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을 만나 든지

빌립보서 4:6-8 KRV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6-8: 관련 묵상 계획

매일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도록 격려하고 도전하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 작성자관리자
  • 등록일2007-11-30 21:47:00
  • 조회수1268
  • 날짜2007-12-02

염려는 믿음 뿐 아니라 건강도 해칩니다. 여자들은 추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일평생합니다. 그래서 20대에는 화장을 합니 다. 30대에는 치장을, 40대에는 분장을, 50대에는 변장을 합니다. 그러다가 60대에는 환장 을, 70대에는 결국 얼굴이 끝장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7, 80대에는 여자보다 남자의 피부 가 더 곱고 깨끗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웃음이 있으면 건강해지며 미인이 됩니다. 염려와 근심을 달고 살면 건강 이 상하며 결국 추녀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고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어느 분에게는 대표기도를 부탁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그에게는 ‘대표기도’ 가 ‘대포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표기도를 준비하는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주무시지 못하십니다. 어떻게 기도를 잘 할 것인가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 도한 후에도 역시 일주일 동안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기도하였으면 더 감동적이었 을 것인데 하는 마음과 다음 주일 교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몇 번 더 대표기도를 시키면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아 저도 불안합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교인 병원심방을 다녀 온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입원한 모습이 너 무 처참하여 그에게 이런 염려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교통사고 당하면 어쩌나...! 아니 나도 조만간 당할 것이야...!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것 같아...!’ 그러다 가 결국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염려한 대로 된 것입 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예수님은 그를 찾아온 사람의 돈, 명예, 염려하는 모습을 보시고 치유의 역사를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을 보시고 영육을 치료하셨습니다. 그 상황과 사람이 문제가 아 니라 내 믿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작게 믿으면 작게 응답 받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응 답 받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그 불신대로 될 것입니다. 염려 귀신이 떠나지 않을 것 입니다. 성도님의 처지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성도님이 이 말씀을 붙들면 이 말씀이 성도님을 붙잡아 줄 것입니다. 성도님의 삶 의 문제는 혹 과정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잘 될 것입니다. 해결될 것입니 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형통할 것입니다. 선을 이룰 것입니다. 뻔할 뻔 자입니다. 뻔데기 뻔 자입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찬송가 434장).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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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한걸음씩Eh 2019. 2. 26. 05:41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의 가사 중 일부분이다.

이 믿음의 고백을 삶속에서 할 수 있을까?

위기의 순간에, 고통의 과정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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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작사자는?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
    제인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실명했습니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기는커녕 오히려 찬송가
    434장을 통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고 노래합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이미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는 그녀에겐
    그 무엇도 문제일 수 없었습니다.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 천국을 소유한 자에게
     대체 무엇이 문젯거리가 되겠습니까?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영원한 생명을 이길
    죽음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깨뜨릴
     근심이 있을 수 없으며,
    천국의 기쁨을 억누를
    절망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또 학신했던
    크로스비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고 노래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1985년 8월 12일 일본 항공기가
    후지산에 추락, 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날 그 사고로 참변을 당한
    두 소년의 무덤이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있습니다.

    형제지간이었던 두 소년은
    당시 16세와 14세였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무덤 앞에 세운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본 항공기 추락사고로,
    인류 발전사에 공한할 수 있었던
    너희들이었는데...
    아깝다!
    억울하다!
    명복을 빈다.
    - 아빠가"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참으로 비장한 내용입니다.
    졸지에 16세와 14세된 두 아들을
    잃은 아비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하고 참담했겠습니까?

    그분이 당했을 슬픔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묘소 하나 건너에는
    1983년 1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소년의 무덤이 있고,
     그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세운 비석의 비문은 이렇습니다.

    "내 아들의 기쁨의 삶은
    주님과 더불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각각 다른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소년들의 죽음, 그것은 똑같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내용의
    비문을 통하여 그 죽음과
     관련된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지,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확연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 이 재철목사의 요한과 더불어
    첫번째 산책 중에서 -
    ~~~~~~~~~~~~~~~~~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 "벌부쉼터"의 생각

    행복과 불행은 외부 조건에 있지 않고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제인 크로스비가 말해줍니다.

    유한한 생명은 무의식 중에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항상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두려움과 행복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완전을 요구하는 기준도
    좋게 보이지만
    부족한 우리가 붙들면
    붙든 순간부터 화 속에 갇힙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내 자신을 보아도
    부족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먼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하고
    완전을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한한 내 생명을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는 장소입니다.

    부족을 용납할 수 없는
     기준에서 벗어나
    부족한 자를 반기시는 기준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을 기뻐하는 자는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것은 온전한 대로 좋고
    부족한 것은 십자가에 있게 하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십자가에 있으면 있을수록
    내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해지고 만족하게 됩니다.

    무슨 일 을 만나 든지

    ※사진은 2018.10.15~10.30
    소소 미술관 기획초대
    "추상표현적인 NATURE"
    전정애 전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작가가 아니라
    제대로 잘 찍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시회에 가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감상하시라고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