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일상복에는 물론~ 행사 의상이나 나들이 의상~

어디에나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오엘로 플립플랍!^^

사실 아율맘은 신발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편안한게 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스트랩이 압축솜 충전된 100% 코튼이라 쪼리를 첨 신는 아이들도

발가락에 끼는 것만 잠깐 적응하면 누구나 편안하게 신을 수 있어요!^^

게다가 오엘로 플립플랍은 쪼리지만 슬리퍼가 아닌 샌들형이라

발을 편안하게 잡아주어 활동성 많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답니다!
통가죽 인솔과 생고무 아웃솔로 만들어진 밑창 덕분에

발바닥도 말랑말랑 편안해요~^^
오엘로 플립플랍은 샌들형 쪼리라 행사용으로 신기에도 전혀 손색없답니다!^^

열매랑 돌잔치에도 신고 다녀왔는데요~

실외에 있던 분수대에서도 플립플랍 신고 한참을 놀았는데~

분수대 자체도 자칫 미끄러울 수 있는 돌로 되어 있어서

혹시나 오엘로 플립플랍이 물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첨엔 걱정했는데요~
걱정할 필요 전혀 없었다는요!^^

울 열매 신발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분수대 왔다갔다 했는데

미끄러짐 한번 없이 안정적으로 잘 다니더라구요~^^

분수대에서 실컷 놀고 나와 신발은 축축하게 젖었지만~

미끄러울 수 있는 대리석에서도 전혀 미끄러움 느끼지 않고 잘 다니더라구요~^^

그리고 100%코튼 스트랩끈이라 옷 말리듯~ 집에 돌아와 편하게 말려주었어요!^^

사실 아이들은 불편한 신발은 신으라고 해도 신지 않는데~
울 열매 넘 편안하니 어린이집에 갈 때도, 놀이터 갈 때도~

늘 오엘로 플립플랍 신고 간다고 해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집앞에서 난간에 매달린 열매 뒷모습 보니
뒷꿈치 쫑끗 들었을 때밑창이 발 모양대로 구부려지니

아이들 발 움직임대로 움직여지는 오엘로 플립플랍!
편안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게다가 발 뒤로 걸어주는 스트랩끈 역시

안정적으로 발목을 잡아주니 벗겨질 염려도 없구요~^^

예쁜거 아니면 절대 입지도 신지도 않는 열매~!

열매에게 선택 받은 유아샌들 오엘로 플립플랍~!

정말 이유있는 선택이예요!^^

어떤 장소, 어떤 의상에도 센스만점 예쁘게 어울리는 오엘로 플립플랍~^^
언제 어디서나 예쁘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어 울 열매는 물론

