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고전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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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과학자들

과학자(Scientist)란 이론적, 실험적 연구를 통해서 자연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과학자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수학자들의 이름을 꽤나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그들의 연구와 그들이 발견한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우리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수학자들의 업적들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고대 그리스는 통상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까지의 시대를 일컫는 말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년전의 시대에 해당합니다. 혹자는 그 시기가 인간이 처음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된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덕분에 그리스의 사람들은 생존에 관한 것이 아닌, 우주의 기원, 인간의 삶 등에 관한 쓸데없는(?)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컴퓨터도 없고, 작은 계산기 하나 없던 그 시절에 변변한 실험기구도 없이 대부분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머리속으로만 상상하고, 끝없는 사색을 통해서만 그들이 얻어낸 지식들은 놀랍게도 현재까지도 우리들의 과학, 수학 등의 분야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친숙한 이름 “피타고라스(Pythagoras, AD580-AD490)”는 유명한 그리스의 인물들 중에 가장 오래 전인 기원전 500년경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우리에게는 직각삼각형의 세변의 길이에 대한 피파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철학자이며 당대에 종교적 단체를 이끄는 교주였습니다. 뭐,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이비 종교 교주와 같은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는 후대 플라톤과 비슷하게 인간 세계는 불완전한 곳이고, 신들이 살고 있는 “완전한” 세계가 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완전한” 세계를 공부해서 우리의 불완전한 세계를 그와 가깝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있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의 종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이야기인데, 여기서부터 피타고라스는 매우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도입합니다.  그 완벽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오류가 없는 완전한 것에 대한 학습을 통해 완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믿었는데, 그 완전한 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수학”이었습니다. 논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학은 어떤 오류도 없는 완벽한 학문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학을 공부했답니다. 상상해 보자면 조금 우습겠지만, 지금의 종교단체들처럼 주말이면 회당에 모여앉아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선 성경과 같은 종교서적을 읽는 대신 수학을 공부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에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같은 원리들도 알게 되었던 것이구요. 우리가 그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의 삶 속에 이러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그뿐만 아니라 사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러한 사상은 후대의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으로까지 연결되어 그리스 철학 자체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피타고라스가 죽은 뒤 약 한세대정도 뒤에 태어난 플라톤(Platon, AD427-AD347),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AD384-AD322)는 가장 유명한 그리스의 사상가로서 그리스 철학 사상의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한 사람들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며 물리학, 철학, 생물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한 서양 철학의 근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학자입니다. 플라톤은 철학자이지만, 철학의 근본인 논리성은 수학적 사고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가 세운 학교 아카데미아(Academia, 현재의 대학에 해당하는 최초의 학교)정문 앞에는 “기하학을 공부하지 않은 자는 이 문을 통과하지 말라 (Let no one ignorant of geometry enter)”라는 유명한 문구를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생물학, 특히 동물학에 관심이 높았던 과학자로서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한 모든 곳으로부터 희귀 동물들의 표본들을 받아 연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그리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 형성되어있었다는 말이지요.

가장 유명한 그리스 과학자 중에 한 사람은 단연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AD287-AD212)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뒤 약 50여년뒤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후반부에 가장 뛰어난 수학자, 과학자로 칭송받던 사람입니다. 당시 왕인 히에로2세의 금관이 순금으로 이루어진것이 맞는지를 확인해보라는 요청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목욕탕에서 부력(Buoyancy force)에 관한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를 외치며 달려나왔다는 것은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가장 유명한 일화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의 위대한 업적들 중 하나일 뿐 그 외에도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무한한 수와 무한하지는 않지만 매우 큰 수는 다르다라는 개념을 바닷가의 모래알의 갯수를 셀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하였고, 다각행의 둘레의 길이를 이용하여 원주율(π=3.14…)값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해 내는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였고, 또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실제 수학적 방법으로 최초로 증명해 낸 사람도 아르키메데스였습니다.

이 외에도 데모크리투스, 유클리드 등 많은 그리스의 과학자, 수학자들이 정립해 놓은 개념과 원리들은 현재까지도 우리들의 과학적, 수학적 사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려 3000여년전에 지금의 최첨단 기구들 없이 순수한 사고능력과 냉철한 관찰력만으로 이러한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훨씬 발달된 도구들과 더 높은 사고력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당연히 앞으로 3000년뒤의 인류가 깜짝 놀랄 무언가를 탐구해 내기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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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초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전세계에 “외계 생명체에 대한 중요한 단서”에 대한 엄청난 발표를 하겠다고 선포를 하고 그 내용을 그해 12월2일(현지시간)에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중요한 단서란 바로 미국의 모노 호수(Mono lake, California)에서 DNA와 같은 생체분자를 형성하는 데에 인(P) 대신 비소(As)를 사용하는 비소 박테리아가 발견됬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트렌스포머에 나오는 옵티머스 프라임과의 교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시착한 UFO에서 꺼낸 외계인의 시체 정도는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일반 대중들은 미국의 한 호수에서 발견된 이상한 박테리아 이야기에 NASA가 연구비가 얼마나 모자라면 이제 연구결과로 전세계에 낚시질을 다하나…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구의 내용을 좀 더 과학적으로 고찰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유출할 수 있습니다.

