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이즘 남성들은 왜 메갈을 지지하는가

마초이즘 남성들은 왜 메갈을 지지하는가

영남권의 한 국립대를 다니는 김현호씨(가명·27)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다. 요즘 그의 일과는 이렇다. 아침 8시에 일어나 학교에 간다. 학점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청한 계절학기 수업을 듣는다. 학교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는다. 대개 토익시험 등의 공부를 하다가 밤 11시쯤 집으로 향한다. 한 달에 쓰는 돈은 35만원~40만원. 담배구입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너 요새 돈 있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끔 지갑을 열어 3만원~5만원을 쥐어주면 그는 말없이 받는다. 취업준비를 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할 여력이 없다. 어려운 형편에 자신을 뒷바라지해 온 부모님은 아들이 공기업에 취업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학벌과 스펙을 생각하면 마음이 꽉 막혀온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3년 넘도록 취업을 못해 집에서 빌빌대는” 것이다.

김씨에게 문재인 정권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여경 채용비율 확대’를 거론하면서 “과거에는 지지했지만 지금은 유보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경들이 교통사고로 일어난 소란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사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리얼미터의 설문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권 지지율(29.4%)이 60대 이상 남성(34.9%)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각종 분석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20대 여성의 정권 지지율(63.5%)과 큰 차이가 벌어진 원인으로 ‘젠더갈등’이 도마에 올랐다. 20대 남성은 왜 문재인 정권에 화가 났을까. 경향신문은 서울과 그 외 지역의 대학을 재학·졸업했거나 전문대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일하고 있는 20대 남성 1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현 정권에 대한 입장과 함께 일상과 고민거리도 들었다. 취재에 응한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정서로 ’박탈감’ ‘무력감’ ‘비관’ ‘열등감’ 등을 들었다.

현 정권에 대한 호감도가 낮아진 이유로는 ‘급진적 대북관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따른 실업자 증가우려’ ‘주 52시간제의 무리한 적용에 따른 월급감소 우려’ 등이 꼽혔다. 하지만 가장 공통적으로 나온 이슈(10명)는 양심적병역거부제와 현 정권의 ‘친 페미니즘 성향’이었다. 즉 젠더갈등은 20대 남성들의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는 표면상의 기폭제가 되었을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그러나 젠더이슈가 20대 남성 각자의 일상을 지배하는 고민의 핵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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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멘 한 남성의 뒷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얘네들은 그런 피해 안입었잖아요”

20대 남성 상당수가 젠더 문제로 현 정권에 불만을 표출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 세계에 만연한 ‘반페미니즘 정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일단 이들은 “페미니즘을 외치는” 또래 여성들이 성차별·억압 구조로부터 그다지 피해를 입었다고 보지 않았다. 지역국립대에 다니는 이영석씨(가명·24)는 “군 시절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고 성차별적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목소리 내는 애들(20대 또래 여성)은 따지고 보면 그런 피해를 입지는 않았잖아요.”

이씨는 남성위주의 질서에서 상처입은 여성은 80년대에 태어난 ‘김지영 세대’까지만 해당한다고 보고 있었다. 그를 비롯해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 대다수는 여성 억압구조의 피해자로 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들은 “그분들께 보상을 해줄 생각은 안하고 자기들이 이득을 챙기려고 (젊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다”(이씨)고 주장했다.

또래 여성들이 겪은 차별에 대해서는 “학창시절에 스타킹 색깔을 규제한 것”(27세) 정도를 들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우형씨(가명·25세)는 “우리 학교에선 여학생들이 남자용 교복바지를 입어도 학교에서 허용해줬다”면서 “딱히 그들이 차별받아 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남자는 길거리에서 이상한 짓만 안하면 맞지는 않는데, 여성들은 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27세)는 얘기를 한 이도 있었지만 “하지만 주변에서 그런 범죄를 당한 지인 여성을 본 일이 없다”(29세)는 반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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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학생 등이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UN에 가다’ 캠페인의 배경과 내용을 알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우리 또래 여성은 과거처럼 차별 당하지 않았다’는 20대 남성의 인식은 여성들의 생각과 괴리가 크다. 상당수의 20대 여성들은 학창시절 남성 교사 등으로부터 당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상처 입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만연한 외모평가에 답답함을 느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법촬영 카메라는 없는지 두리번거려야 한다.