아율맘도 정말정말 맘에 쏙 드는 유아샌들이예요~^^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슬라이스로 고전하고 있다면 클로즈드 그립을 잡아라독자는 어떤 그립을 잡고 있는가? 위크 그립? 뉴추럴 그립? 스트롱 그립? 나는 위크 그립을 잡는 플레이어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백이면 백 뉴추럴 그립 아니면 스트롱 그립이다. 뉴추럴 그립을 잡는 플레이어에게 ‘왜 뉴추럴 그립을 택했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골프를 시작할 때 그립에는 세 종류가 있다(위크, 뉴추럴, 스트롱)고 듣고 깊게 따져보지 않은 채 뉴추럴 그립을 선택했다고. 이들에게 ‘왜 스트롱 그립을 잡지 않느냐’고 물으면 의외의 답을 듣는다. 바로 ‘스트롱’이라는 이름 탓에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하다는 뜻의 ‘위크’와 중립이란 뜻의 ‘뉴추럴’, 그리고 강하다는 뜻의 ‘스트롱’이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는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많은 사람은 가운데 것을 고른다. 같은 종류 물건인데 값이 싼 것과 비싼 것, 그리고 중간인 것이 있다면 십중팔구 중간 것을 고른다. 이 성향은 문화적 배경까지 더해져서 더 강해진다. 바로 중용(中庸) 때문이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할 때 그 중용 말이다. 무슨 소리냐고?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중용을 큰 미덕으로 삼았던 탓에, 뭔가를 선택할 때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스트롱 그립을 쓰는 플레이어가 적은 것은 그 이름뿐 아니라 별명 탓도 있다. 스트롱 그립은 일명 ‘훅 그립’이라고도 부른다. 훅은 왼쪽으로(오른손잡이 골퍼인 경우) 감기는 것을 말한다. 처음 들을 때 볼이 왼쪽으로 감긴다면 선뜻 그 그립을 선택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도 그랬다. 독학으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별 생각 없이 뉴추럴 그립을 택했다. 어깨너머로 보며 익힐 때도 오랫동안 다른 그립으로 바꿔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숱한 시간을 슬라이스로 고생했다. 필드에서 제법 좋은 점수를 낼 수 있게 된 뒤에도 내 샷은 항상 슬라이스였다. 드라이버 샷은 비행접시처럼 휘었다. 흔히 슬라이스로 고생하는 골퍼에게 11시 방향을 보고 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내 경우엔 11시 방향으로 쳐도 오른쪽으로 가끔 아웃 오브 바운드(OB)가 날 정도로 오른쪽으로 많이 휘었다. 그래서 나는 10시 방향을 보고 드라이버 샷을 치곤 했다. 아이언 샷도 마찬가지였다. 치기만 하면 오른쪽으로 밀렸다. 그런데 어떻게 점수를 내고 급기야 프로 골퍼까지 됐냐고? 바로 일관성 덕분이다. 내 샷은 아주 일관되게 오른쪽으로만 휘었다. 열심히 휘둘러댄 덕에 힘이 붙어서 거리가 제법 났다. 그러니 늘 목표보다 한참 왼쪽을 겨누고 치면 원하는 곳에 볼을 갖다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선 내 샷은 페이드(살짝 오른쪽으로 휘는 샷)라고 자위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지독한 슬라이스로 고전했다. 말이 좋아서 일관성이지, 오른쪽으로 크게 휘는 샷으로 좁은 홀에 서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내가 스트롱 그립 맛을 본 것은 프로 선발전을 통과하기 불과 얼마 전이었다. 하루는 당시 자주 겨루던 박창교(2014년 아난티클럽 챔피언) 선배에게 완패했다. 그날따라 박 챔프는 드라이버 샷을 반듯하게 날리면서 거리도 부쩍 멀리 보냈다. 당시 나보다 쇼트 게임이나 퍼팅 실력이 뛰어난 그였다. 그날은 비거리까지 나를 바싹 따라붙으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라운드가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박 챔프는 그립을 바꿔봤더니 효과가 너무 좋다고 비결을 털어놨다. 바로 스트롱 그립으로 바꿔 잡아봤다는 얘기였다. 그랬더니 슬라이스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더라는 것 아닌가? 그 뒤 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스트롱 그립을 잡아봤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드라이버 샷 슬라이스가 크게 줄었다. 그만큼 비거리도 늘었고. 아는 만큼 본다고 하던가? 그 뒤로 TV 골프 중계를 보면 선수들 그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스트롱 그립을 잡은 선수가 훨씬 많지 않은가? 왜 이걸 몰랐을까? 수년간 슬라이스로 말 못 할 고생을 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 뒤로 조금씩 스트롱 그립으로 고쳐가면서 적응했다. 그리고 지금은 스트롱 그립을 잡으라고 가르친다. 스트롱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 것이다. 셋업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볼 때 왼손 손마디가 두 개나 두 개 반 정도 보이면 적당하다. 세 개까지 보이면 너무 과한 것이다. 칼럼 제목은 ‘클로즈드 그립을 잡아라’인데 클로즈드 그립이 뭔지 얘기를 안 하고 끝낼 뻔했다. 클로즈드 그립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나는 스트롱 그립 대신 클로즈드 그립이라고 부른다. 클로즈드는 스트롱이라는 말이 주는 편견을 털어낸다. ‘클로즈드’(Closed)는 ‘닫았다’는 뜻이다. ‘열었다’는 뜻인 ‘오픈’(Opened)의 반대말이다. 나는 위크 그립은 오픈드 그립이라고 이름 지었다. 뉴추럴 그립은 그대로 뉴추럴이라고 부른다. 슬라이스로 애를 먹는다면 클로즈드 그립을 잡기를 권한다. 훅으로 고전하고 있다면 오픈드 그립을 잡으면 좋다. 클로즈드 그립이니 오픈드 그립이니 하는 것은 세계 최초로 뱁새 김용준 프로가 이름 붙인 것이라는 점도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 많은 경우에 이름이 실질을 지배한다. 골프에서 그립 이름도 그렇다.2021-10-28 07:53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춘향전 사랑 이야기가 어린 광한루원 그런데 광한루원의 본색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 스토리의 한 배경으로 차용됐을 뿐이다. 독자적인 조성 역사와 미적 가치를 지닌 조선 중기의 빼어난 원림이라는 데 광한루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럼 주객전도? 마치 곁다리처럼 끼어든 ‘춘향전’의 사랑 이야기가 대중에게 각인돼 조선 원림으로서의 드높은 가치는 사뭇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닌가. 사실 광한루원이 ‘춘향전’의 배경 장소로 사람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광한루원과 ‘춘향전’의 연관성을 표 나게 드러낸 최초의 구조물인 사당 ‘춘향사’가 들어선 때가 불과 90여 년 전이니까. 광한루원의 600여 년 역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연원이다. 춘향사 건립 이후 현대에 이르러선 춘향관, 월매집, 완월정, 전통놀이체험장 등을 꾸미고, ‘춘향제’를 흐벅지게 펼치면서 본격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건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국가적 문화유산인 조선 원림이 관광을 위한 갖가지 시설물들과 맥락 없이 뒤섞이면서 정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일부 전문가들은 정색하며 상업주의를 자제하라고, 원림의 본질과 원형을 유지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고 일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한루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을 마치 ‘춘향전’ 영화의 세트쯤으로 여기며 즐기다가 돌아간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동을 누릴 만한 멋진 조선 원림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시 눈여겨보는 관점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내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관아 원림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관아가 주도해 본때 있게 조성한 이 원림의 스케일은 상당히 웅장하다. 깨알처럼 섬세하게 구사한 디테일로 아름답다. 유례가 드물도록 거대한 조선 원림이다. 특히 광한루는 고유한 건축 메커니즘으로 빼어나 갈채를 받을 만하다. 지방 관아가 지은 누각으로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죽서루, 평양의 부벽루 등이 있지만, 광한루를 개중 으뜸으로 친다. 광한루는 조선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며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廣通樓)에서 유래했다. 이 광통루를 남원부사 민여공이 1434년에 증축한 게 지금의 광한루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지었다.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구나!” 이렇게 찬탄한 정인지가 광한루라 이름 붙였던 거다. 투박하면서 묵직한 기운을 뿜는 돌기둥들에 떠받쳐진 광한루는 월궁(月宮)을 상징한다. 천상의 궁궐인 셈. 이렇게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계에 흔전만전 지천으로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너른 연못은 다름 아닌 은하수를 상징한다. 은하의 못 가운데에선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표상했다. 네 개의 홍예로 만들어진 오작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에 만나는 다리다. 베를 짜는 직녀에게 필요한 도구인 지기석은 연못 속에 넣었고, 견우를 위해서는 은하수를 건널 때 쓰일 배 하나를 만들어 수면에 띄웠다. 관아원림이란 한마디로 고을의 벼슬아치들이나 오고가는 시인 묵객들이 회포를 풀며 노닌 야외 정원이다. 산수엔 오고감이 없지만 인간사는 살면 살수록 시들어 덧없다.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달과 별을 끌어안고 우주적으로 부푼 상상력을 즐기며 야유회를 즐겼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벼슬이든 공부든 지상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정신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친 것이다. 원림은 원래 자연과 소통하고 싶은 선비들이 지닌 갈망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도 광한루원은 빼어나다. 오늘날엔 원림 곁으로 대로와 강변 둑이 생겨 경관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저 옛날엔 숲과 강, 멀리 지리산 자락까지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자연의 도가니였다. 관광지처럼 번잡하다고 만만하게 볼 원림이 아니다. 답사 Tip 광한루원 연못가에 어우러진 거목들이 예스럽고 웅숭깊은 운치를 자아낸다. 500살 남짓한 나이를 지닌 버드나무, 팽나무, 능수버들 등 오래 산 나무들의 거쿨진 자태를 보라! 이곳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2021-10-13 07:51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CEO에서 시니어 모델로 거듭나다, 시니어 모델 신섭신섭(83) 씨는 젊은 시절 약품을 옮기는 자전거 배달원으로 시작해 30대에 수십 개 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발돋움했다.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몇 번의 좌절을 겪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재기했다. 은퇴 후 현재는 시니어 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를 만나 7전 8기의 여정과 더불어 포기하지 않는 삶의 가치와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두산 등 대기업에서 본부장 및 대표이사를 두루 역임하고,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가는 곳마다 경영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CEO, 지자체장과 같은 리더를 대상으로 리더십 및 동기 부여에 대해 강연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팬데믹이 닥쳤고, 그것은 하나의 기회이자 또 다른 전환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1년의 반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출국이 요원해졌어요. 