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8. 수요일 카인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난 당최 랩을 들으면 뭔 소리 하는지를 모르겠어" "느리게 하건 빠르게 하건 그게 그거 같아 " "랩 그까이거 그냥 빠르게 하면 잘하는 거 아냐?" 이럴 때마다 가수 "아웃사이더" 를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랩은 빠르게 가사를 읽는 것이다' 수준의 이해를 가진 대중들에게 어느 누구도 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몇몇 것들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기까지 합니다. 랩을 이해시키려는 시도의 대부분이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는 (사실 일종의 자기 모순적인 실수를 반복하고도 있지만) "가르치려 드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청자를 일단 무식한 주체로 상정해버리고 유식한 내가 랩에 관해 한 수 지도해주려는 계몽주의(!)스러운 짓을 하려니 듣는 사람 입장에선 달갑지 않겠죠.
그리고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이거 알아뒀다가 나중에 아는 척 하려드는 바보들에게 한 침 쏴주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주길 바래요. 물론, 여태껏 멀리 있던 대중 문화 하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는 좋은 경험이니까 조금만 열린 마음을 부탁드려요. 꾸바닥. 인사 올렸으니 딴지체로 가겠습니다.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필수 개념만 좀 짚어보자. 랩이라는 장르 내에서 쓰이는 속어나 관용구 같은 거야 설명하면 재미없어지는 농담 같은 거고, 듣다 보면 알게 되는 거잖아? 나 스물하나 때는 인터넷에 누가 올려놓은 '랩에서의 슬랭 풀이 사전' 같은 거 디벼보고 그랬는데, 돌이켜 보니까 하나도 쓸모 없더라. 어려운 용어 최대한 빼고, 그냥 직구 던진다. 알아서들 홈런 때려라. 헛 똑똑한 똘똘이 스머프들이 젠체 하며 말하곤 하지. "랩은 라임과 플로우야." 근데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좀 말이 길어져. 그나마 라임은 간략하게 설명하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플로우는 괜히 또 길어지곤 해. 그런 설명 중에서 이해하기 쉽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설명이 "라임과 플로우는 운과 율, 그러니까 운율이다"라고 하는 설명이야. 1차적으로 번역하면 라임rhyme이 운韻에, 플로우flow가 율律에 맞기는 해. 일단 이렇게 이해하고 가보자고. 라임(Rhyme)라임은 운이다. 이건 랩을 시문학에 빗대어 설명하는 거고, 사실은 이게 1차적으로는 맞아. 운이 뭐야? 반복되는 발음을 규칙적으로 넣는 시의 기술이잖아? 랩은 문학에서 유전자를 이어 받았고, 지구상 대다수의 언어권에서는 거의 무조건 운의 전통이 발견되기에, 랩은 문학에서 운을 가져와 라임이란 형태로 발전시켜 버렸어. (운의 전통이 없는 어문학은 기껏해야 교착어인 한국어와 히브리어 정도일 것이야) 반복되는 발음을 규칙적으로. 첫 번째 예를 들어보자. 예시는 투팍 디비기 글에서 틀었던 'Brenda's Got A Baby'의 도입부 4마디야. 관련기사 : 시인인가 운동가인가? 2pac (클릭)
강조해둔 부분을 보면, 같은 발음이 마디의 끝마다 들어있는 게 보이지? 들을 때도 식별이 가능해. 일반적으로 래퍼들은 이런 부분에서 끊어주거나, 강조를 해주거나 하거든. 이게 시문학과 초기 랩에서 사용한 라임이야.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두 번째 예. 이번에도 투팍 거 한 번 써보자. 위의 곡은 투팍의 초기 가사고, 이젠 좀 랩을 한지 꽤 오래된 후에 쓴 가사야. 