한 23세 남성은 ‘미러링’(여성을 향한 혐오표현을 남성에게 되돌려주는 전략)에 강렬한 반감을 드러냈다. “‘한남’(한국남자)이란 말은 한국남자는 가부장적이라서 외국남자들보다 열등하다는 얘기인데 이건 마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 같은 표현”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김치녀’ 조롱과 달리 ‘한남’ 조롱은 사회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익명 공간인 온라인에서 젊은 남성들은 더욱 거칠다. “메갈(메갈리아 커뮤니티 유저)은 쿵쾅이들” 혹은 “정신병자”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한 29세 남성은 “메갈리아는 여성우월주의”이며 “10대 여학생들에게까지 퍼지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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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청년일자리센터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책을 보며 공부를 하는 모습. / 권도현 기자

20대 남성 상당수의 반페미니즘 정서는 과거와 달리 ‘여성’이 만만찮은 경쟁상대로 부상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최근 출간한 <한국, 남자>를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신경질적 반응은 “남자들간의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여자들과의 경쟁에서도 패배하기 시작한 남성들이 증가하면서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취재에 응한 20대 남성들에게 또래 여성들에 대해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챙길 것 다 챙기는” “얌체같은”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고교 시절 공부 잘하는 특별반엔 주로 여학생들로 채워졌고”(25세) “대학에서도 토익점수 같은 스펙이나 학점은 여자애들이 모두 상위권이며”(27세) “그러면서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걸 말하면서 다양하게 논다.”(24세)

통계상으로도 여성들의 학업성취도는 남성을 앞서나가고 있다. 대학진학률 역시 2009년 여성이 추월했다. 아울러 25~29세는 노년기를 제외하고 여성이 유일하게 남성보다 고용율이 앞서는 시기(여성 69.6% 남성 67.9% 2017년 기준)다.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크지만 20대 후반은 그 격차가 그나마 좁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20대 후반 여성은 취업한 또래 남성 임금의 91.7%(월급 기준)를 받고 있다.

■“우리가 군대 가 있을 동안...”

군대 때문에 2년간의 ‘스펙쌓기 단절’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20대 남성들에게 박탈감을 일으킨다. 이영석씨는 “걔네들(또래 여성들)은 그 시간동안 해야할 것(취업준비)도 많이 해놨고 돈도 벌어놔서 유럽여행도 많이 다닌다. 그런 모습 보면 솔직히 자괴감이 들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얘기들을 한다”고 했다.

사실 요즘은 군대도 수월하게 가기 힘들다. 공백기가 생기지 않도록 휴·복학이 곧바로 이어지는 시점에 군 복무를 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자신의 시간이 주어지는 ‘의경’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 1종 운전면허를 따고 여러 차례 추첨에 응시해 ‘7수’까지 했던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준 27세 남성도 있었다. 그는 “저 역시 의경을 지원하려고 1종 운전면허 시험을 볼 예정”이라면서 “솔직히 징병제 국가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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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 저녁 점호 하는 모습.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에이앤디 픽쳐스 제공

인터뷰에 응한 13명 가운데 9명은 ‘양심적 병역거부제’와 대체복무제 도입이 20대 남성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가장 큰 이유라고 봤다. 25세의 대학생은 “군대에서는 ‘저는 이러저런 이유로 못하겠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나도 아플 때 똑같이 다 했어’ 같은 얘기를 수시로 들었다”면서 “군대에서 이런 논리를 체득했으니 다들 대체복무제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29세 남성은 “또래 친구들은 설사 그게 ‘하향평준’이라 할지라도 내가 갔다왔으면 너도 갔다오는 게 ‘평등’이라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또래세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20대로, 군인권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형남씨(29)는 “군대에서의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지면 40~50대 남성들로부터 전화상담을 자주 받는데,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 쌓여있던 상처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즉 그때의 상처가 평생을 간다”면서 “국가에 의한 박탈감과 군대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남성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가 트라우마 치유센터와 같은 것을 만드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의 ‘찐따존’

