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20년 전 도망갔던 약혼자 그 이유가 기가 막혀!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요즘 50대 이후 연령에서 옛 애인 찾기가 유행이란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이야. 내가 그의, 그가 나의 옛 애인이라고? 콧방귀 나올 소리 아닌가. 개 풀 뜯는 소리 작작하라지. 그와 나는 연인이 아니라 약혼한 사이였으니까. 아련하고 쌉싸름한 추억의 대상은 고사하고 악연도 그런 악연이 없었던 사람들끼리 세월 지났다고 관계를 미화해서 뭘 어쩌란 말인가. 그 작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시도를 하는가. 폭력적일 만큼 일방적이던 태도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라면 이번에는 내 쪽에서 모지락스럽게 멱살을 틀어쥐고 따져볼 기회가 온 건가? 찾으려고 들면 바로 찾을 수 있으련만 옛 애인 찾기 운운하며 접근해온 것이 장난스럽게 들려 더 불쾌하다. 무엇보다 이제 와서 날 찾아 뭘 어쩔 거라고. 상견례 날의 비극 결혼을 앞두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는 상견례 날. 가뜩이나 해 짧은 겨울철, 시간을 저녁으로 잡은 것부터가 불행의 서막이었을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날도 오후 4시경부터 내리던 눈이 약속 시간인 7시가 가까워올 무렵에는 제법 쌓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심에 친구들에게서 축하 술을 몇 잔 받았다는 그가 염려되어, 그의 직장으로 내가 가서 함께 상견례 장소로 가기로 했다. 내 차를 그의 회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그의 차로 같이 가면 눈길 운전에도 다소 안심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날 만약 각자 따로 이동했더라면, 그가 낮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폭설이 쏟아져서 약속이 취소되었더라면, 다 관두고 애초 그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하고 질긴, 죽어야 끝이 날 만약에 게임. 만약에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뜬금없는 연락은 얼마나 잔인한가. “운전할 수 있겠어? 내가 할까?” “무슨 소리야, 얼마 안 마셨어. 그리고 지금은 다 깼어. 자기가 구태여 온다고 하길래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라고 한 거지, 나 때문에 올 필요는 없었어.” 아닌 게 아니라 그에게서 술 냄새는 거의 맡을 수 없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설마 낮에 퍼마셨을 리는 없잖은가. 퇴근길 차량들이 도로로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마사지도 받고 미용실에도 가느라 오전 근무만 했기 때문에 퇴근 풍경이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모습처럼. 그날 이후 실제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눈길 안전 운전 당부와 도심 정체 구간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 또한 눈발처럼 쏟아졌다. “똑같은 소리 짜증 나. 웬 호들갑이야. 별로 많이 오지도 않는데.” 거칠게 라디오를 끄더니 반복되는 기상 방송에 대한 반감처럼 그가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순간 충격으로 어찔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인가? 적당히 마실 일이지, 다른 날도 아니고 상견례 자리에 나오실 어른들께 경솔하고 무례한 태도 아냐? 신경이 예민해진 나도 슬며시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어차피 눈 내리는 퇴근길과 맞물렸으니 혹여 늦는다고 해도 양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차라리 함께 이동하는 것이 잘된 일’이라 생각됐다. 둘이 같이 늦으면 양가 중 어느 한쪽이 불쾌할 일도 없을 테니까. 내 기억은 거기서 더 나가지 못한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눈을 뜬 곳은 상견례장이 아닌 대형 종합병원. 우리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았고, 놀라운 것은 사흘이 지나서야 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3일간 내 인생이 장애자의 길로 방향을 트는 동안 경미한 부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은 그는 곧장 귀가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불구로 만든 그, 입을 열다 내 두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그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고, 20년이 지난 엊그제 옛 애인을 찾겠다며 뜬금없는 연락이 왔으니…. 처음에는 당장 만날 것처럼 굴더니 며칠 후에 이메일을 보내왔다. “경애 씨,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지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요즘 같은 세상에 알려고만 들면,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소식쯤이야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알 수도 있지만 경애 씨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무슨 염치로, 무슨 면목으로 경애 씨 앞에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야 실토하지만, 그날 우리의 상견례 날 점심에 친구 녀석들과 술을 마셨던 게 아니었어요. 하필 그날 헤어진 여자가 찾아왔더라고요. 3년 동안 만났던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던 여자였지요. 경애 씨도 그 여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테지만, 자세히 묻지 않길래 나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지요. 나와 헤어지자마자 다른 남자와 결혼한 걸 보면 나를 만나고 있을 때 이미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선 그 남자, 그러니까 남편과 바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혼인신고도 하기 전이었다며. 그날 나를 찾아왔을 때는 결별한 지 반년이 흐른 후였지요. 이혼 사유는, 혼인신고도 안 했으니 이혼이랄 것도 없지만, 남편이 지독한 마마보이였다나 봐요.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하루는 남편의 샤워 후 벗은 몸을 시어머니가 버젓이 닦고 있더래요. 남편과 시어머니 두 사람 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너무나 익숙한 표정으로. 기겁을 하고는 그날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를 다시 받아주면 안 되겠냐고 합디다. 하필 우리의 상견례 날에. 많이 혼란스럽고 번민이 되더군요. 내가 아무 미련이 없었다면 속된 생각으로 ‘날 버리고 가더니 쌤통이다, 고소하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더라고요. 버림받았다는 마음에 그간 친구처럼 지내던 경애 씨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서둘러 약혼할 때만 해도 그 사람에게 복수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데 막상 혼자 되어 다시 나타나니 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그저 연민인 줄 알았는데 사랑이었던 거죠. 그만큼 저의 미련이 컸던 거겠죠. 그날은 우선 돌려보냈습니다. 저녁에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채. 그러고는 정신이 아득하니 혼미해졌지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우니 겨우 두 잔 마신 맥주의 취기마저 올라왔고, 그렇게 그날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과거 여자에게로 잠적한 이유 20년 전 그날에 버금가는 충격이 전신에 번졌다. 파혼 후 그의 소식을 애써 외면해왔기에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고 후 나는 하반신 마비의 불구자가 되었기에 어차피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으니, 그가 도망가버린 것에 대해서도 혼자 삭여야 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속내와 사정을 감추고 있었다니! 결국 과거의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중상을 당한 나를 버린 후 찾아오지 않았다는 건가. 이틀 후 두 번째 메일을 받았다. “경애 씨, 엊그제 메일을 받고 많이 놀라셨지요? 이래저래 나는 경애 씨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겠지요. 경애 씨의 일상을 다시 흔들고 있으니까요. 이미 내다 버린 가증스러운 놈을 쓰레기장에서 다시 집어 든 느낌이겠지요. 이런 파렴치한 나를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으니 경애 씨의 용서를 구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바로 그 여자에게로 갔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경애 씨가 그날 다친 것이 마치 내가 그 사람에게 가도 좋다는 운명의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애자가 된 경애 씨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을 테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했으니까요.” 여기까지 읽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만약 우편 편지로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북북 찢어버렸을 것이다. 이 자식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20년 전에도 나를 조롱하더니 또 나를 갖고 노는 저의가 뭐야? 옛 애인 찾기 사이트를 뒤적여 나를 찾아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분노로 울렁대는 가슴을 꾹꾹 누르며 메일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날의 사고는 전적으로 제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후 경애 씨의 다리가 되어 평생 죗값을 치러도 모자랄 판에 그대로 도망쳐버렸으니 천벌 받을 짓이었지요. 그런데 정말 천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실은 제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경애 씨처럼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3년 만에. 그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오늘 메일을 드립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지만 왠지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입으로 직접 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내의 발과 다리가 되어 삽니다. 경애 씨에게 했어야 할 일을 지금의 제 아내에게 하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어떤가요? 이제 좀 속이 시원하신가요? 복수를, 원수를 갚은 것 같은가요?” 머릿속이 안개로 자욱해졌다. 무슨 이런 장난 같은 일이….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은 정녕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것인가. 그건 그렇고 왜 하필 옛 애인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나를 찾았던 걸까. “경애 씨의 근황을 미리 좀 파악할 수 있을까 해서였어요. 특별히 다른 뜻은 없었어요. 미리 좀 알게 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되레 결례가 되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드네요. 이래저래 죄송합니다.” 내 속을 읽은 듯이 메일이 날아들었다. 연달아 받은 세 통의 메일, 이제 내가 답신을 보내야 할 차례인가. 나는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아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10-27 17:32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내겐 너무 과분한 돌싱남 서서히 드러난 그의 본색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드디어 내가 이혼을 했어. 우리 이제 함께 살 수 있게 된 거야.” “그래요? 잘됐네요….” “당신, 기쁘지 않아? 반응이 왜 그래? 왜 시큰둥한 거지? 너무 오래 기다려서 실감이 나지 않는 건가?” “그런가 보죠. 어쨌든 당신이 원하던 거니까 잘된 일이네요.” “나만 원하던 일인가? 그럼 당신은 안 원했단 말이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야? 도대체 뭐가 또 문제냐고?” 