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모래 왜 눈에 붕대 감았는지

[2015년 AYAF 4차 선정작 / 소설]

오늘


조영한

    오늘은 등을 달러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등이 붓고 발톱이 부러져 있었다. 간밤에 벽과 책상을 때리고 잔 듯했다. 책상은 나무가 재질이라 멀쩡했지만 벽지는 발길에 차여서 조금 눌린 모습이었다. 나는 부어오른 발을 만지면서 방문 너머의 발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밝지 않았는데 장판을 디디는 소리는 무겁고 선명해서, 머리에 남은 잠기운을 지우고 가벼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창틀에 놓인 양말을 집으니 비가 와서 습기가 찼는지 질감은 차고 눅눅했다. 억지로 양말을 발에 끼우다가 추위와 통증이 느껴져 그만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예전에 자취 생활을 할 때처럼 비좁은 방에서 잘 때면 온몸을 조이는 갑갑증이 일어서 발길질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여자를 껴안고 자다가 하도 종아리를 때려서 새벽에 일어나 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여자는 내게 사과를 요구했고 나는 방이 좁아서 그랬다며 변명을 했다. 공간의 작음은 사람의 행동을 거칠게 한다는 말도 덧붙였던 듯했다. 발길질과 변명 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닐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사소한 일로 몇 번 더 싸우고, 관계를 정리했다. 그제야 나는 내 잘못이 크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나보다 방에 문제가 더 많다는 생각을 끝내 버리지는 않았다. 또, 교제를 이어서 했어도 우리 사이에 그다지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모두들 싸거나 씻으러 가는지 발소리가 겹쳐져서 들려왔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세 개뿐이라 서둘러 이동하는 듯했다.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세상은 더럽고 축축해진 모습이었다. 타일로 외장한 복층 건물들이 검게 젖어 반짝거렸고 가까이 보이는 검회색 철로로 전철이 통과해, 방 안으로 소리와 진동이 밀려들었다. 잠시라도 방이 조용해진 적은 없었다. 나는 맞은편에 있는 빵집의 셔터가 들리는 것을 보고서야 양말을 마저 신고 바지와 상의를 입었다. 옷에도 양말처럼 누기가 남아 있어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방에서 나가려다 벽에 귀를 붙이고 신경을 모았다. 벽을 때리고 잤는데도 옆방의 고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벽체가 얇아서 코고는 소리나 기침소리, 창문을 여는 소리나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각 방으로 넘나들었다. 나는 소리에 둔감했던 반면에 고졸은 귀가 예민했던 탓인지 가끔씩 내 방으로 와서, 옆방에 피해가 가는 행동을 조금만 줄여 달라고 말했다. 스포츠형으로 깎은 머리칼이 거웃처럼 굵고 살색이 유난히 검어서 남방의 흑인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벽의 얄팍한 두께와,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수가 많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고졸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더니 이내 방으로 돌아갔고, 그 뒤로도 몇 번 더 내게 찾아왔다. 말투가 거칠고 팔뚝에 문신을 새기긴 했어도 생각만큼 사납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귀에는 소리가 잡히지 않았다. 고졸은 지금 사는 방보다 더 넓고 편안한 곳으로 간 듯했고 반대로 더 좁고 불편한 곳으로 갔을 듯도 했다. 나는 벽에서 귀를 떼고 충전이 다 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방에서 나오니 휴지와 바구니, 수건을 손에 든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밤새도록 공부를 하거나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복도를 나와서 사물함에 있는 운동화를 신고 계단참으로 내려갔다. 건물 내 유일한 흡연 구역이라 사람들이 모여 둘레가 희뿌예지도록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출근하는 중이었는지 목소리에 잠기가 배어 있었고 호흡은 그리 고르지 않았다.
    나는 저녁 일곱 시에 역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오늘도 고모가 전화를 했다며 뜬금없는 대답을 했다. 고모는 얼마 전에 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로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틈만 나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오는 시간은 일정치가 않아서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일 때도, 일하는 중인 오후 무렵일 때도 있었다. 고모는 전업주부였고, 고모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엄마는 목쉰 음성으로 말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먹고살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주위에 가득 고인 연기를 빼려고 창문을 열었다. 실내의 매캐한 냄새와 비 내린 이후의 비릿한 냄새가 뒤섞여 어딘지 기분을 편안하게 하는 향이 만들어졌다. 팔에는 토시를 끼고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흡연석으로 모였다가 떠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냄새를 맡으면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생각했다. 오늘은 부부의 서른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이라서 선물과 고기가 필요했다. 나는 핏물과 육즙이 떨어지는 한우를 생각하다가 명치에 통증을 느끼며 담뱃불을 껐다.