투팍 디비기 2회에서 틀었던 'Changes'의 2절 도입부 8마디야. * I see no changes all I see is racist facesmisplaced hate makes disgrace to races We under I wonder what it takes to make this one better place, let's erase the wasted * 이번엔 이중구조고, 마디의 끝이 아니라 수시로 라임이 나오는 라임 속사포고, 거기다 한 음절이 아니라 다음절로 이용이 되는 구조야. 밑줄을 잘 봐주시라. 이걸 좀 더 분석하면 [ais] 발음의 반복과 함께 [s] 발음 자체도 엄청 자주 나옴을 알 수 있어. 이 부분은 정말 걸작 라임이야. 중간에 under-wonder의 작은 라임 구조도 쓰면서 [ais]와 [s]의 발음 반복을 모조리 살리면서 어법을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내고 있어. 투팍, 고수였지. 그리고 이제 보게 될 세 번째 예는, 철저하게 랩에서만 볼 수 있는 라임이야. 랩은 라임을 이 정도까지 발전 시켰어. 이번엔 에미넴을 보자고. 영화 [8 Mile]의 OST에 있는 'Lose Yourself]의 3절 앞부분 4마디와 뒷부분이야. * No more games I'ma change what you call rageTear this muthafuckin' roof off like two dogs caged I was playin in the beginnin the mood all changed (중략) Stay in one spot another day of monotony's gotten me Mom I love you but this trailer's got to go This may be the only opportunity that I got * 이젠 단어 하나가 아니라 문장 성분 내에서 이루어지는 연음을 이용해 유사발음을 찾아내는 정도까지 발전했어. 처음은 쉽게 알아볼 수 있겠지? [u/o/aig]의 발음을 마디 끝에서 반복시켜줬어. 뒤의 것은, 복잡해지지. [ai/*/*/ot]의 발음을 반복시켰어(*는 무슨 모음이든 상관 없이 1-4음절만 맞췄지. 물론 3음절도 같은 계열의 모음이긴 해). 그러면서 1, 3번째 마디에서는 앞부분에도 하나씩 배치하고, 7번째 마디에서는 마디 끝에 2연속으로 배치하고. 내 레이더 안에서는, 에미넴이 가장 라임 괴물이야. 그리고 그가 쓰는 최고난이도의 라임은 현재 랩이 와있는 라임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해. 내가 바로 The Real Slim Shady ! 에미넴이다! 이게, 일단 라임이야. 그리고 한국어 랩으로 들어와서의 라임은, 나중에 다시 설명할게. '올바른 번역'이라는 맥락이 걸려있어서 이건 좀 복잡해져 플로우(Flow)플로우가 율격이다. 이건 랩을 시문학에 빗대어 설명하는 거고, 그럼 자체적으로 정의하면? 옛날에 엠넷에서 했던 힙합더바이브라는 프로에서 왠 듣보잡 래퍼가 나와서 플로우를 정의한 말이 있어. 그 래퍼는 이전이후 아무런 활동도 보여주지 않은 듣보잡이었지만, 작가들이 써준 게 분명한 그 표현만큼은 제대로였어. 그는 이렇게 말했지. "Flow란 래퍼 자신의 호흡법이다." 랩을 어디서 끊어주고, 어디는 이어주고, 어디는 빠르게, 어디는 느리게 하는, 사실상 랩의 거의 전부를 이르는 말이었어. 지금도 이 정의는 탁월하다고 생각해. 위의 라임 정리를 보면서 같이 들어주었다면 단박에 깨달았겠지만, 래퍼는 라임을 배치한 부분에서 보통 호흡을 끊어줘. 설사 플로우를 이어가더라도 약간의 휴지를 주거나, 의미론 상으로 쉬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고. 특별히 의도하지 않는다면 라임이 위치한 부분과 리듬 마디가 끝나는 위치가 일치하면 끊어주는 게 보통의 플로우야. 그래서 랩이 시작되던 초창기에는 마디 끝마다 라임 하나씩 배치하고, 그 부분은 꼭 끊어주곤 했어. 단조롭던 시절이지. 당시 플로우는 그래서 라임과 마디가 끝나기 전 음절들을 어떤 리듬으로 뱉어내느냐 하는 정도로 구별이 될 뿐이었어. 그러나 이젠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었기에 래퍼수만큼의 플로우가 존재하게 되었지. 리듬. 그래 사실 리듬이야! 플로우는 랩이 노래와 구별되는 가장 확실한 지점이야. 노래에는 화성이 있잖아? 하지만 랩은 화성이, 음가가 없어. 래퍼 본인이 음가를 넣는다고 해도 그건 제한적인 시도에서만 가능한 거야.(실제로 멜로딕 랩이 있긴 해) 랩은 화성이 없는, "말"이라고. 그리고 랩은 플로우라는 '리듬'을 만들어서 "리듬을 얻은 말"이 돼. 아까 호흡법이라고 했지? 어디서 어떻게 끊어주는 것을 반복하는 거니까, 결국 플로우는 래퍼가 선택한 리듬이야. 