 함정과 항공기를 동원, 원산항 12해리 이내에서 해상봉쇄를 실시한다.
⑩북한 경제봉쇄〓자유진영의 대북 경제거래, 특히 곡물수출을 차단한다. 일본이 불참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권이 북을 지원할 가능성도 있어 효과가 크지 않다.

Johnson Library, Tom Johnson's Notes of Meetings, Pueblo, IX. Top Secret.

위기절차의 실제과정은 이같이 선 군사조치실행 후 조치를 선택하는 모순된 상황이 전개된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없는 연습이라면 몰라도 상대방이 초긴장상태에 있고, 이미 전개된 군사력배치에 대해 반격을 가해온다면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다행히 미국은 군사조치를 포기하고 대화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군정위가 아닌 북미비밀협상이었다.

1월29일과 31일 사이 군정위 유엔수석대표가 미국정부로부터 북측군정위 수석대표에게 두개의 메시지를 제출한 후 미국과 북측사이에 푸에블로호와 선원의 운명에 대한 비밀협상을 위한 기초가 마련되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중립국감독위원회로부터 받은 정보에 대해 응답한 것이었고, 두 번째 메시지는 각측 수석대표사이의 즉각적인 사적만남을 요청한 것이었다.

(Telegram 3755 from Seoul, January 30;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RG 59, Central Files 1967-69, POL 33-6 KOR N-US)

북은 이에 응하여 둘 사이의 만남에 원칙적으로 동의했고 각측에서 공식통역과 연락장교의 출석을 제안했다. 만남에 대한 상호합의에 의하여 판문점내 공동경비구역의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Telegrams 3744 from Seoul, January 29, and 3794 from Seoul, January 31; both ibid.)

10개 대응방안을 비롯한 모든 군사조치는 보류되었고 1년여에 걸친 지루한 협상 끝에 1968년 12월 23일 미국이 영해침범을 사과하고 승무원들이 소환됨으로써 푸에블로위기조치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맺는 말 : ‘한반도 정전위기는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 정전위기는 곧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푸에블로위기절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전시위기의 관리책임자는 정전협정에 의해 유엔사령관임이 분명하나, 유엔사령관은 독자적인 위기절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유엔사령관의 위기조치절차는 미국정부의 위기조치절차의 한 부분일 뿐이다. 벨 사령관이 작통권 환수과정에서 위기관리문제를 들어 유엔사강화론을 주장하는 것은 결론에 있어서 미국의 위기관리체계와 유엔사에 부여된 초월적 권한을 결합시키기 위한 시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작통권 환수를 원점으로 돌린다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벨 사령관의 그림은 그보다 훨씬 큰 것이다. 벨 사령관은 ‘전쟁’이나 ‘전시’라는 단어 대신 ‘정전시’ ‘위기’라는 단어를 등장시켰지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한반도 정전체계의 성격상 위기와 전쟁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한국정부가 작통권문제를 제기하게 된 주권침해의 경험들은 모두 ‘위기’로서 발생한 사건들이었다.

미국도 미국의 주권이 있기 때문에 전쟁을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치든, 자위권 발동차원에서 단독으로 일으키든 우리가 개입하긴 쉽지 않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 해외주둔 미군은 주둔국과의 군사협약의 범위에서 전쟁수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 특수전구로 취급되는 것은 지정학적, 지군사적 이유만이 아니다. 유엔사로 하여 유엔안보리 결의나 일본정부, 한국정부와의 협의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군사보다 어려운 외교의 과제가 유엔사를 내세우면 이미 해결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미국은 외교를 통한 해결보다 군사를 통한 해결의 유혹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푸에블로위기, 판문점미루나무 벌채위기를 통해 학습된 결론이다.

결국 외교조치보다 더 쉽게 취할 수 있었던 군사조치는 위기상황에 대한 파악자체를 어렵게 했다. 위기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위기조치절차는 외교와 군사중 군사조치로 편중되어 치달았다. 위기조치절차에서도 가장 중요한 3단계와 4단계의 과제인 정확한 조치의 개발과 선택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실행명령으로 치달아 감으로서 ‘위기관리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푸에블로위기가 이토록 조급하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군사조치에 집착하도록 만든 근본원인 중에 유엔사의 교전권과 일본기지사용권,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이 있었다. 이는 유엔사가 한반도 정전위기관리 책임자로 스스로를 강화하고자 할 때 또다시 겪게 될 과정이란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사는 위기관리의 책임자가 아니라 ‘위기관리의 위기’를 초래할 책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두 가지 자료를 첨부한다.

