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찔린 상처(자상)

자상은 겉보기의 상처보다도 내부의 손상이 큰 것이 특징입니다. 깊은 자상은 겉보기엔 상처가 작아도 세균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나 파상풍으로 생명에 위험을 미치는 경우도 있으므로 조속히 의사의 진료를 받으십시오. 상처는 작아도 내부 조직의 손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처치법

가시: 가시에 찔렸을 때는 손톱 같은 것으로 황급히 뽑으면 세균이 들어가서 불결합니다. 손을 잘 씻고서 소독한 족집게로 뽑도록 합니다.

낚싯바늘: 낚싯바늘에 찔렸을 때는 무리하게 뽑으려 해도 끝이 걸려서 좀처럼 뽑히지 않습니다. 낚싯바늘을 바늘끝 쪽으로 밀어 내어 끝을 노출시켜서 뿌리 부분을 니퍼같은 것으로 잘라내고 나서 뽑아냅니다.

헌 못: 헌 못에 찔렸을 때는 응급처치를 한후 조속히 의사의 진찰을 받아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헌 못에 찔린 상처로부터는 잡균이나 파상풍균이 들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재봉 바늘: 재봉바늘에 찔려서 부러져 버린 경우, 곧바로 뽑히지 않으면 억지로 뽑으려하지 말고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십시오. 낡은 재봉바늘은 약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뽑지 않으면 끝이 부러져서 몸안에 남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칼, 유리: 금속 파편칼이나 유리 금속편 등으로 몸을 찔렸을 때는 절대로 뽑아서는 안됩니다. 뽑으려다가 일부분이 몸 안에 남거나 출혈이 더하거나 내장이나 혈관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안정하게 눕히고 타월 등으로 찔린 것을 고정시키고 구급차를 부르십시오. 깊은 자상을 낸 칼 등이 빠져 버리거나 뽑아 버렸을 때는 먼저 상처 위를 꼭 눌러 압박해서 지혈부터 해주십시오. 압박해도 지혈이 되지 않는 경우 사지 부위는 지혈대를 감으면 효과적으로 지혈이 될 수 있습니다. 지혈대를 감은 경우는 2시간 이내에 의사의 진료을 받아 주십시오.

찢어진 상처(열상)

상처가 미약할 때는 집에서 치료할 수 있으나, 심할 때는 일단 심한 출혈만 응급으로 지혈법을 이용하여 중지시켜 보도록 하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여야 합니다. 상처가 경미할 때의 처치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먼저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습니다.
  • 출혈이 있으면 직접 압박법으로 지혈을 합니다.
  • 지혈이 되면 상처를 물로 깨끗이 씻어서 먼지나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씻을 때는 상처를 조심스럽게 다루어 다시 출혈하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 이물질을 제거할 때는 집게(tweezer : 우리에게 핀셋으로 더욱 많이 알려짐)를 이용할 수 있으나, 이는 반드시 사용 전에 끊이거나 불에 달구어 소독된 것을 사용해야 됩니다.
  • 비누로 씻은 뒤 상처를 물로 헹궈 냅니다.
  • 소독된 마른 거즈나 천으로 물기를 닦아 냅니다.
  • 의사의 지시 없이는 연고나 소독약 등을 함부로 바르지 않습니다.
  • 상처 부위를 멸균된 거즈로 덮어 줍니다.
주의사항- 만약 찢어진 부위가 벌어지면 상처를 당겨서 1회용 반창고를 부착하여 상처를 붙여 줍니다.
- 상처가 심할 때, 출혈이 그치지 않을 때, 상처를 낸 물체가 더러울 때, 이물질이 깊이 박혀있을때는 무리하지 말고 꼭 의사에게 되도록 빨리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 다음과 같은 증상이 보이면 병원을 방문합니다.
- ① 상처 부위에 열이 있거나, 붉어지거나, 부었을 경우
- ② 조금만 무엇에 닿아도 심하게 아픈 경우
- ③ 붉은 줄이 상처부위로부터 몸쪽으로 뻗는 등 염증의 증세가 있을 경우
- ④ 파상풍 예방주사를 최근 5년간 안 맞았던 경우로 더러운 쇠, 흙 등에 외상 부위가 더렵혀진 경우

까진 상처(찰과상)

찰과상은 표피만의 상처 정도의 가벼운 것이며 가정 치료로도 충분합니다. 상처의 정도는 다음과 같은 요령으로 구분합니다. 출혈 부위를 흐르는 수돗물로 씻어 봅니다. 오돌오돌 점 모양의 출혈은 상처가 가볍다는 표시입니다. 그 뒤에 곧 줄줄 흐르는 듯한 출혈이 없으면 상처는 진피의 얕은 층까지입니다.