그리고 이 리듬-플로우는 랩이 올려지는 곡-비트의 리듬과 비슷하나 결국 달라. '비슷하나 다른 리듬'을 '호흡법'으로 만들어내 '비트 위에 흐르듯' '올리는' 게 랩이 되는 거지. 이런 개념에서 이름을 흐름-플로우-Flow로 명명하게 된 거야. 빠르고 느린 완급 조절 + 라임의 디자인과 배치 + 호흡으로 끊어주는 리듬 창조= 플로우 가 되는 거지. 심플하다. 총정리를 해보자. 라임 - 유사 발음의 반복으로 리듬감과 언어유희를 만들어냄 플로우 - 호흡의 조절로 리듬 구조를 만들어내 '말'에서 '랩'을 탄생시키는 랩의 총체적 구조 뭔가 아리까리 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니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지성을 가진 딴지스들의 독해력을 믿어. 자 그럼 숨 한번 돌렸다가 이 개념들이 한국어 랩에 번역/이식된 결과와 그 공/과를 간략히 설명해볼게. 쓰면 쓸수록 진짜 계몽주의성 글 같아지지만 어쩔 수 없다. 죄송하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영화 [8 Mile]의 OST에 실린 Eminem의 [Lose Yourself]를 링크할게. 이 곡은 느린 만큼 정교한 플로우가 의미 전개 구조와 딱 맞아떨어지면서 라임의 기술적 수준도 높고 동시에 의미 구성도 성공한 명작이야. (가사와 해석은 이번에도 DanceD.wo.to참조. 댄스디 이 분 참 좋으신 분)[Intro]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이봐, 만약 너에게 네가 원했던 모든것을 To seize everything you ever wanted in one moment Would you capture it or just let it slip? [Verse 1] There i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Moms spaghetti he's nervous But on the surface he looks calm and ready To drops bombs, but he keeps on forgetting What he wrote down, the whole crowd goes so loud He opens his mouth but the words won't come out He's choking, how? Everybody's jokin' now The clock's run out, time's up, over BLOW! Snap back to reality, oh there goes gravity Oh, there goes Rabbit, he choked, he's so mad But he won't give up that easy, no he won't have it He knows his whole back's to these ropes It don't matter, he's dope, he knows that But he's broke, he's so sad that he knows When he goes back to this mobile home That's when it's back to the lab again, yo This whole rhapsody, better go capture this moment And hope it don't collapse on him [Chorus]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oh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Cuz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You better lose yourself in the music The moment you own it you better never let it go, oh You only get one shot, do not miss your chance to blow Cuz opportunity comes once in a lifetime, yo You better [Verse 2] This world is mines for the taking Make me king as we move toward a new world order A normal life is boring But superstardom's close to post mortem It only grows harder, homie grows hotter He