    오늘도 마른 트림이 목젖으로 올라왔다.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역에서 내리니 하늘은 해가 비쳐 밝아져 있었다. 공장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진 지역에 있어서 한동안 걸어가야 했다. 나는 역 앞 편의점에서 탄산수 한 병을 사고는 밭들이 보이는 쪽으로 걸었다.
    포장하지 않아서 먼지가 이는 흙길을 지나자 조립식 패널로 지은 공장이 보였다. 트럭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장도 기사도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나는 각목과 서포트 위에 덮어 놓은, 후렉스 천에 앉아서 탄산수를 마셨다. 이마에 맺혔던 땀이 마르자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마치 땅으로 떨어지는 얕은 빗소리 같아서 졸음이 밀려왔다. 간밤에 잠을 충분히 이루지 못해서 졸음은 깊었고 발톱이 더 갈라졌는지 통증이 느껴졌다. 피가 발가락 사이로 점점이 모이고 있었다. 나는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천 가장자리에 등을 대고, 탄산수 병으로 머리를 받쳤다. 두 눈을 감으니 왠지 메마른 빗소리가 몸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차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카고 트럭과 티코가 공장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장이 먼저 트럭에서 내렸는데 왼손에 깁스를 한 모습이었다. 일주일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짐을 나르다가 왼손을 다쳤다고 했다. 나는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티코에서 내린 기사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장은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더니 기사와 내게 오늘 할 일을 배정해 주었다. 기사는 전선과 전구를 구하러 시내에 나가야 했고, 나와 사장은 연꽃등을 얻으러 안산에 있는 절에 들러야 했다. 사장의 손이 불편했기 때문에 트럭 운전은 내 몫이었다.
    우리는 캔 커피를 마시고 차에 탔다. 티코가 먼저 출발하자 나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기어의 단수를 높였다. 사장은 라디오 음량을 높이고는 깁스가 둘러진 손으로 천장과 차문을 몇 번 때렸다. 앞쪽에 눈길을 돌리니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랬고, 바람이 조금 부는 듯했지만 기온은 따뜻해 보였다. 무언가가 싹을 틔우고 양분을 받아서 차츰 붇고 자라날 듯한, 여름 직전의 날씨였다.
    절은 깊은 산속이 아니라 대학병원 옆에 있었다. 경사진 시멘트 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전신주나 담벼락마다 석탄일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현수막이었다. 좀 더 올라가서, 양편에 기둥이 세워진 입구에 다다르니 검붉은 색으로 칠한 이층짜리 사찰과 청동으로 빚은 동상이 보였다. 나는 동상 앞에 트럭을 세우고 비질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와 만났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별다른 말 없이 요사채 뒤에 있는 창고로 안내했다. 궁궐처럼 생긴 사찰과 다르게, 지붕을 이끼 낀 함석으로 얹은 낡고도 불결한 창고였다.
    아주머니는 열쇠들을 하나씩 꺼내어 자물쇠를 풀려고 했다. 나는 코끝을 스치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색색의 종이를 붙여 놓은 다층탑 아래서 중이 목탁을 두드렸고, 그의 발치에는 갈색 장작들이 쌓여서 불길을 피우고 있었다. 불가 둘레에는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와 검은색 한복을 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둘 다 낯빛이 창백해서, 유령들이 옷만 걸치고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탄내를 풍기며 익어 가는 것은 교복과 책가방, 줄무늬 운동화와 발목 양말과 같은 아이들이 쓸 법한 물건들이었다. 염불 외는 소리는 쉼 없이 울려 퍼졌고 연기는 높이높이 피어올라서 탑 뒤로 보이는, 녹음과 어둠이 반반씩 고인 듯한 나무숲으로 흘러갔다. 마치 영혼이 나선을 그리듯이 빙빙 돌다가, 마침내 지하 세계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경첩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실내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었다. 천장 곳곳마다 하얀 거미줄이 드리워진 모습이었고, 사찰을 짓는 데 쓰다가 남은 듯한 철근과 각 파이프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쇳내와 먼지내가 났으며, 눈앞에 부연 먼지들이 떠올라 눈 뜨기 힘들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 아래는 먼지로 덮인 상자들과 속을 가득 채운 마대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마대에 묶인 끈을 풀고 속을 확인했다. 윗부분에 철사가 달린 등들은 납작하게 압축된 모습이었다. 등 속에 손을 넣어서 부풀리자, 만(卍)이라는 글씨와 빛바랜 부처의 그림이 표면에 나타났다. 상자를 뒤져서 남은 것들을 살펴보니 철사가 떨어져 나간 것들과, 구멍이 뚫어진 것들이 많았다. 사장도 물건들을 대충 보고는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아주머니는 신도 수가 적어서 예산이 모자란 데다가, 절을 돌보는 사람도 지금은 자기뿐이라며 더듬더듬 말했다. 커다란 현수막과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답이었다.
