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것이 없지

[나다움을 지킨 일]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이 인생을 일찍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린아이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엉터리 코미디 같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섭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보다 나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돈이 내 인생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경우는 많지 않다. 70-80년대에는 선거 전날 밤에 동네에 돈 봉투들이 돌았다. 학부모 면담 주간엔 담임선생님 서랍은 늘 열려 있었다. 돈수거 주간이 끝나고 나면 수납 성적이 선생님의 태도에서 표가 났다. 돈이 인간을 얼마나 저급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돈 때문에 인간다움을 잃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다. 부당하게 버는 돈, 남을 해코지하면서 버는 돈, 내 것이 아닌데 탐내는 돈..... 이런 돈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돈 있다고 갑질하는 사람, 내 돈이 온전히 내가 잘나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더 큰돈을 모으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중학교 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품은 후, 고등학교 때 미술 전공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 주변 모든 어른들이 반대를 했다. 난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말이 모두 옳은 건 아니라는 깨달음을 익히 가지고 있었다. 동네 저잣거리엔 하루가 멀다 하고 어른들의 싸움판이 있었다. 사랑의 매라며 때리는 학교 체벌은 가히 인정된 폭력의 현장이었다. 여고시절엔 학교에서 성추행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그러니 어른들의 훈계는 나에게 그 어떤 무게감이나 울림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혼자 생각하고, 혼자 꿈꾸고, 혼자 결정하는 습관이 ‘나다움'에 대한 고민을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앞서 책을 내 본 지인들에게 출간이 가당키나 한 생각인지를 출판사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출판사에 보내려면 ‘출간 기획서'라는 게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만든 출간 기획서와 그동안 EK 커리어 노트에 올렸던 글을 샘플로 전달해 주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여러 출판사에서 관심을 주었다. 그중엔 대형 출판사도 있었다. 책을 내 본 지인들은 대형 출판사의 자본력과 파급력을 얘기하면서, 작금의 어려워진 출판시장에 그나마 책을 내고 성공하려면 꼭 대형 출판사와 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메이븐 출판사에 끌렸다. 아직 신생 출판사이지만, 내 글에 보이는 애정에 마음이 갔다. 많고 많은 원고 중 하나가 아니라 내 글색을 좋아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에 공감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감사했다. 결정을 내리는데 그 마음이면 족했다. 모두들 후회할 거라고 만류했지만, 그게 나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하다. 내 책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메이븐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나는 행복했다. 그것으로 잘한 결정이다. 나답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성찰의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온전히 혼자 내리는 결정들이 쌓여야 하고, 잘한 결정과 잘못한 결정들 속에서 배움이 쌓여야 하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반응을 하고 내 삶은 어떻게 변화되는지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내가 어디까지를 억지로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느 선을 넘으면 나다움을 잃게 되는지, 싫은 일을 하면서도 나다움을 지킨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지는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터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스무 살, 서른 살에 나다움이 뭔지 모르고 흔들리는 건 당연한 거다. 그 흔들림이 나다움을 배워가는 과정이고, 많이 흔들릴수록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기회이다. 그러니 인생의 모든 흔들림은 의미가 있다. 노자가 주장한 ‘무위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답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러니 나답게 그저 나로 살아도 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Do nothing'이 아니라 'Do your thing'. //// 우린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살고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온갖 정보가 필터링 없이 내 머리로 들어가고, 그게 또 되새김 없이 내 생각으로 자리를 잡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 생각'을 만들기 위해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물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노자의 무위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인생철학과 생각이 있어야 껍데기가 아닌 ‘나'로 살 수 있다.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나답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하지 말 것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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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really want to make a change in this world, it is by your actions. Nobody is perfect, but everybody has the power to make a difference. - WinWinFam (유튜브 채널명)" 우영우 드라마에 대한 전 세계 반응이 크다. 