처음엔 좀 갑갑했지만, 나중엔 방전한 것을 채우라고 준 기회로 여겼죠. 바빠서 못 읽었던 책들도 읽고, 구상했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틈틈이 글도 썼어요. 건강을 위해 사이클도 다시 시작했는데, 우연히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시니어 모델 공고를 봤어요. 밑져봐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그때부터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했죠.” 젊은 시절 주위에서 모델을 해보라는 권유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고 먹고사는 게 바빠서 차마 도전하지 못했던 모델의 꿈이 인생 후반전에 그렇게 찾아왔다. “그간의 커리어와 다른 길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모델 아카데미 1등 출석을 한 번도 놓친 적 없을 만큼 열정을 다해서 임했죠. 모델 도전은 처음이라 서툰 게 많았고 힘들기도 했어요. 청년 시절에 운동을 꽤 많이 했던 터라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었는데, 모델 동작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어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다시금 이렇게 설렘을 맛볼 수 있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었죠.” 첫 무대와 캐스팅 지난 5월 패션모델 선발대회 ‘2020 더룩오브더이어 클래식’(THE LOOK OF THE YEAR CLASSIC)에 시니어 모델로 처음 참여했다. 첫 무대에 선 기분은 어땠을까? “오랜 세월 강연자로 무대에 섰기 때문에 첫 무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참가자에 비해 덜했어요. 오히려 연습할 때가 더 힘들었지요. 워킹은 굉장히 근사해 보이지만, 직접 해보니 신체적으론 다소 불편한 걸음이에요. 숙달하려면 적어도 만 번 정도는 연습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타고난 끼나 재능은 부족했기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작 하나라도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어요. 다행히 본무대는 긴장하지 않고 무사히 마쳤는데, 운 좋게도 포토제닉상을 받았어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고, 모델로 나아가는 데 용기를 불어넣어준 상이에요” 한편 포토제닉상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됐다. 바로 전속모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캐스팅을 제안한 알렉스 강 EMA 대표는 “모델에 대한 간절한 의지가 눈망울에서부터 느껴졌다. 7전 8기의 삶에서 마주친 시련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금 재기한 끈기와 인내의 여정이 시니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고, 내면의 미를 가진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자전거에서 고급 승용차로 모델 이전의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그는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당시 교사 봉급으론 동생들 뒷바라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죠. 사업가로 자수성가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차근차근 시작하기 위해 서울의 약국에 약품을 배달하는 자전거 배달원으로 살았어요. 후발주자였던 탓에 도심의 약국으로는 물건을 납품할 수 없었고, 서울의 변두리로 많이 다녔죠. 지금이야 길이 워낙 좋지만, 그 당시엔 정말로 길이 험했어요. 약품 상자를 가득 싣고 무악재 고개 같은 곳을 넘어 다니는 건 상상 이상의 중노동이었죠.” 그는 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영어사전을 곁에 두고 늘 단어를 외웠다. 몇 달 지나자 고정 거래처도 생겼고, 짬이 날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운 덕분에 웬만한 도매상보다 약품을 더 해박하게 알 정도였다.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차 한 대 분량의 물건을 대형 제약회사로부터 받아 일주일 안에 판 것이 도매상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 도매상을 할 때는 화물차를 임대해서 전국으로 다녔어요. 배달량이 많아진 이후로는 아예 화물차를 샀어요. 그것을 발판 삼아 나중엔 운수회사를 차렸죠. 운수회사와 더불어 주유소와 가스충전소도 운영했어요. 그렇게 건설, 중장비 등 관련 있는 사업체를 하나둘씩 늘려서, 30대 초반에 재벌 소리 들을 정도로 경영인으로 성공했죠. 20대 시절 기필코 10년 안에 자전거 대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겠다는 꿈을 세웠는데, 6년 만에 그 꿈을 이뤘어요.” 자살미수와 판매왕 그것도 잠시, 그가 자수성가로 쌓은 부와 명예는 한순간에 먼지처럼 전부 사라졌다. 그때 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당시 제가 마약을 한다는 등의 음모성 투서부터 시작해 각종 루머와 더불어 세무사찰이 진행됐어요. 물론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결과적으로 회사를 도산해야 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죠. 피땀과 눈물로 이룬 성취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만, 그때는 그 구멍조차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요. 삶을 포기하려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어요. 물론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미수로 그쳤지만요. 제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죠.” 당시 아내의 권유로 3년 반 정도를 기도원에서 지내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리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제 주요한 일과였는데, 봉사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어요. 힘들다고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보람차게 살기 위한 워밍업을 그때 한 거죠. 술과 담배, 골프 같은 유흥도 그때 끊었고, 지금까지 안 하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맹세였거든요. 그곳에서의 시간은 재기의 큰 밑거름이 됐어요.” 기도원에서 나와 미국 브리태니커 한국지사 외판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질은 고급 승용차 한 대 가격과 맞먹었다. 경영인 출신을 우대한다는 공고만 보고 지원했는데 바로 합격했다. “외판원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거든요. 아이들은 뿔뿔이 남의 하숙집에서 살고, 아내는 아프고, 가족이 한 집에 모이려면 돈을 벌어야 했죠. 그때 체면과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어요. 첫 고객은 회장 시절 운전기사였어요. 가서 무릎 꿇고 사달라고 부탁했죠. 저의 간절함을 보고 흔쾌히 사주더군요. 하지만 파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았어요. CEO를 하는 친구들을 찾아갔는데 회사 앞에서 잡상인 취급받고 쫓겨나기도 했어요. 마지못해 산 친구에게는 다음 날 육필로 쓴 전보를 보냈어요. 정말 미안하고, 앞으로 성공하면 이 빚을 제대로 갚겠노라고. 우여곡절이 참 많았죠.” 그는 “노크를 하고 들어간 방에서 팔지 못하면 시신으로 나오겠다”라는 심정으로 그 일에 임했다. 받을 수 있는 수수료가 매출액의 16%에 불과했지만, 그는 첫 달 월급으로 단칸방을 얻을 만큼 성과를 올렸다. 덕분에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그의 절박함과 진심을 눈여겨본 고객들은 그에게 다른 고객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54개국에서 판매 성적 1위라는 기록을 세웠고, 외판원 시절 글로벌 판매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비우는 삶 판매왕 이후 동아프라임, 한미약품, 일양약품 등 유수의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경영인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너무 혹사한 탓일까? 원인 모를 고열로 병원에 40일간 입원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기적같이 살아서 돌아온 후 택시 기사로 한동안 살았죠. 그 이후 삶이 더욱 소중해졌어요.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작게나마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어요. 당시 IMF 시절이라 스카우트 제의도 뜸했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 지리에 밝았어요. 내비게이션도 없을 때였지만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손님들과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눴죠. 기사를 하면서 손님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은 덕분에 다시 재기할 수 있었고요.” 택시 기사, 외판원 등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가족의 묵묵한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에요. 사모님 소리 듣던 사람이 외판원, 택시 기사 아내로 변했는데도 한 번도 만류한 적이 없어요. 묵묵한 내조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택시 기사나 외판원을 할 때 자식들이 저를 창피해하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해요. 형편이 어려워서 아내가 면사포를 쓰지 못한 채 시집을 왔는데 올해 아내 생일날 자식들 덕분에 리마인드 웨딩을 할 수 있었어요. 애들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KO를 당하고 다시 일어나 경기에 임하는 권투선수처럼 고비마다 난관을 헤치고 나아갔다. 이러한 삶으로부터 그는 무엇을 배웠을까? “시련은 위장된 축복일지도 몰라요. 뜨는 해는 언젠가 지는 법이에요. 해가 진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잖아요. 해가 사라지면 별이 가득한 밤을 볼 수 있죠. 그래서 낙심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해요. 건강한 사람에게도 마음의 고통이 있듯이, 알게 모르게 누구나 아픔과 상처가 있죠. 시련 속에 있을 때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요. 자신을 믿고 조금씩이라도 정진하는 자세.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그게 필요해요.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면 더 멀리 가요.” 끝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에게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부둣가에 묶어만 두면 배는 영원히 출항하지 못해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삶이라는 항해에서 출항하지 않는 배로부터는 배울 수 있는 게 적어요. 출항을 시작했으면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완수해야죠. 인생 2막의 목표는 비우는 삶이에요. 옷이나 책도 다 정리해서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어요. 산문집과 마케팅 서적을 출간할 예정인데, 이 책의 수익도 다 기부하려고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간소하게 살고 싶어요. 모델이란 꿈을 이뤘지만, 명예에 목을 매고 싶지는 않아요. 무대에 선 그 순간을 즐기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잠시나마 엿본 그의 삶은 마라토너를 닮았다. 그에게 시련은 마라톤의 사점(死點)과 같았다. 마라톤에서는 극한 고통이 따르는 사점을 넘어야 완주가 가능하다. 그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신만의 레이스를 완주했고, 더 나은 단계로 조금씩 나아갔다. 