뭐가 또 문제냐고? 그 말에 성질이 발끈 돋았다. 그래, 지금까지 당한 것도 모자라 지금 와서 감정을 쏟고 화를 내는 건 정말이지 바보짓이지. 저 인간이 내게 뭘 해줄 수 있다고. 그렇게 당하고도 모른다면 나는 정말 하나님도 구제 불능인 인간인 거지. 이혼을 했다니 그 마누라는 드디어 해방인가? 그럼 이제 내가 저 인간을 차버려야 할 순서란 말이지? 남편 사별 후 운명처럼 나타난 남자 나와 그는 7년 전에 만났다. 그를 만나기 6개월 전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고 나도 따라 죽고만 싶은 시간을 보낼 때,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날 중에 교회에서 그를 알게 되었다. 남편은 교회를 안 다녔고, 나도 큰 열정 없이 꾸린 가게가 한가해진 틈을 봐가며 이따금 출석하곤 했다. 그도 나처럼 아내 없이 혼자 교회를 다니던 터라 두 사람 다 미적지근한 교인으로서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치 짐승의 후각처럼 그가 싱글인 것을, 아니 명확히는 돌싱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혼자가 된 나는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눈치채게 되었고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끌림의 법칙이 있는 걸까. 멀쩡한 유부녀였을 때는 내 삶 반경 내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그 남자. 그러나 혼자가 되고 나니 그 남자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가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흔히 말하는 무늬만 부부로 지내며, 나를 만났을 때는 이미 함께 살지도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카페를 꾸리고 있었기에 각자의 거처에서 아침에 따로 출근해 밤에 퇴근할 때까지 함께 일만 할 뿐이었다.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였지만, 치열한 일터에서 부대끼다 보니 바쁘고 지쳐 헤어질 법적 절차를 미루고 있었다고 할지. 나도 카페를 운영하기 때문에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영업이란 게, 특히 카페란 게 식당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 그에게 이혼 성사는 그 자체로 축하할 일인 건 맞다. 그 바쁜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거의 두지 않고 생업을 꾸리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강행하여 결론을 냈으니.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랴. 두 시간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 “이선희 씨가 본인인가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죠?” 경찰 둘이 가게로 들어서며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머뭇대는 순간 직감이 들었다. ‘남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구나’ 하는. “남편 되시는 분 성함이 최성호 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잠깐 서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확인해주실 일이 있어서요.” 마음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두려움에 주춤대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가서 확인부터 하셔야 하는데… 남편께서 오늘 오후 4시경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카페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러 나간 지 2시간 만에 남편은 주검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바쁜 점심 시간을 막 치른 후 몇 가지 떨어진 품목을 구입하려고 잠깐 재료상에 갔던 길이었다. 주차하기 편하다며 짧은 거리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는데, 도로를 가로지르다 마주 오던 차에 정면으로 부딪혀 즉사했다고 한다.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도, 하늘이 무너지던 마음도 반추하고 싶지 않다. 또다시 가슴이 헤집어진다면 나도 남편도 두 번 죽는 꼴이기에. 한 달 가까이 가게 문을 닫고 두문불출 칩거하다시피 지냈다. 대학과 직장에 다니며 각자 사는 딸과 아들의 위로도 귀찮기만 해서 같이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나는 혼자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와의 동거가 시작되었으나 이러다 영 사람 구실 못 하겠다 싶어 허깨비 같은 몰골로 교회에 나갔고, 그렇게 반년이 지났을 즈음 그와 가까워진 것이다. 그는 동종 업계 종사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들락거리며 내 주변을 자연스럽게 맴돌았다. 자기 가게는 뒷전인 것 같았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남편이 떠난 후의 빈자리에 절대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데다 원래부터 나는 일이 서툴렀기 때문에 그가 와서 도와주는 것이 고맙고 반갑기만 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혼자 운영하기 벅차 일찌감치 카페를 접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이 들었고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카페는 규모도 크고 매상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가뜩이나 사이 좋지 않은 아내와 붙어 있는 것보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 가게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겨버리고 우리 가게로 출근했다. 나는 고마움을 핑계 삼아 퇴근 후 그에게 늦은 저녁밥을 지어준다며 집에까지 그를 끌어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의 아내가 나를 찾아와 머리끄덩이를 잡는다거나 하는 통속극은 없었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별거를 하던 부부이니, 그가 어디서 누구와 살든 그의 아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데다 내 탓 또한 아니었다. 우리 사이는 평온했고 나는 그가 좋았다. 남편의 빈자리를 메우고 외로운 마음만 달랠 수 있어도 더없이 고마울 상황에 가게 일까지 도움을 받으니 나로서는 더 바랄 게 없었다. 게다가 그는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고, 나와 나이 차이도 두 살밖에 안 났다. 50대 초반인 우리는 얼마든지 새 출발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이혼을 했다고 하는데 왜 반가워하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가 기혼 상태일 때 그의 이혼을 간절히 바랐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다 내 곁을 훌쩍 떠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탓에 그 사람 앞에서 늘 저자세였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도 없다. 이혼 후 재산의 절반이 오롯이 그의 것이 되니 재혼하면 내게 유리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그가 자기 재산을 내게 나눠주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딸린 자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홀가분하지 않은가. 가스라이팅으로 피폐해져 “당신, 어쩌면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어? 도대체 몇 번을 가르쳐줘야 알아듣겠어? 도대체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카페를 꾸릴 생각이었어? 너처럼 덜떨어진 여자랑 함께 살았던 죽은 네 남편이 불쌍하다.” 사귄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그가 폭언을 퍼부었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 내가 계산 실수를 하자 카운터 앞에서 대뜸 성질을 부린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다 나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니 내가 참아야지. 앞으론 잘하자’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당한 창피함을 애써 잊으며 혼자 삭이곤 했다. 그 후로도 몇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럴수록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곰곰이 이성적으로 따져볼 생각은 점점 더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면서 나를 바보 취급하며 몰아붙였고, 아내와 다투기라도 한 날은 그 화풀이까지 해댔다. 나중에는 반찬 투정에 음식 타박까지 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며, 자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겠냐며, 공연히 자기 감정에 겨워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나의 주눅 듦과 정신적 혼란은 더욱 심해졌으니, 이른바 나는 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서러웠다. 남편이 죽지 않았다면 이런 수모를 겪을 일도 없었을 거라는 원망 아닌 원망도 올라왔다. 남편을 떠올리니 나도 더는 참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솟았다. 하루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까지 힘들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가게는 나 혼자 알아서 꾸릴 테니 일과를 마친 후 밤에 만나자”고 단호히 말했다. 느닷없이 허를 찔린 듯 갑자기 겁먹은 표정으로 그가 내 눈을 외면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했지만 그는 꾸역꾸역 나와서 예의 고약을 떨었다. 그랬다. 그는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기생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였던 것이다. 사실 그는 아내에게 쫓겨났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자 나의 약점을 이용해 기생충처럼 파고들면서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그의 나약하고 비겁한 성질이 폭로될수록 그의 이혼이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야말로 나도 그를 쫓아내야겠다는 복수심마저 들었다. 그가 왜 이혼 위기에까지 몰렸으며, 딴 여자를 만나고 있음에도 그의 아내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의 아내가 떼낸 혹이 내게 붙어버렸으니 이 골칫덩어리를 어떻게 처치할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09-21 09:22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문화생활 즐기기 좋은 날씨” 9월 문화소식●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2022-09-02 08:41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의사와 환자, 사랑해선 안 될 사이 그러나…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조심스레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연 긴장했다. 간호사가 진료 기록부를 가져다놓을 때까지도 설마 했다. 차트에 쓰인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이려니 하면서도 흠칫했고, 생년월일을 흘끗 보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목청을 가다듬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겠지, 설마. 그때가 언젠데….’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심 피어오르는 일말의 기대감은 또 뭔가. 내 음성을 듣고도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문밖 환자의 기척. 주춤주춤 문고리를 돌리는 손길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려고 할수록 긴장감은 더했다. 빼꼼 문이 열리며 고개를 반쯤 숙이고 들어서는 50대 초반의 여성, 어깨 길이 생머리에 무릎 길이 파스텔 톤의 민트색 원피스 아래 드러난 매끈한 종아리와 잘 정돈된 맑은 피부, 이지적인 분위기의 이목구비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데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 짧은 순간 환자의 외모와 표정이며 옷차림까지 스캔할 정도면 환자에 대해, 특별히 호감 가는 여성 환자에 대해 습관적으로 호기심을 갖는 불순한 의사라는 오해를 받을 법하다. 7년 만에 나타난 그녀 오해를 받든 이해를 받든 아, 어찌 잊으랴 그녀를! 