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은 어떻게 질병 으로 이어지는가

귄터 그라스가 1959년에 쓴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는 이미 3살 때 어른들의 추악한 세계를 혐오하여 세상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일부러 높은 곳에서 떨어짐으로써 자발적으로 성장을 포기하죠. 트라우마가 실제로 성장을 방해한다는 건 지금이야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계단에서 추락한다는 식의 물리적 징검다리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병리 현상을 연결시키는게 자연스러웠을 듯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일반적인 관념이나 상식에 물음표를 달아보곤 합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의 조건 중 하나로 건강을 꼽습니다. 역으로 아프면 불행해진다는 사실도 큰 반론이 없지요. 그런데 정말 질병때문에 불행해지는걸까요? 혹시 불행해서 질병이 생기는건 아닐까요? 이런 질문을 던진 뇌과학책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부제로 전체의 주제를 요약한 이 책의 저자는 샌프란시스코의 빈민가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 위치한 '아이들을 위한 웰니스 센터' 설립자이자 소아과 의사입니다. 저자는 아동기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유독성 스트레스)가 성인기의 심장병,암,자가면역질환 등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임을 임상의학, 뇌과학, 면역학을 기반으로 밝혀냈고, ACE (th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검사를 토대로 한 치료 과정과 지역 사회에서 일궈낸 성과와 비전을 이 책에 담아냈습니다.

건강정보 이론서라기보다 질병에 대한 저자의 다른 관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체계를 만들어 임상적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일에 대한 거침없는 열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느낌이 더 많았습니다.
마음과 몸이 얼마나 긴밀하게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어찌보면 동양의학에선 오래 전 부터 설명되고 있는 내용인지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아동기 트라우마'를 개인과 가정이라는 골방에서 광장으로 끌어내어 공동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로 표준(standard)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내용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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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발견

장기적인 스트레스 상태에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몸에서 코르티솔 호르몬 생산이 증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1)혈당을 높여서 - 뇌활동 지지/ 근육에 연료공급
2)체내수분과 염분 수준 조절하여 - 정상 혈압유지/ 성장과 생식 억제& 생존 집중

쉽게 말하자면, 숲 속을 걷다가 곰이 나타나면 우리 뇌는 신장위에 자리 잡은 부신에게 갖가지 신호를 보내 "스트레스 호르몬(아드레날린, 코르티솔) 방출해! " 그러면 심장이 뛰고 동공과 기도가 열리고 도망갈 준비가 갖춰지는 것이다. 인류는 외부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생존하기 위해, 이렇게 <투쟁- 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 이라는 방어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하게 가해진 스트레스 반응은 적응에 도움이 된다 (< 노화의 종말>에서 약간의 스트레스가 Hormersis 현상을 일으켜 장수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주목한 바 있다)
하지만 너무 어린 시절 장기간 노출된 극심한 스트레스는 부적응을 일으켜 다른 모든 호르몬 수준과 생물학적 균형이 무너진다.

저자는 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ACE) sturdy)를 통해 ACE피해 아동의 고통 정도를 정량적으로 수치화하여 대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표준 질문지를 만들었다. 18세 이전에 다음 항목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가 유무로 대답한다.

1. 정서적 학대(반복적)
2. 신체적 학대(반복적)
3. 성적 학대(접촉)
4. 신체적 방임
5. 정서적 방임
6. 가정 내 약물남용
7. 가정 내 정신질환
8. 어머니가 폭력을 당함
9. 부모가 이혼 또는 별거
10. 가정 내 범죄 행위 (또는 투옥된 사람)

ㅡ>각각의 항목은 하나당 1점으로 계산한다. 총 열 가지 범주이므로 가장 높은 ACE지수는 10점.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아동기의 트라우마가 폭음, 나쁜 식습관, 흡연 등 성인기의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행동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저성장, 비만, 천식등에서 출발해 심장병,암 등 치명적 질병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 부 진단

<투쟁- 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에 관여하는 우리몸의 구성원들은 다음과 같다.

1. 편도체amygdala : 공포 중추, 위협식별. 경보장치.학대당한 아이들의 경우 편도체 비대
2.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 뇌의 앞부분으로 추론, 판단, 기분,감정 등의 인지 및 실행 기능 조절. 지휘자. 유독성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에게 억제됨
3.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 축 hypothalamic- pituitary- adrenal(HPA) axis :부신의 (더 오래 활동하는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생산과정을 작동시킴
4. 교감신경 - 부신수질 축 sympatho - adrenomedullary(SAM) axis: 부신과 뇌의 (짧게 활동하는 스트레스 호르몬들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생산 과정을 작동시킴
5. 해마hippocampus: 기억 강화에 결정적인 정서적 정보를 처리함. 기억 은행.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의 활성화된 편도체는 해마에 뉴런 연결을 교란시키는 신호를 보냄.
6. 청반locus coeruleus에 있는 노르아드레날린 핵 noradrenergic nucleus : 기분, 짜증,운동,흥분,놀람 반응을 조절하는 뇌 속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 과다분비시 공격성 높아짐.
7. 복측피개영역 : 도파민. 몸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과부하 걸리면 도파민 수용체 감도가 엉망이 됨,더 많은 양의 자극을 요구함.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에 노출된 정도가 클수록 중독성향이 강해진다.