처치법- 환자의 상처부위를 만지기 전에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습니다.
- 상처부위에 먼지나 기타 더러운 것이 묻어 있을 때는 상처부위를 물로 가볍게 씻어냅니다.
- 상처가 경미하면 그냥 노출시켜도 무방하며, 항생제 연고를 바르면 효과적입니다.
- 큰 상처인 경우에는멸균된 거즈 등으로 덮고, 반창고로 고정한 후 병원진료를 받습니다.
- 감염의 증상이 보이면 즉시 의사에게 보이도록 합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 찰과상의 하부 조직이 많이 부어서 통증이 심하고 타박, 피하출혈, 골절 등의 합병증이 염려스러울 때
- 길에서나 특히 논밭 같은 곳에서 흙투성이가 되어서 상처를 입었을 때는 파상풍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의 진료를 받고 파상풍 예방주사(톡소이드)를 맞습니다.
- 길거리에서 얼굴 등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상처 속에 흙이나 모래가 들어가서 그대로 남아 흉터를 남기는 일이 있으므로 병원에서 치료해야 합니다.

멍든 상처

멍은 외상으로 인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멍이 들게 되면 피부가 시퍼렇게 변색이 되고 붓게 됩니다. 때로는 피부 밑 조직에 핏덩이가 고이기도 합니다.

처치법- 멍이 들면 가능한한 빨리 찬물이나 얼음으로 찜질을 한다. 이는 부위에서의 출혈이나 붓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 만약 멍든 부위가 팔이나 다리이면 그 부위를 심장의 위치보다 높게 올려서 부기가 빨리 빠지도록 합니다.
- 24시간이 지난 뒤에는 더운 물찜질을 하여 치유를 촉진시킵니다.
- 멍든 부위가 심하거나 통증이 심할 때는 의료기관을 찾아 가서 혹시 골절이나 다른 손상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할퀸 상처

할퀸 상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외상 중의 하나입니다. 경증의 경우는 가정에서도 충분히 처치가 가능합니다.
- 어린 아이들끼리 싸워 손톱으로 할퀸다.
- 못 등의 돌출
- 유리파편
- 고양이 등 동물의 발톱

처치법 할퀸 상처가 생겼을 경우 처치를 하기 전에 다음 두 가지 점에 주의하십시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 상처의 정도
피부의 표피만 손상된 경우, 피를 닦고 보면 그 밑에 흰 속살이 보입니다. 이것은 상처가 비교적 얕은 것을 나타내며 약간 폭이 넓어도 상처를 청결하게 하면 자연히 치유됩니다. 상처가 심할 때는 출혈도 많고 상처 밑에 노란 피하지방이 보입니다. 이것은 할퀸 상처라기보다는 칼에 베인 상처에 가까워서 의사의 진찰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할퀸상처의 처치는 상처가 심하지 않는한 잘 소독하고 청결한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아 두면 충분합니다. 가벼운 할퀸 상처는 며칠에서 1주일 정도 지나면 딱지 밑에 표피가 나옵니다

* 상처의 오염 정도
어린아이들의 더러운 손톱, 흙으로 더러워진 헌 못, 고양이 등 동물의 발톱은 모두 다 감염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특히 헌 못이나 동물의 발톱 같은 것은 가정에서 소독할 수 없는 감염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의사의 진료를 받는 편이 좋습니다.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 며칠이 지나도 상처가 마르지 않는다.
- 분비물에서 악취가 난다.
- 며칠이 지나도 통증이 가시지 않고 빨갛게 부어서 열이 난다.

2006년에 이사쿠아 제5와드에서는 몇 달 사이에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그 와드 회원들이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의 실천과 서로 단합할 때 주어지는 축복의 훌륭한 예를 엿볼 수 있다.

워싱턴 주 이사쿠아 제5와드 청소년들이 방학을 시작하던 그날은 여느 여름의 시작과 다를 바가 없었다. 2006년 6월의 그 월요일 정오에 와드 청남 청녀들, 지도자들과 몇몇 다른 회원들은 함께 모여 청소년 대회 장소로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해 가서 여행지에 도착해 짐을 풀고, 헤엄도 치고 즐겁게 놀면서 단합심과 간증을 키워 주는 사흘간의 활동을 시작했다.

알렉사 젠슨

그런데 둘째 날, 비극이 일어났다. 열세 살 소녀 알렉사 젠슨이 다른 청녀들과 헤엄을 치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이었다.

알렉사는 흔치 않은 간 질병을 앓고 있어 발달 장애가 있긴 했지만 수영 실력만큼은 수준급이었다. 특별 올림픽(역자: 1968년 창설된 심신 장애자 국제 스포츠 대회로서 4년마다 개최) 지역 및 주 예선 경기에서 메달을 딴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알렉사의 엄마, 데니스는 알렉사가 사라진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알렉사는 몇 년 동안 발작으로 고생을 했었기에 알렉사의 엄마는 그녀가 발작을 일으켜 물속으로 가라앉은 것임을 짐작했다.