그것은 1등을 하겠다는 조바심이 아니라 완주를 목표로 한 간절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는 인간은 방황하는 한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향성 없는 방황은 애매한 재능만큼 괴롭다. 시련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자신을 믿고, 남들이 비웃을지언정 자신만의 방향성을 잃지 않은 덕분이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힘은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는 뚝심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놓인 그가 새로운 레이스를 멋지게 완주하기를 응원하며 마친다.2021-10-08 10:53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약초 농사 실패 후 펜션과 찻집, 마을사업까지... 강승호 씨의 귀농 사연인생이 하루살이와 비슷하다지만, 하루라도 온전한 기쁨으로 두근거리며 살기가 쉽지 않다. 나이 들수록 생활도 욕망도 가벼워지면 좋겠지만, 실상은 달라 정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럴 때 들솟는 게 변화에의 욕구이며, 시골살이를 하나의 활로로 모색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광주광역시에서 학원 강사로 살았던 강승호(60, ‘지리산과 하나 되기 농원’)의 귀농 역시 활로 찾기의 방편으로 결행되었다. 강승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로 귀농했다. 귀농의 직접적인 동기는 건강 문제였다고 한다. 그는 대입학원의 유능한 수학강사였다. 입시학원 강사란 피 말리는 직업이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혹처럼 붙이고 산다. 그럼에도 과속질주를 습으로 삼았고, 마침내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건강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동안 주력한 건 등산이었다. 백두대간 산행에 몰두하기도 했다. 산이 주는 좋은 에너지와 자연 생태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더라. 긍정적인 가치를 산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러자 아예 산에서 살고 싶더군. 결국 아내의 동의를 얻어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처음의 구상은 간결했다. 조용한 산자락에 작은 집 하나 짓고 텃밭이나 일구며 한가하게 살 계획이었으니까. 일에 덜미 잡히지 않아도 좋을, 덜 벌고 덜 소비하는 산골 생활로 몸은 물론 마음까지 북돋아 진정한 만족을 누리고 싶었다. 단순 소박한 삶이 주는 행복을 원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딱히 일 없이 술렁술렁 텃밭이나 가꾸는 생활은 그의 적성에 부합하지 않았다. 단순한 생활이 어디 쉽던가. 채우기보다 어려운 게 비우기다. 일벌레로 살기보다 어려운 게 별 할 일 없이 빈둥거리기다. 게다가 강승호는 일을 거침없이 벌이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일이 없으면 무슨 재미? 적막한 산촌에 들어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독백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테다. 강승호는 일을 도모하기로 작심하고 약초 농사에 뛰어들었다. 한결 야심만만하게 덤벼든 건 토종벌 농사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치사율 90%에 달하는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의 기습으로 벌들이 대부분 괴사했던 것. 이렇게 초장부터 확실하게 실패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밤잠을 설치며 궁리하고 연구해 찾은 대안이 펜션 운영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최상의 무기에 속할 추진력을 발동했다. 초봄이면 와글와글 피어나는 산수유 노랑꽃 화신(花信)으로 세상의 겨울잠을 깨우는 산수유 마을 중에서도 가장 높고 수려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터를 사들여 펜션을 짓고 이사했다. “펜션에 어울릴 땅을 마련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뒤져 마음에 드는 터를 발견하고 지주를 찾아 매입한 뒤엔 건축 허가 문제를 해결하느라 뛰어다닌 곳이 많았다. 길을 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동의서를 받아낸다든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 귀농해서 민박이나 펜션을 차리는 이들이 많지만 실패 사례가 흔하다. 당신의 펜션은 어떤가? 기대치가 있었을 텐데. “순조롭게 돌아간다. 입지의 자연환경이 좋은 덕분이다. 보다시피 산 중턱에 자리해 조망부터 뛰어나다. 지리산의 풍치를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자리로 여기보다 나은 곳이 없다는 얘기를 흔히 듣거든. 미디어에도 수차례 소개되면서 꽤 알려졌다.” 펜션 투숙객에게 인생을 배워 펜션의 성공 관건은 입지 여건에 달려 있다. 강승호는 썩 이상적인 자리를 잡았다. 터전의 저 아래로 높고 낮은 산들이 펼쳐지고, 골짜기로는 농가들이 올망졸망 들어앉아 정겹다. 그는 조경에도 공을 들였다. 널찍한 잔디 뜰과 정원수를 적절히 조합해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물도 있다. 하나는 벼락을 맞고 무 토막처럼 통째로 절묘하게 갈라진 벼락바위. 산 너머 어느 집에서 구해왔다는 이 바위 두 덩어리를 그는 열린 문처럼 배치해 펜션의 상징물로 삼았다. 지하수와 약수, 계곡물 세 가지 식수를 세 개의 수도꼭지를 통해 동시에 비교하며 맛볼 수 있는 샘터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강승호의 재주와 수완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어떻게든 펜션 손님들의 흥미와 호감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고객의 뒤치다꺼리로 피곤해지기 쉬운 게 숙박업이다. 강승호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접근했다. 손님들과 요령껏 어울려 산중 생활의 무료감을 달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거다. “도시와 달라 시골에선 사람들과 교유할 기회가 드물다.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투숙객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귀농 이야기, 지리산 이야기 등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숙박업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단지 수익 목적으로만 차린 펜션이 아니라는 얘기다.” 민박집을 하다 평생의 벗을 얻는 경우도 있더라. “손님들의 요구와 비위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주말 밤마다 술 시중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웃음) 그러나 포용해서 함께 어울리다 보면 누구나 마음을 연다. 감동적인 사연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럴 때면 나는 인생을 배운다.” 이를테면 어떤 사연을? “꽉 찬 예약으로 공실이 없던 어느 날, 어떤 이가 방을 하나 달라고 간청했다. 그래 예약 손님의 양해를 구해 방을 마련해줬다. 알고 보니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더군. 그날이 아내의 환갑날이라며 ‘오늘을 위해 2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웠다’는 게 아닌가. 색소폰을 연주해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거다. 그날 밤 그는 가수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연주했다.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그토록 뜨거운 부부애라니!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부부 사이에 빙하가 흐를 수 있다.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서는 부부간의 유대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한다. “무조건 아내 말을 따르면 탈 날 게 없다. 남자보다 매사에 현명한 게 여자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강승호는 지역에서 잘 알려진 귀농인이다. 이름 있는 기관이 주는 상도 받았다. 유기농으로 지은 산수유를 가공해 현대백화점 명인명촌관에 납품도 한다. 물정도 기술도 모르는 초심자로 귀농했지만 거둔 성과가 한둘이 아니다. 아내 이경영(54)의 조력이 있어 가능했던 성적이다. 처음 귀농 제안을 했을 때 아내는 망설였다. 그러나 긴 고민 없이 동의하더란다. ‘그토록 원하는 귀농이라면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그 한마디 던지며. ‘분산 전략’을 구사하다 강승호에겐 할 일이 많고 많다. 벌여놓은 일이 여러 개라 몸이 닳도록 뛰어야 한다. 펜션에 쏟아부은 땀과 정성도 수북할 테지만, 갖가지 약용작물을 기르고, 찻집을 운영하고, 산수유마을학교를 이끌며, 산촌 유학을 테마로 한 마을사업까지 주도한다. 일복이 터졌다. 열심히 몸 놀려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비법이라는 듯 동으로 뛰고 서로 달린다. 여하튼 그의 귀농은 탕탕 순항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단다.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순탄하게 흘러온 게 아니다. 농산물을 생산해 그대로 파는 1차 농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공 판매와 체험 교육까지 접목한 6차 농업을 지향해야 한다. 이게 만만한 일이겠나? 가공 농가가 타산을 맞출 확률은 10% 미만이다.” 귀농 전에 농업 교육은 받았나? “아니다. 귀농을 하고 나서야 사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거든. 뒤늦게 부지런히 기관을 쫓아다니며 배웠다. 숲 해설사, 문화 해설사 등 자격증도 여섯 가지나 땄다. 이렇게 나름대로 분발해 자리를 잡은 편이지만 경제적 애환도 있었다. 그로 인해 아내와 자식들을 고생시켰다. 이건 귀농 이후 내 삶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일의 규모와 방향을 과도하게 설정한 걸까? “농촌에 와서 안타까운 건 주민들의 열악한 현실이었다. 나만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뭔가 작으나마 주민들에게도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거다. 귀촌이나 귀농을 해서 이웃들이야 어떻든 나만 즐겁게 살면 된다는 생각, 살다가 정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이는 무모하다. 외지인들이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더 힘들어지는 건 원주민 농부들일 뿐이다.” 똑똑하고 이타적인 귀농인이 나서서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벽에 부닥쳐 좌초하는 사례가 많다. 아예 나서지 않는 게 상책이라 조언하는 이들도 있더군. “그 대목이 참 어렵다. 원주민들의 동참을 유도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합리성과 효용성이 명백한 경우에도 색안경부터 쓰는 이들이 있다. 나는 현재 산촌 유학 관련 사회적 기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으로부터 이미 승인도 받았다. 그러나 부지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주민들이 반대해서지. 귀농인이 선의를 가지고 앞장서도 외지인에 대한 본능적인 불신이랄까, 원주민들에겐 그런 게 있어 난처하다. 차라리 나서지 않는 게 현명한 처신이라는 견해는 어쩌면 탁견이다.” 귀농을 고려하는 사람들 중엔 ‘아주 작은 농사’로 ‘소확행’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소규모 농사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 쓸 수 있을까? “흠, 가능하다. 작물을 길러 가족이 먹고 남는 걸 수시로 로컬 매장에 가져가 손수 팔면 된다. SNS를 통한 직거래도 유망하다. 이 문제엔 관이 나서야 한다. 소규모 귀농 농가 지원을 위한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 강승호는 10여 종의 명함을 지니고 산다. 햐, 그는 문어발식 농업의 선수? 그게 아니란다. 분산 전략이 아니고선 가망성이 낮아 다종다양한 일을 펼쳤다. 지독한 승부욕이 그를 몰아치는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목표는 조신하다. “결론은 비우고 살기다!” 무욕으로 진정한 행복을 맛보겠다는 얘기다. 강승호 씨가 주는 귀촌 Tip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함께 귀농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이민보다 정착하기 ㅁ더 힘든 게 귀농임을 명심하자. •원주민과의 갈등이나 마찰을 극구 피하라.