진료 기록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실체를 드러냈다. “앉으시지요. 오랜만입니다.” “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무덤덤함을 가장하려고 애쓸수록 이미 일기 시작한 가슴속의 잔물결은 파고를 높여가고 있었다. 긴장을 감추려다 보니 머리가 다 어찔어찔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오늘 또 이렇게 진료실을 찾아왔단 말인가. 정신과 의사로서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환자 자격으로 나를 만나러 오는 그 누구에게든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지금 그녀는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일 테고. “어떤 불편함 때문에 오셨는지요?” 평정심을 찾으며 평소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어쨌거나 환자로서 날 만나러 온 것이니. “선생님, 저 이혼했어요.” 미리 연습한 듯 나직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 한마디에 가슴속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온몸으로 번져가려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눈물 앞에 나의 방어벽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사각 티슈 상자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지만, 그녀는 티슈를 뽑는 대신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찍어내듯이 눈가를 조심스레 눌러 닦았다. 7년 전 내 진료실을 떠나갔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3년을 나와 함께하는 동안 남편의 유흥업소 출입을 막을 뾰족한 방안도, 그녀의 뻥 뚫린 가슴에 적절한 치유도 해주지 못했던 무능한 내 앞에. 의사와 환자, 사랑에 빠지다 10년 전 나는 환자와 사랑에 빠졌다. 나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지금 눈앞의 그녀와. 남편과의 불화에서 비롯된 불면증과 불안 증세로 내원했던 당시 마흔 살의 그녀. 첫 대면부터 한 마리 작은 새처럼 애처롭고 가련해 보였다. 의사 대 환자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보호해주고 싶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호해주고 싶었다면 무슨 문제일까만,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품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거미줄을 거두듯 힘닿는 데까지 그녀의 불행을 거둬주고 싶었다. 사랑스러웠다. 20년 내 결혼생활의 권태와 무덤덤함을 일시에 씻어줄 것 같은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성적 매력은 있었지만 남녀 관계로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내면에 장착된 직업윤리라는 엄격한 경계경보가 늘 깜빡이고 있었기에. 결혼한 지 10년 이상 된 중년 부부 갈등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 않나. 당사자들이야 그보다 더한 위기가 없을 것같이 굴지만, 들어보면 다 거기서 거기란 건 경험상 이골나게 겪었기에 그녀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단아한 외모에 끌렸다면 의사로서 자격 미달이니 딱 거기까지인 걸로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 함께 살까요? 의사 이전에 나도 남자니 여성 환자에게 호감 간 일이 실상 처음도 아닌 데다, 첫인상에 가슴이 다소 설렌다고 해도 상담이 오가다 보면 결국 인간적 호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 생활 20년 짬밥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다른 과와 달리 정신과는 내밀한 사생활과 내면적 속살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환자와의 라포 형성 과정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하지만 곧 정상 궤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와는 그러지 못했냐고? 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냐고? 고백하자면 그렇다. 둘이 어디까지 갔냐면, 각자 배우자와 이혼하고 함께 살자고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러자고 했고 그녀는 마다했다.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안달이 나서 함께 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즈음 우린 면담을 빌미로 진료실에서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맹세코 밖에서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3년 동안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이 전부였고, 따로 만나 밥은 물론 차 한잔 나눈 적도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면담 시간 50분 동안만 우리는 서로를 정신적으로 탐했다. 나와 동갑인 그녀의 남편은 금융업계 종사자로 업무적으로는 유능했지만 결혼 초부터 끊임없이 유흥업소를 드나들면서 아내의 신경을 긁었다. 처음 몇 번은 셔츠 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변명하고 건성으로 미안해하거나 시늉으로 용서를 빌곤 하더니, 나중에는 그조차 무감각해져서 아내가 추궁할 때면 남자가 바깥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되레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며 적반하장으로 굴었다. “이혼을 하셨다고요…?”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 의외의 감정이 담긴 내 말꼬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 그녀. 손에 쥔 손수건 끝단을 하릴없이 돌돌 말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다. “이혼은 안 하겠다고 하더니 그간 심경이 변하셨나 봅니다. 그래, 언제?” “1년 전에요.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3년 전 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이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어요. 결혼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애썼지만 원래도 금이 가 있던 부부 관계가 아이를 잃고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좁히려고 애쓸수록 사이가 더 벌어지면서 결국 파경을 맞았어요. 남편은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그간 가정을 등한시했던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늦게라도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비록 헤어졌어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제가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아들을 잃은 마당에 가뜩이나 정 없던 부부가 새삼 노력해서 같이 살 가치가 있을까 싶었어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후 소식 한 자 없더니 지난 7년간 아들을 잃고,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앉은 그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죽을 것 같은 방황 다시 시작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편 때문에 시작된 치료였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쪽에서 곪아 불거졌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불화를 보고 자라온 외아들이 아동기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실상 그녀의 정신과 내원 동기도 아들로 인해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아들 이야기를 꺼냈던 건 아니다. 이유는 내가 아들을 보자고 할까봐 겁이 나서였다고 했다. 점차 내게 연애 감정을 느끼면서 모종의 수치심으로 아들 상태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그녀의 오판이자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소아정신과로 보내졌을 테니 내게 치부가 드러날 염려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랬는데 지금 그 아들이 죽었다지 않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그렇게 어이없이 아들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닥쳐올 크나큰 불행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채 별 가망도 없는 남편 바람기 잡기에 대해서만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이 무슨 낭패인가 말이다. “그랬군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럼 요즘 혼자 지내나요?” “이혼 후 친정에 들어가 지냈는데 친정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 갑자기.” 점입가경이라더니, 불행이 불행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되랴. 내 기억으로 그녀는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으니 이제 그녀가 의지할 피붙이는 없다는 뜻이다.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뭐죠?” “그냥요, 그냥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듣고 싶고 기다렸던 말인가. 7년 전 일방적으로 그녀 쪽에서 발길을 끊은 후 나는 적잖이 방황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로 인해 아내와는 더 권태롭고 더 지루해져서 그 참에 아내와 헤어져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랬던 나를 가까스로 추스른 게 불과 2, 3년 전. 그런데 그녀가 내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났으니. 아, 나의 죽을 것 같은 방황이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08-18 08:59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제주서 만난 한달살기 여행자들, “제주에 잘 살어리랏다!”인생이라는 여행길에 오른 우리는 항상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한 번쯤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나를 환기해줄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 호기심이 향한다. 그러나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간 상상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제주를 느끼고, 다시 일상을 버틸 인내를 얻고 싶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생활 관광의 형태인 ‘한달살기’는 낯선 지역에서 먹거리, 볼거리를 즐기고 현지인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지며 그 장소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도는 국내에서 한달살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중장년층에게 주목받고 있다. 언어가 달라 버벅거릴 일도 없고, 갑자기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돼서다. 해변의 반짝이는 몽돌들,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돌담, 솟아오른 야자나무 등 천혜의 자연이 펼쳐져 있어 해외에 온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쉼 51세 이정은 씨는 지난 5월, 큰딸의 권유로 제주 애월읍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부산에서 자녀 셋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삶은 없어지고 아이들의 엄마, 직장인이라는 자격만 남아 있었다. “어느 날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말 잘 모르겠더라고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죠. 남편,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지금 바로 읊을 수 있어요. 