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보육 갓난아기 몇 주 일반가정

지난달 26일, 25개월 된 사랑이가 응급실에 실려왔습니다.

온몸은 멍투성이었고,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아온 정황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사랑이는 사실 넉 달 전 입양 된 아이였습니다.

새엄마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서류를 위조해 제출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입양기관은 이를 그대로 믿고 입양을 진행했습니다.

입양기관도, 이웃들도 까맣게 모른 사이에 학대를 받아 죽음에 이른 사랑이.

되풀이되는 입양아 학대 사망, 정말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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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울산 119 상황실로 긴급 구조 요청이 접수됐습니다.

"119입니다. 네. 네. 선생님, 일단 계신 곳은 어디시죠?"

25개월된 여자 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겁니다.

◀ 박병일 / 울산소방본부 ▶
“중년 여성분께서 조금은 당황하신 목소리로... 아이가 몸이 안 좋다고 신고를 하셨고.

7분 만에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이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응급 처치를 하던 구급대원은 아이의 몸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안왕/구급대원 ▶
“여러 군데가 시커먼 멍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구급대원으로 10년간 생활을 했는데 이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병에 걸린 것도, 사고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 남수경/119 구급상황간호사 ▶
"직접적으로 때리셨다고 자기가 직접 말씀 하셨어요. 제가 좀 당황해서 재차 여쭤봤어요 '때리셨다고요?'여쭤보니까 맞다고 '네' 이렇게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엄마는 아이를 사랑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름처럼 사랑받는 대신 폭행을 당해 숨졌고, 엄마는 곧바로 경찰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모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건이 벌어진 지 열흘이 지난 시점.

2580은 사랑이 모녀가 살던 동네를 찾아가 봤습니다.

◀ 주민 ▶
“(아이 보신 적 있으세요?)... (이 동네에) 살기는 사는데 저는 잘 몰라요.

◀ 주민 ▶
“(이십 몇 개월이라고 하던데) 몰라요 세 살이라고 하는 것만 알아요.”

골목에서 이따금 마주쳤을 뿐,

이웃이라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동네 슈퍼마켓 종업원만큼은 모녀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슈퍼마켓 직원 ▶
"아이가 오면 다른 일반 아이들 같이 안 하고, 엄마 따라 다니고 이게 아니고 항상 오면 카운터 앞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아이가, 움직이지도 않고."

주눅이라도 든 것처럼 얌전한 모습이 오히려 눈에 밟히더란 겁니다.

◀ 슈퍼마켓 직원 ▶
“그래서 가게 언니가 항상 여기 서 있으면 '사랑아 이리 와' 손잡고 가서 사탕 하나라도 쥐어 주고 그랬었거든요.”

사랑이는 지난 6월 대구의 한 보육시설에서 입양된 아이였습니다.

이미 중학생 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사랑이의 양엄마 46살 김모 씨는 반 년 간의 입양 심사를 거쳐, 막내딸로 키우겠다며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시설에서 지어 준 본명 대신 '사랑이'라 부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딸이라고 말했습니다.

◀ 이웃 주민 ▶
“병원에 갔는데 요즘 애 떼는 게 잘 안 되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낳은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던데요? (늦둥이라고?) 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전날 아이가 위험한 장난을 치길래 플라스틱 자로 몇 대 때렸을 뿐'이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이송 직후 병원 의료진이 확인한 사랑이의 상태는 온몸이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 병원 관계자 (전화녹취) ▶
"양쪽 다리 쪽으로 해서 여러 군데, 멍 자국이 여러 군데에 있었고요. 그 다음에 우측 다리가 조금 심하게 화상으로 추정되는 수포가 좀 있었고요. 다음 팔 쪽에도 보니까 굉장히 넓은 부위로 해서 멍 자국이 있었고 등 쪽으로도…"

머리에서는 둔기에 맞아 생긴 뇌출혈까지 발견됐습니다.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직접적인 사인이었습니다.

◀ 정남권 여성청소년과장/울산청 ▶
“부검 결과에 보면 이건 자로 때린 게 아니고 자국이 아니라 둔기 같은 걸로 뭉툭한 파이프 같은 것으로 수십 차례 때린 것으로...”

사랑이 모녀가 살던 곳은 방 두 개 짜리 월셋방.

사랑이는 숨지기 전까지 이곳에서 양모 김 씨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습니다.

지난달 24일엔 김 씨의 친딸인 언니의 무용 발표회장에서 버릇없이 뛰어다녔다는 이유로 머리를 때리고, 다음날에는 옷걸이로 쓰던 금속 막대로 온몸을 수십 차례 구타했습니다.