알렉사의 엄마는는 도와 달라고 소리쳤고 청소년 여럿이 물속에서 알렉사를 찾기 시작했다.

알렉사를 찾아 끌어올려 안전한 곳에 뉘였을 때는 불과 4~5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청소년들은 주위에 모여 알렉사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것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정말 무서웠어요.” 당시 젠슨 가족의 가정 복음 교사였던 16살 챈들러 벌크맨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한다.

알렉사는 재빨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맥박이 멈춘 상태였다. 의료진의 긴급한 조치로 심장 박동은 간신히 안정되었지만, 뇌 기능은 여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뒤, 알렉사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챈들러는 이렇게 회상한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어요. 비극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죠. 정말 착한 아이였거든요.”

젠슨 가족의 견디기 힘든 충격과 슬픔은 와드 사람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차츰 누그러졌다.

어머니 데니스는 “와드 회원들과 함께 모여 활동에 참여하다 일어난 일이었기에 와드 회원들과 함께 이 시련을 헤쳐나가는 것은 여러모로 위안이 되었죠.”라고 말했다.

“와드의 다른 회원들이 이 비극적인 일을 함께 겪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회원 분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딸아이가 얼마나 사랑 받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죠.”

이렇게 끔찍한 일을 경험하는 이들은 가족 관계에 금이 가기가 십상이지만, 젠슨 가족은 단호히 슬픔을 이겨냈다.

게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식구들끼리 서로를 위로한다는 게 참 힘들더군요. 가족 모두가 나름대로 슬픔에 빠져 있었으니까요.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배우자에게 힘이 되고 싶어도 여력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많이 힘들었는데, 와드 회원들에게서 받은 수많은 도움과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시기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끼리도 서로 돕고 위로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되기까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게리와 데니스, 그리고 나머지 두 자녀인 오브리와 타일러가 함께 알렉스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고 노력할 때 와드 회원들은 조직적으로 협력해 그 가족에게 힘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와드 회원들은 식사를 챙겨 주고 장례식 준비를 돕는 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왔으며, 때로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회원들은 사랑을 담은 편지와 카드도 썼다. 그들은 장례식이 끝난 한참 뒤에도 자주 젠슨 가족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관심을 표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소년들은 젠슨 가족에게 알렉사와 그 일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8월이 되면 와드 회원들은 젠슨 가족과 함께 알렉사의 생일을 기념하는 작은 추모회를 종종 갖기도 한다.

“저희 가족은 날마다 알렉사 얘기를 해요.” 데니스는 말한다. “그 아이를 절대로 잊고 싶지 않아요. 그 아이와 다시 함께 할 수 있기를 늘 기도합니다.”

데니스는 자녀를 잃은 경험이 있는 가족을 돕고자 한다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와드 회원들에게 조언한다. 사람들이 알렉사에 대한 추억거리들을 얘기해 줄 때나 알렉사 얘기를 꺼낼 때, 또는 그냥 안부를 물을 때 우리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그냥 듣고 받아들이세요.”

게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희는 슬픔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더 강해지고 충실해졌죠. 와드 식구들이 함께해 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겁니다.. 아마 저희는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챈들러 벌크맨

챈들러 벌크맨

와드 회원들이 알렉사 일로 받은 충격을 채 극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벌크맨 가족은 다른 여러 와드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사마미시 호숫가에 살고 있으며 많은 시간을 물 위에서 보낸다. 젠슨의 가정 복음 교사였던 16살 챈들러 벌크맨과 그의 아버지 스티브는 어느 날 저녁 해질 무렵 사마미시호에서 헤엄쳐 누가 더 빨리 인근에 떠 있는 부표에 닿을지 시합을 벌렸다. 아버지를 이겨 보려고 몰래 오리발을 신은 챈들러는 물속에서 헤엄치며 부표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스티브에게 갑자기 어디선가 보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스티브가 보기에 그 보트는 헤엄치고 있던 챈들러 바로 위를 지나갔다.

알고 보니, 챈들러의 누나인 제시카가 보트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챈들러도 스티브도 보트가 선창에 없다는 것을 몰랐기에, 보트가 돌아오는 소리를 주의해서 듣거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이었던 데다가 선창을 향하면 해를 등지게 되어 있어서 제시카는 물속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물 밖으로 떠오른 챈들러를 본 후에야 제시카는 동생이 자기가 타고 있던 보트에 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챈들러는 자신이 보트의 모터 부분에 부딪혔으며 더 이상 헤엄치지 못할 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스티브는 챈들러에게 헤엄쳐 다가가서 그를 떠받쳤다.