20대 남성 입장에선 군대를 다녀와서도 ‘고난’이 계속된다.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호선씨(27세)는 ‘찐따구간’ 혹은 ‘찐따존’이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는 애매하고 취업준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여력은 없으며, 후배나 여자친구에게 밥을 사기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씨는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학점 3.5점의 남자와 학점 4.0의 여자 가운데 취업이 더 잘되는 것은 남자이며 일단 찐따구간을 벗어나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남자는 우월한 지위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30대로만 진입해도 또래 여성들이 아이를 가져 회사를 어쩔 수 없이 퇴직해야하는 것을 곁에서 보게 될 것이고 그때 남성들이 가지는 감정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나씨는 20대 남성들이 또래 여성에게 ‘자기 챙길 것 다 챙기는 얌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여자애들을 지켜보니 얘네들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알고 밤잠 안자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여성이 더 일찍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놀 거리’도 스스로 많이 개발해 취미의 가짓수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에 화력을 집중하는 또래 남성들에 대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20대 남성들의 눈을 가려버리고 있는 것 같다”면서 “온라인에서 젠더이슈에 화풀이를 하면서 자신의 불안함을 달래는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20대 남성이 경험해 온 삶과와 앞으로 펼쳐질 삶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남성의 고용률은 30대로만 넘어가도 90%대로 급속히 오른다. 반면 30대 여성의 고용율은 50%대로 뚝 떨어진다. 이들의 고용률은 2012~2013년부터 꾸준히 올랐음에도 2017년 59.4% 기록하는 데 그쳤다. 여성의 임금 역시 30대 초반(남성이 받는 임금의 83.7%·월급기준)에 크게 낮아지기 시작해 30대 후반(72.4%), 40대 초반(63.5%) 등 나이가 들수록 고꾸라진다. 50대 후반에 이르면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56.5%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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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믈 치른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학교를 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남자의 자기증명”

취재에 응한 20대 남성들에게 고민을 물었다. 주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고 충분한 월급을 받을 수 있는”(24세 남성) 대기업, 공기업 같은 노동시장 중심부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여부에 집중돼 있었다. 경기지역의 한 사립대에 4학년인 김승호씨는 “야근을 안하고 주말이 보장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데, 계속 떨어져서 결국은 아무데나 들어가게 될 까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남성 친구들을 지배하는 정서로 ‘무력감’을 꼽았다. 이미 학벌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둘러싼 전투에서 낙오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서울의 사립대 재학 중인 김우형씨(가명·25)가 꼽은 20대 남성의 정서는 ‘열등감’이었다. “나보다 스펙이 좋은 사람, 원하는 곳에 취업이 잘 되는 사람이 주로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어느 세대보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데도” 괜찮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 그러나 분노가 아니라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일단 누군가가 스펙이 더 좋으면 우리 세대는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호선씨가 꼽은 20대 남성의 정서는 ‘과연 나는 1인분을 할 수 있을까’ 였다. 이 역시 불안한 미래를 상징한다.

한국에선 첫 직장의 임금·복지 수준이 이후의 미래를 결정한다. 여성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임신과 육아, 결혼 후 역할분배 등의 이유로 좌절을 하거나,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에겐 좋은 직장이 곧 ‘성공적 미래’로 직결된다.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부장제 문화의 압력을 많이 받은 세대는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들은 ‘좋은 직장’ 혹은 일정한 정도의 ‘재력’을 성취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보고 있었다. 최태섭씨는 “젊은 남성들이 또래 여성에 비해 경제적 압박을 더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리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자기증명을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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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집회 중 참가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내려진 무죄판결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현진 기자

■“가부장제에 대한 책임분배가 잘못됐다”

취재에 응한 남성들이 현 정부가 “친 페미니즘 성향”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든 것은 “여성가족부 장관이 메갈리아를 응원했다” “홍대 누드크로키 사건의 여성가해자는 처벌은 약했고 비공개 촬영회 사건의 남성가해자는 너무 강한 처벌을 받았다” 등이었다. 여경채용비율 확대도 공통적으로 거론됐다, 젠더 이슈와는 거리가 있지만 대체복무제의 도입도 공통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너무 넓은 여성전용주차장”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남성들은 현 정권을 들어 ‘페미 정권’이라고 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페미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하다.