blows us all over, these hoes is all on him Coast to coast shows, he's known as the Globetrotter Lonely roads, God only knows He knows he's grown farther from home, he's no father He goes home and barely knows his own daughter But hold ya nose cuz here goes the cold water These hoes don't want him no mo', he's cold product They moved on to the next shmo who flows Who nose dove and sold nada And so the soㅕㅣ proper His toll, it unfolds and I suppose it's old, partner But the beat goes on Duh duh doe, duh doe, dah dah dah dah [Chorus] [Verse 3] Tear this muthafuckin' roof off like two dogs caged I was playin' in the beginnin', the mood all changed I've been chewed up and spit out and booted off stage But I kept rhymin' and stepped writin' the next cipher Best believe somebody's payin' the pied piper All the pain inside amplified by the Fact that I can't get by with my nine to five And I can't provide the right type of life for my family Cuz, man, these goddamn food stamps don't buy diapers And there's no movie, there's no Mekhi Pfifer This is my life and these times are so hard And it's gettin' even harder tryin' to feed and water My seed plus teeter-totter Caught up between bein' a father and a pre-madonna Baby momma drama, screamin' on her Too much for me to wanna stay in one spot Another damn or not has gotten me to the point I'm like a snail, I've got to formulate a plot Or end up in jail or shot Success is my only muthafuckin' option, failure's not Momma love you but this trailer's got to go I cannot grow old in Salem's Lot So here I go, it's my shot Feet fail me not Cuz maybe the only opportunity that I got [Chorus] [Outro] 에미넴의 곡 잘 들으셨는가? 참고로 저 곡은 [8 Mile] 개봉 당시 75회 오스카 영화제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지 그럼 이제 상편에서의 라임/플로우 개념의 수입을 디벼보자. 그럼 우리가 우선 즐겨줘 마땅한 한국어 랩, 나아가 한국 힙합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수월해질 터이니. 그런데 일단! 플로우 개념은 수입/번역/이식하는 데에 큰 지장이 없어. '율격'으로 번역하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고. 번역의 처음이자 끝은 '맥락을 고려할 것'이잖아? 플로우는 맥락 상으로도 큰 상관이 없어. 게다가 반 이상은 랩 장르가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개념이기도 해서, 그냥 수입해서 이식하고 그걸로 설명해도 돼. 아무런 부작용이 없어. 그런데, 라임은 좀 달라. 라임을 그대로 운으로 이식하려고 하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해. 바로 한국어 어문학에는 '운의 전통'이 없다는 것. 