비소(As)라는 물질은 원자번호 33번의 물질로 가장 독성이 강한 원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비소라는 물질의 독성은 워낙 유명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 사약을 내릴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독약이 바로 이 비소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소는 주기율표에서 인(P)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서 같은 족(group)에 속한 원소로 인과 매우 비슷한 화학적 반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실제로 인과 비슷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고, 특히 생명체 내부에서 생체분자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소를 인 대신에 기본원소로 갖고 있는 생명체가 발견된 것이니 사실 그 발견 자체로도 꽤나 흥미로운 발견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흥비로운 것은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인(P)은 탄소(C), 수소(H), 질소(N), 산소(O), 그리고 황(S)와 함께 생명체가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6대 기본원소로 분류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 6대원소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6대원소를 풍부히 갖고 있음으로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우리의 지구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동안 NASA 를 포함해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모든 연구팀은 이 은하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고 있는 행성”을 찾는 대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갖고 있어야 생명체의 6대 기본원소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래야 그것을 바탕으로 생명체가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비소 박테리아의 발견은 이 논리를 그 뿌리부터 흔들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6대 기본원소중에 하나인 인(P)을 대신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가장 극한 독에 해당하는 비소(As)를 기본 생체분자를 이루는 데에 사용하는 생명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생명체의 기본을 6대원소에만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그동안은 전 우주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는 행성이 존재할 확률, 그리고 그 환경에 6대 기본원소가 일정량 이상으로 풍부하게 있을 확률,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로 외계 생명체의 존재 확률이 제한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외계 생명체의 존재 확률을 제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생명체를 “지구 생명체”와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면 생명체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아닌 그 어떤 곳에서도 발견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단지 그 생명체가 우리와 같은 6대 기본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지 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이 발견을 통해서 이 드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은 “수학적으로”는 매우 높게 되었다는 것이 NASA가 이 발견을 외계생명체에 대한 중대한 단서라고 이야기한 근거입니다.

물론 이 발견 자체가 아직은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았으며, UBC의 Department of Zoology의 Dr. Rosie Redfield 교수와 같이 이 발견은 단지 비소(As)를 생체에 갖고 있으면서도 죽지 않는 박테리아가 발견된 것일뿐, 그 박테리아가 실제로 비소를 인(P)을 대신하는 기본원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하는 의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서 꼭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은 외계 생명체 존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는 충분한 듯 합니다. 물론 그 생명체가 E.T.나 트렌스포머는 아닐 것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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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 라이프니츠, 그리고 미적분학의 삼각관계

뉴튼(1642~1727), 라이프니츠(1646~1716), 그리고 미적분학(Calculus)는 살면서 한 번쯤 들어 볼 법한 유명한 과학자, 수학자이고, 수학과목의 이름입니다.  어쩌면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이 조금 계실 수도 있겠지만, 그는 수학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독일의 천재 수학자입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뉴튼은 라이프니츠와 동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천재 과학자이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17세기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와 수학자인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자 악연의 고리가 바로 미적분학입니다.  과학 분야, 수학 분야에서 그렇게 중요한 미적분학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누구의’ 미적분학”이 되지 못한 사연이기도 하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뉴튼과 라이프니츠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대에 미적분학을 발명해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영국과 독일에서 각각 동일한 개념인 미적분학을 발명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소위 저작권, 표절 시비가 불거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두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악의가 있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글들을 보면 이 저작권의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동시대의 최고의 과학자, 수학자로 자주 칭송하곤 하였습니다.

일단 시기적으로 미적분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 낸 사람은 뉴튼이 맞다고 합니다. 그는 1675년에 미적분학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후에 라이프니츠 역시 독자적으로 미적분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대 인물이기는 했지만, 라이프니츠가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이미 뉴튼은 영국 왕실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을 정도로 저명한 인물이 된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뉴튼과 상의를 하기 위해 1676년부터 편지를 주고 받으며 미적분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합니다. 물론 라이프니츠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지만, 이 편지내용들에 따르면 라이프니츠가 뉴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고,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연구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문제는 1684년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정식으로 공표하면서 벌어집니다. 

평소에 라이프니츠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한 수학자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은 뉴튼의 생각을 가로챈 표절이라고 공격을 했고, 이 때부터 뉴튼을 추종하는 자들과 라이프니츠와 함께 하는 자들의 의견충돌로 이어져, 끝내는 뉴튼과 라이프니츠 마저도 그 싸움에 말려 서로를 험담하고 자신이 “원조”라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뉴튼과 라이프니츠의 사후까지도 계속 커져 끝내는 영국과 독일 양 국민들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버리기까지 했다니 당시에는 꽤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것이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는 미적분학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낸 것은 뉴튼이지만, 학문으로 정립하고 발표하여 실용화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맞다고 보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학계의 사람들을 뉴튼의 편에 서고, 수학계의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손을 들어주곤 합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뉴튼은 왜 그런 아이디어를 바보같이 먼저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다가 이런 표절시비를 일으키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혹자들은 이것이 뉴튼의 피해 망상증때문이라고 분석을 하고는 합니다. 뉴튼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약간의 피해망상증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유명한 프리즘 실험에 대한 결과를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왕립학회에서 발표할 때 당시 학회의 거장들인 호이겐스와 같은 과학자과 엄청난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사실 지금의 현대 과학으로 보면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는 뉴튼의 주장이 옳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은 파동의 성질만을 갖는 다고 굳게 믿었던 호이겐스 등의 당대 과학자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면서 피해망상증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연구결과 공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가능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사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뉴튼의 힘의 3대 법칙이라는 것이 적힌 “프린키피아(원제: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논문도 뉴튼의 법칙에 관한 설명을 들은 헬리(Halley)라는 과학자가 설득하고 출판비까지 직접 내겠다고 종용하며서 거의 등떠밀리듯이 쓴 논문이라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프린키피아라는 논문은 직접 읽어보면 엄청나게 어렵게 쓰여진 논문인데, 이게 뉴튼이 일부터 최대한 어렵게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러 어렵게 써서 ,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시비를 걸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데, 자신의 의견에 대해 딴지 거는 사람들에 대해 뉴튼이 얼마나 병적인 알러지반응이 있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쨋든, 이렇게 대단한 학문도 완전히 독립된 두 사람이 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듣기엔 완벽한 표절같은데 절대 표절한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작곡가나 가수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줘야 하는 걸까요? 뭐, 개인적으로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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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후 필름이 끊기는 이유