    나는 상자에 들어 있던 나머지 등들도 일일이 살핀 뒤 운반을 하기 시작했다. 등들은 그리 무겁지 않았으나 먼지내가 심했던 탓에 아침에 먹었던 탄산수가 속에서 올라왔다. 나는 토기를 참으려고 담배를 물고는 상자와 마대를 트럭 뒤에 실었다. 그동안 목탁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고, 가만히 서 있던 여자는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렸다. 토기를 잠시 잊게 할 만큼 깊고 깊은 울음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면서 다른 손으로는 눈가를 비볐다. 나는 그들을 흘끔거리면서, 상자와 마대가 혹여 이동 중에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그것들 위로 몇 겹의 고무 바를 쳤다. 탑 밑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은 사위어 있었고, 물건들은 새카만 재로 변한 상태였다.
    아주머니는 사장과 얘기를 마치더니 줄 것이 있다며 절로 들어갔다. 주위에는 코를 찌르는 탄내가 퍼졌고, 먼지내가 콧속에 남아 있어서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나는 사장이 있는데도 속이 빈 마대를 바닥에 깔고는 앉아서 머리를 식혔다. 한참 뒤, 아주머니는 웬 상자를 들고 나왔다. 부피는 큰데 무게는 가벼워 보이는 상자였다. 내가 상자를 받아서 속을 확인하니 나무젓가락 길이만 한 노란색 띠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새로 산 것인지 연등보다 빛깔이 좋고 깨끗한 띠들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등마다 띠들을 달아 줘요.”
    나는 상자를 앞좌석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아주머니는 창고 문을 잠그고 다시 빗자루를 들더니 재티가 날리는 경내를 조심조심 쓸었다. 사장은 부가 노동을 하는데도 절에서 돈을 더 주지 않는다며 신경질을 냈다. 나는 창문을 열고는 목에서 끓어오르던 가래침을 뱉었다.

    기사는 우리보다 먼저 공장에 와 있었다. 사장은 공장 문을 열었고 나와 기사는 가져온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건물은 북쪽 방향으로 지어진 탓인지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비릿한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듯했다. 얼마 전까지는 공장이 아니라 개들을 모아서 도축하고 삶고 팔던 곳이었다. 사장의 말로는 장사가 신통치 않았던 데다가, 버려진 개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서 도축하는 바람에 영업을 정지당했다고 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드문드문 남은 검거나 노릇한 개털들을 보았다.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는 개들이, 녹이 슨 창살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는 모습이 생각났다. 눈은 겁에 질려 있었고 입가에선 멀건 거품이 끓어서 턱까지 흘렀다.
    기사는 사장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주었다. 사장은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난로에 연탄을 채우고 집게로 쑤석였다.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서 간식을 준비할 모양인 듯했다. 나는 기사가 가져온 상자들을 하나씩 풀었다. 몇몇 상자에는 네모난 갑에 포장된 220볼트짜리 알전구가 담겨 있었고, 몇몇 상자에는 소켓이 달린 긴 전선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마른걸레 두 장을 가져왔다. 기사는 상자에 든 것들을 작업대 위에 쏟아서 왼쪽에는 등을, 오른쪽에는 전선과 전구를 놓았다. 전구를 끼우고 등을 닦는 일은 점심 전까지 마쳐야 했다. 나는 전구를 소켓에 끼우다가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전구를 깨뜨렸다. 파편들이 손바닥을 찌르면서 손에는 피가 묻었다. 나는 오른쪽에 보이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서 연고와 붕대를 찾았지만 베니어판에 붙박인 크고 작은 연장만 보일 뿐,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장은 약국에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기사는 조끼 주머니에서 은빛 핀셋을 꺼냈다. 유난히 광이 나는 핀셋이었다. 기사는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손에 박힌 파편들을 하나씩 뽑았다. 눈이 감기면서 이가 다물렸고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기사는 파편을 다 뽑고 귤색 손수건을 꺼내어 피를 닦고 손을 동여매 주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던 감자들이 이제는 타는 냄새를 퍼뜨렸다.
    “정신 단단히 차리래이.”
    기사는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소리로 말하더니 그을린 감자를 작업대에 놓았다. 나는 피가 멎을 때까지 기사가 하는 행동을 보았다. 기사는 껍질도 벗기지 않은 감자를 한 입에 넣고는 전구를 소켓에 끼웠다. 속도는 나보다 빨랐고 억지로 손에 힘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노동에 어지간히 단련된 사람이었고, 먹성도 좋았다.