“손을 아래로 뻗어봤는데, 정말 끔찍한 느낌이었습니다.” 스티브는 말한다. 챈들러의 다리가 골반 위치에서 거의 잘려나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전 그 아이가 살아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아들과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그 아이를 꼭 붙들고 호숫가까지 180미터 거리를 온 힘을 다해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보트는 엔진이 정지한 상태여서 제시카는 동생에게 가 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혀 있었지만 휴대폰으로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챈들러의 형인 제프는 집에 페인트칠을 하다가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제프는 카누를 타고 스티브와 챈들러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갔고, 기적적으로 카누가 뒤집히지 않은 채 그 둘을 태울 수 있었다. 선창에 도달하자마자 스티브는 챈들러에게 축복을 주었다.

벌크맨 가족의 집에서 네 집 건너에 사는 당시 와드 감독이었던 게리 포크맨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한숨에 달려 왔다.

제프와 스티브는 게리의 도움을 받아 챈들러를 집 안으로 옮겼다. 스티브는 챈들러의 다리에서 나는 피를 멎게 하려고 애썼지만, 대퇴부의 동맥이 끊어진 상태여서 출혈이 심각했다. 포크맨 감독은 챈들러에게 다시 축복을 주어도 되는지 물었다.

포크맨 감독은 챈들러가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이 아닌 그의 “지적 능력과 유머 감각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축복을 주었다.

스티브는 “감독님이 축복을 준 후에 저는 그 아이가 꼭 살아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챈들러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때 수잔과 챈들러의 여동생 스테파니가 집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챈들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는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아직 호수 위 보트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는 제시카에게 누나 잘못이 아니라고 누나를 이미 용서했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구급차가 도착했고 챈들러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스티브가 챈들러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고, 차가 떠난 뒤 수잔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수잔은 챈들러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아직 호수 위에서 아무 소식도 못 들은 채 넋을 잃고 있을 제시카가 떠올랐다. 제시카는 챈들러의 생사도 알지 못했다.

“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고맙게도 친구들 몇 명이 와서 보트를 끌어 주어서 겨우 되돌아올 수 있었죠.”

경찰이 와서 제시카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한편,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챈들러를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챈들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맥박은 멎어 있었고, 의사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챈들러는 이미 혈액의 60~75퍼센트 가량을 잃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챈들러를 안정시키고 몇 차례 수혈을 한 후,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챈들러의 활동적인 성격을 아는 스티브는 아들의 다리를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한 의사가 스티브에게 그가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리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수술 팀은 챈들러의 목숨만이라도 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의사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밤새 수술을 계속 진행해, 골반 위쪽에서 그의 다리를 절단해 내고 부러진 뼈와 깊이 벤 상처를 치료했다. 그날부터 챈들러는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지냈으며, 그 후로 서른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챈들러가 회복할 동안 와드 회원들은 지속적으로 벌크맨 가족을 도왔다.

“모두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어요.” 수잔은 말한다.

와드 사람들은 그 가족에게 따뜻한 식사를 가져다 주는가 하면, 음식을 냉동시켜 수잔이 나머지 가족을 보러 잠깐 집에 왔을 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 챈들러의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세탁, 정원 일, 집 청소 등을 맡아서 해 주었다.

“치료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었어요. 제가 부탁을 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곧바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조직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라고 수잔은 말한다.

특히 와드 회원들이 벌크맨 가족의 막내딸 스테파니를 돌봐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루는 수잔은 스테파니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시카가 몇 군데 전화를 걸어 와드의 한 가족이 스테파니를 데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가족은 스테파니에게 밥을 먹이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 밤에도 함께 데리고 있었다. 누군가 스테파니를 잘 돌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잔은 안심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챈들러가 사고를 당한 바로 다음날 일어났던 그 일은 그들에게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도움의 손길 중 하나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데니스 젠슨과 몇 달 동안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킨 경험이 있는 데비 캘호운이 수잔을 방문한 것이다. 데니스는 알렉사를 떠나 보낸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수잔을 방문해 위로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데니스는 “그분들 마음이 공감이 갔어요. 그 슬픔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죠.”라며 어떤 심정으로 병원에서 수잔 곁에 있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저희 사이에는 곧 약간의 유대가 생겼어요.”

데니스는 마침 6주 전에 중환자실에 있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수잔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데니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과 더불어 이해하는 마음으로 수잔을 도왔다.

“데니스는 제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아이를 잃은 슬픔이 아직 클 텐데도, 병원에 와서 저와 함께 있어 주고 제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죠. 자신이 겪은 시련과는 조금 달랐지만, 우리 상황을 깊이 이해해 주었어요.”