따라서 맥락을 고려해서 따올 때, 라틴어 계열 어문학에서 rhyme이 했던 역할을 하는 요소를, 한국어 어문학에서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 왜냐하면 이건 국문학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바른 번역이란, 총체적인 차원에서 맥락을 고려해서 번역하는 것이지. 얼핏 보면 rhyme과 韻은 1:1 대응이 가능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는 않아. (1:1 대응이 가능한 것은 중국어와 일본어 어문학에서의 경우야. 뒤에서 다시 설명할 거지만, 한국어 어문학에만은 운의 전통이 없어. 국문학에서 운이 쓰인 것이 한자, 즉 중국 문자로 창작된 한시 장르들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 증거가 될 거야.) 제일 편한 건 맥락 따위 무시하고 그냥 이식해버리는 거야. 이걸 처음 해낸 사람이 김진표지. 이후 통신 동호회, 특히 하이텔의 "검은소리 BLEX"의 회원들이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나우누리의 "Show N Prove"의 회원들이 실전에 발전적용을 시키면서 현재 한국어 랩의 거의 유일한 방법론이 되었어.그럼 어떤 걸 했는지 봅시다. 먼저 김진표의 2집 [JP Style]에서 두 개 뽑아봤어. 입 안에서 발음해보면서 래퍼의 플로우를 짐작해봐도 좋고, 직접; 스트리밍 찾아서 들어봐도 좋고. * 못났어 난 정말 못났어 우리 사랑이 무슨 낙서인 듯 막써소리 높여 악써 너무도 잘 알면서 입이 심해도 이미도 정말 입이 너무도 앞서 * - '내 곁에' 1절 첫 4마디 * 담에 만나 하나 이 밤에 피곤해 잠에 빠진 걸까 아님 맘에생각이 없는 걸까 난해하네 나만 혼자 반해 있는 걸까 내 딴에 우린 서로 사랑하네 간만에 느낀 감정인데 낭만에 취해 보고픈 데 같이 술잔에, 맘을 털어 놓고픈데 멀리 가네 나네 감정을 알고 싶어 니 삶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저 산에, 꽃 한송이라도 되는지 만의 하나 아무 것도 아니라면 바람에, 나를 보내야 하는 건지 만약에란 말은 단지 만약 일뿐 나는 아네 이제 그냥 포기하네 내 안에 내가 화내 오기만을 바라네 * - '나의 그림(My Dream)' 2절 전체 보면 알겠지만 어절 하나나 단어 하나를 가지고 라임을 만들고 있어. 물론 그렇게 하면서 문장구조와 의미구조와 플로우구조가 서로 불일치 한다는 단점이 있지. 이 문제점이 사실 한국어 랩의 고질적인 문제야. 가사를 써서 랩을 해놓으면, 문장의 문법구조와 문장의 의미구조와 랩의 플로우구조가 상이해지고, 그럼 곧 전달력의 저하로 이어져. 위에서 보면 '감정을 알고 싶어 니 삶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저 산에/'로 김진표는 플로우를 끊어주지만, 의미구조는 '감정을 알고 싶어/ 니 삶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저 산에 꽃 한송이라도 되는지/'로 의미가 나뉘지. 이런 식의 불일치가 verse 내내 드러난다면 가사를 보지 않고 듣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전달 받기가 힘든 게 사실이야. 그래서 현재 한국 래퍼 중에는 의미구조와 플로우구조를 가능한 한 일치시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젠 화법이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도 많지. 평서법과 도치법이 어색하게 이어져 있다거나 하는 문제점이. 아무튼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이런 류의 라임 방법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보자. 이식형 라임을 배포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버벌진트(Verbal Jint)의 2001년 EP [Modern Rhymes]에서 하나 뽑아와봤어. 관심병 환자가 틀림없는 버벌진트는 나우누리 SNP의 회원이고 이 EP를 통해 이식형 라임의 (당시로서) 최고 발전 상태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어. (VJ가 이 이식형 라임을 발전-완성을 해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거짓말이야.) *