    나는 피가 얼마큼 멎자 걸레를 들고는 연등을 닦았다. 마대 하나 분량의 등을 닦으니 밖에서 트럭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은 약봉지를 들고 와서는 간단히 응급치료를 했다. 연고 바른 손이 끈적였고, 붕대를 두르니 다한증이 심해져 피보다 땀이 나왔다. 사장은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저녁에는 부모와 만나야 했고, 선물도 필요했다. 사장은 겉이 탄 감자를 물더니 기사를 돕기 시작했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로 떠오를 때여서 모두의 손길은 바빠졌지만 그런다고 능률이 오르진 않았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다 닦은 등들을 상자에 넣다가 불현듯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들었던 소리보다 작고 희미한 지저귐이었다. 나는 느슨해진 붕대를 조이면서 발치에 맴도는 아기 참새를 보았다. 눈을 다쳤는지 피가 말라붙은 왼눈이 감겨져 있었고, 한쪽 다리가 부러져서 섰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공장 처마에 있던 둥지에서 떨어진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처마에 닿을 정도로 높은 사다리는 없었고, 원래는 트럭에 실려 있던 고가 사다리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참새를 의자에 올려놓고 감자 껍질을 주었다. 참새는 부리를 감자에 묻히다가 이내 고개를 들더니 병아리 울듯이 삐익, 삐익 소리를 냈다. 기사와 사장도 의자에 눈길을 주었지만 눈빛의 느낌은 동정보다 무심에 좀 더 가까웠다. 참새는 한참 동안 울다가 나중에는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나는 등을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봉했다. 닦아야 할 등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실내로 참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유독 증폭되어 들렸다.

    작업을 끝마친 시각은 한 시 반이었다. 나는 상자와 마대를 트럭 뒤에 싣고 시청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팥빵과 사이다가 들려 있었다. 사장은 날 저물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고 했고, 기사는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단맛이 진한 빵을 입속에 넣었다. 인도와 차도로 햇볕이 가득 쏟아졌고, 나들이 차림인 사람들이 미소 띤 얼굴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시청은 네거리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둥글고 푸른 지붕이 씌워져 있었고, 건물 중앙에는 ‘사람을 위하고 섬기는 복지 도시’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트럭을 인도에 바짝 붙여 세우고 나는 시청 앞을 둘러보았다. 한낮이라서 차량은 드문드문 보였고 두 곳의 인도에는 초록빛 잎들을 단 도로수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기사는 전선 상자를, 나는 마대와 노란색 띠들이 담긴 상자를 바닥에 놓았다. 사장과 기사가 소형 사다리에 오르내리면서 나무들 사이로 전선을 잇는 동안, 나는 전구가 매달린 부분에 연등을 걸었다. 전구가 밖으로 보이지 않도록, 전선과 연등이 맞닿게 철사로 연결한 다음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매듭을 지었다. 그러고는 연등 아래로 매달린 긴 끈에 노란색 띠를 묶었다.
    다섯 시가 되어서 우리는 시청 앞 작업을 마쳤다. 날이 저물어서 하늘에는 파란색 대신 오렌지색이 돌았다. 사장은 외투와 남방을 벗어서 허리에 대충 감았다. 나와 기사는 갓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저마다 손에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있었고, 옷차림은 어두운 무채색 계통이었다. 실사로 찍어낸 현수막에는 ‘아이들을 구하자, 아이들을 구하자, 아이들을 구하자’라는 문구가 가로로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그들은 회색빛 벽돌로 쌓은 담까지 다다르자, 일제히 입 모아 현수막에 쓰인 문구를 반복해 외쳤다. 외침은 해질 무렵의 평온과 고요를 간단히 지워냈다. 기사는 담배 맛이 썼는지 별로 타지도 않은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나는 몸이 끈적이는 것을 느끼며 손발에 치미는 통증을 감지했다. 사장이 더위에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일하자고.”
    우리가 트럭에 오르니 사람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느리게 몰려갔다. 시청 우측에는 잔디가 자라기 시작한 타원형 광장이 있었다. 시청 앞은 조용해졌고, 바람이 불어서 연등들이 좌우로 출렁거렸다.
    트럭이 시청 왼쪽으로 왔을 때 사장 핸드폰이 울렸다. 사장은 사이다를 마시면서 전화를 받다가 나중에는 억양을 높였다. 상대는 남자인 듯했고 음성은 멀리서 들어도 아령처럼 둔중하게 느껴졌다. 사장은 작업 일정을 늦추어도 된다는 답을 받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하루에 일을 끝내지 못하므로 내일도 사람을 고용해야 했고, 그러려면 일당으로 줄 돈이 더 필요했다. 사장은 음료수 캔을 구기고는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사장의 지시를 받고 트럭을 시청 앞으로 몰았다. 사장은 턱으로 전선을 가리켰다.
    “저거 다 떼버려.”