“만약 제가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면 남성이라는 이유로 강경한 처벌을 받게 될 것 같은데요. 이건 역차별 아닌가요. ”(23세 남성) “경찰은 자기 몸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경 응시자에게는 무릎꿇고 팔굽혀펴기 시험을 보게 하는 게 말이 안되죠.”(24세 남성), “군대에 다녀온 저는 비양심적인가요. 군대 안가는 게 비양심 아니에요?”(25세 남성)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우형씨(25세)는 또래 남성의 이러한 정서에 대해 “우리의 가장 큰 불만은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이 잘 안되는 상황이라고 보는데, 이 문제는 현 정부의 탓만으로 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청년들의 탓도 아니다”라면서 “그런 상황에서 젠더갈등이 터져나오고 SNS에서 문 대통령이 ‘페미 대통령’이라고들 하니까 그 이슈에 감정적으로 집중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한 25세 남성은 “많이 힘든 애가 말 한마디 잘못 듣고 나면 눈물을 뚝 흘리게 되지 않나, 그런 심정 같다”고 했다.

다만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소수의 20대 남성들도 문재인 정권과 이 정권의 기반을 이루는 진보 기성세대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가부장제의 책임은 20대 남성의 것이 아니다, 책임분배가 잘못됐다”(27세 남성)는 것이다. 축구 관련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며 성평등 정책을 촉구하는 진보 학자의 기사가 공유됐다. 그러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당신들 부채감을 젊은 세대에게까지 떠넘기지 말라” “자기들 세대는 단물 다 빨아먹고 왜 혜택을 1도 못본 세대들한테 양보하라는건지 모르겠네.”

한 27세 남성은 “여성들의 미러링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그나마 ‘반응’을 하는 것은 20대 남성이고 오히려 이미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남자 기성세대 집단은 입을 닫고 있다”면서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 성폭력이 만연했던 것을 아는데, 가부장제 혜택을 누릴 대로 누린 진보 기성세대 남성이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니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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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워마드가 소라넷에 뒤지지 않는다” “올해 안에 끝장 내겠다”면서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어떻게 풀어야 하나

20대 남성들이 ‘괜찮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페미니즘·양심적병역거부제 대한 불만으로 터뜨리는 양상에 대해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은 “당사자가 얘기한다고 해서 당사자가 스스로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서 “부와 학력자본이 세습되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과거 지역갈등처럼 젠더갈등으로 을과 을이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젊은 세대 내부의 젠더갈등 덕에 (불평등한 사회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할) 기성세대는 편해진 상황이고 386세대 역시 팔짱끼고 바라보는 상황에 가깝다”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샌더스, 코빈 열풍이 불었듯이 양극화에 따른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나타난다면 분노가 제대로 표출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반여성’을 부르짖는 우경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호선씨는 “20대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못 찾았고 결국 탈정치화됐기 때문에 자신의 울분을 온라인 속에서 페미니즘 조롱으로 풀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최근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은 “워마드가 소라넷(성관계 불법촬영물 공유사이트)에 뒤지지 않는다” “올해 안에 끝장내겠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반페미니즘 정서를 가진 20대 남성 유권자의 마음을 얻겠다는 전략이다. 최태섭씨는 “지금 20대 남성이 겪는 문제는 젠더 정책 때문이 아니고 거시경제의 문제와 청년정책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문제 때문”이라면서 “20대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젠더갈등, 분열만 더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깝고도 먼 사이…1990년대생 남자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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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1993년 방영된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의 두 주인공 후남이(김희애)와 귀남이(최수종). 지금의 20대가 태어났거나 태어나기 직전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금의 20대 남성들은 1990년대에 태어났다. 1992년~1993년, 이들의 부모님 세대가 열광하던 드라마가 있었다. 최고시청률이 61%에 이르던 <아들과 딸>이다. 이란성 쌍둥이 ‘귀남이’(남성)와 ‘후남이’(여성)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에서 후남이는 늘 귀남이 뒷바라지를 강요받는다. 몰래 본 대학시험에서 합격하자 어머니는 “귀남이 앞길을 막을 X”라며 후남이를 호되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과잉보호’를 받아 온 귀남이 역시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법관 아들을 원하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좌절과 방황을 거듭한다.