<자료1>은 여러 자료에 기초하여 푸에블로 사건을 시간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중에는 교차확인이 필요한 자료들도 몇 개가 있으나 일단은 맥락에 무리가 없는 한 포함시켰다.

<자료2>는 미국에서 기밀해제된 푸에블로문서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중요한 부분은 필자가 이미 번역을 하였다. 시간의 부족으로 번역과정의 편린이 정리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음을 양해 바란다. 그러나 원문을 다치지는 않았음을 확인한다. 만일 정확한 인용을 위해서는 번역문을 더 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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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시간별로 정리한 푸에블로 사건

날짜

Korea

시간Korea

위기단계

내용

비고

1.23

12:00

푸에블로호 북함정과 첫 조우

12:27

인민군함정SC-35가 “배를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신호 보냄. 신호정보실, 카미세야와 계속 교신. “밖에 북한군이 와 있다”고 메시지 전송. 긴급 플래시 메세지를 보낼지 모르니 대기하라고 카미세야에 요청.

카미세야는 미해군도청기지

12:35

북의 해안기지는 “이미 구잠정이 미국의 선박을 나포했다”는 보고가 NSA에 의해 도청됨. “배를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며 2번에 걸쳐 경고. 신호정보실 요원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 발포하려 한다”고 카미세야에 긴급연락. 인민군SC-35 “미선박이 북 해군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했으므로 발포한다”고 밝힘. 북의 기관포 발사.

NSA는 미국의 전세계 도청조직.

12:39

4분간 기관포 발사, 재발사

12:45

(미국이 생각하는) 영해의 경계에 위치

12:54

첫 SOS 발신

13:31

버처 함장의 긴급파괴작전 명령. 카미세야에 긴급지원요청. 카미세야 ‘미국선박을 경고사격으로 사로잡았다’는 북의 메시지 도청

13:34

버처 함장, 배의 활동을 ‘중지’하라고 명령. 신호병들에게는 ‘항의’를 표시하는 국제신호기를 게양하라고 지시. 다시 카미세야에 무전 ”북해안으로부터 40km 떨어진 지점에 머무는 중, 지원병력 보내 달라”고 요청”

13:40

1단계

상황발전

“지금 지원병력 보냈는가?”하고 무전. 카미세야 응답 “모든 관계당국에 이미 상황을 전달했다. COMNAVFORJAPAN(주일미해군사령관)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카미세야 “어떤 암호표를 남겼는가. 푸에블로에 어떤 암호해독표가 있는지 알려 달라. 그리고 배의 통신실이 침입당할 가능성도 얘기하라”

COMNAVFORJAPAN

(Commander, U.S.Naval Forces Japan)

14:00

버처 함장, 기밀문서 파기상황을 점검하기위해 ‘전원정지’ 명령을 다시 내림. 1,800m 근처에서 북 다시 발포시작.

14:05

버처 함장, 암호해독실로 달려가 메시지 전송. “암호해독표는 0. 하나뿐임...모든 해독표는 파기했으며 기타 전자장비도 파괴함. 지원은 어떻게 되었는가...더 이상 저항의사 없음. 연락회선이 얼마나 갈지 확신 못함. 통신실이 침입당할지도 모름.”

14:07

1단계동안의 조치

카미세야 응답. “알았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사령관과 COMNAVFORJAPAN(주일미해군사령관)이 긴급통화 중. 마지막으로 아는 바는 공군이 전투기를 동원해 지원할 것이나 COMNAVFORJAPAN이 F-105기들 문제를 한국과 조정중이므로 확신할 수 없음. 이는 비공식 소견일 뿐이나 그럴 가능성이 큼. 이상” 몇분 뒤 카미세야 응답 “지금쯤 이미 공군이 그쪽으로 향했을 것”이라고 응답.

14:18

카미세야, NSA로부터 자료와 관련된 우려 전달 받아 기밀자료와 암호해독기의 상태에 관해 무전. “KW-7기와 KW-37의 인쇄회로판 일부, KG-14가 아직 남아 있다”고 응답.

14:20

북 초계정 한척이 “미군이 바닷속에 뭔가 던져 넣는지 감시하라”는 지시가 카미세야에 도청됨. (북, 기밀문서및 장비파괴 우려)

14:32

인민군 장교들 배에 승선. “우리는 모든 행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통신

14:33

카미세야로 보내는 마지막 SOS통신. “4명이 부상,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제 무전기를 차단하고 장비를 파괴하겠다.” 카미세야 응답 “진행하라” 그리고 두절.