    나와 기사는 차에서 내렸다. 끈을 떼는 이유를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사장은 창문을 닫더니 의자를 뒤로 젖히고 라디오를 틀었다. 내가 묶은 띠들은 비교적 느슨했지만 기사가 매듭지은 것들은 꽉 짜여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커터를 꺼내어 매듭진 부분을 하나씩 끊었다. 잘려 나간 끈들은 주머니로 들어갔고 일부는 바람에 날려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흩어졌다. 리본을 거두는 작업은 등을 달 때보다 속도가 느렸고 그다지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기사는 음료를 사오겠다면서 자리를 뜨더니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청사 건물을 건너다보았다. 주말이라 경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주말이 지나도 누군가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 공장으로 돌아왔다. 기사는 사장에게 일당을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장을 나갔다. 사장은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장판에 누웠고 나는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부피가 늘어나게끔 종량제 봉투 안에 후렉스 천을 두르고, 죽은 참새와 찢어진 마대를 처넣었다. 그다음에는 분무기에 물을 채워서 바닥에 뿌린 뒤, 젖어서 엉긴 모래들을 쓸어서 문 밖으로 밀어버렸다. 사장은 내가 상자들을 쌓아서 끈으로 묶는 것까지 보고는 일어났다. 그가 준 돈은 십만 원으로 약속한 일당보다 만 오천 원이 많았다. 치료비로 웃돈을 얹어 준 건지, 친구의 기념일이라서 선심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네는 언제 봐도 바지런해서 맘에 들어. 요즘에는 자기가 부당 대우를 받는다고, 제대로 일 안 하고 돈이나 뜯는 새끼들이 많잖아. 다 빨갱이들이야.”
    “네.”
    “내일도 나올 수 있지?”
    나는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새 붕대를 손에 감았다. 내일도 나오고 싶었으나 상처가 도질 것 같았고,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교회에 가보고 싶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잠깐이라도 조용한 공간에 들어가서 머리를 식히고,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싶었다. 나는 붕대와 연고를 약봉지에 넣고, 내일도 공장에 오겠다고 하고는 고개를 거듭 숙였다. 사장이 내 머리를 쓸어 주었다.

    공장에서 나와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곰곰 생각했다. 케이크나 꽃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 같았고 옷이 가장 무난하기는 했으나 부모는 언제나 단벌을 고집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옷을 입고 다녔던 적은 없었다. 나는 역에서 내려서 넥타이와 스카프 따위를 파는 매장을 찾았다. 실내는 더웠지만 혹여 붕대로 감은 손이 직원의 눈에 띌까 봐,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직원은 해사한 얼굴로 물방울무늬가 찍힌 넥타이와 리넨이 재질인 스카프를 보여주었다. 가격은 오늘 받은 일당의 절반이었다.
    역 앞 차도에는 택시가 세워져 있었다. 앞좌석에는 엄마와 아버지가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차갑게 느껴질 만큼 무덤덤한 태도로, 엄마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듯한 이 느낌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도리어 정답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분위기가 근사한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갈빗집으로 택시를 몰았다. 엄마는 왜 옷에 때가 묻었는지, 손은 어쩌다 다쳤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물었다. 나는 오늘은 등 다는 일을 했고, 전구를 끼우다 손을 다쳤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돌연 붕대에 시선을 주더니 입을 작게 벌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만의 조용한 감정 표현법이었다. 나는 사장이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돈을 더 주었다고 말했다.
    식당은 곳곳에 연기가 퍼져서 자욱했고 고기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번호표를 뽑고 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배가 고팠고, 초대를 받지 않았는데 불청객으로 온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장소를 옮기려다 결국 티브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식탁은 기름과 국물이 제대로 닦이지 않아서 더러웠고, 티브이 음향을 크게 틀어 놓아서 귀가 멍멍했다. 나는 서빙하는 아주머니에게 한우를 말했지만, 아버지는 삼겹살을 시켰다. 핏기가 드물고 비계 많은 고기가 불판에 올라오자 우리는 술을 마셨다. 엄마는 고기를 잘라서 양파가 담긴 앞 접시에 놓았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듯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사납금을 갚지 못했다는 얘기와 새벽에 운전을 하다가 덤프트럭에 받힐 뻔한 얘기, 삼십오 년 전에 엄마와 만나서 결혼한 얘기를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그는 오래전에 공돌이였고, 엄마는 공순이였다. 둘은 오월 중순에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은 강원도로 갔다. 그해에는 남쪽에서 봉기가 있었고, 정부가 군인들을 동원해 강경 진압을 하던 때였다. 아버지가 소주를 더 시키면서 말했다.
    “거기로 신혼여행 갔으면 큰일 날 뻔했지. 운이 좋았어.”