고강도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뇌구조와 기능뿐 아니라 아직 발달 중인 면역계와 호르몬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DNA 해독.전사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조절 장애 패턴으로 배선되고 나면 그 생물학적 영향은 점점 퍼져나가 신체 내부 기관들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는 시계와 같아서 면역계에서 일어난 일은 심혈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깊이 연관된다.

아동기에 당한 불행은 호르몬계와 면역계 발달과 조절에 해를 입힌다.비만,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된다.

따뜻한 포옹과 입맞춤은 힘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미쥐가 새끼쥐를 많이 핥아주었을 때 스트레스 상황에서 새끼쥐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코스테론) 수치를 낮고 상황이 종료된 뒤 스트레스 반응 스위치를 더 쉽게 끈다. 이런 결과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어미쥐의 보살핌을 잘 받은 새끼쥐는 성장해 같은 유형의 어미가 된다. 후성유전의 사례이다.

유전체는 악보에 그려진 음표, 후성유전적 표지는 그 음을 연주할 때 크거나 작게 연주하라고 지시하는 악상기호, 때로는 어느 부분 전체를 건너뛰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런 후성유전적 기호는 경험에 좌우되며,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만일 네살짜리 아이가 만성 스트레스 상태를 경험하면, 뇌의 면역계와 호르몬계의 스트레스 반응 방식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의 스위치가 켜지고 다른 유전자들의 스위치는 꺼진다.

후성유전적 조절 과정 중 스트레스 유전학으로 잘 알려진 과정이 있다.
1. DNA메틸화:
메틸기라는 생화학 표지가 DNA염기서열의 시작부분에 달라붙는 현상. 해당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을 막아 유전 암호의 특정 부분을 정지시킴
2. 히스톤 변형:
히스톤은 유전물질을 가두어 DNA전사기구가 해당 DNA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단백질, 그런데 특정 생화학 지표가 히스톤에 달라붙으면 변형이 일어나 DNA가 읽히고 전사되도록 허용된다.

쥐실험에서 새끼를 핥는 어미쥐의 행동은 새끼의 몸에서 세로토닌을 방출시키고 DNA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영역의 전사에 변화를 일으키는 화학 과정까지 활성화시킨다.
이 실험은 어미쥐의 보살핌이 새끼쥐의 DNA에 있는 후성유전적 표지를 바꿈으로써 평생의 스트레스 반응도 바꿔놓았음을 증명한다.

아동기 초기 부정적 경험이 텔로미어 길이를 짧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도 있다. 명상,운동 등은 테로미어 길이를 연장시키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스의 수치를 높인다고 한다.

3 부 처방 & 4부 혁명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수면, 인간관계, 마음챙김(명상) 등의 회복 전략은 스트레스 반응 조절에 도움이 된다.
운동은 뇌와 신경세포에 영양제 역할을 하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BDNF)를 늘린다. BDNF는 해마와 전전두피질처럼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뇌 부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백질이다. 또 면역계의 염증물질인 사이토카인을 줄여서 면역조절장애를 도와 준다. 명상은 휴식- 소화 체계(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혈압을 낮추고,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며, 면역계의 균형을 잡고, 인지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저자는 이런 공중보건전략을 수행할 전초기지로서 <어린이를 위한 웰니스 센터>를 구상하고 설립하지만, 지역시민단체의 비난과 학회의 저항에 부딪치기도 한다. 'ACE선별검사를 통한 빠른 진단'이라는 접근법이 고통에 처한 사람을 낙인찍고 꼬리표를 단다는 것 그리고 '고통의 의료화' 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좌절은 없다. 강한 확신과 소명으로 센터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저자 자신이 겪었고 극복했던 개인사의 아픔이 있었음을 책후반부에 이르러 고백한다.

이 후 센터의 성공적인 활동에 힘입어, ACE 선별검사 프로토콜을 인터넷에 무료배포하고, 1년만에 15개국 1200여 곳 병원 의사들이 다운로드받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ACE선별검사를 위한 전국 소아과 실행 커뮤니티'를 만들어 대응과 치료법을 협업하기 시작했다.

유독성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반응이 혼란에 빠질 때 생기는 결과이다. 경제적,지역적,성격 문제가 아닌 생물학적인 매커니즘이다. 그것은 똑같은 생리 반응을 촉발한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독감이나 바이러스처럼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공중보건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유독성 스트레스 퇴치란 동네의 모든 우물과 같다. 그 우물은 상상 그 이상으로 깊고 모든 우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라는 공통의 적은 이분법적 대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유독성 스트레스의 세대 순환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스트레스 반응이 활성화될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않는 건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법, 곤경에 처한 아이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법, 의사와 상의하는 법,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에 대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사회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