작년에 데비의 딸 클레어는 병원에 자주 입원했었다. 데비는 수잔이 앞으로 겪을 길고도 소모적인 날들을 알기에 수잔과 함께 있어 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데비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우리가 어머니로서 받는 느낌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 입니다. 갑자기 어떤 느낌이 들 때, 반드시 의료진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의료진이 어떤 점을 발견하기 전에 제가 먼저 알아차린 경우가 많이 있었고, 그것이 클레어를 살린 거죠.”

수잔은 이렇게 말한다. “데비는 제가 병원에서 치료 절차를 밟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되었죠.”

또한 사고 며칠 후에 와드 월계반 청녀 한 명이 챈들러가 치료받는 데 아주 큰 비용이 들 것을 알고, 그 가족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차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청녀는 2,000 달러를 모아 그 가족에게 기부했다. 그 가족은 그 돈과 함께, 와드 회원과 이웃들이 지원해 준 돈을 모아서 6개월 후에 챈들러에게 의족을 마련해 주었다.

첫 수술이 끝나고 챈들러는 2주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다. 깨어난 다음에도 호수 물에 닿은 몸 곳곳의 상처 부위가 감염되어 몇 달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위기를 넘기고 확실히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오래 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골반이 부러진 데다 일부는 절단되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다.

와드 회원들은 서로를 돌보는 가운데 계속해서 벌크맨 가족을 도왔다. 챈들러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 개종한 지 3년 되었던 크리스 캘런스는 와드 지도자들이 어떻게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위해 봉사하도록 장려했으며, 또한 그들이 어떻게 와드 회원들이 겪는 감정적 충격에 대처하도록 도와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교회에서 모임을 열어 감독님이 회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함께 의논했어요. 감독님은 상황을 정확히 전하고, 질문에 답해 주었으며, 와드 회원들에게 세심하게 대처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으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어요. 모든 일이 정말 척척 진행되었죠. 그 가족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든 노력들이 매우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었어요.”

하지만 크리스는 무엇보다도 항상 의논하고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며, “감독단은 정말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수잔은 와드 회원들이 벌크맨 가족을 도와줄 때 “모든 사람이 자기의 장기와 특성을 살려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맡아 도움을 주었다”고 회상한다.

와드 회원 중에 간호사가 한 명 있는데, 그 회원이 챈들러의 면회 시간을 조정해 주었다. 또 의사인 한 회원은 시간을 내어 의족에 관해 챈들러가 가진 모든 질문에 답해 주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저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어요. 와드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이웃 사람들까지 마음을 전해 왔죠.” 스티브는 말한다.

스티브의 식구들 말고도 100여 명의 와드 회원들이 끊임없이 병원을 드나들었다. 챈들러가 체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와드 회원들이 음식을 가져오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오기도 하고, 허락된 시간에는 병원 침대에서 벗어나 그의 오랜 취미인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챈들러는 병원에 찾아오는 초등회 아이들이 다리에 관해 물어볼 때 대답해 주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수잔은 이렇게 회상한다. “챈들러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그저 정말 솔직할 뿐이에요. 챈들러가 사람들 앞에 나서 완전히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한 대상이 바로 아이들이었죠.” 

청남 지도자들은 그를 예전과 똑같이 대했고, 그가 속한 제사 정원회 회원들은 매주 병원으로 성찬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정원회는 상호 향상 모임 활동으로 챈들러의 병실에 프로젝터를 설치해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챈들러는 사고 초기에 보여준 그들의 배려에도 고마움을 표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제사 정원회 친구들이 여전히 자신을 염려해 주어 특히 더 고맙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몇 가지 계획을 수정해야 했어요. 30km 도보 여행 대신에 자동차 여행으로 바꿔야 했죠. 저 때문에 그런 거지만 친구들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은 ‘우리가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말했고, 제가 짐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게 배려해 줬어요. 정원회 친구들이 기꺼이 그렇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챈들러는 교회로 다시 나올 수 있게 되었을 때 초등회를 방문했다. 아이들은 그의 ‘로봇’ 다리를 보고 신이 났다. 어떤 아이들은 챈들러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

수잔은 이렇게 말했다. “챈들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어린 아이들이 ‘형제님을 위해 기도했어요.’라고 말했을 때,정말 강한 힘이 느껴졌어요. 그 힘으로 정말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죠.”

챈들러는 “교회 조직이 얼마나 잘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어요.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가족처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싶어하죠.”라고 말했다.

스티브는 이렇게 말했다. “제게 정말 특별했던 것은 와드 전체가 하나가 되어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저희에게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실천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를 사랑해 주시는 와드 회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참된 의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와드 회원 중에는 제가 잘 알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회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달려가 주었습니다.”