아이가 아파하며 울자 찬물을 끼얹기도 하고, 매운 고추를 물에 타 억지로 먹이는 등 고문에 가까운 행동까지 저질렀습니다.

경찰도 처음엔 학대치사, 다시 말해 죽일 의도까진 아니었을 걸로 추정했지만,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살인 혐의를 새로 적용했습니다.

◀ 정남권 여성청소년과장/울산청 ▶
"구타를 해서 출혈이 엄청 많이 됐고... 병원에 바로 데려가지 않고 시간을 자꾸 끈 걸로 봐서 충분히 애가 죽어도 상관 없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그런 행위..."

사실 김 씨는 월세 35만원도 열 달 치나 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2년 전부터는 남편과도 별거 중인 상태였습니다.

김 씨는 비공개 입양으로 사랑이를 데려오고 주변에도 비밀로 했지만, 입양 지원금만큼은 직접 구청을 찾아가 신청했습니다.

◀ 울산 중구청 담당자 (전화녹취) ▶
“입양아동 양육수당 신청했어요. (혹시 그 양육수당은 언제부터 신청해서 받아 가셨는지) 이 분이 어차피 뭐 6월에 입양을 했으니가 6월부터 지원을 했죠. (입양하자마자?) 예.”

취재진이 사랑이의 집 주변을 돌아본 시간은 반나절 남짓.

하지만 애초에 아이를 입양하기에 적합한 가정은 아니었을 거란 정황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가 숨지기 전까지 이 사실을 눈여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갓난아기가 심하게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유력한 용의자가 이 아기를 입양한 양어머니입니다.”

“얼마 전에 입양됐던 12개월 여자 아기가 집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입양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법적인 제도와 규정은 점점 강화됐습니다.

현행법상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먼저 입양 희망자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입양기관과 법원이 차례로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입양한 뒤에도 사후 관찰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열 가지 넘는 각종 서류심사에다, 불시점검을 포함한 방문 조사 규정도 있지만 전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양모 김씨가 낸 서류는 위조된 것이었고, 실태를 확인해야 할 방문 조사도 한 차례 형식적으로만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 정익중 교수/이화여대 ▶
“속이려고 드는 사람을 완전히 밝혀낼 방법은 없다고 생각되는데..시간도 없고 전문성도 없고 이러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밝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빚에 쪼들리는 김 씨는 겉보기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승용차엔 골프 가방을 넣어 다녔고, 입양 기관 사람들을 만나서도 여유있고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꾸몄습니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무리해서 아이를 입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입양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 ▶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은 그 부분으로 충분히 추정할수 있다는 거죠. 입양의 목적 자체가 사실 금전적인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 입양을 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하단 거예요."

정부와 지자체는 입양 가정에 대해 매달 수십 만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에 대한 의료비 등의 혜택으로, 현금 지원은 월 15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 ▶
"그래서 더더욱 이 아이에 대한,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격분하는 그런 감정, 이런 것들이 있었겠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가 이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사전 조사는 제대로 한 건지, 아이를 입양시킨 복지시설을 찾아가 봤습니다.

취재진이 신분을 밝히자 서둘러 사무실 문을 닫아버립니다.

◀ 입양기관 관계자 ▶
“(여쭤볼 게 있어서요) 지금 좀 안 되는 상황이어서. (그러니까 왜 안 되는 상황인지, 문 앞에 계속 세워놓으시고)“

10분을 기다려 취재를 요청했지만, 이리저리 답변을 피할 뿐이었습니다.

◀ 입양기관 관계자 ▶
“경찰에다가 모든 서류를 다 드렸기 때문에 저희가 별도로 답변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1842 일단은 저 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세요. 저희가 지금 굉장히 바쁜 업무를 하고 있거든요.”

이들이 당당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번처럼 점검 소홀 문제가 드러난다 해도 경고 외에 별다른 제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새로 마련된 입양 절차 개정안에는 지인 등의 추천서만 있으면 가정을 불시 방문해 확인하는 절차를 아예 생략하도록 했습니다.

입양을 하려는 부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입양이 비공개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서류만 들여다보는 심사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 정익중 교수/이화여대 ▶
“(규정이) 아이의 편에 서야 된다라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아이가 건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고, 그런 부분까지도 동의한 분에게만 입양이 허가가 돼야 된다.."

아이를 입양해 기르고 있는 부모들 역시 사전 심사뿐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상담과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고 실감합니다.

◀ 주진경/두 자녀 입양 ▶
“입양 당시에 부모들이 입양 교육을, 부모 교육을 받게 돼 있어요. 8시간이나 9시간 정도 받는 걸로 돼 있는데 그걸로는 부족하죠 사실은."

입양은 어른들의 필요에 의해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두 번째 고통을 받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안전망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사랑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