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도피처를 찾는 일이란다. 외부적인 죄는 언제나 존재하고 그 책임이 오로지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하지만 네게 말했듯이 그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만약 인생이 길이라면, 그건 항상 오르막으로 펼쳐지는 거야. 위녕, 삶이 힘들까 봐, 너는 두렵다고 말했지. 그런데 말이야. 모두가 살아 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르막은 다 올라 보니 오르막일 뿐인 거야. 가까이 가면 언제나 그건 그저 걸을 만한 평지로 보이거든.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눈이 지어내는 그 속임수가 또 우리를 살게 하는 지도 모르지. -14,15 보통, 사람들에게 삶이 갑자기 쉬워지고 가벼워지고 즐거워졌다면 그것은 벌써 그들이 진지한 삶의 현실성과 독자성을 느낄 수 있는 힘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로 봐서는 결코 발전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삶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의 결별입니다. 어려움을 사랑하고 그것과 친해지고 배워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애써주는 힘이 있습니다.-23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상처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 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사랑은 서로가 완전히 합일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두 살은 얽히고 서로의 살이 서로를 파고들어 자라는 과정일 수 있단다. 그러니 그것이 분리될 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니? 내 살과 네 살이 구별되지 않고 뜯겨져 나가며 찢어지겠지. 비명을 지르고 안 지르고는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오래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 그래도 난 쿨했어'라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널 바라봤는지 기억나니? 만일 네가 그와 헤어지는데 그저 쿨한 정도로만 아팠다면 아마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였을 거야. 네가 그와 한 영혼이 되고 싶지 않아 진정 마음의 살을 섞지 앟았든지, 아니면 아픔을 느끼는 네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든지. -26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니? 그러나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해 주었던 격려와 그보다 더 많이 무언으로 너에게 건네는 격려를 한 번쯤 같이 떠올려 보렴. 네가 돌아서 갈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보내 주었던 따스한 믿음을 생각해. 친구가 너 싫다고 하니? 세상에 또 친구가 될 사람이 많다. 더 많이 너를 좋아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불러 보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더 멋진 방법도 있단다. 오늘도 가끔 창밖을 보고 있니? 그래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고 이 날씨를 만끽해라. 왜냐하면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전부의 시간이니까. 오늘만이 네 것이다. 어제에 관해 너는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하나도 고칠 수도 없으니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은 아니고, 내일 또한 너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네가 사는 삶의 전부, 그러니 온몸으로 그것을 살아라.-98 위녕, 무엇인가에 표상을 투사하는 너의 배후는 무엇이니?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사랑을 남에게 주든, 미움을 주든,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말 한마디 시선 하나가 두려워진다. 정말 두려워져.-110 위녕, 그래 누구나 입을 다물고 싶을 때가 있지. 엄마가 엄마라는 이유로 혹은 친구라는 이유로 네 입을 여는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걱정스럽지만 그 마음을 아끼는 일도 네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필요한 일이겠구나. 하지만 사랑한다. 사랑해서 잘할 수 있는 일과 사랑하기에 하지 말아야 할 일 두 가지를 구분하는 법을 알게 해 달라고 오늘은 기도하고 싶다.-139 고통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 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 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그런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피에르 신부-144 나이가 들어 갈수록 피에르 신부님은 '인생에서 근본적인 것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절대로 망쳐서는 안 되는 그 두가지 일은 사랑하는 것과 죽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직 그분처럼 나이 먹지 않았지만 엄마도 나이를 먹을수록 확신하게되는 한가지가 있어. 어찌하여 절제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듯 보이는 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자유로워 보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를 위해 살며 성취하려고만 했던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묶여 있는 듯 보이나 하는 거야. 외모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전자 쪽이 아름다워. 이런 말해서 좀 그렇지만 도가 높은 수도승이나 나이 드신 추기경님과 재벌 총수의 진정한 미모는 어떠니? 오늘 밤엔느 네가 좋아하는 닭모래집 볶음에 맥주 한잔 줄게. 잠깐 갈등의 상황을 덮어 버리고 엄마랑 재미있는 이야기 해보지 않겠니? 웃다 보면 다시 여유가 생길지도 몰라.-149 희망과 소망을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제 시간에 오기를 바라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르완다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개개인의 소망들이다. 