현재 챈들러는 캐나다 토론토 서 선교부에서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팔이나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 챈들러처럼 골반까지 다리 한 쪽 전체를 잃은 사람은 2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의수족은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챈들러는 그로 인해 좌절하지 않았다. 챈들러는 선교 사업을 나가기 전 브리검 영 대학교 학생이었다. 그는 그 큰 대학 캠퍼스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걸어 다녔을 뿐 아니라, 파크 시티에 있는 수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스키 시합 팀에 소속되어 스키는 물론 수상 스키도 탔다. 또한 그는 의족으로 달리는 법도 배웠는데, 이는 전 세계에 네다섯 명밖에 달성하지 못한 뛰어난 묘기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아들이 다리를 잃은 것은 분명 비극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모든 분들이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덕분에 저희 가족은 역경을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챈들러는 물론, 아이 엄마, 그리고 때로는 저도 너무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이 정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면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분명히 사랑 받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크리스 캘런스

크리스는 비후성 심근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다른 여러 부작용도 있지만, 부정맥이나 전기 박동기의 중단, 또는 심장 박동이 멈추게 될 수도 있다. 크리스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크리스는 여느 때처럼 운동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져서는 바닥에 쓰러졌다. 당시 10살 밖에 되지 않았던 크리스의 아들 브라이언이 엄마가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브라이언은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아버지인 조를 부르러 달려갔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캘런스 가족

조는 브라이언에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말한 후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급 의료 팀이 도착했고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크리스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고, 조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 이웃이 딸들을 돌봐 주기로 했고 조는 가까이에 사는 와드 회원인 사브리나 라슨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들을 좀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던 조는 가족과 함께 후기 성도 교회 일요일 예배모임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어서 사브리나를 알고 있었다. “사브리나는 거의 1분도 안 되어 도착한 것 같아요.” 조가 회상했다. 그녀는 캘런스 가족의 아들들을 데려가며 조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구급차가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크리스의 심장은 또 다시 멈추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응급실 의사들이 크리스의 심장 박동을 안정시키려 애쓰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응급실 의사가 도착했다. 에릭 시플리 박사는 그날 당직이 아니었지만 와드 회원으로서 조를 도울 일이 있는지 보러 왔다.

“병원으로 운전해 오는 길에 [응급실에] 전화해 보니 아직도 심장이 뛰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살 가망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와드 회원들이 이런 일을 또 한 번 견뎌 내야 한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죠.”

에릭이 도착했을 때 의사들은 40~55분째 쉬지 않고 소생법을 실시하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의 경우에는 소생법을 20분 정도 진행해 보고 경과가 없으면 멈추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리스는 젊고 건강한 상태인데다가 심장이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신호가 이따금씩 모니터에 잡혔기 때문에 의사들은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에릭은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에릭의 말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한 시간 가량 인공소생법을 시행한 후에 크리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는 크리스의 심박이 안정되고 심장 환자 병동으로 옮긴 뒤에야 얼마나 많은 와드 회원들이 그를 도우러 왔는지 알게 되었다. 대기실에는 포크맨 감독을 비롯해 와드 회원 여럿이 모여 있었다. 감독단 일원인 챈들러의 삼촌, 매트 벌크맨은 조에게 크리스 외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매트는 다른 와드 회원들과 함께 공항에 도착한 조의 친척들을 데리고 오고, 집안일을 해 주고, 크리스와 조의 네 아이들을 잘 돌봐 주는 모든 과정을 계획하고 조율하겠다고 했다. 회원들은 또한 조가 면회오는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을만큼 안정될 때까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지 않도록 조정해 주겠다고 했다.

조는 말한다. “회원들이 이 모든 일들을 도맡아 해 주셨습니다. 제가 크리스 곁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죠.”

의사들은 조에게 크리스가 심장이 멈춘 상태로 너무 오래 있어서 뇌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당시 에릭의 진단에 의하면 뇌가 완전히 회복될 가능성은 1퍼센트 미만이었다.

와드 회원들은 동요했다. 몇 달 전 심장은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뇌 손상에서 회복되지 못해 알렉사를 잃었던 젠슨 가족과 똑같은 상황이 캘런스 가족에게 닥쳤기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회복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크리스의 체온을 급격히 낮추었다. 그녀의 뇌와 몸이 치유하기 위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는 그때 상황을 회상한다. “에릭 시플리 형제님은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제 곁을 떠나질 않으셨어요. 내내 저를 위로해 주셨을 뿐 아니라 필요한 의료 조치를 취해주셨죠.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날 밤에도 크리스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의사들은 크리스가 스스로 의식을 되찾은 것을 보고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 눈을 떴을 때 밴쿠버에서 온 친구와 일리노이에서 온 시누이 메리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의 얼굴에 비친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보고 조는 크리스가 시애틀에 살고 있지 않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놀란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나누었던 어떤 말보다도 바로 그 표정으로 제가 그녀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예전의 크리스로 돌아온 게 분명했습니다.”