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는 게 상책이다. •작물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자. •종묘상이나 묘목 상인의 얄팍한 상술에 현혹되지 마라. •농업기관이 주관하는 농업 교육이나 영농 상담 창구를 적극 활용하자.2021-10-07 10:53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무선이어폰 대안 안 돼" 골치 아픈 보청기 선택법은? 난청은 노년기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인지장애를 유발하는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2019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775만 명 가운데 약 170만 명의 난청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4명 가운데 1명이 난청 증세를 겪는 셈이다. 보청기는 난청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의료기기지만 착용을 주저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질환의 정도에 따라 효과의 편차가 크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귀로 쏠리는 타인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실제로 2018년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령자 의료기기 불만 중 보청기가 약 19%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청력이 약해질 경우, 병원 진료와 청각전문가의 도움에 따라 보청기 착용 등으로 난청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을 권한다. 강동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김창우 교수는 “난청이 지속할 경우 뇌로 전달되는 소리 자극이 줄어들어 인지력과 기억력이 감소하면서 치매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며 “중등고도 난청까지는 보청기 착용을 통한 청각재활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귓속형부터 귀걸이형까지, 장단점 고려해야 보청기는 귀로 들어가는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전자 장치로, 밖에서 나는 소리를 전기 신호로 전환해서 증폭한 뒤 스피커를 통해 귀로 전달한다. 이러한 원리로 난청인의 청력을 보조하는 보청기는 디자인과 성능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개인의 난청의 정도와 주파수 별 특이성 등 청력 유형에 따라, 혹은 고막천공, 중이염 수술 등 질환의 유무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보청기의 종류는 크게 ‘귀 안에 착용하는 보청기’와 ‘귀 뒤에 착용하는 보청기’로 분류된다. 귀 안에 착용하는 보청기는 외이도 모양에 맞게 제작해 귓속에 들어가는 형태로,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크기가 작은 만큼 효과도 줄어들어, 청력 손실이 가볍거나 보통 수준인 사람들이 주로 착용한다. 외관상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초소형 보청기’(IIC), 외이도에 완전히 밀착된 ‘고막형 보청기’(CIC), 고막형보다는 조작이 간편하여 주로 노인층과 학령기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귓속형 보청기’(ITE)가 이에 속한다. 귀 뒤에 착용하는 보청기는 ‘귀걸이형 보청기’(BTE)와 수신기 ‘오픈형 보청기’(RIC)로 나뉜다. 귀걸이형 보청기는 내부 습기의 유입이나 외부 오염에 강한 보청기로, 난청 정도가 심한 고심도 난청자도 사용 가능할 만큼 강력한 출력이 특징이다. 오픈형 보청기는 소리의 출력을 담당하고 있는 리시버를 귀에 꽂을 수 있는 돌출 형태이기 때문에 귀를 꽉 막지 않아 가볍게 착용할 수 있다. 귀걸이형에 비해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고, 울림 현상과 잡음을 최소화하여 부드러운 소리를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다. 김 교수는 “보청기를 결정할 때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귓속형을 고집하지 말고 환자의 시력이나 손의 감각, 손의 미세 운동기능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외이도의 상태나 보청기를 혼자서 사용하고 건전지 교환이나 이물질 청소를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종류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김 교수는 보청기 구입 전에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통해, 구입 시에는 청각전문가 상담을 통해 안전하게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청기를 구입하기 전 진료를 통해 외이도나 고막의 상태에 대한 검사를 해서 중이염과 같은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있는지 알아보고, 청력검사를 통해 난청의 정도와 유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후 보청기 구입 시에는 청각전문가에게 충분한 상담을 받고 본인에게 맞는 보청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매 시 건강보험 지원받는 방법은? 보청기는 제조사마다 적게는 50만 원부터 많게는 700만 원까지 가격대의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비싼 제품을 선택하기보다는 환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구매하면 된다고 조언한다. 김 교수는 “고가제품의 다양한 기능이 환자에 따라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200~300만 원 대 제품으로도 좋은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보청기의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심사를 통과하면 보청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최대 117만9000원까지 받을 수 있고,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은 131만 원까지 가능하다. 보청기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청각장애인으로 등록돼야 한다.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고, 청각장애 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주민센터에 제출해 심사 통과하면 복지카드 발급이 가능하다. 청각 장애 등급은 2~6급으로 분류되는데, 급수에 상관없이 모두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후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에 등록된 업체에서 보청기를 구입해 한 달간 사용한 후 이비인후과에서 청력 건강검진을 받는다. 이후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 방문 혹은 우편으로, 검수 확인서를 제출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보청기 구매일로부터 1년이 지나면 후기 적립 관리비를 총 4회 청구가 가능하다. 무선이어폰, 보청기 대안 될 수 없어 한편 소니 ‘엑스페리아 이어 듀오’, 애플 ‘에어팟’, 삼성전자 ‘갤럭시 버즈’ 등의 무선이어폰이 보청기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난청인들의 관심이 높다. 실제로는 어떨까? 이를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난 3월 삼성전자와 삼성서울병원이 공동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갤럭시 버즈 프로의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이 경도 및 중도 난청 환자들의 듣기 능력 향상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청기를 평가하는 요소인 △출력 음압 수준 △주파수 범위 △등가 입력 잡음 △전체 고조파 왜곡 등에서도 기준을 충족시킨 것으로 나왔다. 주변 소리를 최대 20데시벨까지 증폭해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고도 대화를 하거나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이 보청기의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다. 갤럭시 버즈 프로는 보청기와 개인용 소리 증폭기와 함께 기기 착용 전후 발화된 단어의 인지 정도의 차이 검사에서도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보였다. 이는 무선이어폰이 잠재적으로 경도·중도 난청 환자들이 일상에서 대화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무선이어폰의 이러한 기능은 기존의 ‘소리증폭기’와 비슷한 효과를 보일 뿐, 보청기의 역할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김 교수는 “무선이어폰의 소리 증폭 기능은 소리증폭기와 비슷해, 만족도와 효과 역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며 “소리증폭기의 경우 충분히 큰 소리도 여과 없이 증폭시키기 때문에 소음성난청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무선이어폰 역시 예외는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무선이어폰은 난청 환자들의 증상을 의학적으로 고려해 개발된 기기가 아니므로 보청기의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2021-10-07 08:54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한복이 잘 어울리는 새내기 시니어 모델극단의 홍보실장, 대한민국 한복 모델 선발대회 결선 진출, 연극 ‘패밀리 스토리’의 연기자 등 최희정 씨의 경력에는 시니어 모델다운 기록들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작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던 그녀는 이제 모델과 연기에 진심인 열정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이뤄낸 극적인 삶의 변화는 시니어들에게 말한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그녀를 만나 오랜 꿈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만든 새로운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최희정 씨는 1961년생이다.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잠깐 학원 교사로 일하다 34세에 결혼했고, 이후로는 가사와 육아에 충실했다. 한마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60세가 되어 시니어 모델계에 발을 내딛었다. 평생 전업주부였지만 거침없는 행보와 열정, 숨어 있는 끼를 발산하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60세에 시작하니 다시 한 살이 되는 기분이에요. 어렸을 때 탤런트가 되고 싶었는데 집안이 엄해서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죠. 늦게 시작했고 기간도 짧았지만 주위에 도와주고 마음 써주는 지인들이 많아요. 이런 게 저의 큰 재산인 것 같아 너무 행복해요.” 전업주부, 가족의 적극적 권유로 모델계 입문 최희정 씨의 말처럼 그녀가 모델 일을 하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권유 덕분이었다. 남편과 모델 일을 하는 동생이 그녀에게 끼가 있으니 도전해보라고 적극 권유하고 알아봐준 것이 계기였다. “남편이 시니어 모델 전문 교육기관인 M아카데미에 데려가서 수강 신청을 해줬어요.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죠. 처음 시작한 건 작년 11월이지만 기초반은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안 나갔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올 3월부터죠. 말하자면 재수를 한 거예요.(웃음) 지금은 마지막인 프로반 과정에 다니고 있어요.” 모델 일을 시작하고 한복 참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친김에 대한민국 한복 모델 선발대회에 도전했다. 그리고 수상은 못 했지만 결선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런데 나이별로 하는 게 아니라 10~70대 중에서 뽑는 대회거든요. 60대인데 결선까지 간 것만 해도 잘한 거죠.(웃음) 어쩌다 나간 무대 위에 서니 어찌 그리 행복하고 설레던지요. 