네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들. 엄마가 네게 바라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소망이지.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가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 것들이야. 그러나 희망은 한 가지이지. 그건 너와 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자유롭게 해 주는 것. 위녕 맘 풀어라. 엄마가 널 기다리고 있다.-149 네가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지. 엄마는 젊은 날의 고난이 사람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말하고자 했던 거야. 하지만 너는 그 말에 수긍하려고 하지 않았어.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원칙을 세워서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165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 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픔 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 한다. 쌓아 올린 네 건물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생은 길어. 다만, 그 순간에도 언제나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언젠가 엄마의 소설을 읽고 네가 말했잖아. 헤어지고 나서 제일 후회가 되는 일은, 좋아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이야. 수많은 연애 지침서들이 그 남자에게 애가 타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리고 남자들은 실제로 그런 여자들의 전략에 쉽게 애가 타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연애의 주도권을 잡고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문자와 전화가 울려오긴 하지만 글쎄, 누군가의 말대로 그건 연애에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에는 실패하는 일이야. 네 목표가 연애를 잘 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유용하겠지만 네 꿈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말했잖아 진정한 자존심은자신에게 진실한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 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라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거지. 엄마도 언젠가 어떤 지혜로운 이에게 그런 물음을 들은 적이 있었어. 만일 불쾌한 기분이 되살아나고 얻는 것이라곤 없는 낡은 생각들을 되풀이 하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노력하라. 부드럽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라. '그만! 내 손을 잡아. 여기서 나가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가끔 엄마는 생각해. 모든 위인은, 다시 말해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시대에는 모두가 진보의 편에 서 있어. 이미 있는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니? 그러니까 역사는 그런 이들을 기억하지는 않는 거지.-196 위녕, 마음이 아프고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저녁이 가끔 네게 있니?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 같고 사랑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지? 그때 네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따스한 위로. 그런데 위녕, 그런 날 너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엄마 잃은 고아원의 작은 아이, 가난한 노숙자에게 밥 한 그릇 퍼 주는 위로를 한번 해 보렴. 아니면 지하도를 건너는 길에, 춥고 배고픈 거지가 있다면 네가 가진 돈의 반만 떼어 줘 보렴. 그 사람이 그걸 가지고 술을 사 먹거나 왕초에게 바치거나 아니면 또 약 같은 걸 복용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 엄마도 젊은 시절 그런 걱정을 했었어. 그런데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유럽인 친구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단다. 내 바보 같은 질문에 그들은
너무도 간단히 대꾸하더구나. 엄마가 독일에 있을 때 거기는 태풍 대신 돌풍이라는 것이 자주 불곤 했는데 길 앞의 가로수들이 자주 뿌리째 뽑혀 나가곤 했어. 나무를 잘 가꾸기로 유명한 나라 독일.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힐 정도가 되려면 태풍의 정도도 어마어마해야 했을 거야. 그런데 밤새 유리창을 몹시 덜컹이게 할 정도의 바람이 불고 나면 나무들이 쓰러지곤 하는 걸 보았단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이유 또한 같았어. 늘 흐리고 비가 오는 기후에서 그 나무들ㅇ느 뿌리를 깊게 내릴 필요가 없었던 거야. 변명하는 말이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젊은 날의 고통은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엄마는 이제는 알게 되었단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 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가을에 태풍이 덮치지 않으면되지 않느냐고? 그래 .그러면 되겠지. 그러나 위녕, 이 지구에 태어나 일생을 산 사람들 중에 오래도록 무사하고 태평하게 산 이는 아마도 아주 적을 거야.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가 다 조사해 보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241 사람들은 가끔 엄마에게 묻는다. 왜 책을 읽으세요. 엄마는 오래 생각해 왔던 대답을 간단하게 하지. 위녕, 오늘 이시간이 지루하고 힘드니? 너의 어린 뿌리를 더 깊이 대지 아래로 뻗으라는 천사의 속삭임으로 들어 보겠니? 친구가 밉니? 혹시 그 아이는 변장하고 내려온 천사일지도 모르지.-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