과음, 폭음 이후에 소위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나지 않아 다음날 아침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는 곳에서 잠에서 깨어 당황스러웠던 적이 혹시 있으신가요? 한국의 술문화를 경험하며 사회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한번쯤 있을 법한 경험일 수 있는데요. 이러한 필름 끊김 현상을 전문용어로 블랙 아웃(black out)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뇌 내부에 있는 해마(hippocampus)라는 부분이 알코올에 의해 마비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기억’인데, 이러한 기억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누어집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그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 위해 방금 전에 한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 단기기억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기억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반응하기 위해 뇌의 가장 활성화된 곳에 임시적으로 저장을 해 놓고, 순간순간의 변화에 반응하며 그 내용들을 뇌에서 사용을 합니다.  이러한 단기기억의 저장기간은 짧게는 1~2분에서 최대 한두시간이내의 내용들만을 기억할 수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다른 새로운 내용들을 저장하기 위해서 이전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지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 중에 중요한 내용들로서 오랜 기간 기억되어져야 하는 선택된 내용들은 장기기억을 위한 뇌의 다른 공간들로 옮겨서 기록되는데, 이때 단기기억의 내용을 장기기억의 내용으로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대뇌 앞쪽의 측두옆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해마(hippocampus)입니다. 

이 해마는 그렇게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뇌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람의 인체에서 가장 알코올에 취약한 부분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 이상이 되면 해마가 알코올에 마비가 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 다고 합니다. 해마의 기능은 주로 앞서 말씀드린 기억체계에 관여를 하는 것이지만, 그외에도 일정부분의 감정조절에도 관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면 일반적으로 조금 더 폭력적이 되거나 감정조절을 잘 못하게 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마에 마비가 와서 필름이 끊기게 되는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본인과 주변의 사람들이 그걸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의 자극에 대한 대응은 단기기억에 의해서 이루어 지기 때문에 해마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사람들과의 대화, 행동 등에, 단지 조금 취해서 그렇다고 여겨질 뿐, 크게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마는 한번 알코올에 의해 마비가 되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또는 그 회복의 속도가 워낙에 느리기 때문에 반복해서 술을 마시게 되면, 이후에는 더 적은 양의 알코올로도 쉽게 마비가 될 수 있으며, 이렇게 반복적으로 마비를 경험하면 후에 해마의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알콜성 치매, 간질, 베르니케-코르샤코프 증후군과 같은 뇌질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해마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고 본인이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하시는 애주가분들이 많지만, 사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정도 수준에 이미 해마는 크게 공격을 받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한잔도 하지 않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술을 드시더라도 올바른 음주습관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술만 드시는 것보다는 충분한 영양분을 갖고 있는 안주를 함께 드시고, 물을 많이 섭취하셔서 체내 알코올 농도를 떨어뜨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무엇보다도 어르신들 중에 다음날 해장술을 드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 해장술은 이미 전날 드신 술로 넉다운 되어 있는 해마를 확인사살하시는 행위에 해당함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알코올성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해장술을 즐겨 했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과음, 폭음 등의 잘못된 음주는 사고로 연결되기도 하고, 또 바로 다음날 속쓰림 등의 괴로움을 동반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느끼지도 못하는 곳에서 서서히 몸을 상하게 하고 있고, 그로 인한 고통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딱 한잔이 아쉬우신가요? 바로 지금이 술자리를 즐겁게 마무리하실 순간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해마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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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괴물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태풍이나 허리케인으로 한국, 그리고 미국의 동남부 지방이 많은 피해를 입곤 합니다. 허리케인이나 태풍의 위험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 태풍이 심하게 불 때, 건물의 지붕이 바람에 뜯겨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보통 그런 장면을 볼 때, “바람이 지붕을 날릴 만큼 정말 세게 부는구나.” 하는 반응이 일반적이고 또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강하게 부는 지붕 바깥쪽 바람이 건물의 지붕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 안쪽에 있는 공기가 지붕을 위로 밀쳐내는 현상입니다. 방안의 얌전한, 있는지도 잘 느끼기 힘든 그런 공기들이 어떻게 그런 힘을 갑자기 내서 지붕을 뜯어낼 수 있는지 궁금하시지요?

이는 베르누이의 정리(Bernoulli’s Theorem)이라는 과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베르누이의 정리란 물, 공기와 같이 흐름을 같은 유체의 성질을 설명하는 법칙으로 에너지 보존법칙의 유체역학 버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이 정리는 동일한 높이라고 가정했을 때, 유속이 빠른 부분에서 유체의 압력이 낮아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공기가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의 대기압이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의 대기압보다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설명은 뭔가 복잡해서 되게 어려운 현상같지만, 사실 이 원리는 우리 주변에 많은 현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압이라는 것은 공기의 압력을 뜻하는데, 압력이란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힘을 뜻합니다. 즉, 압력이 높다는 것은 같은 넓이의 표면에 가해지는 힘이 더 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곳의 일반적인 대기압은 101kPa에 해당하는데, 이는 약 100,000N의 힘이 1mx1m 면적에 가해지는 것인데, 한쪽 면이 1m인 정사각형 모양의 면적위에 100kg의 씨름선수 약 100명이 올라서서 그 면적을 누르고 있을 때 바닥이 받는 힘에 해당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힘이 공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공간에 우리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강한 힘을 어떻게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절대적인 힘의 크기가 아니라 상대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양쪽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힘으로 줄다리기를 한다면 줄이 힘을 받고 있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 있듯이, 우리 주변에 엄청난 세기의 대기압이 있지만, 모든 방향으로 동일한 힘의 대기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힘을 느끼지 못하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우리는 바로 그 대기압의 힘을 느낄 수 있고, 그 힘에 의해 공기가 한쪽으로 밀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바람이 부는 원리입니다.