내가 아니라 타인 속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주도에 도착한 순간, 머리 아픈 일상과 복잡한 감정들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마음이 안정되니 풀 한 포기, 흙 한 줌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셈이죠.” 단박에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말 내가 집에 없어도 될까?’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나 오히려 자녀들도 서로를 살피고 집안일을 분담하며 책임감을 가질 기회가 됐다. 그때야 이 씨는 모든 게 혼자만의 집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주 정도의 위치가 좋아요. 떠나온 느낌은 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있다면 육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해외는 당장 돌아오려 해도 밟아야 할 절차가 있잖아요.” 그의 제주살이는 한 달짜리지만, 이 시간을 촘촘히 보낸 덕에 앞으로의 일상을 위한 원동력이 생겼다. “제 나이가 되면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해요.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 이제껏 일궈놓은 일들이 다 자존심과 직결되는데, 은퇴하면 한 번에 뚝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제주에 와서 내려가기 위한 계단을 하나씩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다치지 않게요.” 새로운 친구와 함께하는 취미 제주도는 골퍼들에게도 사랑받는 지역이다. 골프장 주변으로 펼쳐진 오름과 손에 닿을 듯한 한라산이 안온하기 그지없다. 57세 한효진 씨 역시 골프를 즐기기 위해 제주로 한달살기를 왔다. 골프는 혼자 즐기기엔 한계가 있는지라 제주를 방문한 골퍼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했다. “골프장 동행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엄청 빨리 달려요. 아무래도 골프는 비슷한 실력을 갖춘 또래와 제일 편하게 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올라온 글을 보고 저랑 맞겠다 싶으면 연락하죠. 덕분에 공감대가 잘 맞아서 즐거워요. 한 게임 즐기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이랑 교류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여가 시간에는 가까운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 마시며 공상에 잠긴다. “혼자 오름을 오르다가 다른 사람들과 한두 마디 나누거나, 조용히 비자림을 걸으며 나무 향을 맡는 일은 마음에 안정을 줘요. 해외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데, 제주는 아무래도 국내라 다시 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게 돼요.” 환상만 품었다간, ‘글쎄’ 제주도에서 항상 환상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유명인들의 제주 생활이 세간에 아름답게 비춰지다 보니 제주 생활 자체가 인생 후반부의 로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만일 한달살기, 더 나아가 제주로의 이주를 단순히 불편하고 벗어나고픈 과거로부터의 탈피라고만 생각한다면 해피 엔딩은 장담할 수 없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마트, 학교, 학원, 편의시설이 모두 제주 도심에 몰려 있다. 특히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병원을 찾기 힘들다. 큰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의료 혜택을 이용하려면 50분 이상 이동해야 한다. 따라서 멋진 자연환경만 생각하고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가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불편한 대중교통, 비싼 난방비, 추가로 붙는 택배비 등도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로 꼽힌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반복되면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 제주도는 분명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장소임은 틀림없다. 제주에 살아보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현실을 보고 그에 맞는 생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단점을 감내하는 만큼 그 속살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장성식, 박영순 부부의 제주 한달살기 tip 장성식(55), 박영순(54) 부부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초밥집을 26년째 운영하고 있다. 자영업 특성상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마음은 지쳐가고, 체력은 바닥이 났다.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느낄 즈음,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달살기를 알게 됐다. 평소 자연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편인 데다 나이가 들고 자녀들이 독립하면 도시에 사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제주에 무작정 이주하는 것은 위험한 모험이기에 일단 한 달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계획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요소는 단연 ‘숙소’다. 구체적으로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가, 숙소 호스트와의 소통은 원활한가 등을 고려해 서귀포의 ‘아라민박’에 자리 잡았다. 부부는 한달살기를 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을까? 성향에 맞는 숙소 찾기는 필수 “사람마다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다르고, 지내고 싶어 하는 숙소가 달라요. 저희 부부는 제주 이주를 고려하고 있어서 실제로 제주에 살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또 현지 분들만 알고 계신 좋은 장소나 식당도 공유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숙소를 정해서인지 운명처럼 다정한 분들을 만났어요. 사장님이 여행 관련 정보를 많이 알고 계셔서 그것만 참고해도 한 달이 훌쩍 가버릴 것 같네요.” ‘무조건 관광’의 한계 “유명한 관광지를 쫓아다니기엔 한계가 있어요. 그런 곳은 사람도 많은 데다 입장료도 꽤 비싸죠. 그건 저희가 원하는 온전한 쉼이 아니기도 하고요. 부부끼리 왔지만, 한 달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보니 처음엔 즐겁게 지내도 갈수록 무료해질지도 모르죠.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충분히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어렵게 낸 시간인데, 의미 없이 흘러간다면 슬프잖아요.” 배차 시간이 긴 대중교통 “서울은 보통 10분 내로 대중교통을 탈 수 있어요. 오히려 자가용이 불편할 때도 있죠. 하지만 제주는 달라요. 자가용이 없으면 바로바로 이동이 힘들고, 대중교통은 항상 시간을 맞춰야 해요. 중간에 환승하게 되면 더 복잡해지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차 탁송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부담스러운 식비 “한 달 동안 매일 밥을 사 먹을 수는 없잖아요. 제주도 물가가 만만찮으니까요. 저희는 준비해둔 각종 식재료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요. 조미료는 숙소에 구비돼 있는지 확인해보고, 소분해서 챙겨오는 게 좋아요. 하루 식비를 일정 금액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죠. 게다가 도심에서 벗어날수록 식당이 빨리 문을 닫기 때문에 일정을 잘 조율해야 해요.”2022-07-26 08:22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30년 전 연인과 재혼한 나는야, 운 좋은 남자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친구들은 나를 얄밉도록 운 좋은 놈이라고 한다. 뭐, 얄미울 것까지야. 하지만 운 좋은 건 인정! 50대 초반에 이혼한 걸 두고 대운(大運)이라고 할 순 없지만 1년 만에 재혼한 건 확실히 ‘운발’이 좋았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재혼 상대가 30년 전 나를 짝사랑하던 ‘그녀’였으니. 친구들은 그 부분에서 나의 운을 얄미워하는 것일 테고. 우리 부부가 재혼한 지 올해 3년째다. 아, 그건 내 입장이고 아내로서는 초혼이다. 그러니까 나를 좋아했던 그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그것도 자기 친구랑) 나라는 남자를 못 잊어(믿거나 말거나) 50살이 다 되도록 혼자 살다가 내가 이혼한 후 나를 다시 만난 것이다. 첫 결혼에 실패한 후 ‘혹시나’ 하고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봤더니 ‘역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건 좀 과장이고, 어쨌거나 그녀는 그때까지 미혼인 상태였다. 용감한 자가 사랑을 쟁취한다 했던가? 이혼남인 주제에 감히 용기를 내어 여태껏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와이 낫?”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나를 환대했다. 그러고는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남달리 관계가 좋다거나 남다른 결혼생활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부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있어서 안정되고, 없어서 불편한. 그러고는 각자 자기 생활로 바쁜. 다만 우리 부부의 질긴 연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니 오늘은 그 특별한 연을 문어 다리 씹듯 잘근거려보련다. 강아지 그녀와 고양이 그녀 지금의 아내와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생으로 만났다. 이혼한 아내는 과는 다르지만 역시 같은 대학 출신이다. 두 여자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친한 친구였고, 나는 뒤늦게 대학을 들어가 그녀들보다 몇 살 더 많았다. 지금 아내를 가운데 두고 셋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녔는데, 조합이 조합인지라 친구들한테서 삼각관계냐는 놀림을 받곤 했다. 당시 나는 두 여자 틈에서 보호받는 편안함을 느끼던 터라 연애로 인한 감정 소모와 긴장된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두 여자 중 어느 누구도 내게 연애 감정을 품지 않길 진정으로 바랐다. 언제나 살가운 쪽은 지금의 아내였다. 모성 본능으로 나를 잘 챙겨줬고 이성 본능으로는 나를 잘 따랐다. 시험 기간에는 먼저 새벽에 나와 도서관에 자리를 잡아두기도 하고 여학생 특유의 감성이 담긴 자잘한 선물도 주곤 했는데, 고마워하면서도 그 모든 것에 무심코 별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각별한 감정으로 대했던 것 같다. 나는 또래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간 처지라 동성 동급생들보다는 이성들 속에서 지내는 게 편했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여린 선의 외모로 같은 남자 집단에서는 약간 주눅이 들곤 했으니까. 나같이 생긴 사람을 요즘은 ‘꽃미남’이라고 해서 여자들이 호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남자답게 생기지 않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니 나를 잘 챙겨주고 싹싹하고 상냥한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이 편안하고 한편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함께 다니면서 그녀의 친구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또한 그녀의 친구는 강아지 같은 아내와 달리 고양이처럼 도도한, 그야말로 둘은 ‘개와 고양이’ 사이 같았다. 언뜻 생각하면 앙숙으로 지낼 법한데 예의 배려심 많은 아내의 마음 씀씀이 덕에 둘이 잘 지냈다. ‘고양이 그녀’는 좀처럼 마음을 주는 법 없이 언제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를 대했는데, 신비감과 매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연애를 하기에는 나의 에너지가 부족한 편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는 ‘강아지 그녀’가 역시 편했다. 나를 친구에게 빼앗긴 아내 일은 셋이 춘천에 가기로 한 날 벌어졌다. 4학년 학기말 시험이 끝난 주말, 내 친구 한 명을 끼워 넷이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데리고 나오기로 한 친구 녀석이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아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못 나오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여행을 취소할까 하다가 어차피 주 멤버는 우리 셋이었으니 그냥 셋이 가도 별문제 없겠다 싶어 그대로 추진했다. 