합참의장,통신두절을 14:26분으로 보고

14:36

요코스카로부터의 긴급보고가 하와이사령부에 전달. 그뒤 약 5분마다 북이 선박에서 해안사령부로 무전을 보낼 때 그 위치를 파악, 푸에블로호의 항로를 긴밀히 추적.

정보는 카미세야-요코스카 극동통신센타-정부기관으로 전파 됨.

14:36이후

1단계동안 총사령관의 판단과 조치

미 본토, 일본, 오끼나와, 한국 등 태평양지역미군은 일제히 긴급체계에 들어가고 일본 자위대도 그에 준해 경계태세에 돌입.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호는 방향을 비엩남해역에서 원산으로 바꿔 구축함 2척과 함께 긴급항해.

15:00

도쿄의 미 5공군사령부가 오산 미 314사단장의 지휘를 받게 돼 있는 남측 공군의 출격을 요청, 폭탄을 만재한 남측의 3개 전투기 편대가 출격. 그러나 푸에블로호는 이미 북의 방공망 속으로 진입한 상황이라 귀환.

16:00

북의 고위급장성들과 민간 항해사가 포함된 두 번째 승선단 도착.

16:40

북의 미 승무원 조사 시작. 미공군간부들 푸에블로호가 북영해 안에 있다는 소식을 카미세야로부터 받음

17:30

오끼나와의 카데나기지로부터 F105전폭기 6대가 오산에 도착. 나하기지로부터 F102전투기가 수원에 도착. 재급유는 하되 북에 대한 공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 한국의 F-4기 핵무기를 재래식무기로 바꿔 싣는 작업 중 정지 명령 받음. 뒤이어 요코다, 미사와기지로부터 F4C전투폭격중대가 오산으로 향발. 카데나기지로부터는 RF4C 전술정찰기중대가 판부(板付)기지로 긴급이동. 괌도에서 B52전략폭격기가 카데나로 이동배치.

합참의장은 어둠과 적공군의우세 때문에 출격유보했다고 보고

20:30

1단계동안단위별로 조치모색.

원산 북서쪽 16km지점의 부두에 푸에블로 정박. / 같은 시간 NSA본부건물 9층 국장실. NSA작전지휘관인 공군 존모리슨 소장 및 요원들 브리핑 위해 소집. 브리핑 후 NSA간부들은 향후조치를 모색. 한 간부는 일본에서 배너호를 당장 소환해 푸에블로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구축함을 한두 대 더 보내 이를 보호하도록 하자고 주장. 그는 57시간 이내에 작전을 완수할 수 있다고 주장. 비무장지대 남쪽의 신호정보 정찰비행을 늘리고 북한지역에는 무인비행체를 사용할 계획. 이들 계획은 후에 위기대책회의에서 조치안으로 수렴.

22:55

국무부 소련,한국,일본대사관에 정전위채널 이용하라는 전문발송

1.24

08:30

유엔사령관 한국국방장관에게 첫 비밀브리핑. 국방장관 한국에 사전통고 없는 조치에 대해 불만토로.

한국군 사건 하루뒤에 정식통고 받은것.

10:21

국무부 주미대사에게 군사정전위원회의 지침 하달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제261차 본회의-청와대습격, 푸에블로사건 논의

14:58

2단계 상황평가

백악관회의, 대통령,국무장관,국방장관,합참의장,CIA국장 등 상황보고와 평가

오후

2단계동안의 조치

합참의장이나 국방장관, 경계상태지정,전개명령

한국국방부는 육해공군해병대에 비상출동체계를 긴급발령. 미본토로부터는 네바다주 넬리스기지의 F106요격중대가 오산으로 발진. 북 캐롤라이나주 세이모어존슨기지의 F4C, F4D 중대가 군산으로 출동. 북에 대한 핵공격 계획인 'Freedom Drop'을 발동,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앞세운 미 해군 구축함과 전함 16척이 울릉도 남쪽 50마일 해상에 집결, 이어 항공모함 2척 추가 배치시작. 미 공군기 3백72대가 출격태세 완비. 군사수송공군(MAC)이 C141, C133, C130, C124등 수송기로 미본토, 한국의 각기지, 일본의 다치카와(立川), 요코다, 미사와, 카데나의 각기지, 필리핀의 클라크기지 사이를 왕복하며 병력 8천명, 투입항공기 2백수십대, 공수병력수는 1천, 물자 1만4천톤 수송시작.