아침에 샤워를 할 때, 자꾸만 귀찮게 샤워커튼이 다리에 붙곤 하는 걸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그때 마다 다리에 물기가 있어서 샤워커튼이 달라붙는다고 생각하셨나요? 사실은 샤워기를 통해 나오는 물줄기의 속도가 샤워커튼 바깥쪽 공기의 흐름보다 빠르다보니 샤워커튼 내부의 공기 압력이 낮아지게 되고, 샤워커튼 바깥쪽 공기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바깥쪽 공기가 샤워커튼을 안쪽으로 밀게 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사이클링을 즐기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길가를 지날 때에 커다란 트럭과 같은 차가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가게 되면 몸이 되려 길 안쪽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그냥 느낌이 아니라 트럭의 움직임에 의해 실제 길 안쪽의 압력이 낮아져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공기가 자전거와 사람을 밀어넣기 때문에 그 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르누이의 정리는 간단히 실험해 볼 수도 있는데, 가벼운 종이컵 두개를 약 2cm 정도 간격으로 책상위에 올려놓고, 두 컵사이에 입으로 세게 바람을 불어넣으면, 그 바람 때문에 두개의 종이컵의 사이가 벌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컵이 서로 안쪽으로 몰려 붙어버리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입김으로 인해 두 컵 사이 공간의 압력이 낮아져 안쪽으로 밀리기 되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태풍이 불면, 지붕 바깥쪽에 강한 바람이 불어 공기압이 낮아지게 되고, 그로 인해 힘에 평형이 깨짐으로써 집안 내부에 있는 공기가 지붕을 위로 뜯어올려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또한 비행기를 뜨게 하는 양력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비행기의 날개는 자세히 보면 평편하게 생긴것이 아니라 윗부분이 불룩하게 올라온 형태를 띠는데, 이로써 날개 위쪽을 지나가는 공기들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어서 날개 아래쪽의 공기가 비행기를 들어올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이 바로 이 베르누이의 정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현상들인데요. 오늘 어떤 것들이 이에 해당 되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과학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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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이야기 시리즈 1편 : 위대한 가족의 숨겨진 희생, 퀴리 패밀리

방사선(Radioactive rays)이란 에너지가 높아 불안정한 원자, 또는 원자핵으로부터 방출되는 에너지의 흐름을 말하는데, 이 방사선의 에너지가 매우 높아 위험하기도 하지만, 잘 이용하면 X-ray, 방사선 암치료 등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사선이 발견되고,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한 가족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있었는데요 바로 퀴리부인으로 잘 알려진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입니다.

마리 퀴리는 폴란드의 가난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여학교 졸업 후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지내다가 기회가 생겨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하고 1894년에 연구 동료인 프랑스인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1859-1906)와 결혼하여 프랑스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두 부부는 헨리 베퀘렐(Henri Becquerel, 1852-1908)과 함께 방사능 물질인 라듐(Radium, 88Ra)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그를 연구한 업적으로 19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합니다. 이때부터 이들의 연구 결과덕분에 세계는 방사능, 방사선에 관련된 많은 내용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활발히 연구를 하던 1906년 마차에 치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남편의 사후에도 마리 퀴리는 방사선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한 결과 라듐과 폴로늄의 발견, 그리고 그의 화합물에 관한 연구로 1911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게 되면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수상하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퀴리가족들의 방사선 연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퀴리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들중 첫째인 이렌 퀴리(Irene Jolit-Curie,1897-1956)가 부모의 연구를 이어받아 방사선 연구의 참여를 하게 되고, 1925년에 퀴리의 연구소에 조수가 된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Jean Frederic Joliot-Curie,1900-1958)와 1년여의 연애 끝에 이듬해인 1926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들은 부모님의 연구를 이어받아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1934년 세계 최초로 방사능 동위원소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을 하고, 그 업적으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두 세대의 퀴리 가족들이 세개의 노벨상을 휩쓸면서 방사선의 특징과 그 현상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밝혀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는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모두들 마지막에는 방사선에 의한 질병으로 고생을 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리 퀴리는 너무나 많은 양의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피폭된 결과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에 의해 고통을 받다가 1934년에 요양원에서 죽었고, 그의 딸인 이렌 퀴리 역시 백혈병으로 1956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렌 퀴리의 남편인 프레데리크의 사망원인은 공식적으로는 수술후 합병증이라 되어있지만, 그의 몸도 방사선에 의해 많이 손상되 약해져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에르 퀴리를 제외하면 연구에 참여했던 모든 가족들이 방사선에 의한 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이렌퀴리의 동생이며 퀴리부부의 둘째 딸인 이브퀴리(언론인)가 미국으로 이민해 102세까지 장수하다가 2007년에야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퀴리가족들의 삶이 방사선 연구에 의해 얼마나 희생당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방사선에 의한 급격한 발견과 연구로 인한 불행은 퀴리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듐과 같은 방사성 물질은 그로부터 방출되는 방사선때문에 사진을 찍어보면 형광 물질같은 것이 발광되어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때문에 신비한 물질처럼 여겨져서 아무런 근거없이 미용이나 심지어는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마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소문들이 퍼져 당시 일반인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물질이 되어버렸었습니다. 심지어 라듐이 들어간 화장품이라면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사선은 금새 그 악마의 얼굴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방사선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서 그 심각성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방사선에 의한 피해를 듣게 된 마리 퀴리는 요양원에서 본인도 죽어가던 시기에 라듐의 발견을 매우 후회하며 고통받다 죽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X선촬영, 원자력 발전 등을 통해 삶에 유용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방사선. 그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세상에 꺼내 온 퀴리 패밀리. 이들은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요? 그 방사선을 더욱 더 잘 연구하여 안전하면서 유용한 방향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들이 그들의 연구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실수로 만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필자의 전공의 핵물리학과 의용물리학이다보니 후쿠시마 원전사고이후에 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부터 3회에 걸쳐 방사선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번 칼럼은 방사선에 대한 소개글로 방사선 발견에 대한 과학사적 이야기를 말씀드렸고, 2편에서는 방사선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접근, 그리고 마지막 3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후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제한된 지면에 설명드리기에 매우 심도깊은 이야기들이기는 하지만,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풀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방사선 시리즈 2편 : 방사선, 넌 누구니?