거기까지는 실상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아내인 ‘강아지 그녀’마저 일이 생겨 못 온다는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을 때라 이미 나와 ‘고양이 그녀’는 약속 장소로 나와 있는 상태에서 소식을 들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오는데도 모이기로 한 청량리역에 나타나지 않는 ‘강아지 그녀’. 기다리다 못해 ‘고양이’가 ‘강아지’의 집으로 전화를 걸고 나서야 사정을 듣게 되었다.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을 접지르는 바람에 꼼짝 못 하게 된 상황에서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집애야, 발을 다쳤는데 어떻게 발을 동동 구르니? 내가 먼저 전화 안 했으면 마냥 그대로 있으려고 했어?” 걱정은 고사하고 얼마나 다쳤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첫마디부터 쏘아붙이던 ‘고양이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상대를 할퀴는 목소리, 그때부터 인정머리 없는 여자라는 걸 알아봤어야 하는데. “진철 씨, 제 친구가 발을 다쳤대요. 그냥 우리끼리 가요.” “어떻게 그래요? 나으면 다음에 함께 가요.” “일껏 준비하고 나왔는데 그럼 이대로 돌아가잔 말이에요?” “그래도 우리끼리 가면 섭섭해할 것 같아서….” ‘강아지 그녀’를 사이에 두지 않고 ‘고양이 그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이 어색했던지라 그렇게 핑계를 댄 것인데, 그 말이 ‘고양이’의 성질을 건드린 것 같아 내심 움찔했다. 그녀와만 따로 만난 적도, 함께 있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숫기 없고 붙임성 없는 내가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물이나 공기처럼 부지불식 중에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강아지’의 존재가 그때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좋아요, 그럼 춘천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우리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어요.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가네요. 어차피 열차는 떠나버렸으니 가고 싶어도 오늘은 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일이 왜 이렇게 풀려가나. 왜 내가 이 상황을 전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거지? 나는 적이 긴장되고 당황해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의 힘이라도 빌려보고자 밥 대신 술을 마시자고 했고, 아니 대낮부터 밥과 술을 함께하자고 했고 일은 그렇게 터져버린 것이다. 술김에 결혼, 술 깨자 이혼 술의 힘은 묘했다. ‘고양이’가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호기심이 동했고, 2차, 3차로 옮겨가는 동안 밤이 깊어갔고, 취할수록 괜스레 안달이 나면서 도도하고 앙칼진 그녀를 한번 꺾어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녀가 나를 유혹했는지 내가 그녀를 유혹했는지 엉망으로 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우리는 몸을 섞었고, 그 하룻밤의 일로 그녀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술김에 한 결혼이었지만 아주 몰랐던 사이도 아니고 집안 환경도 비슷해서 ‘복불복’이라고 꼭 잘못되라는 법도 없었다. 근데 잘못됐다. 무엇보다 그런 동기의 결혼이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결혼생활 내내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려는 안간힘인 양 덤터기를 죄다 내게 씌웠다. 그나마 관계가 순조로울 때는 잠잠하다가 일이 꼬일 때면 나를 무슨 성폭행범처럼 몰아세웠다. 내가 그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나 따위와 인생을 함께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거라며. 그렇게 한 번씩 퍼부어댈 때면 내 자존심은 안중에 없었다. 아내의 기질과 성질을 잘 아는 나로서는 대거리를 하는 게 일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묵묵히 듣곤 했는데, 그 자체가 인정하는 꼴이 되어갔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수십 년간 혐오스러운 소리를 듣자니 나로서도 더 이상 참아지지 않았고 참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생긴 딸 하나 외엔 어찌된 게 자식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아 딸을 볼 때마다 그날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지 아내는 딸조차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그 점이 가장 나를 화나게 했고 무기력하게 했다. 동시에 그 점 때문에 어떻게든 아내를 달래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진짜 속내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그 점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그랬다. 전 아내는 처음부터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현 아내가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고 한결같이 사랑했던 것과는 반대로. 그러나 감정보다는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에 딴에는 노력했다. 설혹 잘못 꿴 첫 단추라 하더라도 단추 구멍을 추가로 내겠다는 각오로. 하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오래 산 부부들이 아무리 밋밋하고 멋없이 산다고 해도 그 바탕에는 장처럼 묵은 정의 강이 구수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술김에 한 결혼이 술 깨자 이혼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 다시 찾은 나의 강아지 그렇게 나는 고양이와 헤어진 후 강아지를 다시 만났다. 어떤가. 사연을 듣고 나니 얄밉도록 운이 좋았던 건 아니고, 나 역시 겪을 만큼 겪고 나서 겨우 찾은 일상의 안온함일 뿐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강아지 아내’는 여전히 나를 잘 따르고 내게 충성스럽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자기 친구와 그날 밤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도 말없이 받아들였던 여자다. 그때 자기와 내가 특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해도 내심 얼마나 당황하고 실망스러웠을까. 아니 그녀는 분명 나를 특별하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나의 허망한 지난 결혼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엔 꼭 물어보리라. 당신은 나의 30년 전 연인이었냐고. 그래서 나를 잊지 못하고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었냐고. 위로받아야 할 쪽은 내가 아니라 아내인가?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07-13 08:46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아내의 전남편과 함께 시작한 재혼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언제나 그렇듯 추모공원 입구에 차를 세웠다. 1년마다 어김없이 해온 일이다. 특별히 나들이 철도 아니고 성묘객이 몰리는 명절도 아닌데 길이 막히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내색조차 못 했다. 평소에는 앞차가 시야를 가리고 브레이크를 자주 밟게 되면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내뱉곤 하지만 아내의 성묫길에는 교통체증에도 입을 꾹 다문다. 옹졸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늘 통 큰 남편인 척하는 것도 솔직히 지겹다. 아내는 내가 통 큰 척하고 있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내가 통이 크든 작든 아내에게는 아무 상관도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벌써 20년째다. 이제는 그만둬도 되지 않나. 그런데 왜 나는 아내에게 이제 그만둘 수 없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걸까. “조심해서 다녀와. 같이 갈까?” “아니에요. 혼자 갈게요. 운전해줘서 고마워요. 쉬고 계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무거울 텐데… 제수(祭需)만 들어다주고 난 내려올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늘 하던 일인데요, 뭐.” 그래, 늘 하던 일이지. 20년을 한결같이. 추모공원 앞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도 늘 똑같고. 그런데 왜 오늘따라 짜증 나고 답답하고 억울한가 말이다. 아니 억울할 것까진 없지만. 전남편 제사 지내는 아내 아내와 나는 20년 전에 재혼했다. 아내와 나 둘 다 30대 중반에 배우자와 사별했다. 혼자 지낸 지 3년쯤 지나 지인의 소개로 만났을 때 동병상련이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만 해도 이혼보다 사별이 재혼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별은 불가항력이니까. 그러나 이혼은 선택이니 사정이야 어쨌든 자기주장이 강하고 드센 사람이란 인상을 준다. 특히 여자에게는.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보수적이라고 비난해도 하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혹자는 이혼은 자기 의지로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전 배우자에 대한 미련이 더 이상 없지만, 사별은 생전에 사이가 나빴던 부부조차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애틋한 환상에 빠져 없던 사랑도 만들어내서 내내 잊지 못한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아내의 경우가 그랬던 것이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매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그럼 나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때 죽은 아내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리고 이따금 꿈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아이들 엄마로서 아이들을 볼 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내 삶에서는 이미 떠나간 사람이었다. 아무튼 재혼 상대로 나온 여자가 전남편과 사별했다는 것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혼 전 아내가 들고 나온 약간 이상한 조건도 상대에 대한 나의 호감을 더했으면 더했지 감하지는 않았다. 그 조건이란 재혼을 하더라도 전남편의 기일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건 아니고 성묘를 가고 싶다고 했다. 죽은 사람 못 이기는 산 사람 아내가 좋았기 때문에 무슨 부탁을 해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제안을 할 줄이야!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람일 줄이야! 세상 떠난 남편에게 그 정도의 순정이라면 살아 있는 내게는 얼마나 정성스러우랴. 죽은 남편을 못 잊어 하는 것은 남이 들어도 그 자체로 칭찬받을 갸륵한 마음씨 아닌가. 그런 여자를 흔쾌히 받아들인 나는 더 넓은 마음씨의 소유자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상 속 이야기이자 착각이었다 해도 나는 통 큰 남자가 되기로 하고 그렇게 해온 지 20년째다. 그랬던 내가 뒤늦은 심술이 동한 것일까. 설마 죽은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일까. 왜 내 심사가 이리 꼬이냔 말이다. ‘죽은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나 보지. 그렇다 해도 세월 앞에 장사 있나. 몇 년 그러다 말겠지.’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먹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랬다면야 예상이 빗나간 게 약올라서 심통을 부릴 수도 있겠지만. 아내는 왜 전남편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전남편과 산 기간보다 나와 함께 산 기간이 두 배나 긴데도. 세월조차 지우지 못하는 둘의 추억은 무엇일까. 물론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얼간이는 아니다. 자존심이 있지. 