처음 다시 눈을 뜨고 30분 정도 지나자 크리스는 산소 호흡기 틈 사이로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의사들은 그녀의 회복에 놀라움과 기쁨을 표했지만 몸이 좀 더 회복될 수 있도록 진정제를 며칠 더 투여했다.

에릭이 조에게 와서 매일 크리스의 회복 상태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는 진료 기록을 설명해 주고 의학 전문 용어나 통계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알려 주었다.

쓰러진 지 나흘 째인 일요일이 되자, 크리스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기억도 돌아오고 있었다. 에릭 시플리 형제는 금식 간증 모임에서 크리스의 회복에 대한 기적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에 그는 크리스에게 이렇게 놀랍고 영광스러운 기적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와드 회원들에게 확실히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뭔가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크리스는 에릭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최근에 겪은 이 모든 비극으로 우리 마음은 짓눌려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이 잘 해결되기도 한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에릭은 이렇게 말한다. “가끔 사람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있습니다. 이 일은 의학적으로 볼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비슷한 경우들 중에 99.9퍼센트는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에릭은 챈들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챈들러가 사망할 확률은 거의 99퍼센트였습니다. 다들 챈들러가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죠.”

크리스가 입원해 있었던 시간은 8일 밖에 되지 않았다. 크리스와 챈들러는 같은 날 퇴원했다.

크리스와 조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 특히 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와드 회원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이와같은 결집력은 다른 데서 본 적이 없어요. 와드 이웃들이 와서 음식을 미리 채우고 정원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더군요. 집에 돌아오니 완전히 새 집이 되어 있었어요.”

와드 회원들은 캘런스 가족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방문해서 크리스가 회복된 데 대해 기쁨을 표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와드 회원들은 또 그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분들은 저희에게 생활을 꾸려갈 충분한 여지를 주었어요. 그분들은 궁금해 했지만, 저희가 스스로 조절해 나갈 수 있도록 존중해 주었죠. 그리고 한꺼번에 여럿이 몰려오거나 구경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잘 배려해 주시더군요.

특히 와드 사람들 모두 역할이 분담되어 있고 서로 협조한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또한 저희 가족이 당면한 문제 외에 다른 걱정할 일이 없도록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 와드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특히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해서 방문해 주시는 회원들을 보고 이들은 사랑하는 이웃의 일을 진정으로 함께 겪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뭔가 같이 응원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는 우리 와드라던가 교회 가족이라는 그런 끈끈한 유대감이 없었어요. 이 유대감이 실제로 큰 힘이 되었어요. 이 교회는 정말 참됩니다. 이 교회는 정말 이렇게 움직이니까요. 저는 정말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울면 그들도 함께 울었고, 우리가 기뻐하면 그들도 함께 기뻐했어요. 우리가 축하할 때 그들이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와드에는 자기 가족 일을 모두 제쳐 두고 우리에게 달려온 여러 가족들이 있습니다. 자기 일보다도 우리를 먼저 생각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많은 남자 분들이 그날 직장을 뒤로 하고 와 주었습니다.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직장 일을 접고 나온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경험한 인간 관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고 방식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말하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교회는 공동체이자 모임이며, 군대이자 학교입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 같아요. 교회에서는 정말 많은 선행을 베풉니다. 그건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죠.”

크리스는 2006년에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다섯 자녀-브라이언(14), 제이슨(13), 메건(11), 스테파니(8), 캐리(4)-중 셋이 유전적 심장 질환을 앓고 있기에 크리스와 조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지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일년이 좀 더 된 일인데, 한번은 브라이언이 실신한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자꾸 현기증이 나고 기절하게 되어 결국 그는 심장 절개 수술을 받았다. 위기인 줄로만 알았던 이 수술은 사실 축복이었고, 지금 브라이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몇 명의 피를

클레어 캘호운

클레어 캘호운

그 해 여름, 위기를 맞은 모든 가족이 다 그렇게 삶을 변화시키는 한 순간의 사건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마이크와 데비 캘호운에게 닥친 위기는 알렉사가 익사하기 훨씬 전에 시작해 크리스와 챈들러가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알렉사가 익사했을 때 클레어는 병원에 있었어요. 챈들러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리고 크리스 캘런스가 심부전을 일으켰을 때도 클레어는 병원에 있었죠. 클레어 자체가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거듭 반복되는 위기인 듯 했어요.