22:18

맥나마라 존슨과 전화통화

24:30

푸에블로 그룹 회의(국방장관, 합참의장, CIA국장과 그 참모들). 북과의 전쟁에 대비한 논의를 위한 일종의 전쟁위원회로서 1시간 15분간 원칙적인 위기조치 확인. 휠러 장군 본스틸 사령관에게 지시할 조치마련 안된 상태. 국방성 군사력리스트작성, 전체계획은 국무부가 주도, CIA블랙실드 북정찰계획 논의,

1.25

02:40

유엔사령관, 합참의장과 태평양사령관에 전문, 청와대습격을 중심으로 한 상황평가와 방책건의-핵시설보호위한 미8군증강, 미해군 바다감시비행과 2대의 구축함파견 전제한 한국군지원 건의.

03:00

백악관내각실 NSC회의 소집 푸에블로 회의2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방관, 합참의장, CIA국장 등 참석)-상황분석

07:00

국무부 카젠바흐 사무실서 대통령 없이 1시간 30분 회의

09:50

2단계의 끝-대통령의 조치개발 결정

백악관 푸에블로 회의 3(대통령,국무장관,국방장관 등)-평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조치개발결정

13:00

골드버그 유엔대사 유엔의장 우탄트와 만남

14:29

국무부, 주일대사에게 전문 사토총리에게 상황 설명, 협조요청

15:27

국무부 주한미대사에게 전문

22:30

4단계종료5단계실행계획

백악관 푸에블로회의4-예비군 소집령과 파병, 경계명령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공군 예비역 1만5천명에게 긴급 동원령.

1.26

03:26

5단계종료

백악관 가족식당서 푸에블로 5차 회의-실행명령, 시차별부대전개목록

06:27

국무부 주소련대사에게 전문

08:30

백악관서 푸에블로 6차회의-실행명령 전 추가건의

6단계실행

유엔군사령관 한국군·미군에 `데프콘 2'에 돌입하도록 명령

9공군 소속부대들 1월 31일까지 태평양에 전개. 4전술전투비행단은 72대의 F-4D를 보냈고, 354전술전투비행단은 18대의 F-100을 보냈고 363전술수색비행단은 6대의 RB-66을 보냈고, 추가로 몇 개의 9공군은 임무수행을 위해 113전술전투비행단과 107, 113, 121, 177전술전투단에서 증원공군예비군 소환. 334,335전투분대의 F-4팬텀 2전투기들 지원작전을 위하여 남측에 배치./ 445군수비행단 26일 투입되어 1969년 6월2일 임무해제 될 때까지 17개월 동안 임무수행/

오끼나와 카데나기지 CIA의 비밀병기 A-12 북한으로의 첫 A-12 영공비행 명령, 동해상에서 공중 급유,첫 통과 비행은 블라디보스톡 근처에서 시작, 카메라를 켠채 푸에블로가 나포된 것으로 보이는 북의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며 비행, 남측과의 경계선까지 비행기를 몰고 간 후 180도 선회하여 다시 북으로 돌아감. 4번이나 이 지역을 지나다니면서 비무장지대에서 압록강국경까지 북 전역을 촬영. 중국의 레이더가 A-12를 포착해 북에 정보를 보냈다. 하지만 북은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음. (아마도 마하 3이 넘는 A-12의 속도와 8만피트/24.3km이상의 고도 때문이었을 것). 촬영한 필름은 일본의 요코타 공군기지로 즉각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분석가들은 북이 향후의 공격에 대비해 군대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푸에블로 사건에 대한 유엔긴급안보리 소집/논의는 했으나 투표는 안함

미 대통령, 이 문제의 신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발표.