그렇다고 아내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 둘은 잘 지낸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재혼할 때 각자 데리고 온 남매들끼리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이젠 모두 성인이 되어 자주 만날 일이 없지만 나도 아내도 내 자식, 네 자식 나눠서 서운한 마음이나 갈등을 겪은 일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자녀들을 서로 잘 챙긴다. 우리는 건강한 편이며 돈도 아주 없지 않고 주변의 관계도 원만하다. 이만하면 노후를 대비해 부족함 없는 복 받은 중년 부부다. 문제는 아내의 전남편이다. 전남편이 우리 사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니, 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죽은 사람이 산 사람 일에 끼어든다고? 하긴 산 사람은 결코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아내는 죽기 전까진 ‘저 짓’을 그만둘 의향이 없는 듯하다. 저러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는 내 제사는 안 지내고 저 인간만 챙기는 거 아냐? 아내가 전남편을 못 잊는 이유 아내의 전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늦은 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었다고 했다. 빨간색 보행자 신호등에서 건너간 남편 쪽 과실이었다고. 딴생각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자투리 초록 신호등에서 무리하게 뛰어 건너다 변을 당한 것일지도. 남편은 즉사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재혼 후 5년쯤 되었을 때 아내의 친구에게서 사고 당일 밤 부부가 크게 다투었다고 들었다. 화가 난 남편은 술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간 것 같은데 진정되지 않은 마음에 보행자 신호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고. 그러면서 아내의 친구는 그 순간은 일부러라도 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 않았겠냐는 야릇한 여운을 남겼다. 아내의 전남편이 죽고 싶을 정도로 격렬했던 싸움의 원인은 뭐였을까. 내 얼굴에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친구는 당시 아내가 잠깐 한눈을 판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아내의 외도 사실이 남편 귀에 들어가 부부가 대판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구태여 내게 말하는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고 말았다. 그 사실 자체로 불쾌했고, 무슨 속내인지는 몰라도 친구의 치부를 폭로하는 그 여자에게도 불쾌했다. 안달이 난 쪽은 아내의 친구, 그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입을 더 이상 열게 하지 않았다. 불쾌를 넘어 불안했다. 아내에 대해 내가 모르는 무슨 말이 더 나올까 싶어서. 그냥 아내에 대한 시기 질투로 이해하기로 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 친구는 아내가 사별한 비슷한 시기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된 재혼 생활을 하는 아내가 부러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더구나 캐묻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아내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른다. 자존심을 지켜주고 오히려 아내를 이해하는 쪽으로 작용한 나머지 전남편의 기일 성묘를 이제 그만둘 수 없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영혼은 누구에게? 그랬다. 지난번 결혼에서 아내는 남편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의식으로 20년간 남편의 기일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그것도 아름답지 않은 일에, 따라서 보람도 없는 일에 나까지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남들이 이 일을 알면 나를 바보라고 할 테지. 무엇보다 저 여자는 너무 뻔뻔하지 않나. 아무리 내가 허락했고 약속했다고 해도 20년을 한결같이 그의 기일을 챙기고 있으니.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이 없고서야 미안해서라도 스스로 알아서 그만뒀어야 하지 않나. 더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성묘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나를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현 남편인 나를 전남편에게 한 번쯤 인사를 시켜줄 법도 하건만. 이쯤 되면 전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갖겠다는 심사가 아니고 뭔가. 아내는 죽은 남편의 묘 앞에서 매해 무슨 말을 할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또 사과하며 용서를 비는 걸까. 만약 그날 그 사고가 없었다면 저 사람이 아닌 당신과 해로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걸까. 그나저나 조신한 아내가 어쩌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자동차 사이드미러 저 멀리서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는 아내가 보인다. 가까워올수록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난다. 아까 올라갈 때의 스산한 표정이 아니다. 상념에서 깨어나, 시동을 걸어놓고 아내의 손에 들린 제사 음식 보따리를 받아들기 위해 차에서 내린다. 이제 아내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차지하고 산 건 아내의 몸뚱이뿐이고 아내의 영혼은 늘 저곳, 저 남자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 몸조차 거기에 있고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여자는 아내의 모습을 한 허깨비가 아닐까. 내 아내는 여전히 묘 앞에서 전남편과 도란도란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06-30 09:04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고도원이 전하는 치유를 위한 '멈춤' 청와대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다가 몸이 무너진 순간, 마치 파노라마처럼 빛을 봤다.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했을 때부터 ‘내 삶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매일 아침 400만 명에게 편지를 쓰며 꿈 너머 꿈을 꾸자고 이야기하게 된 계기다. 푸른 나무가 우거진 깊은 산속 맑은 옹달샘에서 명상을 전파하고 있는 고도원(70)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지금, 멈춰보세요! 들리나요?” 고 이사장의 말에 순간 숨을 참았다. 3초 정도 주변 모든 사물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고 마음에 고요함이 깃든다. 그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리에는 내가 놓친 것들이 담겨 있다. 영감을 얻는 순간이다. 이유 없는 감사 ‘명상’ 고도원 이사장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담당비서관이던 시절, 추천 도서에서 발췌한 구절과 함께 짧은 글을 적어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이름으로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의 글을 받아보는 독자가 100만 명이 넘어가자 2004년에는 아침편지문화재단을 세웠다. 고 이사장의 글을 받아보는 독자는 이제 약 400만 명에 이른다. 2010년에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을 열고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옹달샘을 찾아 머무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다. “명상은 스스로 성찰하고 사색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궁극적인 목표는 이유 없이 감사하는 거죠. 삶에서 우주의 본질 같은 것이랄까요. 명상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회복하는 거예요.” 명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먼저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한다. 이완의 방법으로 주로 사용되는 게 호흡이다. 천천히 걷는 것도, 길게 심호흡하는 것도, 느리게 춤을 추는 것도,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이완의 방법일 수 있다. 몸이 이완됐다면 하나에 몰입한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 지금 마시고 있는 차, 어딘가를 향하는 내 걸음, 무엇이든 몰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다 명상이 될 수 있어요. 청소할 때, 설거지할 때도 몰입할 수 있죠. 집중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거고, 몰입은 집중한 줄도 모르게 놀이처럼 되는 거예요. 무엇보다 이 과정에 ‘기쁨’이 있어야 하죠.” 몰입을 잘했다면 마지막으로 변화의 단계가 온다.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다.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 몸이 회복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를 성찰하면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몸의 근육을 키울 때도 처음에는 1kg을 들었다면 다음에는 2kg, 5kg 무게를 늘려가잖아요. 정신도 그래요. 상처나 외로움을 견뎌내는 연습을 계속하면 마음 근육이 단단해지고 면역력이 생겨요.” 멈춤은 하나의 과정일 뿐 명상을 하려면 일단 멈춰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완하고 몰입하려면 자연에 가깝고 조용한 곳이 좋다. 하지만 우리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에 산다. “거실이나 베란다에 식물을 두어보세요. 정 없으면 그냥 한 공간을 설정해두어도 돼요. 이곳은 내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해두는 거죠. 시끄럽거나 빛이 센 곳보다는 조용하고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겠죠. 이런 장소를 찾고 명상을 위한 환경을 설정하는 행위 자체도 즐거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차를 마시면서, 이 시간이 주어져 감사하다고 느낀다면 이것도 좋은 멈춤의 장소가 되고 도구가 되는 거죠.” 조용한 장소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순간, 머릿속이 시끄러워지곤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떠오르거나, 미처 해결하지 못한 걱정들이 몰려온다. 상념(想念)이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멈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종을 치는 거예요. 밥을 먹다가 종을 치면 그대로 멈춰요. 그럼 맛이 느껴질 거예요. 머릿속으로 종을 쳤다고 생각하고, 그 순간 하던 행위를 멈춰보세요. 존재했지만 내가 소란해서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들릴 겁니다.” 고 이사장은 상념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상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마저 경험이 된다. 그는 상념을 메모지에 적어서 던져둔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함이다. 어느 순간 잡념이 사라지는 걸 느낄 때, 그 고요함에서 오는 희열을 얻는다. 멈춤은 나를 비우는 하나의 ‘과정’이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시대 고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외로움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2년은 고 이사장에게도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힐링 산업은 대면을 해야만 하는데, 모든 게 멈춰버렸기 때문. “코로나19가 안겨준 현상 중 하나가 고립감과 외로움이죠.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코로나19를 통해 심화됐을 뿐 이전에도 있던 거예요. 고(故) 이어령 장관이 마지막으로 ‘사실 외로웠다’는 고백을 했어요.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이룬 사람도 느끼는 감정이죠. 영국에는 ‘외로움 장관’이라는 자리도 생겼잖아요. 