2005년에 태어난 클레어는 선천성 골수기능부전증을 앓고 있다. 캘호운 가족은 그 아이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출산 전후에 받은 어떤 검사에서도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6주 정도 지난 어느 날, 클레어는 갑자기 호흡부전증과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 병원에서 혈액 농도를 검사해 보니 정상보다 7배나 낮게 나왔다. 의사들은 그렇게 혈액 농도가 낮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출생 후 일년간 클레어는 3주마다 한 번씩 수혈을 받아야 했다. 알렉사가 익사하고, 챈들러가 사고를 당하고, 크리스가 심부전을 일으켰던 이 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클레어는 병원에서 수혈을 받고 있었다.

데비는 챈들러가 사고를 당한 그날부터 며칠간 벌크맨 가족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었는데, 그때 수잔이 그녀가 한번 와 주었으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데비는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행복했고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죠. 그런 일이라면 제가 해 줄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받았는데, 그 정도는 누구를 위해서라도 기쁘게 할 수 있죠.”

2006년 6월부터 10월까지 비극적인 일들이 차례로 와드 전체를 휩쓸고 가는 와중에도 와드 회원들은 여전히 캘호운 가족에게 변함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 4개월간 이어졌던 위기에 대해 데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가족에게 관심을 덜 가진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역경이 커지면서 그런 문제들에 대처해 가는 와드 회원들의 역량도 커졌습니다.”

수혈에 대해 클레어가 점점 더 난폭하게 반응하자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 방법을 찾았다. 그들은 골수 이식을 시도해 보기로 했고, 클레어의 오빠인 샘의 골수가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몇 달 동안 클레어는 혹시 모를 원인들을 제거하고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도록 몸을 준비시키는 치료를 받고, 2007년 10월 12일, 마침내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9살 밖에 되지 않았던 샘은 엉덩이 뼈에서 골수를 뽑아 여동생에게 옮겨 주는 수술을 용감하게 견뎌냈다.

이식 받기 위해 의사들이 클레어의 몸을 준비시키는 동안 데비가 클레어 곁을 지키고 마이크는 일을 해야 했기에 캘호운 가족에게는 집에서 아이들을 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 당시 의족 사용에 적응해 가고 있던 챈들러는 고등 학교 졸업반이어서 오후 일찍 수업을 마쳤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캘호운 가족 집에 가서, 그들의 두 아들인 브래든과 샘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있어 주었다.

데비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은 돌고 돌기 마련이라고, 챈들러는 자신이 받은 것을 저희에게 되돌려 주게 된 거죠.”

그때 챈들러를 위해 기도했던 초등회 아이들 가운데 브래든과 샘이 있었고, 그들은 챈들러가 초등회에 와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자신의 다리를 보여주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챈들러를 완전히 영웅으로 생각했어요.”

2010년 6월, 와드와 지역 주민들이 식사를 챙겨 준 지 꼬박 2년 반이라는 시간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저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그 동안의 도움은 이제 우정이 되었죠.” 클레어에게 갑자기 그런 일이 닥친 후 데비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삶의 모든 에너지를 클레어를 돌보는 데 쏟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클레어가 한 달 동안 격리되어 있을 때 데비는 한시도 그 아이 곁을 떠나지 않고 병실을 지켰다. 이제 데비는 삶을 다시 일구려 한다. 스카우트 활동을 마치는 아들을 마중 나가고 와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작은 일들이 그녀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 평범함을 누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가족들은 클레어가 교회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교회의 이모저모를 소개해 주면서, 데비는 교회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현실은 세상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지만, 교회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

수잔 벌크맨이 바로 클레어의 초등회 교사이다. 클레어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서, 수잔은 클레어의 집을 방문해서 초등회 공과와 노래를 가르쳐 준다.

오브리 젠슨은 여름 동안 학교를 마치고 클레어를 돌봐 주는 일을 맡았다. 오브리와 클레어의 관계를 통해 젠슨 가족과 캘호운 가족의 유대가 더욱 강화되었다.

골수 이식을 했다고 해서 캘호운 가족의 바람대로 클레어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클레어는 여전히 지속적인 보살핌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다. 그러나 2010년 6월에 클레어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7개월 동안이나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생활한 것이다. 5년 반을 살면서 이렇게 오래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적이 없었다. 클레어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각별히 주의해서 보살피는 전임 간병인이 있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클레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빠들과 강아지 스쿠비와 함께 이야기하며 노는 게 너무 좋은 사랑스런 소녀이다.

데비는 이렇게 말한다. “제 경험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가장 힘들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다른 사람의 지극히 순수한 선행을 볼 수 있거든요. 한번은 미국 전 지역과 몇몇의 외국까지 저희 이름이 성전 기도 명부에 올라갔을 거예요. 우리 와드 신권 소유자들은 병원에까지 성찬을 가져다 주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일 거예요. 정말 순수하고 친절한 도움을 받은 이런 경험을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