1.27

01:08

백악관내각실 푸에블로7차회의

카젠바흐 국무부차관 대통령에게 메모랜덤 제출

01:50

주소미대사가 국무부에 전문

항모 요크타운호와 구축함, 그리고 잠수함 6척으로 편성된 새 기동함대가 무력시위에 가세

1.28

00:25

본스틸 유엔사령관 합참의장에게 전문-한국의 불만 전달

04:58

주소미대사 국무부에 전문

05:00

주소미대사 국무부에 전문

07:20

주한미대사 국무부에 전문

10:00

F102A전천후 요격기12대 김포공항 도착/ 청와대 합동긴급안보회의 박 대통령 직접소집-실미도부대 기획

15:52

국무부에서 주한미대사에게 전문

16:08

국무부에서 주한미대사에게 전문

대통령특보 로스토우가 존슨 대통령에게 메모랜덤 제출

23:23

주한미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첨부서류

1.29

01:38

존슨 대통령과 골드버그 유엔대사 전화통화

11:04

국무부에서 주소미대사에게 전문

12:55

국무부에서 주한미대사에게 전문

22:41

존슨 대통령과 맥나라마 장관 전화통화

1.30

휠러 합참의장 존슨 지시에 의해 아이젠하워와의 전화통화후 기록

00:28

본스틸 유엔사령관 태평양사령관,합참의장에게 전문-향토예비군조직화 등의 남측 동향 보고

00:45

주소미대사 국무부에 전문

푸에블로위기 자문그룹미팅 보고

03:04

푸에블로8차회의 백악관 내각실 존슨 대통령과 군사관계자 미팅

03:40

4단계조치선택으로 복귀

푸에블로9차회의 원로자문그룹과 대통령의 점심미팅. 미 국무부 대북전략특별팀 10단계 대응방안을 마련하여 니콜라스 카젠바흐 국무차관이 메모형식으로 미 대통령에게 보고. 10개조치 최종검토.

08:30

대통령특보 로스토우, 존슨 대통령에게 메모랜덤 제출

유엔사정전위 대표 직통전화로 북 수석대표에게 협상 양식을 논의하기 위해서 수석대표간의 조속한 접촉을 요청.

국방성은 극동에 대한 미공군병력 증강을 발표.

남측 레이더망 탐색 책임 장교 서해안 진남포 상공에서 동해안 원산 방향으로 10만 피트(3만5000m) 이상의 고도를 유지한 이상한 비행 물체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미 공군첩보 두 차례 발견. 이동 시간은 불과 3분. 이때 촬영된 위성사진은 박정희에게 양도, 김신조부대의 위치파악에 사용.

북비엩남 구정총공세.

1.31

디젤잠수함 블라도어, 요코스카에서 출항. 훗카이도 혼슈를 거쳐 츠가루해협을 통과 동해로 잠입. 이는 해군계획의 일환으로 소련잠수함들이 출몰하는 위치에 잠수함을 배치해 북과의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작전중 엔진고장. / 조선노동당 중앙위 당서기 김광협이 『푸에블로호 문제는 정전위를 통해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

2.1

미 국무성 대변인, 미국이 북의 비공개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발표.

2.2

11:00

6단계 잠정 종료

판문점 중감위사무실서 1차 회의 시작. 이후 11개월 동안 28차례의 회담 진행.

2.9

18:05

태평양사령관이 합참의장에게 보낸 전문. 한미연합비정규전그룹과 작전에 대한 부정적 의견

2.11

사이러스 밴스 방한 한미안전보장을 위한 공동성명

3월

F-106전투기들 공중방어를 위하여 오산기지에 잠시 배치.

5.7

6공군 예비부대인 콜로라도 본토방위공군의 120전술전투분대는 다른 3개의 F-100전술전투분대(뉴욕의 136전술전투분대, 아이오와의 174전술전투분대, 뉴멕시코의 188전술전투분대)에 임무수행명령 하달.120전술전투분대는 1968년 5월5일 비엩남전투에 들어갔다가 이틀후 남측에 도착. 이후 51일 동안 100회의 임무를 수행.

(본토방위공군은 비엩남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던 11개월 동안 4대의 F-100분대가 24,124소티를 수행, 38,614시간의 전투비행 기록.)

5.8

푸에블로 승무원들이 평양근처에 억류되어 있을 때 CIA소속 A-12기 북측 지역에서 또다른 임무를 수행

5.27

제1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

6월

1월26-31사이 배치됐던 전투비행분대 세이모어 존슨기지로 귀환

10.23~ 1969. 1.5

347전술전투비행단의 모든 F-4C가 남측에 배치, 대기.

(347전술전투비행단은 1968년 1월15일 일본 요코타공군기지에서 임무수행 중이었으며, 그 임무는 일본의 섬에 대한 항공방어였고, 할당된 부대로는 34,35,36전술전투분대와 556,6091수색분대였고, 할당된 비행기로는 F-105선더칲, F-4C 팬텀2, EB-57캔버라, C-130허큘러스가 있었다.)

12.23

푸에블로호 선원 석방

참고자료 : NSA1, p368-400, 제임스뱀포드, 서울문화사/

팀스피리트, p75-77재인용, 韓桂玉,軍事民論 49호, 1987/

기획시리즈> 그때그이야기>344화 345화/http://kookbang.dema.mil.kr/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ops/red_fox.htm

http://www.fas.org/man/dod-101/dod/docs/pub1_97/Chap7.html

주한미군 30년 p575 서울신문사

http://www.korea.army.mil/org/history/kbases/kdata.htm

미국정부문서기록보관소 기밀해제자료, 푸에블로위기 관련 NSA, 존슨대통령도서관, 국무부자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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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 미국에서 기밀해제된 푸에블로 문서

            www.tongilnews.com/pds/pdsVie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