사회 전반으로 보면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이고, 개인도 외로움을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된 거죠.” 2020년 6월 고 이사장은 ‘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코로나19가 남긴 집단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도 이 후유증을 다룰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코로나19 이전에도 고 이사장은 ‘사회적 치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세월호 유가족, 소방관 배우자 등을 초청해 휴식과 위로의 시간을 마련했다. “의료 계통 종사자, 학교 선생님, 공직자, 실업 청년 등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아진 거예요. 우리 마음에 어떤 후유증을 남긴 거죠. 우리는 외로움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내면의 근육을 단단히 할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외로움은 마음의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예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런 시기라고 봅니다. 그래서 결국은 명상을 다시 강조하게 되네요.(웃음)” 공부하는 중년과 꿈 너머 꿈 머릿속이 소란할 때 내리는 판단과 고요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면 이제 용기를 내야 한다. 고 이사장은 중장년층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의 판단과 예지력으로 인생을 전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그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블록체인 아카데미를 준비하는 이유다. “중년 이후에는 실패를 만회할 시간이 별로 없죠. 그래서 훨씬 깊은 공부가 필요해요. 공부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용기죠. 우리는 사회 흐름을 공부해야 돼요. 블록체인, 가상화폐, 메타버스, AI, ICT(정보통신기술), 새로운 흐름이죠. 이런 공부를 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어질 수밖에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왜 벌어졌는지, 세상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공부한 것을 토대로 방향 전환을 해야겠죠. 실패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거고요.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50세에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습니다.” 고 이사장은 중년의 통찰과 혜안이 사회의 유산이 되기를 바란다. ‘꿈 너머 꿈’을 말하는 이유다. ‘꿈 너머 꿈’은 꿈을 설정할 때부터 꿈을 이룬 뒤 무엇을 할지까지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백만장자가 꿈이라면, 내가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치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자기 성취에서 이타성을 조금 가져보자는 거예요. 나에게도 의미 있고 다른 이에게도 의미 있는 쪽으로 인생 목표를 세워보는 거죠. 그래서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이루지 않아도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 행복하고 위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2022-06-15 09:44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아내와 재결합한 연인, 어찌하오리까?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최근에 아내와 재결합을 하게 되었어요.” “뭐라고요? 그럼 우리 관계는요?” “우리 관계는 달라질 게 없지요. 내가 아내와 재결합한 건 순전히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고, 나는 여전히 경혜 씨를 사랑하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당신인 거죠.” “…….”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안도감은 또 뭔가.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와의 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나는 또 뭔가.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저 태도는 또 뭔가. 가증스럽다 할지, 뻔뻔하다 할지, 나를 두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냐고 따져야 할지, 머릿속은 아우성을 치지만 말문은 닫힌 채 혼란스러웠다.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번민했을 그를 생각하면 내가 오히려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아니, 어차피 내가 자기를 못 떠날 걸 알고 속 편하게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심중, 그의 자세가 아니라 그가 헤어졌던 아내와 재결합했다는 사실이다. 이혼 20년 만에 만난 ‘뇌섹남’ 그와 사귄 지 5년째,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서로 호감이 갔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전 남편은 결혼 10년 차 무렵인 30대 중반에 도박에 빠졌다. 우리는 동갑내기 공무원 부부로 미래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의 생활 태도를 나태하고 해이하게 했던 것 같다. 도박을 끊어보려고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단도박 모임 등에도 나갔지만 그의 의지는 매번 무너졌다. 도박 중독자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면서 몇 번의 스치는 만남이 있었지만, 오십 중반에 가슴 설레는 남자, 맞춤한 나의 인연을 찾았다는 게 보통 행운이 아니라는 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랑이 나이와 반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만남 자체의 기회도 점점 줄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그만큼 희박하니,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포기하게 되는 게 중년 연애 시장의 생리이니. 그런 상황에서 이혼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사랑,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행복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두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쪼들림이 없었고, 은퇴 후엔 연금이 있으니 경제적 이유로 남자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만큼 ‘사랑’이 중요한 요소였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하지만,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밥 정도는 먹여줄 수도 있다는 여유조차 품었다. 그랬는데 그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유복한 집안에 자연계열의 명예교수라는 직업도 직업이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식견과 스포츠, 요리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진 점이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지적인 데다 타고난 유머 감각은 수수 털털한 동네 아저씨 같은 그의 겉모습을 완성하는 필수 자질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것이다. 그의 세련되지 못한 외모조차 그가 가진 장점을 겸손하게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엔. 콩깍지가 씐 거라면 영원히 벗겨지지 않기를! 또한 그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로 허물어지는 것은 순간이라며, 서로 존중하는 관계 유지를 위해 세 살 적은 내게 늘 존댓말을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이른바 ‘뇌섹남’에 반한 것이다. 졸지에 내연녀로 전락 그는 여러 차례 외국 기업체와 협력 연구를 하면서 국내를 자주 비웠기 때문에 5년을 만나는 동안 평범한 일상보다는 출장을 겸한 외국 여행을 함께 자주 했다. 양보다 질에 치중하는 데이트랄까, 밋밋한 생활을 나누기보다 외국의 낯선 분위기에서 자극적이며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그를 만나는 내 자부심을 더욱 부추겼다. 우리는 캡슐에 싸인 것마냥 둘만의 시간 속에서 즐겼기 때문에 서로의 신상에 대해 자주 물어보거나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혼했고, 홀아버지가 계시며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를 닮은 영특한 머리로 사회에서 성공적인 위치에 있다는 정도가 다였다. 자신의 이혼 사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내겐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그가 불쑥 아내와 재결합했다고 하니 충격일 수밖에. “그게 언제였나요?” “한 6개월 전쯤.” “뭐라고요? 6개월이나 되었으면서 그동안 왜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지금 말하는 이유는 뭔가요?” “경혜 씨한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거듭 말하지만 경혜 씨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전과 같다니까요. 그리고 아내는 서류상 재결합한 거지 함께 살지도 않아요. 아내는 큰아들 집에서 지내기로 했으니까요. 나는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내 아파트에 가서 확인해볼래요?” 적반하장이라더니. 도대체 이 남자는 뭘 믿고 이리 당당한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 당당한 그, 궁색한 나 “당신이 아내와 살든 안 살든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졸지에 내가 당신의 내연녀가 되는 거잖아요. 우리 사랑이 불륜이 되는 거고요.” “꼭 그렇게 천박한 말을 가져다 우리 사이에 붙여야겠어요? 처음부터 내가 당신을 속인 것도 아니고, 도중에 아내와 서류상 합쳤다고 해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건가요? 경혜 씨는 그깟 종잇조각 때문에 우리 사랑을 팽개쳐야겠어요? 그 정도로밖에 날 사랑하지 않나요? 거듭 말하지만 아내를 사랑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늙고 병든 아내가 불쌍해서, 그 여자가 아내의 지위를 껍데기로나마 되찾고 싶어 해서 회복시켜준 것뿐이에요. 내 말 못 알아듣겠어요?”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았다. 그에게 말려드는 느낌이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찾아지지 않아 가슴만 답답했다. 아내에게도, 내게도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말투는 또 뭔가. 아내에게 귀책 사유가 있었는데 세월 지나 용서해주기로 한 건진 모르지만, 나는 자기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내가 이 일을 안 이상 우리 사이가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서류 따라 당신 마음도 결국 변할 거라고요.” 기어이 속내를 들켰다. 그가 우위를 점하도록 스스로 길을 터준 꼴이 아닌가. 계속 만나더라도 약점 있는 쪽은 그이니 내가 큰소리치면서 관계를 이어가도 시원찮을 판에 되레 저자세로 나가다니. 그의 전략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내를 두고도 당당하게 연인을 만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자는.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요. 경혜 씨 좋을 대로 하세요. 기어코 나와 헤어지겠다면 받아들여야지 별수 있나요. 저야 붙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요.” 어라? 공을 이렇게 넘길 줄이야. 이런 말로 나에게 압박을 가해올 줄이야. 살살 몰아가다 결정 골을 넣자는 건가? “도대체 당신 아내는 어떤 사람이며, 나이가 몇이길래 당신이 그렇게 가여워하는 거죠? 이참에 물어볼게요. 도대체 당신네 부부의 이혼 사유는 뭐였나요?” 본질을 또 빗겨가고 있었다. 그걸 알아 이제 와서 뭘 할 거라고. 나는 분명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아요. 경혜 씨에 비하면 완전 할머니죠.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건강한 편은 아니에요. 이혼 사유요? 내가 말 안 했던가요?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더랬어요. 연상의 아내가 바람이 나니 많이 당황스럽더라고요. 부부 사이에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죠.” 상당히 의외였다. 