방사선 시리즈 3편 :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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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이야기 (2)

지난 주 칼럼에서 설명드렸듯이 방사선은 1900년대 초 발견되던 당시에 신기한 물리적 현상으로만 받아드려졌을 뿐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방사성 물질들이 일반인들에게 아무런 경계없이 퍼져나가게 되었고, 그로 인한 많은 비극들을 경험하게 되었지요.

실제 미국의 뉴저지에 있던 한 시계회사에서는 불빛이 없는 곳에서도 자체 발광을 이용해서 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었는데, 자체 발광 물질이라는 것이 바로 라듐(Ra) 성분이 함유된 방사능물질로 시간을 나타내는 표식을 칠한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자동화된 공정이 이루어진 때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에 모여 앉아서 끝이 얇은 붓을 이용해서 라듐성분의 페인트를 시계에 바르는 작업을 했는데, 몇번 바르고 나서 붓의 끝이 갈라져 칠하기 힘들어지면 갈라진 실 끝을 모으듯이 입술이나 혀바닥에 붓끝을 문질러서 끝을 다시 뾰족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라듐 페인트가 그 여성 노동자들의 입과 혀에 묻게 된것이지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를 전혀 모르던 불쌍한 그 노동자들은 빛이 나는 것이 신기하고 이쁘기만 해서 그 라듐페인트를 손톱이나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결과 그 회사의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이 설암 (tongue cancer)등의 질병에 의해 사망하고, 끝내 그 회사는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무지하던 세계는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 폭격이 있은 후에야 방사선,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957년에야 국제 원자력 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생기고 국제적으로 방사선 피폭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가 짧고, 또 방사선에 대한 위험성은 임상적으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방사선이 실제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방사선에 피폭되었을 경우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데이터가 적기 때문이고, 또한 그 적은 데이터마저 전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방사선을 짧은 시간에 피폭당한 경우(일본의 원폭 생존자, 러시아의 체르노필 원전 사고 생존자 등) 뿐이기 때문에, 적은 양의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의견이 나뉘고 있는 실정입니다.

소량의 방사선에 피폭된 경우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크게 세가지로 의견이 나뉘는데, 첫번째는 방사선 피폭량과 그 피해는 비례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양을 받으면 그만큼 피해가 크고, 적은 량은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만큼 피해가 있다는 것이지요. 두번째 의견은 임계값이 존재한 다는 것인데, 즉, 방사선이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은 그 한계값이 있어서 그보다 낮은 값의 방사선에 피폭되는 것은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 의견은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극소량의 방사선을 맞는 것은 오히려 몸에 힐링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황당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서 사실 미국 콜로라도 지역 우라늄 광산 근처에는 미세 방사선을 일부러 맞기 위해 동굴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는 곳도 있고, 방사선 물질이 들어 있는 원석으로 만든 목걸이를 팔기도 하는 곳들이 현재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세한 양의 독은 몸을 치료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듯 소량의 방사선에 대한 영향을 확실히 모르는 지금으로는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국제 원자력 기구는 매우 강력하게 규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잡고 있고 이에 따라 각 나라들은 매우 낮게 설정된 선을 한계치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사선 유출 사고에 관련된 기사가 날 때마다 “유출된 방사선량이 한계치보다 이 만큼이나 더 높은 엄청난 양이다”라는 신문기사와 “유출량이 그 만큼인건 사실이지만, 그게 확실히 그렇게 위험한 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식의 기사가 항상 함께 나오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방사선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는 그 정의에 따라서 베퀘렐(Bq), 퀴리(Ci), 그레이(Gy)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방사선의 종류에 따라서 인체에 미치는 피해의 정도를 고려한 단위는 시버트(Sv)입니다. 각 나라는 IAEA의 가이드에 따라 각각 일반인들의 방사선 피폭 한계치를 정하고 있는데, 캐나다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한 일반인들의 방사선 연간 피폭 한계치는 1mSv(0.001Sv)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사실 일반인들이 살면서 받게 되는 방사선 피폭은 방사선을 사용하는 곳에서 사고로 유출되는 방사선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방사선과 병원에서 의료목적으로 받는 방사선피폭이 대부분입니다.  성인이 병원에서 일반적인 흉부 X-ray를 찍을 때 받는 방사선량이 약 0.1mSv, CT촬영시에 받게 되는 방사선량은 무려 7mSv나 됩니다. 즉, X-ray를 열번정도 찍어도 연간 한계치를 맞게 되는 것이고, CT 촬영을 한번 했다면 무려 일곱배나 되는 방사선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료 장비가 위험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IAEA와 정부에서 정하고 있는 방사선 피폭 한계치라는 값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최소의 피폭을 기준으로 정한 값이기 때문에, 한두번 의료 목적을 위해서 그 값을 초과하는 피폭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간 알려진 데이터에 따른 인체에 실제 구토이상의 이상증세를 만드는 피폭량은 약 100mSv 이상의 값으로 일반인의 한계치의 백배에 해당하는 값이고, 심각한 중증장애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정도는 5000mSv이상의 방사선 피폭이 있을 때 일어나게 됩니다.

