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마키아벨리의 어떤 조언을 받아야하는가

- 마키아벨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미 16세기에 내려지기 시작. 1569년 영국에서 출간된 영어 사전에 Machiavellian이라는 형용사가 신조어로 등장한 이래 그의 이름은 영국의 희곡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에 의해 작품 속에서 처음 인용됐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는 몰타의 유대인이라는 작품에서 마키아밸리는 이렇게 표현된다.
"내 이름은 마키아벨리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아! 당연히 사람들의 말은 더욱 믿지 않지.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날 제일 존경한다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책에 대한 비판을 퍼붓지.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내 책을 몰래 읽은 자는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내 책을 던져버린 자는 경쟁자들이 몰래 탄 독약을 성배처럼 들게 되지."
1589년 작품 속에 최초로 등장한 마키아벨리는 장차 그의 이름이 안고 가야 할 불운의 숙명을 그대로 보여줌. 마키아벨리의 책은 원래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집필됐는데, 이 책의 가공할 만한 가치를 알아본 그 시대의 강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로 몰고 간 것.
- 마키아벨리의 책은 약자의 시선으로 읽어야 함. 그는 강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조언한 것이 아니라, 강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 "더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고 조언한 것. 마키아벨리는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의 수호성자임. 마키아벨리는 또한 인문학의 고전으로 읽혀야 함.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으로 가득한 그의 사상의 뿌리는 고전과 인문학적 성찰에 깊이 맞닿아 있음. 우리가 인문학 공부의 일환으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 연유가 여기 있음. 마키아벨리를 사회과학과 정치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약자가 지녀야 할 세상을 보는 시각을 획득하게 될 것임.
- 마키아벨리는 늘 고전을 곁에 두고 살았음. 그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함으로써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위대한 인물이 됨. 1513년 12월 10일, 공직에서 쫓겨난 그는 로마에 있던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를 쓴다.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가장 르네상스적인 서간문으로 꼽히는 이 편지는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강자의 횡포에 맞서 왔는지 잘 보여줌.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서재로 들어간다네.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 흙과 먼지가 묻어 있는 일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집지. 그리고 나는 옛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의 정원으로 들어간다네. 그분들은 나를 정중히 맞아주시고, 나는 혼자서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지혜의 음식을 그 어르신들과 나누지. 나는 그 지혜의 음식을 먹으며 다시 태어난다네. 나는 옛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지. 나는 그분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드린다네. 왜 그때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는지를. 그 숨겨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럼 옛 성현들은 내게 대답해 주시지. 매일 옛 시대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네시간 동안 나는 아무런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네. 내 삶에 주어진 모든 시련과 고통도 다 잊어버리지. 나의 가난도 두렵지 않아. 내게 닥쳐올 죽음조차도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 마키아벨리는 실제로는 99%의 범주에 속하는 대중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의 보편적 속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음. 마키아벨리의 눈에 비친 대중의 모습은 '얼빠진 짐승'이었고, 우리에 갇혀 있는 노예에 불과했음. 노예근성에 물들어 있는 한심한 존재처럼 생각했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의 습성은 얼이 빠진 짐승처럼, 사나운 본성을 지니고 숲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속에 갇혀 노예처럼 사육되고 있다가, 뜻밖에 자유로워져서 들판에 방목되면 먹잇감이 어디 있는지, 보금자리인 동굴이 어디 있는지 그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가 다시 잡으려고 오면 즉시 그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타인의 명령 아래 사는 데 익숙해진 대중이 바로 그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는 100% 확실한 해결책이 없을 때는 시간을 끄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었다. 갈등의 비등점이 계속 끓어올라 폭발의 위험수위까지 올라갔다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다른 한족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보다, 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생애 최초의 해외출장 업무였던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런 지혜를 깨닫게 된다. 특별히 당신이 약자의 위치에 있다면, 시간끌기는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너무 강력한 강자와 맞붙게 되었을 때, 운명을 걸고 단번에 승부를 겨루는 건곤일척보다는, 시간을 끌면서 다른 기회를 엿보는 와신상담이 더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는 첫번째 해외출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움.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교훈이었음. 갈등과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임. 왜냐하면 언제나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욕구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며, 또한 서로 다투는 이해 당사자들은 각각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쟁의 원인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관찰은 이러했다.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힘보다 욕구하는 힘이 언제나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반목하여 싸움이 일어난다."
- 갈등과 분쟁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잇는 선택은 무엇일까? 물론 마키아벨리가 루이12세의 프랑스 궁정에서 한 것처럼 시간을 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갈등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한쪽을 선택하여 파국에 도달하는 것보다, 시간을 끌면서 다음 기회를 엿보는 것도 썩 나쁜 생각은 아니다. 당신이 약자의 위치에 있을 때라면 더욱 그러하다. 프랑스보다 피렌체가 약체였고, 그래서 마키아벨리가 시간을 끌었던 것처럼. 그러나 여기서 유념할 부분이 있다. 시간을 끄는 것은 절대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유부단함은 한쪽을 선택하여 파국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마키아벨리가 시간끌기를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시했다고 해서 이것을 우유부단함으로 잘못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반대다. 마키아벨리는 번개와 같은 단호함과 과감한 실행력이야말로 갈등을 종결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라 보았다. 기회가 왔을 때는, 특히 당신이 강자의 위치에 있을 때는 더욱더 단호하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 가장 나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지도자는 시간끌기오 우유부단을 혼동하지 않음. 시간을 끌어야 할 때는 엉뚱한 결정으로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반대로 단호해야 할때는 시간을 끌면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지도자가 세상에 너무 많다. 마키아벨리의 명언을 기억하라. "어정쩡한 조치란 친구를 만드는 것도, 적을 섬멸하는 것도 아니다."