아내가 얼마나 잘난 여자길래. 객관적으로 봐도 그보다 더 조건 좋은 남자, 멋진 남자가 흔하지는 않을 텐데, 부부의 일은 부부밖에 모른다더니. 아니, 이 남자의 말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자신에게 귀책 사유가 있었는지 알 게 뭐람. 이혼한 사람 중에 자기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솔직히 몇 명이나 되나. 눈 한번 질끈 감아? “아내가 아니라 당신이 바람 난 게 아니고요?” 심사가 꼬여 있던 내가 이렇게 어깃장을 놓았다. “뭐라고요? 경혜 씨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나를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불씨가 엉뚱하게 튀고 있었다. “아니면 아닌 거죠, 뭐.”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실수를 무마하려 드는 나, 그 틈새를 파고드는 그. “경혜 씨에게 실망했어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니, 그럼 경혜 씨에 대한 내 사랑도 의심할 수 있겠군요.” “누가 그렇대요? 그냥 해본 말이니 불쾌했다면 사과할게요.” 지금 누가 누구에게 사과를 할 상황인가. 왜 점점 내 입지가 궁색해져가는지 당혹스러웠다. “내 쪽에서 문제를 만들었으니 여하간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이상 없는 거지요?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거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요.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하진 말아요. 거듭 말하지만 아내는 그냥 서류상 복귀이지 내 생활에 끼어들게 하진 않을 거예요. 자식들 엄마 대우로 충분해요. 그래야 애들한테도 떳떳할 것 같고요.” 그는 당장 헤어지자던 나의 처음 기세가 누그러진 것에 적이 안심했는지 긴장을 누그러뜨린 채 응대했다. 그는 시종일관 왜 이리 당당할까. 당당하다 못해 오히려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이 화법은 뭔가. 나는 자꾸만 졸아들고 있다. 내 나이가 육십이다. 이 남자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눈 질끈 감고 몰랐던 일로 하고 계속 만나? 아, 어찌해야 하나.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2022-05-27 08:41
  • 당신은 왜 잊으려고 하니 더 생각나는 사람인가
    겪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중장년의 '역지사지'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흔히 나누던 인사가 귀한 말이라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쳤기에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로 넘쳐나도 우리 집은 무사하겠거니 안심했나 봅니다. 번갈아 가며 식구들이 확진되고, 자가격리 이후 일상 회복까지 몸소 겪으면서 그동안 확진 당사자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합니다. 이 심정을 담아 마음 미장공 다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그러십니다. 너도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요. 엄마의 엄마는 또 그러셨습니다. 너도 시집 가서 꼭 너 같은 새끼 더도 말고 하나만 낳아서 키워보라고. 그래야 엄마 맘을 알 테니까요. 부모 속 썩이던 그때는 모르던 것을 자식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고 나서야 아 그랬지 하고 겨우 알아차립니다. 깻잎 논쟁과 역지사지 몇 년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들려준 중년 가수 부부의 이야기가 일파만파 세대 불문 연일 화제였습니다. 부부와 아내 후배가 같이한 식사 자리. 하필이면 깻잎장아찌를 먹으려는 아내 후배. 때마침 붙어 있는 깻잎.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으로 떼어주는 남편. 사건 자체는 간단한데 논쟁은 그칠 줄 모릅니다. 김 여사 남편 역시 그게 왜 화낼 일이냐고 되묻습니다. 이때다 싶어 김 여사는 예를 들어 조곤조곤 설명합니다. “여보, 한번 상상해봐요. 우리 부부랑 당신 남자 후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후배랑 셋이 밥을 먹어요. 한창 당신이 신나게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그 후배란 녀석이 내가 쩔쩔매는 깻잎장아찌를 무심히 툭 떼어주는 거예요. 젓가락질 서툰 나를 지켜봤던 거지. 어때요, 기분이?” 입장을 바꾸자 바로 불쾌해진 남편. “그건 절대 안 되지!” 역지사지, 참 쉽죠? 식사 속도로 보는 역지사지 실험 그런데 역지사지하는 게 정말 쉬울까요? 이 실험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과 천천히 먹는 사람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아니면 연인, 친구, 동료까지. 얼마 전 라디오 사연으로 소개되어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식사 속도 문제. 일주일을 정해서 평소와 반대로 해보면 됩니다. 씹는 건지 삼키는 건지 모를 만큼 빨리 먹는 사람은 천천히, 밥알이든 맹물이든 꼭꼭 씹어 먹는 사람은 꿀떡 삼키듯 빨리. 식습관을 바꿔 해보는데, 보통 일주일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루 세 끼면 실험 효과는 충분합니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니까요. 그만큼 남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에 분명합니다. 바꿀 역(易)에 숨어 있는 비밀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나 입장을 헤아리기 위해서 ‘역지사지’ 뜻을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핵심은 바꿀 역(易)에 있습니다. 역(易)의 아랫부분인 말 물(勿)의 갑골문에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무언가를 쏟아내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담는 게 역지사지의 바탕입니다. 바꿀 역, 쉬울 이로 읽히는 이 글자(易)가 나아가서는 고치다, 새로워지다, 평안하다, 편안하다, 기쁘다, 기뻐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합니다. 지(地)는 내가 딛고 있는 땅, 처지, 형편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思)는 뇌(腦)를 상징하는 밭 전(田)과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로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갈 지(之)는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나타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자원(字源)에 따라 풀어보겠습니다. 내 그릇을 비우고, 상대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 내가 원래 갖고 있던 당신에 대한 오해나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고집이나 아집을 비우고,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새로 담는 것입니다. 맑고 깨끗해진 내 그릇에 새로 담으면 나와 당신이 기쁘고 편안해진다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깊은 뜻이 아닐까요. 술과 개는 나의 스승 ‘혼자 술 마시는 여자’라는 수필집을 낼 만큼 술을 사랑하던 제가 술을 끊은 경험도 애주가 입장과 그 반대 입장 모두 헤아릴 수 있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제가 ‘벼리’라는 푸들을 15년 가까이 키우면서 혐오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酒)님과 개님은 제게 역지사지를 뼈저리게 깨우쳐준 특별한 스승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게 되지 않아서 엄청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또 우리 인간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다툽니다. 아내와 남편이, 부모와 자식이, 형제자매가, 친구와 동료가, 손님과 주인이. 비단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웃, 사회, 국가 간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역지사지는 머리와 가슴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생각이나 입장에 서봐야 합니다. 나 좋을 대로 띄엄띄엄 아는 게 아니라 충분히, 제대로, 정성스레 헤아리는 것입니다. 역지사지 반대말은? 반대말을 살펴보기 전에 역지사지로 사행시 한번 지어볼까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합니다. 운을 띄워주세요! 역 - 역으로 지 - 지랄을 해줘야 사 - 사람들이 지 - 지 일인 줄을 안다 역 - 역으로 지 - 지랄해야 사 - 사람은 지 -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 진상을 부리는 고객이나 조직에서 갑질을 하는 상사에게 반대 자리에 서보라고 합니다. 그제야 겨우 자신이 저질렀던 지랄(갑질, 진상)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정서적·신체적 학대와 폭력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로 역지사지가 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희망적인 부류이긴 합니다. 안타깝게도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을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라 미화하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비난)이라고 합니다. 이제 뇌 영역별로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일 때 어떤 감정과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역지사지’하려면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처지에 자신을 놓는 감정이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고서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때로는 후회로 마음이 아프고 회한도 몰려옵니다. 철딱서니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화해와 포옹으로 웃음을 되찾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로 가는 과정입니다. 갈등의 골을 사랑으로 메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내로남불’은 자기만 앞세우는 이기심과 자기합리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왜곡된 이중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와 의견에 날을 잔뜩 세우고 방어와 공격에 주력하느라 안절부절못합니다. 세 번째 시즌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TV조선)에 나오는 등장인물 면면이 특히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의 전형이랄 수 있습니다. 아내 몰래 새로운 연인을 만나 이혼한 남자. 전처가 자기보다 어리고 능력 있는 연인을 만나자 질투와 분노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변명과 핑계는 기본에다 갈등 유발자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꼭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로지 내 편인지만 가리는 피아식별(彼我識別)에 혈안이 되어, 적이라 여기면 온갖 편법과 꼼수로 심술을 부리고 해코지하기에 급급합니다. 편안함과 기쁨을 되찾는 역지사지 지금 어떤 상처나 고통 속에 계십니까? 상대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결국은 내 마음이 편안하고 기뻐지는 것이 역지사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로 나, 내가 편안하고 기뻐야 내 주변과 상대도 편안하고 기뻐합니다. 인간관계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먼저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먹으면 어느 순간 그 사람도 내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역지사지는 동심(同心),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와 당신이 같은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이 역지사지의 좋은 목표, 도달점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로남불로만 산다면 역지사지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내 마음 그릇에 고인 물은 봄비에 흘려버리고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공감하면서 보내면 어떨까요.2022-05-26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