이미 결론이 나버렸잖아. 아니면 역사의 뒤안길로 흙먼지처럼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 그런데 저게 VJ가 의도한 라임 그대로야. 플로우도 라임을 표현하기 위해 복무하게 만들어놨어. 그리고 여전히 JP가 보여줬던 의미불일치의 단점도 보여주고 있지. 첫 4마디에서 플로우를 끊어놔도, 그 의미는 3번째 마디와는 별개로 5, 6번째 마디와 연결이 돼. 이거 참 문제지. 어쨌든 VJ가 종결지은 2000년도 초반의 방법론은 '모음 중심'과 '각운 중심'이었어. 주로 어절이나 문장성분의 끝에 라임을 배치하고, 모음을 맞추는 방식이었지. 이건 영어 랩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온 거야. 말 그래도 '이식형'이었던 거지. 그러나 연구하는 래퍼는 여럿 있었어. 그중 하나가 P-Type이라는 사람이야. 이 사람의 2집 [The Vintage]는 2008년에 나왔고 당시 피타입의 연구가 어느 수준인지를 확연히 보여주었어. 거기서 한 소절. 여기서는 피타입이 어디서 끊어주었는지도 슬래시로 표시해볼게. * Music City/ 빈티지 1번가/ 즐겨 확실히/ 자 느낌이 어떤가/실의에 빠진 당신이 절실히 원한 곳 여긴 Music City/ 맘을 적시리/ 저 삭막한 도시에선 음악 한 번 듣기가 어려웠겠지 골라봐 낯간지러운 사랑 노래/ 하늘의
별자리/ 높은음자리/ 가슴 속엔 짜릿/함 가득 차리/ 벌써 날/ 사로잡은 건가?/ 스피커 섬 마을/ 꿈 같은 공간/ 확실히 진보하긴 했지. 플로우의 휴지 지점이 의미 단위와 문법 단위와도 어느 정도 일치해. 명사종결형을 쓰면 같은 명사종결형으로 2마디를 더 가주고, 감탄형 용언으로 문장을 끝내줘도 역시 반복하고. 라임 자체도 모음 중심만 쓰지 않고 자음의 발음도 활용해서 라임을 만들어내고 있어. 물론 피타입의 성과 중 가장 주시할 것은 '어법의 반복'을 사용했다는 거야. 이 어법 반복에 관해서 저 뒤에서 다시 설명할게. 이거 중요하거든. 이제 두 명의 괴물(인지 변태인지)을 소개할 거야. 한 명의 이름은 화나. 한 명의 이름은 Jerry. K야.이 둘은 VJ의 적자라고 할 수가 있는데, 모음 중심의 라임을 현존하는 극도로 발전시켜 사용하는 사람들이야. 이들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모음 라임을 사용해서 소개하는 거야. *
어이 없지만... 화나는 저걸 다 살리려고 플로우에서 무진 애를 써. 그 결과 플로우의 휴지가 많지 않고 굉장히 빡빡해지지. ㅓ와 ㅗ 같이 유사한 성질의 모음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쓰는 게 화나의 특징이야. * 자, 지금부터 만나볼 사람들은 한국 힙합이 나아갈 하나의 방향을 잡아가는 힘(을) 가진 과학자. 관찰을 거듭한 우리가 창조한 소리가 울리자 일곱 갈래 강줄기가 바다와 마주친다. 그 화학 작용과, 큰 의지가 발전한 함성과, 완벽한 감동과, 끓는 피로 가득찬 혈관. 반면 앞서있다고 기만적인 말로 실망스런 입만 놀린 자를 어찌할꼬! 자만과 착각만 따라가다가 타락한 가짜야, 착잡한 판단과 발악, 참 같잖다. 박찰 가하자마자 장악한 낮과 밤, 장과 막마다 찬란한 날 따라 찬양하라! * - 소울 컴퍼니의 단체 앨범 [the Bangerz!]의 '아에이오우 어?' 중에서 Jerry. K 파트 '아에이오우 어?'는 각자 한 명씩 모음 하나를 맡아 그 모음을 각운으로 활용해 16마디 라임을 채우는 시도를 했어. 제리케이의 파트에서 마지막 4마디는 상당한 공이 들어간 게 보이는 부분이지. 제리케이도 저런 식의 라임을 써놓고 죄다 살리려고 플로우에서 무던히도 애를 써. 제리케이의 경우엔 플로우의 휴지를 좀 주는데, 문제는 그의 억양이 엄청나게 어색해진다는 것과 자주 어법과 표현 구성이 어지러워진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제리케이의 치명적인 약점이야. 이게 현재 한국어 랩이 하고 있는 주류 라임이야. 심지어 댄스음악을 하는 MC몽조차도 각운 중심의 라임을 사용하지. 따라서 '모음 중심'과 '각운 중심'은 현재 한국어 랩의 라임의 핵심이 돼. 이게 '이식형 라임'인 거, 잊지 않았지? 그럼 이식형 라임을 배격하는 사람은 있는가. 있지. 일단 피타입은 이식형 라임에 발을 반쯤 담가놓고 '어법의 반복'을 시도했어.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해. 