나는 K 콘텐츠의 해외 리액션 영상을 가끔 보는데, 신기하게 위로가 되고 흥미롭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인용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안도감과 비슷한 감정인데,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확신과, 대부분의 사람들의 ‘나다움'은 결국 인류 보편성 안에 체류한다는 생각. 최근에 본 우영우 리액션 영상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자폐스펙트럼 자녀를 둔 부부가 드라마를 보며 나누는 대화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글의 편의상 영상 속 여자분을 ‘엄마', 남자분을 ‘남편'으로 칭하려고 한다. 참고로 남자분은 스스로 자폐가 있다고 다른 영상에서 언급함) 1. 스스로 경험하고 터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영우 4화에는 우영우가 고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했던 에피소드가 나온다. 영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는 “에피소드 4는 제 인생에서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무서웠습니다.”라고 회고한다. 격한 감정을 호소하는 엄마의 리액션에 비해 남편의 리액션은 매우 침착하고 현실적이고 지혜롭다. 남편은 말한다. “애들한테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게 중요해. 현실이 동화 속 세계인 것처럼 교육해선 안돼. 마주할 현실이 어떤 곳인지 알려줘야 해. 어려움이 집에서 시작되도록 해야 밖에 나가서도 어려움을 참아 낼 수 있어.” 남편은 우영우가 학교에서 당한 괴롭힘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점심은 수위실에서 먹으면 안전하고, 쉬는 시간엔 교무실에 있으면 안전하고, 동그라미와 친구가 되면 안전하다는 것과 같은 법을 터득하고 적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배우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변호사 우영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영우는 자신의 취직을 부탁했던 아빠에게 외친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 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주는 거 싫습니다. 하지 마세요!” 지켜보는 게 힘들다고 겪지 않도록 막아주는 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들진 않는다. 2. 우리 사회에는 ‘다름'이 필요하다. 남편은 ‘장애인(disabled people)’라는 인식과 표현을 ‘스페셜 니즈(Special Needs - 특별한 보조가 필요한 사람)’라고 정정해 준다. 권민우 변호사가 장명석 팀장에게 왜 우변에게만 특혜를 주냐고 항의하는 장면에서 남편은 자신이 팀장으로 경험한 비슷한 사례를 공유해 준다. 그리고 그건 특혜가 아니라 유니크함이 기여한 바에 대한 인정이고, 팀에는 그런 유니크한 여러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눠준다. 우리 사회는 여러 ‘다름'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나와 달라서 불편하고 생경하게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다름’에는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이 부부에게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그래서 스페셀케어가 필요한 첫째 아이와 그렇지 않은 둘째 아이가 있다고 한다. 둘째는 종종 엄마에게 “왜 엄마는 오빠만 챙겨"라는 불만을 토로한다고 한다. 아빠도, 엄마도, 첫째도, 둘째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다 함께 공정하다고 느끼는 세상을 만드는 건 참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3. ‘자기애'가 필요하다. 엄마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를 걱정한다. 남편은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혹은 그런 현실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 말고),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고 돌보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내가 나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드라마 속 우영우는 말한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이 드라마가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 이리라. 4. 우린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엄마는 사람들이 4화를 보고 모두 자신처럼 화가 났으면 좋겠다고 총평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마도 정작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이런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ㅎ 맞는 말이다. 남편은 타인에 대한 원망과 생각(시선과 기대)을 나에게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친구들이 잘 해줘야 하고, 선생님이 잘 해줘야 하고, 사회가 잘 해줘야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이라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을 하는 것, 우영우의 감독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실천을 했다. 리액션 영상을 만든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실천을 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다시 내 생각을 나누는 것으로 작은 실천을 보태본다. “세상을 정말 변화 시키고 싶다면 그건 당신의 행동에서 시작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변화를 만들 힘이 있어.” 유튜브 영상 https://lnkd.in/e9hreymh //

[커리어 노트 82] 드라마 우영우가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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