이런 묘한 매력에 푹 빠진 경험이 새롭고 또 기대됩니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무대 최희정 씨가 새로운 삶에 뛰어든 것은 지금까지의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딸은 잘 커서 자기 일 하고 있고…. 집에 앉아 TV나 보고 친구 만나 밥만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죠. 하모니카도, 드럼도 배우면서 내 나이에 할 만한 활동을 찾아보다가 모델 학원을 알게 됐죠.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싶어서 초반에 걱정이 좀 됐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정말 열심히 했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는 행복이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가족들도 요즘 모습이 많이 달라졌고 너무 좋아 보인다고 하고요.” 사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모델 일에 관심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연예인으로서의 끼를 원래부터 품고 있었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도 공부는 뒷전이었고, 무대를 보면 설레었어요. 교육할 때 런웨이에 서니 너무 행복한 거예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어요. 내게 이렇게 많은 끼가 내재되어 있구나 깨달았죠. 그래도 지금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았지 이런 건 상상도 못 했기에 아직 쑥스러움이 있어요.” 진짜 모델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다 모델로서의 자신의 장점을 ‘열정’이라고 말하는 최희정 씨는 주변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그 끼를 억제하고 살았냐’고 할 정도로 재능을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성이다. “모델이나 연기자는 외모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멋이 있어야 해요. 시니어 모델의 멋은 과거가 만드는 거니까 체득되어야 해요. 아쉽게도 지금까지 그렇게 못 했으면 이제부터라도 문화와 예술을 접하려고 많이 노력해서 지성미 있는 얼굴을 만들어야겠죠. 열심히 응원해주는 우리 남편은 지성미 있는 시간을 할애해야 가치가 내재화된다고 자주 말하곤 해요.” 그녀는 모델 일을 하면서부터 자신을 모델 조건에 맞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생이 그녀에게 준 고통스러운(?) 선물 중 하나다. “학원에 처음 갔을 때는 전형적인 중년 아줌마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변했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시간 반 정도 스트레칭을 해요. 변화하기 위해서 식단도 바꿨고요. 물론 너무 귀찮죠. 하지만 제가 남에게 뒤지는 건 싫어해요. 돈에는 욕심이 없는데 일적으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모델을 넘어 연기자까지 도전 최희정 씨의 ‘욕심’은 모델뿐만 아니라 연기 쪽으로도 뻗고 있다. 최근에는 극단 홍보실장으로 활동하고, 8월에는 연극 ‘패밀리 스토리’에 출연해 춤추는 할머니와 여러 단역을 맡았다, “학원 동료가 극단에 추천해서 대표와 미팅을 하니 비중 있는 역할을 줬어요. 그런데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하차해야 했죠. 그러다 상황이 좀 좋아져서 집에서도 걱정하지 말고 연극을 하라고 하고, 극단에서도 기다렸더라고요. 그래서 ‘패밀리 스토리’에서 춤추는 할머니 역할 등 여러 역을 맡게 됐어요.” 그녀는 요즘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는 중이다. ‘패밀리 스토리’는 한 달 남겨놓고 투입됐기 때문에 발가락에 쥐까지 나면서 춤을 배웠다. 이에 힘입어 장태령 감독의 상업영화 ‘영웅들의 눈물’ 작품에서 단역으로 촬영을 마쳤고 이어 이성현 감독의 단편영화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1’도 조연으로 출연해서 편집중이다. “당분간은 영화, 연극 쪽 일을 많이 할 거 같아요. 영역을 넓히는 중이죠. 어떻게든 해내고 말 거예요.(웃음) 아직은 수줍고 낯설지만 꿈만 같아요.” ‘열정이 없어서 늙는다’ 최희정 씨가 예순의 나이에 모델 일을 하게 된 데에는 인연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박술녀 한복 원장과의 만남도 그렇다. “한복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남편한테 ‘난 무조건 박술녀 선생님 옷 입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어요. 그런데 대회 지정 한복이 따로 있어서 너무 실망했죠. 박술녀 선생님 옷을 입어야 하는데 싶어서요. 그때 남편이 자문이라도 받아보자고 해서 일반 전화로 걸었는데 선생님이 직접 받더군요. 선생님은 예약 안 하면 안 받는 분인데, 전화를 받고는 제 목소리에서 에너지가 느껴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인연으로 선생님과 선생님 옷에 푹 빠졌어요. 특히 교감이 잘 되는 게, 선생님과 저는 성격이나 모든 게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그간 기자가 인터뷰했던 박술녀 원장이 소위 내유외강형이라면, 최희정 씨에게선 외유내강형의 느낌이 났다. 두 사람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러한 아우라의 조화 덕분이 아닐까.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천생 여자지만 본연에서부터 나오는 특유의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새로운 길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다. “겁 하나도 안 나요. 어떻게 해서든 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강해요. 최선을 다하면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에 연연해하진 않아요. 그리고 제가 가슴 뛰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게 최고죠.” ‘할 수 있다’고, 중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주부들이 가정에서 표시 안 나는 일만 하다 나이가 들면, 아이들은 다 컸고 본인은 우울증이 오는 경우가 많다. 삶이 허무하고 이제 와 뭘 새로 시작하냐고 자조하게 된다. 최희정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지금 모델과 연기자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그런 중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은 의도도 있다. “제가 귀감이 되고 싶어요. 별 볼 일 없는 주부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학원 선생님이 그래요. ‘처음 왔을 때는 전형적인 아줌마였는데 지금은 너무 바뀌셨다’고. ‘하루하루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모습에 놀랄 정도’라고요.(웃음)” 그녀는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생활 패턴을 바꾸면 정신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니어들을 위해서. “‘늙어서 열정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열정이 없어서 늙는다’는 어떤 독일 모델의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할 거예요. 남편이 많은 힘이 돼요. 인생의 도반인 남편이 여러모로 도와주는 중이거든요. 마누라 밖에 나가서 기죽지 말라고.(웃음)”2021-09-17 09:38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낱말의 속살] 결 원시의 인간이 언어를 시작했을 때 해, 달, 별, 풀, 불, 숲, 너, 나처럼 한 음절의 말을 툭툭 뱉으며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한 음절로 된 말들에는 대개 인간이 우주와 사물을 처음 대하던 때의 낯섬과 놀라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가장 긴급한 것부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저게 뭐지? 그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 그런데 결이란 말은 즉흥적으로 생각해내고 단호하게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인간의 시선이 정교해지고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힘이 갖춰지기 시작했을 때 생겼음직한 명사다. 그런데 왜 한 음절일까. 그것도 약간 혀를 굴려 음을 흐르게 하는 듯한 소릿값을 지닌 한 음절. 아마도 이 말은 ‘두 음절 명사 시대’(지금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로 진입한 이후에 무엇인가를 빠뜨린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다 문득 찾아낸 개념이 아닐까. 찾아낸 뒤 그 본능적이고 본질적이며 생의 원천을 이루는 느낌 때문에 애써 한 음절 시대로 돌아가 딱 한 글자로 언어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말이다. 원시의 일상 속에서 만난 첫 결은 나무와 파도가 아닐까 싶다. 나무 속에는 무엇인가가 마치 흘러간 듯한 자국들이 켜를 이루며 짜여 있다. 가로로 자르면 나이테가 결을 이루고 세로로 자르면 그 나이테의 원무를 그리며 나아간 무수한 줄들이 결을 이룬다. 나무껍질도 결을 이루며 나무뿌리와 잎들도 스스로의 결을 지니고 있다. 물은 흘러가는 지형이나 출렁이는 양상에 따라 결을 만들어낸다. 물결은 부드럽고 순하고 감미로운 것도 있지만, 때로 성난 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섭게 흔들리며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것도 있다. 돌도 결이 있다. 돌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무늬와 금은 단단히 박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때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출렁거렸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돌은 단단하지만 결은 그 속에서도 부드러운 활성(活性)을 드러낸다. 조개 무늬도 결이며 그 결이 옮겨온 자개 무늬도 결이다. 결은 인간이 짓는 공예(工藝)에도 스며들었다. 찰랑이며 흩어지는 비단결이 그것이다. 실오라기가 가지런히 눕는 것도 결이다. 그런데 결은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면서 스스로 하나의 생명을 이루는 말이 되었다. 숨결은 숨이 물결치고 무늬지듯 흐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시도 멈출 수 없는 생명의 오롯한 펌프질인 숨은 그 결이 곧 생명이다. 숨결이 부드럽고 고르고 온기가 있으면 잘 살아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위험한 것이다. 죽음을 숨이 졌다고 하는데, 지는 것은 숨결이 꺼지는 것이다. 또 인간은 스스로의 몸을 이루는 살의 결들을 가끔 애틋한 기분으로 내려다본다. 살결은 마치 물결처럼 흘러간다. 언제나 어리고 젊은 살결 그대로 있지 않고, 늘어나고 처지고 물컹해지는 살결로 흘러간다. 생체시계는 이 결 속에도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의 얼굴과 늙어가는 얼굴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며 비교해본 사람이라면, 늙은 얼굴이 들어와 앉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 얼굴의 살결이 흘러내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살결은 수많은 감정을 실어내면서 조금씩 흘러온 것이다. 숨과 몸을 이루는 결에 마음을 두었던 인간은, 마침내 마음에도 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결이 고운 경우가 있고, 그 결이 부드럽게 흐르고 따뜻하게 물결치는 경우가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눈으로 뚜렷이 볼 수 있던 결과는 달리, 마음결은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파도치는 결인지라 훨씬 높은 수준의 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린 심청이나 흥부의 착한 마음결을 들어서 알고 있고, 스스로도 가능한 한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결이 고우면 마음도 고와진다고 믿는 ‘결의 신앙’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은 ‘결’이 다르더라. 이 말보다 더 확실하게 그 사람의 삶과 내면을 규정하는 말이 또 있을까. 결은 묘하게도 ‘겨를’이란 말과 닮아서 가끔 넘나들기도 한다. 