    석쇠를 새것으로 바꾸니 티브이에서는 뉴스가 나왔다. 눈가에 애교살을 넣은 앵커는 차분한 어조로 방금 올라온 속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바다색이었던 배경이 검게 바뀌면서 네모난 건물이 불기둥을 뿜어 올리며 폭발하는 광경과, 건물이 부서져 콘크리트 골조만 남은 모습이 차례로 나왔다. 건물은 폐수를 담은 저장조를 보관하는 곳인데, 폐수 배출구에 용접을 하다가 밀폐된 가스와 용접 열이 닿아서 참사가 났다고 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백 명이 넘었고, 경찰과 소방관은 현장에 소수만 도착한 상황이었다. 공단은 90년대 이후로 노후화가 한참 진행된 곳이라 교통편이 나빴고, 인근에는 경찰서와 소방서도 없다고 했다. 소방복을 입은 이들이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들추며 사람을 찾았으나 대부분 온몸이 피범벅인 채로 죽어 있었다. 일손은 부족해 보였고, 혼란한 상황을 정리할 만한 질서는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브라운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소리는 전보다 한결 낮아져 있었고 고기가 석쇠에서 익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누군가는 흥미와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누군가는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누군가는 경멸이 어린 미소를 머금고 불길과 연기가 너울거리는 화면을 주시했다.
    엄마도 고기를 자르던 손길을 늦추고 고개를 들었다. 가늘던 눈이 동그래지면서 입가로 탄식이 나왔다. 나는 가위를 들고는 겉면이 그슬리기 시작한 고기를 잘랐다. 속보가 끝나고 올여름이 여느 해보다 무더울 거라는 소식이 나왔다. 사람들은 눈길을 불판에 옮겨서 다시 젓가락질을 했다. 흥미와 두려움과 경멸은 모두 무관심 속으로 녹아든 듯했다. 아버지가 차분히 말했다.
    “운이 좋아야 해. 운이.”
    불판에 남은 고기가 사라지자 얼음을 동동 띄운 냉면이 나왔다. 아버지는 고혈압이라서 과식을 금해야 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어금니를 쑤시다 언제쯤 돌아올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이쑤시개를 분질렀다. 가능한 혼자서 지내고 싶었고, 집으로 가면 매일매일 부모의 눈치를 볼 것만 같았다.
    나는 당분간 취업할 생각이 없었고, 공부를 한다거나 이성과 교제할 마음도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나는 방에서 컴퓨터만 하거나,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는 죽은 듯이 잤다. 가끔은 창밖에 얼굴을 내밀고 구름 흘러가는 모습과, 모르타르가 벗겨진 주변의 벽돌집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침이면 야간 운행을 마치고 와서 뻗은 아버지를, 새벽 무렵이면 일하다 온 엄마를 보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나왔고, 그 뒤로 부모와 연락을 한 적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
    아버지는 벨트를 풀고 화장실로 갔다. 나는 스포츠 뉴스를 보다가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주인은 이미 계산이 끝났다고 하더니 연녹색 사탕을 나에게 주었다. 윤기가 흐르는 포도 맛 사탕이었다. 나는 사탕을 우물대며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니 부모가 함께 나왔는데 둘 다 걸음이 흐트러져 있었고 자꾸만 헤프게 웃었다. 나는 둘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역전으로 가는 동안 서늘한 바람이 흘러와 머리를 적셨고, 라디오에서는 봄 느낌이 물씬 우러나는 피아노곡이 나왔다. 유키 구라모토 아니면 히사이시 조가 연주하는 곡 같았는데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어느 때부턴가, 기쁨을 얻으려는 마음보다는 불쾌를 피하려는 마음이 더 커진 듯했다.
    차들이 모여든 국도로 나오니 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는 고모부였다. 엄마는 음성을 낮추고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손으로 핸드백을 뒤적거렸다. 필기를 하려고 볼펜과 종이를 찾는 것 같아서 나는 불을 켰다. 엄마는 종이가 코밑에 닿도록 바짝 당기고는 글씨를 적었다. 엄마의 입에서 병원 주소와 전화번호, 병실 위치와 몸 상태에 대한 말이 나왔다.
    고모는 아침에 홀로 모텔에 들어가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다음,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 잠자고 있었다고 했다. 욕조 주위에는 조개와 모래가 흩어져 있어서 어딘지 바닷가 풍경과 닮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녀는 의식이 사라진 가사(假死) 상태에 다다르려 했지만 다행히 치명적인 해를 입지는 않았다. 고모부는 경찰까지 동원해서 찾아낸 고모를 병원에 입원시키고는 우리에게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
    엄마는 전화를 끊더니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이마를 차창에 기댔다. 나는 목적지에 택시를 세우고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다. 병원은 차로 두 시간을 가야 할 정도로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고모는 지금 의식을 잃기는 했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고모가 수면제를 먹고 물속에 들어가는 행동을 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부모는 몇 번은 금일봉을 들고 병원으로 찾아갔지만 최근에는 방문할 여유를 낼 수가 없었다. 그곳에 가려면 새벽에 잠잘 시간과 지갑에 든 돈을 얼마큼 지불해야 했다.