- 군주론에 소개된 체사레 보르자.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탄생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역사의 증인이었음. 태생적으로 타고났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체사레의 영웅본색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권력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았던 그의 통찰력에서 출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3장은 외국원군, 혼성군, 그리고 자국군의 효율성을 각각 비교하는 부분인데, 여기세 체사레에 대한 칭찬이 나옴. 그가 처음 프랑스 군대를 동원했다가 나중에는 오르시니 가문과 비텔리 장군이 이끄는 이탈리아 군대를 주력부대로 중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 왜냐하면 프랑스는 아무래도 프랑스일 뿐이고, 결국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자력의 군대, 즉 이탈리아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본 체사레의 진면목이며, 후대의 정치가나 조직의 리더가 깨달아야 하는 점이다. 남의 호의나 외부의 판단에 내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결의가 체사레 보르자를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가 내린 긍정적 평가의 본질이다. 체사라게 반란을 일으킨 용병대장을 몰살시키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비정한 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도자는 때로 냉혹해져야 하며, 권모술수로 자신의 의도를 위장할 수도 있어야 하고,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작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보았음. 그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무선 일에서나 선을 내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악한들 속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 또한 그들의 태도를 따라 행동을 임의로 봉제할 줄 알아야 한다"
-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색한 지도자가 탁월한 지도자이며, 탁월한 지도자는 모두 인색해져야 한다고 주장. 이 놀라운 선언은 율리우스 2세를 직접 관찰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쓴 마키아벨리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업적은 인색하다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그 밖의 사람들은 다 멸망했다. 예를들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의 자리에 오를때까지는 관대하다는 평판을 이용했다. 그러나 그 뒤 전쟁을 치르기 위해 평판이 떨어지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율리우스 2세의 변신을 정당한 것이라고 칭찬. 관대함이란 지도자가 되기 전에 취해야 할 태도일 뿐이며, 막상 군주와 같은 리더의 반열에 이르면 인색함으로 조직을 쥐어짜야 한다는 것이다. 도기숙가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단일국가로 통일하고 더 이상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같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이상적 군주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게끔 만을었음. 그러한 리더의 단호한 결단과 자세가 페루자와 볼로냐의 점령으로 이어짐.
- 마키아벨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역사적 사례로 들면서 한번 더 관대함보다 인색함이 더 중요한 리더의 덕목임을 강조. 카이사르는 관대한 마음을 가진 통이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음. 그의 파격적 돈 씀씀이는 로마 공화정에서 유명했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든 방문객에게 아낌없이 재정적 지원을 했음. 카이사르와 같은 영웅은 관대함으로 유명했는데, 그렇다면 리더의 인색함을 촉구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마키아벨리는 이 의문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 사람(카이사르)은 이미 군주가 된 사람인가, 아니면 앞으로 군주가 될 사람인가? 이미 군주가 된 사람이면 관대함은 그에게 해가 된다. 앞으로 군주가 될 사람이면 관대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에서 권력을 추구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그 낭비벽을 고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았다면, 아마 그의 정권은 멸망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카이사르는 군주가 될 사람이었지, 이미 군주가 된 사람은 아니었다. 기원전 44년에 브루투스와 원로원의 손에 살해됨으로써 카이사르는 로마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함. 따라서 군주와 같은 리더들은 반드시 인색해져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뒤집지 못함. 마키아벨리가 리더에게 인색해지라고 요구한 것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었음. 권력을 나누는 것에도 인색해져야 한다고 주장. 아니, 정확히 말하면 권력은 한 사람에게 독점되어야 한다는 것. 16세기 초 이탈리아 반도를 쥐락펴락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처럼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쥔채,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감히유보할 수 있는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 마키아벨리는 이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역사로 돌아간다. 기원전 446년, 로마인과 아에키인 사이의 영토분쟁 때 벌어진 일로, 대업을 위해서는 권력이 독점되어야 함을 역사적 사례로 설명한 것. 로마의 원로원은 로마 북동쪽 산악지역에 버티고 있던 아예키인을 정벌하기 위해 두명의 장군을 지명. 명문가 출신의 퀸티우스 장군가 아그리파 장군 두명에게 대권을 맡김.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면서 출세의 기회를 엿보았음. 카이사르도 그랬고, 나중에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 옥타비아누스도 전쟁을 통해서 입신양명했다. 엄청난 전리품도 모두 자기몫이 된다. 퀸티우스 장군과 아그리파 장군에게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아그리파 장군은 모든 명예와 통수권을 퀸티우스 장군에게 전적으로 일임해 줄 것을 원로원에게 호소하면서, 이런 유명한 무장을 남긴다.
