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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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대왕 어록.txt앱에서 작성

ㅇㅇ(116.41) 2015.01.07 22:58:53


이순신은 한산도에 편안히 누워 무얼 하는가? 이제 나라는 끝장이다

이순신이 글은 아나?

이순신은 조정과 임금을 기망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제 가등청정의 목을 들고 온다 해도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이순신을 파직하고 통제사로 임명한 원균이 칠천량에서 말아 먹고 나자

이건 하늘이 한 것이다! 하늘 탓이다!!

이후 이순신에게 싹싹 비는 교서에서

그대는 일찍이 만리장성과 같이 든든하였노라 전날 그대의 벼슬을 빼앗고 백의종군케 함은 과인의 모책이 어질지 못해서 이거니와 내 그대에게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그렇게 돌아온 이순신이 명량에서 13척으로 왜 수군 330척을 막자

이순신의 공은 바다에서 적의 머리 몇 개를 주워 온 것으로 어린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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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1597년 1년 동안 이순신 장군에게 일어났던 고난과 역경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5년이 흐른 1597년.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에게 1597년은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한 해였습니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감당하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을 겪으셨던 장군.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보시면서 장군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1597 1 1일 일본의 이중간첩인 요시라 로부터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올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즉각 비변사 회의를 거쳐 이순신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는데, 이순신이 1 6일부터 남해현에 공무차 들렀다가 풍랑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에게 부산포로의 출정을 재촉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간첩의 말은 믿을 수 없다 생각했고, 또한 부산 앞바다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 활약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출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토와 그 후속 군대가 줄줄이 상륙하게 되니 선조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때 이순신이 가토를 잡지 못했다고 책망하면서 "저라면 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 원균의 장계가 조정으로 올라오고, 이와 더불어 이순신을 숙청하려고 이미 혈안이 되어 있던 선조에 의해서 싸우라는 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597 2 26일에 이순신을 파직 및 압송하고 그 후임으로 원균을 임명합니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이 금부에 투옥된 후 한 차례의 고신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실록에 기록된 선조의 언행을 보면, 선조는 이순신을 두고 참으로 역적이다. 이제 가등청정의 목을 들고 온다고 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임금과 조정을 기망했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을 끝까지 시행하여 그 죄를 캐야 한다. 고 언급할 만큼 그 분노가 컸다고 합니다.

이 당시 이순신에게 어떤 고문이 가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정탁의 신구차에는 '이순신에 대한 한 차례의 추죄가 있었고 또다시 형을 가하면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언급이 있으며, 이덕형의 한음문고에도 '이순신이 고신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을 봤을 때 고신의 강도 또한 가볍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됩니다.

1597년 2월 26일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고 압송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명재상 이원익과 정탁의 구명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면하고 도원수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 개인으로서는 두 번째 백의종군이었습니다.

4월 1일 출옥 후4월 3일부터 백의종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인간 이순신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4월 11일 장군의 어머니께서 별세하신 것입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아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80대의 노구임에도 한양으로 올라오던 이순신의 모친 변 씨가 병으로 배에서 객사한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던 이순신 장군은 엎어져 몸부림을 칠 정도로 슬퍼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7월 16일 칠천량 해전으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대패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대패가 아니라 소멸이라는 말이 더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5년간 함께한300여 척의 함대와 베테랑 조선 수군이 단 한차례의 전투에서 수장된 것입니다. 장군의 전우였던 전라 우수사 이억기 장군과 수많은 부하 재장들을 잃고 괴로웠을 이순신 장군.

이에 당황한 조정은 모친 상중이었던 이순신 장군께7월 2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을 명합니다. 이때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라는 교서를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선조가 정신 차렸나 생각하실 분들이 혹시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선조는 그렇게 쉽게 바뀌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을 명하면서 또 한 번 통수를 날립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파직 전 이순신 장군님의 품계는 정 2품 상계인 정헌대부였지만 다시 복직을 하면서 원래보다 4 품계 강등된 정 3품 절충장군 품계를 준 것입니다.현대 군체계로 따지만 해군참모총장이 해임되었다가 복직을 했지만 계급이 대장이 아닌 중장이 된 것이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이 무슨 해괴한 짓일까요?

당시 수군에는 수사의 기준 품계인 정 3품을 가진 장수들이 넘쳐났습니다.

계급이 같은데 보직만 다른 상황이 일어나니 각 장수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휘하 장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하극상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조는 장군을 복직시키면서도 지휘 체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게 했으며, 그로인해 이순신 장군은 불안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칠전량에서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전장을 떠났던 배설을 추궁해 판옥선을 인수하러 출발합니다. 바로 남해안으로 가지 않고 초계 → 하동 → 구례 → 곡성 → 순천 → 보성 순으로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병사를 모집하고 물자를 다 긁어가서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1597년 8월 15일 조선의 임금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선전관을 보내 수군을 폐지할 의향을 물어봅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때 너무나 유명한 장계를 올리신 이순신 장군님.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

“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는 장계를 올리며 수군 결전 의지를 불태웁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1597년 9월 16일.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명량대첩입니다.

단 13척의 배로130여 척의 일본군에 승리한 전투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장군은 13척으로 130척을 이긴 것이 아니라 대장선 1척으로 이긴 것입니다.

당시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제외한 12척의 배들은 정오가 지날 때까지 대장선이 패배하는 대로 도망가기 위해 뒤에서 미적거립니다. 믿기지 않게도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은 단 한 척으로 전투의 중반부까지 왜군의 전선들을 무수히 폭침시켰습니다. 울돌목의 거센 역류를 다 받으면서 오후까지 왜군 선단을 대장선 홀로 막으며 싸웠습니다. 초요기를 올려 아군을 부르자 거제 현령 안위가 먼저 대장선을 구원하러 가는 것을 보고 나머지 배들도 뒤늦게 전투에 동참하였습니다.

전투 초기엔 오히려 조류의 유리함을 받은 것은 일본군이었고 이순신의 대장선은 반대로 가장 불리한 시기에 전투 치른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본인도 난중일기에서 "실로 천행이다(此實天幸)"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힘든 싸움이 명량대첩이었습니다.

전적을 살펴보면 적선 31척 격침, 20여 척여척 반파, 사망자 3,200 ~ 4,100명 , 일본 지휘관 도도 다카도라(총사령관) 부상, 구루지마 미치후사(선봉) 사망, 하타 노부토키 사망

조선수군의 피해는 사망자 11, 부상자 21, 격침 0 격침은 없었습니다.

명량대첩의 승리로 인해 조선은 남부 제해권을 다시 회복했고 왜군의 서해 우회는 좌절되고 맙니다.

명량대첩의 빛나는 승리 이후 다시 인간 이순신에게 고난이 찾아옵니다.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1597년 10월 14일 아들 이면 전사

명량해전 직후에 이순신이 가장 아꼈던 21살의 셋째 아들 이면이 고향인 아산을 침공해온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것입니다. 이순신은 이 소식을 듣고 살생과 업보로 죄를 지은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 아들이 먼저 나를 떠나고 말았다고 말하며, 젊고 재능 있는 아들의 죽음에 매우 슬퍼했습니다.

난중일기 1597 10 14

저녁에 천안에서 온 사람이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온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거칠게 겉면을 뜯고 열(차남 이열)이 쓴 편지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밖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나라의 지원 없이, 아니 지원은 고사하고 임금의 시기 질투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지만 파직당하고 감옥에 갇혔고 백의종군하다 어머니께서 병사한 소식을 들었으며 이후 그가 키운 수군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만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전투인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장군은 아들을 잃었다.

1597년 일 년 동안 이순신 장군은 너무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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