    엄마는 불을 끄고 종이를 접어서 핸드백에 넣었다.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할증이 풀리는 아침 시간대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모부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는 내일이 아니라, 월요일에 병원에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역 앞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주고는 차에서 내렸다. 엄마는 내려서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손에 닿는 촉감은 따뜻했지만 집으로 가면 이 느낌이 사라질 듯했다. 어떤 온기는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만 생길 수 있었고, 나는 정이나 교감보다 그러한 거리를 더 원했다.

    자정 무렵이면 건물 둘레에는 술 먹고 떠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거렸다.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와 맥주를 사고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은 호프나 국밥집 안에서 술을 마셨지만 나로선 그만한 여유를 즐길 마음이 없었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다리를 꼬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도 싸움이 났는지 맥주잔 깨지는 소리와 플라스틱 탁자를 뒤엎는 소리, 고함과 비명이 간간이 들려왔다. 손님과 손님이 뒤엉켜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손님과 직원이 서로를 붙잡고 살기 어린 개처럼 으르렁거렸다. 싸우는 손님들 중에는 피부가 검거나, 앞니가 입술 바깥으로 뻐드러져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살면 어디서나 볼 법한 광경이라 공포도 흥미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그들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느낄 멀미의 무게만 짐작될 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다가, 한 달 전 이곳에서 고졸과 소주를 마셨던 것을 떠올렸다. 그날은 호프집 유리창이 의자에 맞아서 박살이 났고, 누군가는 쇠파이프로 자판기 두 개를 부숴서 그 안에 있던 콘돔과 껌을 들고 도망을 쳤다. 경찰이 부대 단위로 출동했는데도 우리는 파라솔 아래 있었다. 주위에 파편이 튀고 소음이 컸지만 별다른 동요 없이 술을 마시고, 통조림에 든 고등어를 먹었다. 고졸은 물류창고에서 일하다가 왔다고 했고, 나는 예식장으로 가서 선팅을 하고 온 참이었다. 고졸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었는데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가 살았던 곳에서는 대게가 특산물이라는 것과, 여자애들이 고등학생만 되면 대부분 엄마가 된다는 얘기는 역겹게 들렸다. 나는 보지가 더러운 년들이라고 욕을 했다.
    소란이 가라앉을 때쯤 우리는 소주와 안주를 다 먹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춥고 혼란한 밤이었다. 고졸은 이곳은 일거리가 부족하므로 조만간 지방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삼촌을 따라다니면서 당분간 용접 일을 할 모양인 듯했는데 보수는 괜찮아 보였다. 나는 달비계를 타고 고공에서 선팅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다지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졸은 편의점에 들어가더니 소주와 땅콩을 사와서 테이블에 놓았다. 나는 고졸이 끊어온 영수증을 보고 그에게 삼천 원을 주었다.
    “그렇게 일하다 죽으면?”
    고졸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머리를 젖히며 웃었다. 호프집 주인과 경찰차에 타려던 경찰이 우리를 보았다.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부시게 반짝였다. 고졸은 종이컵을 테이블 밑으로 버리고 소주를 병째로 마셨다. 그는 목마른 사람처럼 보였고, 영영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가진 듯도 했다. 그의 팔뚝에 난 화살 문신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나는 그런 거 겁 안 내요……. 그래도 가능하면 살 만큼 살다가 일 안 하는 날에, 편안히 떠나고 싶어요. 햇볕 따뜻하고 바람 좀 부는 날이면 좋겠지.”
    나는 맥주를 바닥에 쏟았다. 불에 타서 골조만 남은 건물이 생각났다. 화면에 나왔던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두꺼워 보였고, 온몸이 으깨져 모자이크된 모습으로 들것에 실렸던 사람들 중에는 아저씨들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도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에 들어갔다.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고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의 수는 백 명 미만이었다. 구조 작업은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었으나,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발끝과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단순히 저리거나 쑤시는 느낌이 아니라 온몸에 마비감이 들고, 숨 쉬기 거북할 정도로 견뎌내기 힘든 통증이었다. 나는 팔걸이를 붙잡고 겨우 일어났다.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컵과 병이 부서져 바닥에 조각으로 남았고, 덩치 큰 남자들이 서로의 얼굴에 피가 나도록 주먹질을 퍼붓고 있었다. 싸움이 나날이 일어나는 곳이라 오늘은 왠지 경찰도 출동하지 않을 듯싶었다. 물론 그들이 온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제대로 정리된 적은 드물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걷다가 전신주 상단에 붙어 있는 검은색 물체를 발견했다.
    며칠 전에 새로이 설치된 감시 카메라였다.