겨를은 무엇인가를 하다가 잠시 생각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말한다. 틈과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무심결에’나 ‘얼떨결에’ 같은 말에 쓰이는 결은 겨를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고, 파도나 흐름의 결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다. 무심과 같은 결을 타고 가는 것이나 얼떨떨함의 결을 타고 가는 것이나, 모두 그런 묘한 결의 맛이 끼어든다. 바람결이란 말도 바람이 불 때를 가리키는 맛도 있고, 바람의 흐름 자체를 가리키는 느낌도 있다. 또 꿈결도 그런데, 이것은 꿈의 흐름이란 뜻보다 꿈을 꾸던 겨를의 뉘앙스가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진다. 결에는 운동성(運動性)이 있고, 그 운동이 기입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시간성(時間性)이 있다. 결은 생동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내면의 잘 제어된 흐름을 말하기도 한다. 결에서 느끼는 의식과 무의식은, 생명을 유지하라는 명령을 타고난 존재들이 공유하는 깊은 공감일지 모른다. 지속적인 움직임은 삶의 낌새이며 자국이다. 결은 그 꿈틀거림을 직조(織造)해나간 물성(物性)의 긴박하고 또렷한 자취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 김덕용 선생의 ‘결’로 이룬 작품들을 보면서 몹시 매료되었다. 그 이미지에 매료되었다기보다는, 그 이미지에 흐르고 있는 익숙하고도 정겨운 결에 매료되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늘 보고 자랐던 장농이나 화장대의 무늬들, 대청의 천장과 벽에 드러나 있던 무늬들. 그 결의 흐름을 한동안 잊어버린 듯했는데, 그림들이 마치 무의식처럼 형상의 안으로 흐르게 해놓았다. 그 결이 형상을 이룬 것도 아니다. 형상이 마치 스스로 결을 지닌 것처럼 얼비칠 뿐이다. 나무의 질감이 형상을 품고 있는 서늘하고 우묵한 기분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결이 왜 이토록 마음을 상기시키며 안정시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결들과 우리의 목숨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왜 우리는 결에서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알 수 없음이 일으키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 내 안에 흐르는 결, 내 눈앞에 늘 흐르던 결을 복원시켜주고 복각시켜준 어느 예술의 원형적 통찰. 신비란 신의 비밀이라고 한 사람은 다석 류영모였다. 신비는 도처에, 아니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이미 저절로 다 들어 있다.2021-09-15 09:01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문자는 살아 있다, 표정과 감정을 담아라다양한 SNS를 통해 소통하고 이를 활용하여 덕질을 하는 중년들이 점차 늘고 있다.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SNS를 통한 소통이 중요해진 가운데, SNS 사용 시 주의해야 할 나쁜 습관을 돌아보고 좋은 매너를 살펴본다. 비대면 시대, 남자를 부탁해 “문자 메시지나 카톡 대화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어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가 있는데 여자들과 소통할 때 특히 그렇지요. 수다 떠는 느낌 같아 거부감이 듭니다.” “저는 칭찬을 해올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냥 보내온 것을 읽기만 해요. 상대로선 머쓱하고 뻘쭘하고 때론 서운할 거란 생각도 들지만.” “저는 묻는 것에 대해서만 답을 해요. 나머진 내용을 확인만 하지요. 가령 ‘2시까지 오세요’란 문자를 받았을 때 회신을 안 하는 거죠. 그러곤 2시까지 가지요. ‘알았다’고 간단하게라도 답하면 손가락이 부러지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습관이 그렇게 굳어져버렸어요. 상대는 무시당했다거나 불쾌할 수 있겠다는 걸 최근에 느꼈어요.” 바야흐로 비대면 소통의 시대다. 코로나19와 맞물려 좀 더 가속화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중년의 SNS 대화 풍경도 다양하다. 주고받는 내용은 차치하고, 전달하는 방식과 대화 스타일이 달라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얼굴 보고 얘기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을 비대면이라는 한계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SNS상이 아니라도 일상적인 소통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불리하다. 중년층 이상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도드라진다. 팩트 위주의 전달 훈련을 주로 받아온 세대로서 감성적 언어 구사에 익숙하지 않고 감정 표현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주변 이성 간의 대화를 비롯해 아내, 딸, 며느리 등 가족관계에서 소소한 안부나 잡담을 나눌 때 중년 남성들은 당황한다.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버겁기 때문이다. 이모티콘 남발, 자제를 부탁해 “이모티콘을 중복해서 날리거나, 한 텍스트 내에 이런저런 이모티콘을 섞어서 쓰는 사람, 문장마다 ‘ㅋㅋ, ㅎㅎ’를 붙이는 사람을 보면 경박하게 느껴져요. 특히 저는 ‘ㅋㅋ’는 자제하는 편이죠. 연장자나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에겐 사용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전혀 안 쓰면 무뚝뚝하거나 다소 무례한 인상을 주기도 해요. 업무 전달을 받을 때 상사의 센스 있는 이모티콘 하나가 아랫사람의 긴장을 풀어주죠.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쓰지 못할 바엔 아예 안 쓰는 게 나아요. 부모상을 당한 지인이 받은 카톡 위로의 말끝에 ‘ㅠㅠ’가 붙어 있어서 진정성이 의심됐다고 하더라고요.” SNS상의 대화에서는 면대면에서 드러나는 얼굴이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뉘앙스와 느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는 애매하지만, 단체 대화방에서는 그마저 무시되기 쉽다. “단체 대화방에 내가 뭘 올리는 순간 나가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종교나 정치 등 예민한 사안도 아닌데, 내가 뭘 잘못했나 당혹스럽죠. 다른 사람이 글을 올릴 때는 바로 나가지 말고 타이밍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탈퇴할 때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사유를 밝혔으면 해요. 그게 예의가 아닐까요? 아, 그리고 사전 언질도 없이 별 관심도 없는 단톡방에 초대받는 것도 불쾌하고 황당하더라고요.” 이것만 말아줘, 소통을 부탁해 비대면 시대일수록 만남이 더욱 소중하고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이상과 같은 지적과 의견을 중심으로 대화의 만족감과 의사 전달 극대화를 위한 효율적인 SNS 소통법을 정리해보자. ➊ 이모티콘을 적절히 활용하자. 남발이나 부적절한 이모티콘 사용은 역효과나 불쾌감을 낳지만 적절한 사용은 대화의 윤활유가 된다. 여러 가지를 섞지 말고 한 종류의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센스 있게 만들어갈 수 있다. 끝맺음을 이모티콘으로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다. ➋ 맞춤법을 체크하고 내용을 다시 읽어본 후 보낸다. 지성과 품격이 드러날 것이다. ➌ 단체 대화방에서 다른 사람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나가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괜한 오해를 사거나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➍ 종교나 정치 등 예민한 주제는 피하자. 대부분 설전으로 번진다. ➎ 되도록 자기 자랑은 삼가자. 누구에게도 별 도움 안 된다. ➏ ‘소중한 인연,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오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 꽃길만 걸으세요’ 등 입에 발린 문구를 유치한 그림에 새겨 보내는 것은 결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격이 낮고 무성의해 보인다. 단 한 줄의 안부라도 자신이 직접 써서 보내자. ➐ 가까운 사이라 해도 긴 동영상이나 유튜브 콘텐츠 등은 가급적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안 보면 부담이 된다. 그것에 대한 감상을 물을까봐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➑ 펌글은 되도록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할 것이며, 글쓴이나 출처가 엉터리인 경우가 많아 나중에 망신스러울 수 있다. ➒ 내 흥에 겨워, 혹은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밤 열두시 넘어 새벽 한시, 두시에 카톡이나 문자를 보내는 것은 제발 삼가자. 새벽 네다섯시에 보내는 것 역시 실례이자 무례한 행동이다. ➓ 보내기 전에 수신자를 체크하자. 아내에게 보낼 급여명세서를 지인 여성에게 잘못 보내는 바람에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노출한 경우도 있었다.2021-09-14 20:00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 손자손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지난 7월, 우주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7월 11일 오전 7시 40분에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7월 20일 오전 6시 12분에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달과 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해 그 뒤를 쫓고 있다. 앞다투어 우주로 떠나는 나이 든 ‘회장님’들은 로망으로 존재하던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달에 발을 딛는 우주인을 보며 상상만 했던 우주여행, 국내에서도 정말 가능한 걸까? 시니어가 우주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하다.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는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지구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인류의 미래가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가 어떤지 직접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는 “영화처럼 몸이 둥둥 뜨는 무중력 상태에서 파란 지구를 내려다볼 걸 상상하면 짜릿하고 흥분된다”며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아 꿈만 꾸고 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첫 번째로 신청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한국인이 우주여행을 다녀온 사례는 없지만, 비슷한 사건은 있었다. 2008년 4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이야기다. 2006년 진행된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는 당시 큰 이슈였다.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우주에서 태우고 싶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손자 손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당시 예순일곱의 나이로 최고령 도전자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사회에 울림을 주었다. 이외에도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 카레이서 황진우 등의 명사가 도전해 더욱 화제를 모았지만, 우주행 티켓을 거머쥔 주인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의 이소연 박사였다. 이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9박 10일간 머무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 씨는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직업 우주인으로, 그녀의 여정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민간 우주여행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1호 우주인 탄생’이라는 경사를 지켜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우주를 여행할 수 있기를 꿈꿨다. 