"대사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권력을 한 사람의 손에 위임해야 한다."
- 마키아벨리는 신이 주는 기회에 모든 것을 맡기는 숙명론자가 아니었음.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시련을 견디다보면 새로운 희망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희망의 각오는 처절하기만 했다. 절대로 자포자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모든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단언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운명의 파도를 타기는 쉽지만 거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밑그림대로 일을 도모할 수는 있지만 그 밑그림을 찢어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결코 자포자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속뜻은 전혀 알 수 없고, 아무도 모르게 샛길로 빠져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닥쳐오는 재난에 이리저리 시달리더라도 결코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 "지금까지 군주는 옥석이나 금으로 몸을 꾸미는 것, 일반인보다 훨씬 호화로운 치장을 하고 침식을 행하는 것, 가까이에 첩을 두는 것, 신하를 탐욕스럽고 거만한 태도로 지배하는 것, 무위도식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 무훈에 따라 병사에게 계급을 하사하는 것, 국책에 이견을 말하는 자는 누구든 매도하는 것, 자신의 말이 신탁의 선고이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군주가 배워야 할 내용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메디치라는 꿈을 접은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모임에서 비로소 솔직한 인간이 됨. 군주론에 등장하는 여우처럼 남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본인의 심증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기 시작. 무엇보다 자기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이게 약자가 강자의 횡포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가르침. 지금까지 그는 강자를 위해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 강자의 하수인이었던 마키아벨리가 약자의 수호성자로 변신한 것. 이것은 놀라운 변신이었다. 마키아벨리 본인도 "나는 주저함 없이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로마사 논고의 집필을 시작. 루첼라이 정원모임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던 마키아벨리는 이들에게 영웅이 되는 법이 아니라 강자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법을 가르치기로 결심. 왜 우리는 늘 당하고만 살게 됐는가? 왜 우리는 늘 강자에게 짓밟히는 나약한 약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우리는 메디치 가문의 참주정치가 초래한 독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우리는 바르젤로 감옥에 갇혀서 날개꺾기 고문을 당해야 하는가? 왜 우리 조국 피렌체는 늘 강대국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신음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형국이 되었는가? 마키아벨리는 이 대목에서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변신. 르네상스란 다시라는 뜻의 '르'와 탄생을 뜻하는 '네상스'가 결합된 말. 이탈리아와 피렌체가 다시 강대국으로 탄생하려면 고대로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함. 우리가 만약 강자의 횡포에 억눌려 살던 삶을 청산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면, 위대했던 로마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교육을 받아야 함. 약자가 강자의 횡포와 압제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된 교육밖에 없음.
"운세가 좋으면 거만해지고, 나쁜면 기가 죽는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분의 생활이나 여러분이 받았던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방법이 연약하고 겉치레가 되면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다른 교육을 받으면 여러분 또한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세상사에 대해서 좀더 풍부한 지식을 얻게 되고, 행운에 취하고 역경에 실망하는 일도 그다지 없게 될 것입니다.
- 로마사 논고는 강자의 논리를 뒤집는 책이기 때문에 혁명의 지침서라고 해도 좋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의 첫장에서 이 책의 목적을 밝힘. 강자의 횡포를 이겨내고 공화정의 이상을 지상에서 실현했던 로마의 역사를 통해 "그것을 모범으로 삼고, 그 선례를 따르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는 것. 그는 제1권 첫번째 장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역사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꼭 챙기기 바란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비록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조금이나마 목적지와 가까운 곳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장차 뜻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너무 긴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가 로마사 논고를 쓴 목적은 루첼라이 정원모임의 젊은이들이 장차 뜻하는 목표를 이루도록 구체적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음. 그들이 뜻하는 목적이란 메디치가문을 전복시키고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가는 것. 강자의 전횡과 횡포가 피렌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 뜻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모임의 젊은이들에게 로마사를 강의한다.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의 첫번째 열권에 대한 해설서 형식으로, 뜻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 웃음에 대한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이 문장처럼 잘 표현한 것이 있을까. 강자와 지배자들은 잘 웃지 않음. 강자가 우리사회를 돈과 권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은 약자들이 아무때나 웃는 것을 원치 않음. 강자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은 엄숙함을 조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권위있는 것은 엄숙하고 묵직해야 하며, 가벼운 농담이나 풍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원래 웃음은 약자들의 보편적 무기임. 풍자와 조롱을 통해 약자는 주눅 든 기분과 의시소침한 불안감을 털어버리고, 권위와 힘에 대항할 용기를 얻게 됨. 약자들의 수호성자였떤 마키아벨리가 '만드라골라'나 '클리지아'라는 코메디를 쓴 이유를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설명
"희극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왜곡시켜 보여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지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으며,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봅니다.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실상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실상이 아니지만 예기치 못한 비유를 통해 실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검정하게 되고, '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볼로냐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듯하다. 마키아벨리는 교육적 가치를 위해 코미지를 썼고, 그것이 선을 지향하는 힘이라고 보았음.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는 약자들에게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코미디를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