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기죽게 왜 그래요 돼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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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기죽게 왜 그래요 돼지처럼

우리 애 기죽게 왜 그래요 돼지처럼

반년이나 집을 비웠다가 교토 집에 잠시 들렀다. 산더미 같은 우편물 속에서 제법 두꺼운 소포를 열어보니, 1·2권으로 1000쪽 가까운 소설 <수인>이었다.

“적조했소이다”라는 황석영 작가의 서명이 있었는데, 3개월도 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적조….” 만난 지 벌써 10년가량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2년 가을 뉴욕에서였을 거다. 그는 1989년 월북했다가 아직도 한국에 못 돌아가고 전전표박의 신세였다. 나는 당시 버클리에 있었으니 황 작가와는 미국 동서의 끝과 끝이었지만 가다가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했다.

그러던 1993년 초봄에 “한국에 돌아가려는데 어떨까?” 하고 전화가 왔다. “황 선생, 그야 감옥에 가겠지요”, “지난 12월에 YS 측근인 K가 찾아왔는데, 신병 보장해주니 들어오라는 거야”. 나는 “월북하여 김일성 주석을 일곱 번이나 만났는데, 3~4년은 고생해야겠지요”라고 하니, “그와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늦어도 8·15에는 나오겠지”라고 낙관하는 풍이다. “그래요. 그래도 마침 변호사들이 미국에 와있으니 한번 물어보지요” 하고 바로 전화했다. 하버드에 있던 L변호사는 “글쎄 한 5년은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라고 신중하다. 워싱턴에 있던 P변호사는 “일단 안기부에 들어가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 내게 할 텐데…” 하며 걱정한다. 사람들은 좀 더 기회를 봐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타향에서 글을 못 쓰게 된 황 작가의 번민은 깊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못 사오. 한국에서 사람 사이에 숨쉬어야 글 쓸 수 있으니….” 천의무봉의 그가 숨이 탁탁 막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니, 이제 아무도 그의 쏜살같은 귀심을 말릴 수 없었다.

“어쨌든, 떳떳하고 당당하게 돌아가야 하니, 귀국 성명서 준비해야죠.” 그래서 원고를 귀국 전날 저녁에 팩스로 주기로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한겨레신문의 정연주 특파원과 독점 인터뷰를 하느라 한 글자도 못 썼다고 한다. 팩스는 아침에 공항 가기 직전에 들어왔다. 훑어 보니, 당당하기는커녕 황 작가답지 않게 “물의를 일으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의 민주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식으로 고개 숙여 당국의 온정을 바라는 상투적인 탄원서 조다. 놀라서 전화를 넣으니 이제 수정할 시간이 없단다. ‘아뿔싸!’ 황 작가는 참을성 없고 마음보다 입이 먼저 움직여, 뭐든지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분이라 김포공항에서 안기부로 직행하여 모든 일을 불었으니 판결은 예측을 웃도는 7년이었다. 모두들 그 성질에 “갇혀서 1년도 못 살 것”이라고 했는데, 5년을 굴렀다.

책을 읽으면서 황 작가의 ‘빵살이’를 내 자신의 경험과 일일이 대조해보니, 내 삶과, 우리 현대사와 사회, 그리고 정치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어 매우 유익하고 흥미진진했다. 물론 집도 절도 없는 장기수에 비하면 황 작가의 빵살이는 철창만 뚫지 못했지, 가히 ‘황제감옥’이었다. 그러나 작가로서 집필할 수 없는 고통은 제쳐놓더라도 그는 역사의 가장 엄중한 막장에서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치범의 옥중에서의 억압과 자유의 수준은 법이나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냉전과 분단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처절한 판가리 싸움의 불꽃 튀기는 최전선에 희대의 광대, 황석영의 감옥살이가 위치했던 것이다.

그의 사춘기는 어떤 권위나 권력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비딱하고 싸가지 없는 청춘이었다. 얼핏 감옥에서 흔히 만난 냉혈하고 흉포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밥 먹듯이 거짓과 배신을 거듭하는 아웃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내면을 깊은 우울과 회의를 응시하는 천성의 문학도였으며, 사람에 대한 수줍은 배려와 애정, 본능적인 시대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당대에 비길 바 없는 천재적인 언어감각이나 문장력은 논할 필요조차 없지만, 많은 일탈이나 외도를 거듭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명석한 두뇌로 시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이 땅에서 저주 받은 자들’ 편에 우뚝 섰던 것이다.

광주 5·18의 진실을 드러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표제가 상징하듯이 그는 금기의 경계를 넘어 넘어서 우리의 시계를 심화시키고, 넓히는 구실을 해왔다. 분단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는 동네를 찾았으며, 문학과 통일운동을 위해 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아시아와 만나고, 세계의 기라성과 같은 지성들과 어울려 세련된 국제인이 된 듯했지만, 그 뉴욕 맨해튼의 길모퉁이에서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영등포 뒷골목과 여의도 샛강의 물장구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늘 귀심을 누르지 못했다.

남북의 분단과 전쟁의 틈새에서 자식들을 보듬고 강인하고 지혜롭게 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날이 가면서 짙어져 가고 있다. 나이 먹어서 철들었다고도 하지만, 작가는 ‘수인’ 속에서 지극히 정직하고, 자성적이고, 겸손하다. 인간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인간을 드러내는 문학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내장까지도 뒤집어야 하는 법인데, 이제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저물어가는 석양 속에서 지극히 공손하고, 진솔한 황 작가의 모습에서 ‘아아, 같은 시대를 살아왔구나’ 하는 감개가 솟아난다.

책의 말미에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 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라고 썼다. 본디 위태롭기에 사람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 위태로움은 지금도 여전하고, 분단의 골은 황 작가가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었던 20세기 말보다 더 깊어졌다. 통일이라는 말은 멀어지고, 고향과 혈육, 동포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주권’을 외친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눈부시게 새 정부가 출범했건만, “전쟁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주인임을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의 전쟁과 평화는 미국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도 저쪽(한반도)에서 죽지, 이쪽(미국)에서 죽는 것이 아니다”라고 태연한, 미친(척하는) 트럼프의 인종주의를 제대로 비판해 내지 못한 우리 대통령이 겨레의 운명의 운전대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지금도 분단의 ‘수인’이다. 분단의 뇌옥에서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행동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