20대 남성의 아버지는 대개 1960년대생으로 ‘귀남이’처럼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컸다.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와 양육을 맡는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개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취재에 응한 20대 남성들은 “핸드폰 부품조립 일감을 받아와 집에서 틈틈이 일하던 어머니”(25세 남성), “두유 배달을 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머니”(김현호씨), “아버지가 운영하는 점포에서 일하던 어머니”(23세 남성)의 모습을 기억한다. 한마디로 이들의 어머니 세대는 자녀양육, 가사를 전담하면서 생업전선에도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할머니댁에 가서 제사와 같은 집안행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23세 남성) 상황이다.

20대 남성들은 이와 동시에 ‘생계부양자’라는 지위에 압박감을 느끼던 아버지의 모습도 기억한다. 한지우씨(가명·25세)는 “올해로 근속 20년째가 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과연 저렇게 20년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견뎠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아버지가 삶에 지쳐 괴로워했던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지난 이후의 어린시절이었다. “아버지가 방황을 하다 한때 도박에 빠졌고 그일로 집안이 온통 시끄러웠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김씨 가족만큼의 사건이 없었어도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는 “집에서 자주 보지 못하는 존재”(24세 남성)였고 가족과 잘 섞이지 못했다.

부모세대에 대해 20대 여성과 남성은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20대 여성들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면서 남성에게 종속되는 결혼을 거부한다. 이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지난해의 미투 운동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차별을 고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거듭났다. 그리고 ‘굳이 남자 없어도 행복한’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남성의 태도는 애매하다. 이들은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기보다는 ‘아버지처럼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는 그래도 괜찮은 일자리를 잡고 결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우형씨(가명·25)는 “20대 여자들은 ‘우리’로 뭉쳐있는 반면 남자들은 모래알 같다”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진취적인 ‘주체’가 된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취업이 될 때에나 ‘주체성’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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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한 초등학교에서 짝꿍을 배정받지 못한 남학생들이 뒤에 서 있는 모습. 지금의 20대가 태어난 19990년은 젠더사이드(여아 낙태)가 극심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대 남성의 여성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비 문제도 짚어야 한다. 20대가 태어난 1990년대는 태아성감별에 따른 여아 낙태, 이른바 ‘젠더사이드’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1990년 출생아의 남녀 성비는 116.5(여성100명 대 남성116.5명)에 달했다. 자연 성비인 105(여성100명 대 남성105명)을 한참 뛰어넘는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의 출생아 성비 역시 115.3(최대)~108.2(최소)다. 그 결과 현재 20대는 ‘남초 세대’가 돼 버렸다.

20대는 남성이 훨씬 많은데도 남성이 더 대접받는 문화 속에서 컸다. 게다가 초·중·고시절엔 입시경쟁을 하고, 대학 시절엔 취업경쟁에만 매달렸다. 자연스러운 연애가 쉽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호선씨(27)는 “핸드폰에 ‘여사친’(여자사람친구) 번호조차 없는 남성은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나씨에 따르면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한 남자는 여성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20대 남성 가운데 연애를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은 여자친구가 아까부터 표정이 계속 안좋았다는 것을 눈치채는 수준의 감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취업하면” 혹은 “자동차 이 정도 있으면 ‘보픈’ 가능?(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단어와 ‘오픈’의 합성어·여성과 섹스가 가능하냐는 의미)”이라는 글이 올라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공 척도에 따라 ‘여자도 따라온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혐오표현임에도 게시물을 올리는 남성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저 연애마저 ‘남자로서의 성공’ 즉 좋은 직장과 재력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호선 씨는 “남성들이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조금만 노력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태도를 벗어나 이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면서 “일단 남성과 여성이 자신들만의 놀이터인 커뮤니티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면대면으로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