방사선은 분명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잘 조절한다면 의료목적 등 인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도가 매우 높고, 또 일상적인 생활에서 받는 방사선량은 공포의 대상이 될 만한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방사선에 대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시지 않으셔도 좋으실 듯 합니다.

다음 주 칼럼에서는 방사선 시리즈 마지막편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으시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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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에서….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경 일본 열도 북동쪽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진도 5.5~7정도의 해저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인근 연안에 있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자로 1~3호기가 안전을 위해서 자동으로 긴급정지 상태로 들어갑니다. 원래 후쿠시마 발전소에는 6호기의 원자로가 있지만, 4~6호기는 정기검사를 위해 그 당시 정지 상태였기에 1~3호기 정지로 발전소 전체가 정지된 것입니다. 숨을 죽이고, 지진의 여파가 별 탈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던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지진의 요동으로 발전소 주변의 송전, 변전 시설들이 손상됨으로써 발전소로 들어오는 외부 전력들이 모두 끊어지고 맙니다. 원자로 냉각기는 절대적으로 멈춰서는 안되는 시설이기에 외부 전력이 끊기자 마자 자체 디젤 발전기를 가동시켜 대체전기를 투입하지만, 불행히도 지진 발생 한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높이 15m 이상의 쓰나미가 발전소 전체를 덮치면서 지하에 위치한 디젤 발전소마저 침수되어 그 작동을 멈춤으로써 냉각기 전원이 완전히 끊겨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냉각장치의 작동이 멈춘다는 것은 자동차의 엔진을 냉각수없이 작동시키는 것과 같아서 원자로 중심부의 온도가 1200도 이상으로 상승하고 급기야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 다운(Melt down)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멜트 다운과정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양의 수소 가스로 인하여 원자로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자,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소유주인 도쿄 전력은 수소 폭발을 막기 위해서 격납고 내부의 공기를 강제로 배출시키고, 바닷물을 주입시키는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했지만 초기 대응의 지체로 인해 끝내 수소폭발을 막지 못하고 다량의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고가 일어난지 벌써 3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후쿠시마에 관련된 우려와 걱정들이 함께 나오는 이유는 최초 사고직후의 도쿄전력의 대응미숙과 그 이후에 발표되는 수치들이 자꾸 바뀌면서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정부는 사고 직후 원자력 안전보안원도 사고 척도(INES)를 레벨4라고 발표했다가 일주일뒤에는 레벨 5로, 그리고 한달 뒤에는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급으로 척도의 최고치에 해당하는 레벨 7로 레벨을 격상시킵니다. 또한 초기 대응 중 외부로 배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도 초기에는 37만 테라베퀘렐(TBq)에서 석달 뒤 6월에 77만 테라베퀘렐(TBq)로 바꿔서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고 대응에 관련된 주요 수치들이 자주 수정되어, 발표에 신뢰를 잃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발표되는 양보다 실제는 훨씬 더 많은 방사성 물질들이 배출되고 있는 중이라는 근거없는 루머들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전공이 원자핵 물리학, 그리고 방사선 의료 물리학이다보니 많은 분들이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된 궁금한 점들을 물으시는데, 몇가지 공통된 궁금증에 대한 이야기들을 짧게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체르노빌 사고 때는 발전소 전체를 콘트리트로 막아버렸는데, 왜 이번에 후쿠시마때는 그런 대처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많은 양의 물을 보유하고 있는 바닷가가 아니라 강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즉각적으로 집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뿐아니라, 폭발로 인해 원자로가 완전히 부서져 내린 경우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이 콘트리트로 덮어 버렸던 것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 콘트리트로 덮어버리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 가장 안좋은 최후의 선택에 해당합니다. 콘트리트로 덥어버린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할 뿐 아니라 방사성 물질이 완전히 안정되는 100-300년 이상이 지날 때까지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책에 해당합니다. 최선의 방법은 원자로를 안정상태로 유지하면서 주변의 방사선 오염수를 처리하고, 인근 지역의 방사선 오염을 제거해 가면서 핵연료를 제거해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겨 폐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1970년대에 미국에서 있었는 TMI 사고의 대응에서와 같이 이런 작업은 약 10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대응책입니다. TMI 사고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지금도 흘러 나오고 있고, 또 언제 쓰나미가 또 올지 모르는 지역에서 그 오랜 기간 동안 안정상태를 과연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때문에, 체르노빌과 같이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장기 제염해체 작업쪽을 선택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엄청난 양의 오염수를 방출했다는데 일본 근해에서 잡힌 생선들을 먹어도 상관없는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물은 방사능 오염도가 높기 때문에 원래 커다란 물탱크에 오랜시간 저장을 해 두었다가 방사능 오염농도가 일정값이하로 떨어지면 그때 외부로 방출을 시킵니다. 후쿠시마 발전소에도 이런 물탱크가 사고 이전에 정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많은 양의 오염수를 저장하고 있었는데, 사고 이후 갑작스럽게 바닷물을 주입하는 등 엄청나게 많은 양의 냉각수가 사용되자 그 사용된 냉각수의 저장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 전에 저장해 두었던, 그래서 이미 오염도가 많이 떨어진, 탱크 내부의 저농도 오염수들을 방출한 것입니다. 즉, 방출된 오염수들이 방금 사용된, 그래서 매우 위험하게 오염되어 있는, 고농도 오염수는 아니며 이에 대한 피해는 크게 고려할만 한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많은 기사들에 따르면 고동도 오염수들이 물탱크로 이동되는 파이프 등의 시설도 피해를 입어서 적지 않은 양의 고농도 오염수가 지하수로 유입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맞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하수를 펌프로 퍼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2013년 기준 하루에 약 300톤가량의 오염수가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다고 일본정부의 발표하였지만, 정확한 양은 아직도 알기 힘든 실정입니다. 이렇게 방출되는 오염수가 태평양에 퍼져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까지는 심각하게 우려할 상황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냄비안에 엄청나게 짠 소금물이 있는데, 그 소금물을 수영장에 섞는다고 해서 수영장물이 짜지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200,300톤이라는 단위를 들으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라 생각되지만, 태평양 전체에 비하면 아직은 워낙에 적은 양에 해당되어서 방사능 오염물질이 희석되기 때문에 그 오염도가 크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출이 계속된다면, 곧 위험수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하루 빨리 오염수의 방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노력을 해야할 것입니다. 