물론 2006년 이후로 그가 취업해버리는 바람에 신곡은 나오지 않고 있어; 반면 어법반복의 라임을 약간의 각운 라임과 섞어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UMC야. 요새는 유엠씨유위(UMC/UW)로 이름을 늘려서 쓰고 있어. 참고로, 이식형 라임을 가능한 한 배격하고 안 쓰려고 하기에 한국 힙합에선 이단자로 몰려 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 UMC는 현재 한국힙합 최고(最古)의 떡-_-밥이야.UMC의 최근의 가사를 좀 가져와보자. 3집인 [Love, Curse, Suicide]에서 가져와봤어. *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잡지에서는 예쁜 것만/ 신문에서는 거짓말만/ 텔레비전은 웃긴 것만/ 학교에서는 영어수업만/ 아픈과거를 들춰냈던 역사수업을 쌩깠더니/ 중딩은 원어민강사와 어울려 놀며 행복했고,/ 아이들은 3.1운동을 삼쩜일로 착각해도/ 선거가 다가오니까 겁을 줘대기 시작했고,/ * - UMC/UW,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1절 극도의 어법 반복이지. 일단 이 사람은 '한국어는 교착어다'에서 시작해. 교착어는 어미와 조사와 같이 독립할 수 없는 단어를 독립하는 단어 뒤에 붙여나가며 문장을 만들어가잖아. 따라서 각운이 위치해야 하는 어절 뒷부분의 발음이 제한적이라는 착상에서 시작하지. 제한적인 발음이니 각운으로 사용하면 편하긴 하지만, 언어유희적인 측면이 적어서 어문학의 역사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 그렇다면 각운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 보다 민요에서 하듯 문장 구조를 유사하게 반복하거나 마지막 문장 성분을 유사하게 맞춘다 -> 그러면서 되도록이면 마지막 어미/조사의 발음은 비슷하게 해보자..... 이게 UMC의 기본 방법론이야. '민요에서 하듯'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계속해서 한국어 어문학의 맥락에서 라임의 역할을 하던 것들을 발굴해 내. 번역의 기본을 생각하자고 하는 거야. 무작정 1:1로 대응하는 개념을 찾아서 발견해내면 좋겠지만, 실제 그런 개념어는 없기가 십상이지. 예를 들어, 성서를 번역하려고 했던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번역자들은 영어로 'bread'라고 표기된 음식물을 어떻게 번역할지 막막했을 거야. 당시에는 '빵'이라는 단어가 없었거든. 결국 그들은 이를 '떡'으로 번역해. 맥락을 고려한 번역이지. 쌀과 밀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곡물을 빻아 반죽한 후 효모를 이용해 부풀려 먹는 음식이니까. 물론 일상생활에서의 위상은 차이가 있겠지만, 당시 번역자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어. 실제로 몇십 년이 지나서야 포르투갈어 '빵또아'의 준말을 이용해 '빵'이라는 단어가 나와. 어법반복 라임의 발상은 이와 같은 출발점을 두고 있는 거지. 1) 각자의 맥락을 고려할 때, Rhyme을 韻으로 1:1 대응시킬 수가 있는가. 2) 설사 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한국어 어문학에 韻의 전통이 없는 게 그런 번역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3) 올바른 번역은 한국어 어문학에서 韻의 역할을 하는 요소를 찾아내어 그것과 Rhyme을 1:1이든 1:多든 대응시켜 번역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인 거야. 거기서 찾아낸 것이 '어법반복'이라고 내가 총칭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시적 기술인 것이고. 그가 맥락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나랑 친해서 토론도 자주 하거든. 그리고 맥락 차원의 사고가 이식형 라임보다 좀 더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시점이며, 라임을 맥락과 함께 번역/이식하는 바른 방법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맥락을 이해하고 있으니, UMC가 영어로 랩을 할 때는 철저히 영어식의 라이밍을 지키지. 