실제로 이소연 씨의 귀환 직후 인터뷰는 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기준 17.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국민적 관심을 인식한 듯 국내 한 관광사는 유사 우주관광 상품을 내놓았다. 2008년 판매된 ‘우주에서 살아남기-우주항공 체험과 러시아 일주 6일’이 그것이다. 관광객들은 직접 우주로 떠나는 대신, 러시아 여행 중에 모스크바의 가가린 우주훈련센터를 방문했다. 로켓보다 열기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실제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우주여행 티켓을 팔며 분위기가 달아오른 모양새지만 우리나라에선 13년 전의 유사 우주 관광상품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기술로는 짧게 보면 10년, 길게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릴 적 상상하던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정말로 요원하기만 한 걸까.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어떠한 기업이 나타나 우주여행만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한 10년 안으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주여행 산업 진출을 꿈꾸는 국내 기업이 있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의 방산·항공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며, 아직 우주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단계라서 우주여행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논의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본부장은 “기술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돈”이라고 콕 집어 지적했다. 우주여행에 필요한 발사체를 제작하고, 우주정거장처럼 궤도를 도는 우주호텔을 건설하는 일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수백억 원 수준이다 보니 일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로켓 대신 열기구를 도입할 경우 시니어에게도 희망이 있다. 열기구를 이용하면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에서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거치지 않아도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푸른 별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스타트업 ‘스페이스퍼스펙티브’(Space Perspective)는 특수 제작될 열기구 ‘스페이스십넵튠’(Spaceship Neptune)을 이용한 관광상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열기구의 강점은 로켓보다 천천히 상승해 탑승자가 버텨야 하는 중력가속도로 인한 압력이 비교적 낮다는 데 있다. 즉 탑승자의 신체 조건이 완화된다. 현재 우주행 티켓을 판매 중인 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용 로켓에 탑승하려면 2~3G를 버텨야 한다. 2~3G는 급회전을 하거나 추락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안형준 연구위원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건강한 분이라면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시니어들이 ‘열기구 우주여행’을 노려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엔 국내에서도 우주여행을 성공해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다면, 외국 기업이 제작한 발사체를 타고 국내 기업이 우주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가능할 수 있다”며 “아주 빠르면 10년 후에도 일반인의 우주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니 우주여행을 꿈꾼다면 지금부터 체크리스트를 챙겨 준비해보자.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고,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2021-09-09 20:00
  • 왜 술이라 할까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ㅎㅎㅎ
    이퇴계의 생활 습관습여성성(習與性成)이라는 말이 있다. 곧 습관이 천성을 이룬다는 말이다. 습관에는 마음의 습관과 몸의 습관이 있다. 두 습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큰 스승 퇴계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고결한 성품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논어’ 첫머리에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는 말이 나온다. ‘배우고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여기서 익힌다는 습(習)의 뜻은 몸으로 실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퇴계는 살아서도 존경받는 대학자였지만 사후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조선 유학의 큰 별이 되었다. 그의 생애와 생활 습관을 살펴봄으로써 퇴계의 인품이 습관을 통해 어떻게 가꾸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퇴계는 죽는 순간까지 타인을 향한 겸양과 섬김의 자세,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평등사상을 실천했다. 퇴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두 학자가 있는데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 정약용은 퇴계에 대해 이르기를 “공정한 인물평, 흐트러지지 않는 수양 공부, 겸양의 태도, 연구와 진리 추구, 순수하고 지극한 정성, 바르고 곧고 엄격하고 과단성 있는 점, 이러한 것들이 퇴계를 사숙하고 흠모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퇴계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친은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마흔 나이로 죽고 모친 박 씨는 남은 7남매를 키우느라 농사일과 양잠 등으로 고된 삶을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훈계할 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사람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를 경서 공부로 이끌었고, 성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퇴계의 언행록에 그의 습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새벽에 일어나 반드시 향을 피우고 조용히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으셨다. 한 번도 나태한 모습을 뵐 수 없었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날 퇴계가 의관을 정제하고 책 읽는 모습을 본 형이 옷을 벗고 시원하게 앉아 공부할 것을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혼자 방 안에 있어도 천 사람, 만 사람의 가운데 앉아 있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퇴계의 독서법은 다독이 아닌 정독과 숙독이었으며, 공부의 목적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공부는 ‘중용’에 나오듯 철저하고 독실하게 했다. 첫째 넓게 공부하고(博學), 둘째 자세히 묻고(審問), 셋째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넷째 바르게 분별하고(明辯), 다섯째 돈독하게 행동하는(篤行)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는 항상 거경궁리(居敬窮理)하는 자세, 곧 경건함 가운데서 사물의 이치를 찾으려고 했다. 퇴계가 평소에 좌우명으로 삼고 지키려 한 내용이 목판본으로 제작되어 전해지는데, 먼저 간사하고 사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思無邪),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毋自欺), 홀로 있을 때도 늘 삼가는 것(愼其獨), 공경하지 않음이 없는 것(毋不敬) 네 가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곧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다. 퇴계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갈고닦은 후 이를 근거로 이웃을 편안하게 하고자 했다. 학문을 통해 퇴계가 추구한 것은 경쟁에서 승리도 아니요 지식으로 명성을 얻기 위함도 아닌 오직 사람다운 삶, 향기를 지닌 난초와 같이 인격을 갖춘 모습이었다. 사람에게 부여된 성(性)은 인의예지다. 유학에서 공부란 바로 감정의 발현이 치우치지 않도록 가다듬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중용을 유지하며 앎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 곧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군자이고 성인이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전기 성균관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성리학을 연구한 성리학자다. 주자는 성리학에다 태극도설에서 말하는 태극과 음양의 이론을 구체화해서 성리학의 우주론, 이기론을 완성한다. 태극은 이고 음양과 오행은 기에 속한다. 이와 기가 합해져서 만물이 태생한다는 이론이다. 퇴계는 주자의 이기론을 연구하여 이를 상위 개념인 우주만물의 근본 원리로 규정하고, 기를 하부 개념으로 분리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완성했다. 퇴계는 이기론에 근거한 사단칠정론을 통해 인간의 인의예지와 칠정의 발현을 깊이 연구하고 윤리와 도덕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꿈꾸었다. 퇴계의 부부관은 서로 공경하되 친밀성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서로를 손님처럼 대하는(相敬如賓)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와 존경을 잊어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친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고 인격을 멸시해버린다. 이런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퇴계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째 부인 허 씨는 다섯 살과 한 달 된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고, 둘째 부인 권 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부인을 정성껏 보살피고 공경했다. 순천에 사는 제자 이함형이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혼인하고도 동침하지 않았는데, 순천 집에 가는 제자를 불러 아침 식사를 대접한 후 부부의 도리에 관한 서간을 써주어 부부 금슬을 좋게 하고 자녀를 낳아 행복하게 지내게 했다고 한다. 퇴계는 편지 3154통을 남겼는데 거의가 60세 이후의 것으로 평균 3일에 두 통의 편지를 쓴 것이다. 손자 이안도의 혼인 때도 한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천 번 만 번 경계하거라. 무릇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니 아무리 지극히 친밀하고 가까워도 지극히 삼가야 하는 자리다”라며 부부의 바른 도리를 전하고 있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말이 있다. 배우고 깨달은 경서의 내용을 좌우명 삼아 덕행일치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나라 유학의 큰 스승으로 우뚝 선 퇴계 선생의 인품의 향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2021-09-05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