세번째로 기사에 가장 많이 떠드는 세슘이라는 방사성 물질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방사성 물질은 각각 고유의 반감기를 갖습니다. 반감기란 방사능 물질의 양이 초기값에서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이야기하는데, 반감기의 열배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초기의 방사성 물질의 양은 약 천분의 일 이하로 적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반감기의 열배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방사성 물질이 사라졌다고 봅니다. 원자로 사고가 나면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들은 제논(Xe-133),요오드(I-131),세슘(Cs-137) 정도인데, 이중 제논은 반감기도 5일정도이고 비활성기체이기 때문에, 인체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대부분 체외로 다시 배출되어 크게 상대적으로 위험하지는 않은 물질이지만, 요오드와 세슘은 활성기체로 정상세포가 노출된다면 암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물질입니다. 요오드는 반감기가 8일정도이기 때문에 사고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요오드의 검출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이후가 지나면 30년 정도의 긴 반감기를 갖는 세슘만이 위험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난지 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세슘은 공포의 대상으로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방사능 오염에 의한 것이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기형생물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형생물체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방사능은 위험해서 엄청난 양을 한꺼번에 피폭받는다면 화상과 같은 외상을 입을 수도 있고, 암 등의 질병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형생물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또한 돌연변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러한 돌연변이는 한두 세대가 지나서야 들어나기 때문에 사고후 3년안에 그많은 기형 생물체들이 방사선 피폭으로 생겼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한국의 이웃나라에서 이런 전대미문의 불행한 사건이 터졌다는 것, 그곳에서 나오는 방사성 오염물질에 대한 피해가 직접적으로 한국, 그리고 태평양 건너편인 이곳 밴쿠버에도 미칠 수 있다는 두려움, 거기에 일본정부의 투명하지 않은 사건 대응에 대한 발표들과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근거없는 이야기들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정부의 투명한 사건조사발표와 외부 과학자들의 조사참여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Modified: Tuesday, 11 February 2020, 5:23 PM ]

Anyone in the world

대마초.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의 삶과는 왠지 거리가 있고 뉴스에서나 듣게 되는 그런 마약류, 호기심에 구하고 싶어도 일반인은 절대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우리 가족과는 상관 없을 것만 같은 그것. 대마초. 

아마도 이민온지 얼마 안되는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의 대마초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밴쿠버는 북미에서 가장 대마초가 대중화된 도시중에 하나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이미 세컨더리 스쿨의 많은 학생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담배나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마초를 피우는 학생에 대한 인식도 필자가 학창시절에 반에 한두명 있는 담배피는 학생정도일 뿐, 그 이상도 아닌 당연히 반에 한두명 있는 그런 아이들 정도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믿기 힘들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것이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대마초가 일반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청소년들의 삶에 두려움없이 깊숙히 파고 들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최근 담배와 대마초를 비교하면서 담배는 중독성이 있지만,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그래서 사실은 대마초가 담배보다 더 나은 것임에도 초기에 담배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들의 로비활동에 의해서 담배 외에 환각류들이 마약류로 분류되어 불법화되었기 때문이다 등의 이야기들이 퍼져나가면서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대마초를 합법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주장 중에 하나인 담배를 피어서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있지만, 대마초를 피어서 질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는 동영상 등까지 인터넷에 돌면서 대마초 합법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체내에 원래부터 대마초의 주성분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카나비노이드 수용체 (cannabinoid receptor)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더더욱이 대마초의 성분은 우리 몸안에 원래 있는 인체 친화적인 성분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러한 대마초에 대한 옹호 주장들은 인정하기 싫지만 대부분 맞는 내용들입니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오래전 합법화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또한 인체내에 그와 비슷한 수용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의 한쪽부분만을 강조함으로써 대중들이 다른 많은 문제점들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궤변에 해당합니다. 