자, 저런 어법 반복의 라이밍은 플로우와 구별이 잘 가지 않아. 그리고 사실 개념상 그게 맞긴 해. 라임이 플로우와 완전히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니까. 그리고 저런 방식은 일부러 의도해놓지 않으면, 의미 구조와 문법 구조와 플로우 구조가 불일치하기가 힘들어. 어법과 플로우가 불일치하지도 않고. 전달력 또한 극대화 돼. 물론 상기의 가사처럼 짧은 어법만 반복하면 랩이 굉장히 심심하겠지. 그는 보통 이런 걸 구사해. * 대충 또 살아가고/ 결혼식 몇 번 가고/졸업/ 취업/ 연말정산 몇 번에/ 시간이 지나간 걸 느낄 새도 없이 수도 없는 회식 속에 어느새 서른/ 셋/ 누구는 돈 있으니 바람 피워도 잘 살고/ 낮에는 북을 치고/ 밤엔 마우스를 잡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괴한 핑크색/ * - UMC/UW, '매지리가는 버스' 1절 중 어법 반복의 주 스킬이 될 수 있는 대구법도 쓰이고, 문장성분의 반복으로 라임 효과를 의도하고, 그러면서도 음수율과 음보율을 염두에 둔 글자수 조절로 UMC는 한국어문학의 라임을 완성하려 애를 쓰고 있어. 한 가지 문제는 UMC의 시도가 비록 순수하고 올바른 정답이긴 하지만, 동시에 역시 극단적이란 거지. 그 자신도 이를 약간 의식했는지 3집에선 모음/각운 라임도 가끔씩 섞어주고 있어. 지금까지 특기할 만한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한국어 랩의 현주소를 디벼봤어. 한국어로 라임을 어떻게 쓰느냐가 곧 한국어의 플로우를 규정할 정도로 뜨거운 감자야. 그것도 10년째 그래. 10년째 지속되며 뫼비우스의 띄로 뱅뱅 도는 논쟁 속에서, 그래도 위의 뮤지션들을 위시한 한국 래퍼들은 좀 더 나은 랩을 계속 고민하고는 있어. 제발 그들이 자신의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기를. 이식형 라임을 주로 사용하는 대다수의 래퍼들에게 있어 문제는, 어법 파괴와 전달력 부재야. 모음 중심과 각운 중심의 라임을 쓰면서 자꾸 어법이 혼란스러워지고, 가사를 보지 않으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게 되기가 십상인 건 엄청난 문제야. 그렇다고 둘 다를 잡으려고 하면 자꾸 플로우가 단조로워지고 심심해지니 앞으로 연구가 엄청 필요하겠지. 랩이 자꾸 심심해진다고 고민하는 래퍼들은 거의 다 어법반복의 라임을 은연중에 혹은 의식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야. 따라서 이들은 플로우의 다양화를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지. 그만큼 창작이 더 어려워지는데, 정작 결과물은 쉬워 보이는 억울함이 생기지. 게다가, 어법반복의 라임은 핵심이 되는 이론이 없어. 위에서 내가 횡설수설 서술한 게 느껴지시나? 대구법, 문장성분의 반복, 어미/조사의 단순 배치, 음수율/음보율의 활용 등등 너무 많은 기술이 총체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널려있는 형태인 거야. 게다가 플로우 개념과 지나치게 통합되어 있어서 따로이 설명하기가 애매해지는 지점들이 너무 많다는 단점도 있어. 이 두 가지 길에서, 오늘도 한국어 랩은 갈팡질팡해. 그게 아마, 랩이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랩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야. 그럼 현재 가장 한국어 랩의 이론/실무 양쪽으로 가장 진보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는 세 사람의 곡을 링크해놓고 이만 마칠게. 첫 번째는 일단 P-Type. (곡은 2004년 앨범 [Heavy Bass]의 수록곡 '돈키호테'. 피처링은 휘성) 두 번째는 UMC/UW. (곡은 2010년 앨범 [Love, Curse, Suicide]의 수록곡 '사랑은 재방송') 세 번째는 그룹 가리온의 MC Meta. (곡은 DJ Wrecx와 함께 한 2011년 싱글 [메타와 렉스(I Wanna Rock)]) 난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이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