    건물에 올라오니 통증은 사라진 대신 몸에서 추위가 느껴졌다. 셔츠와 속옷이 땀에 흠뻑 젖어서인지 차디찬 물속에 잠시나마 다녀온 느낌이었다. 나는 실내에선 조심히, 더디게 걸어야 한다는 내규도 잊고 발에 힘을 주면서 걸었다. 힘을 주지 않았다가는 앞이나 뒤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듯했다. 나는 잠긴 문을 열고는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앉았다. 시각은 열두 시 반이었고, 창가로 가로등 불빛이 흘러와서는 책상과 침대 끝을 비추었다. 조등(弔燈) 같은 불빛이었다. 붕대를 풀고 양말을 벗으니 손발이 벌겋게 부어서, 바늘로 찌르면 피를 뿜으면서 그대로 터질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입었던 옷들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고 의식은 찬물로 몇 번은 씻어낸 것처럼 맑고 투명했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끙끙거리다가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다른 방에도 울릴 만한 소리였는데도 아무런 응답도, 날이 선 항의도 없었다. 모든 방들은 시신만 덩그러니 남은 관 속처럼 느껴졌다. 몇 번 더 벽을 두드리니 앞쪽 방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목이 굵고 아래턱에 수염이 무성한 사람이었다. 소리가 모든 방들을 가로질러 들려서 모두의 귓가에 자극으로 남은 듯했다. 나는 상대를 뚫어지게 보다가, 무언가에 굴복하는 느낌으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상대는 기분이 나쁜지 씩씩거리다가 벽이 울리도록 방문을 닫았다.
    창가에 비치던 가로등 불빛이 일순 옅어지자 방 안에는 어둠이 깔렸고, 금속성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나는 잠을 자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가,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렸다. 여섯 살인가 일곱 살 무렵이었는데, 시골에 내려가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놀다가 깊은 물속까지 들어간 적이 있었다.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용기 때문이었는지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고 물속을 위험한 곳이라 여기지 않았던 듯했다. 콧속에 물이 들어오고 발밑에 더 이상 닿는 것이 없었는데도 나는 더 밑으로 내려갔고 그러다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민물 특유의 향기가 시체 썩는 냄새처럼 느껴졌고, 입에도 물이 들어와 혓바닥을 적셨다. 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는 다만 반투명한 기포로 바뀌어, 환한 햇볕이 부서지는 수면으로 느리게 떠올랐다. 물속을 헤젓던 손짓과 발짓이 점점 느려졌고 배 속에 물이 차올랐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자갈돌이 깔린 곳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 준 것인지 아니면 의식이 흐려지는 중에도 온 힘을 다해서 뭍으로 올라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주위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햇볕이 정수리를 쪼고 있었다. 나는 속이 메슥거려서 나중에 위액이 나올 때까지 자갈돌에 먹은 것들을 다 토했다. 속을 깨끗하게 비우니 코에서 콧물이 흘렀고, 두 손이 떨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몇 차례 소리를 질렀다. 물가를 거슬러 올라가면 외갓집을 비롯해 슬레이트를 지붕으로 씌운 가옥들이 여러 채 모여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가을볕이 머리를 계속 두드렸고 눈앞에선 잠자리 두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무한(∞)의 기호를 그리듯 떠다녔다.
    나는 엉덩이가 배겨서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작업을 할 때 모았던 노란색 띠들이 손에 가득 잡혔다. 내일은 아침부터 일하러 나가야 했고, 저녁이 되어도 교회에 들르지는 못할 듯했다. 나는 띠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천장을 보고 있으려니 방이 더욱 압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벽을 때리고 잘 듯했고, 그래도 사람이 찾아오진 않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오늘은 등을 달러 가는 날이었다.

< (선정평) [소설] 오늘 >

 
    「오늘」은 꼼꼼하게 시공간을 채워 간 안정적인 소설이다. 물론 이 안정감은 우선 신뢰를 주는 안정감이다. “어느 때부턴가, 기쁨을 얻으려는 마음보다는 불쾌를 피하려는 마음이 더 커진” 세대의 일면을 가볍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현실감을 획득하면서 포착하고 있다. “어떤 온기는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만 생길 수 있었고, 나는 정이나 교감보다 그러한 거리를 더 원했다”는 말을 따뜻하고 살가운 엄마를 향해 읊조리는 청년을 통해, 생활고에 찌든 부모의 모습을 연민하면서도 그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요즘 세대의 쿨한 면모 역시 무게감을 획득한 채로 포착하고 있다. 이대로도 충분히 안정적이며 완결성을 갖춘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옆방의 고졸이나 등을 다는 일의 의미 등 청년을 둘러싼 사정을 좀 더 유기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면 안정감 위에 역동적 무늬를 새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소영현 / 문학평론가)

조영한 (소설가)

백모래 왜 눈에 붕대 감았는지
 

– 1989년 안산 출생. 2013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