인간의 뇌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대마초의 성분과 비슷한 수용체인 카나비노이드 수용체는 인간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용을 하기도 하고, 창의적인 사고 체계를 세우는 데도 많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호르몬이나 신경관련 물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을 경우 문제를 낳듯이 이 수용체도 그 작용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필요이상으로 그 자극이 강해 질 경우 환각, 망상장애 등의 경험을 하게 되며 심한 경우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즉, 의학적으로 진통제 등으로 효율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지나칠 경우 정신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기 때문에 대마초에 대한 인식을 안이하게 갖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기에 담배보다 더 낫다는 주장은 그들이 대마초의 중독성에만 초점을 둘 뿐, 그 환각성에 대한 무서움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마초란 인도의 대마(cannabis)에 함유된 성분을 추출한 것으로, 약 3000년 전 중국의 전설의 제왕인 신농의 이야기에도 대마가 나올 정도로 대마초, 즉 마리화나는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환각제 중 하나입니다. 대마에 있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etrahydrocannabinol, THC)이라는 성분은 환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적은 량 섭취하게 되면 심박동이 증가하며, 혈압상승, 결막충혈 등의 증상이 일어나고, 대량 섭취하는 경우 중추신경계의 마비 증상으로 몽롱한 상태를 유지하며 선명한 환각을 동반하는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 대마초 지지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고 표면적으로는 인체 친화적인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대마초가 가지고 있는 그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환각 물질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의한 쾌감은 횟수를 거듭할 수록 그 전과 같은 양의 대마초 흡연만으로는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없기에 더욱 더 많은, 더욱더 강한 환각성분을 원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환각에서 깨어났을 때 허상에 대한 허무감을 채우기 위해 다시 악순환이 반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종래에는 이제 대마초 가지고는 해결 되지 않는 쾌락에 대한 욕구로 더 강하고 이제는 중독성이 있는 코카인 또는 필로폰과 같은 마약류까지 접하게 될 소지가 매우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대마초가 담배보다 무해하니 담배와 같이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의 억지스러움은 사실 담배가 대마초보다도 더 유해한 물질이니 담배를 대마초와 같이 불법화해야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억지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인체와 사회에 미치는 악영양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후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많은 흡연가분들께서 반대하시겠지만요.


Anyone in the world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의 근간으로 고전물리학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한 물리학 이론입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이론의 초석과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치열하게 대립했던 두 학파의 공동 작품이었습니다. 

고전역학(classical mechanics)와 전자기학(electromagnetism)을 중심축으로 오랜 기간동안 완성되어온 물리학계는 1800년대말까지 자연에 대한 수수께끼가 거의 다 풀려간다고 여겼었습니다. 이 시기의 물리학을 근대 물리학이라고 하는데 뉴튼으로 시작되어 1900년대 초 아인슈타인 시대 이전까지의 물리학을 말합니다. 근대 물리학은 데 카르트(De Carte,1596-1650)의 유물론과 비슷한 맥락으로서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동일한 초기 조건이 성립되면 그에 대한 결과는 언제나 일정하다는 결정론과 그 이치를 같이 해왔습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물질(matter)와 파동(wave)이라는 두가지의 물리적 형태중 한가지에 속하게 되며, 그에 따라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갖게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 ‘빛’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근대 물리학은 엄청난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파동에 대한 많은 성질들은 연구한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에 의해 빛은 파동이라고 분류되었고, 그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이미 많이 이루어졌는데, 20세기 초,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66)의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를 통해서 빛이 입자의 성격을 갖는다는게 알려지게 됩니다.  즉, 빛이 물질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함께 갖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물질 아니면 파동으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근대 물리학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 때부터 물리학계는 크게 두 학풍으로 나뉘어 지게 됩니다. 한쪽은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드브로이(L. de Broglie, 1892-1987)와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1887-1961)와 같은 학자들로 고전역학의 결정론적인 근간은 바뀌지 않고, 물질과 파동의 이중성이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을 앞세웠고, 다른 한쪽은 보어(Niels Bohr, 1885-1962)를 중심으로 파울리(Wolfgang Pauli,1900-1958),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nsenberg,1901-1976)와 같은 학자들로 실제 세상은 완벽한 답이 있는 결정론이 아니라 확률에 의해 해석되는 이른바 양자역학이 고전역학보다 완벽하고 옳은 해석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쪽이었습니다. 

보어쪽에서 주장하는 양자역학이란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정확한 값을 갖는 것이 아니라 확률에 의해서 표현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인데, 예를 들면 원자의 모형은 정확한 모델이 있는 모양이 있어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전자가 위치할 확률이 높은 지역을 대략적으로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 두 학파는 1927년 8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에서 서로 맞붙게 되는데, 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강력히 반대 하였습니다. 그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라는 유명한 말로 확률에 의해서만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보어는 “아인슈타인, 신에게 명령하지 말게나. (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라는 말로 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솔베이 회의에서의 한 판 승부는 아인슈타인의 패배로 끝나게 되고, 보어쪽의 양자역학은 이 회의를 통해서 탄탄한 근간을 마련하게 되고, 이후 현대물리학의 중심축으로서 오랜 새월 물리학을 이끌었던 고전역학의 자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당시 솔베이 회의는 물리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회의로 손꼽혔는데, 1927년에 열렸던 5회 솔베이 회의의 참석자 29명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은 것을 보면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양자역학을 반대했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업적이 후에 양자역학의 발전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의 설명과 에너지 질량등가법칙은 고전역학을 마감하고 양자역학의 시대를 여는 초석역할을 담당했고, 또 거의 모든 양자역학 교과서의 첫장에 거론되며 양자역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라는 것입니다. 

솔베이 회의에서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했던 두 학파가 종래에는 현대 물리학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양자역학을 더 발전 시켜 나감에 있어 누가 더, 혹은 덜 했다 할 것도 없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과학자는 위대한 결과를 낳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고, 그것을 일반화시키기 위해 논쟁하고, 연구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깨지지 않는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겸허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올바른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생각하는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잘못된 선택을 했듯이 그 어떤 위대한 과학자의 주장이라도, 단지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가와 아무 상관없이, 그 주장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항상 냉철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반대된 주장을 하는 과학자의 업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치있고, 올바른 것이라면 주저없이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는 것이 과학을 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양자역학에 반대했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업적이 양자역학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초석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과학자로서 각자의 주장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는 것은 궁극의 진리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것도 완벽할 수 없고, 그저 상대적으로 좀 더 논리적이고, 좀 더 현상을 가깝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쉼없이 발견하고 쫓음으로써 숨어있는 자연 법칙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겸손한 자세, 즉 궁극의 진리는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그저 확률적이며, 언제나 그렇지 않을 확률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현대 물리학을 시작하여 거시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세계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 첫걸음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