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AYAF 4차 선정작 / 소설] 오늘
오늘은 등을 달러 가는 날이었다. 방에서 나오니 휴지와 바구니, 수건을 손에 든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밤새도록 공부를 하거나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복도를 나와서 사물함에 있는 운동화를 신고 계단참으로 내려갔다. 건물 내 유일한 흡연 구역이라 사람들이 모여 둘레가 희뿌예지도록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출근하는 중이었는지 목소리에 잠기가 배어 있었고 호흡은 그리 고르지 않았다.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역에서 내리니 하늘은 해가 비쳐 밝아져 있었다. 공장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진 지역에 있어서 한동안 걸어가야 했다. 나는 역 앞 편의점에서 탄산수 한 병을 사고는 밭들이 보이는 쪽으로 걸었다. 기사는 우리보다 먼저 공장에 와 있었다. 사장은 공장 문을 열었고 나와 기사는 가져온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건물은 북쪽 방향으로 지어진 탓인지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비릿한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듯했다. 얼마 전까지는 공장이 아니라 개들을 모아서 도축하고 삶고 팔던 곳이었다. 사장의 말로는 장사가 신통치 않았던 데다가, 버려진 개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서 도축하는 바람에 영업을 정지당했다고 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드문드문 남은 검거나 노릇한 개털들을 보았다.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는 개들이, 녹이 슨 창살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는 모습이 생각났다. 눈은 겁에 질려 있었고 입가에선 멀건 거품이 끓어서 턱까지 흘렀다. 작업을 끝마친 시각은 한 시 반이었다. 나는 상자와 마대를 트럭 뒤에 싣고 시청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팥빵과 사이다가 들려 있었다. 사장은 날 저물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고 했고, 기사는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단맛이 진한 빵을 입속에 넣었다. 인도와 차도로 햇볕이 가득 쏟아졌고, 나들이 차림인 사람들이 미소 띤
얼굴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 공장으로 돌아왔다. 기사는 사장에게 일당을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장을 나갔다. 사장은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장판에 누웠고 나는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부피가 늘어나게끔 종량제 봉투 안에 후렉스 천을 두르고, 죽은 참새와 찢어진 마대를
처넣었다. 그다음에는 분무기에 물을 채워서 바닥에 뿌린 뒤, 젖어서 엉긴 모래들을 쓸어서 문 밖으로 밀어버렸다. 사장은 내가 상자들을 쌓아서 끈으로 묶는 것까지 보고는 일어났다. 그가 준 돈은 십만 원으로 약속한 일당보다 만 오천 원이 많았다. 치료비로 웃돈을 얹어 준 건지, 친구의 기념일이라서 선심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장에서 나와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곰곰 생각했다. 케이크나 꽃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 같았고 옷이 가장 무난하기는 했으나 부모는 언제나 단벌을 고집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옷을 입고 다녔던 적은 없었다. 나는 역에서 내려서 넥타이와 스카프 따위를 파는 매장을 찾았다. 실내는 더웠지만 혹여 붕대로 감은 손이 직원의 눈에 띌까 봐,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직원은 해사한 얼굴로 물방울무늬가 찍힌 넥타이와 리넨이 재질인 스카프를 보여주었다. 가격은 오늘 받은 일당의 절반이었다. 자정 무렵이면 건물 둘레에는 술 먹고 떠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거렸다. 건물에 올라오니 통증은 사라진 대신 몸에서 추위가 느껴졌다. 셔츠와 속옷이 땀에 흠뻑 젖어서인지 차디찬 물속에 잠시나마 다녀온 느낌이었다. 나는 실내에선 조심히, 더디게 걸어야 한다는 내규도 잊고 발에 힘을 주면서 걸었다. 힘을 주지 않았다가는 앞이나 뒤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듯했다. 나는 잠긴 문을 열고는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앉았다. 시각은 열두 시 반이었고, 창가로
가로등 불빛이 흘러와서는 책상과 침대 끝을 비추었다. 조등(弔燈) 같은 불빛이었다. 붕대를 풀고 양말을 벗으니 손발이 벌겋게 부어서, 바늘로 찌르면 피를 뿜으면서 그대로 터질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등을 달러 가는 날이었다. < (선정평) [소설] 오늘 > 조영한 (소설가) – 1989년 안산 출생. 2013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문장웹진 2016년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