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이상한 마임은 왜 자꾸 하는거지 번역

본문 : 8 : 19-25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8. 7, 8, 9장은 굉장히 중요한 책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책들이 다 사라지고 단 한 장만 가지고 우리가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어느 것을 가지고 가야 하겠는가?라고? 했을 때 로마서 8장을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강의해 놓은 건 거의 다 좀 틀렸어요. 그 강해로 하면 큰일 날 뻔한 거죠. 그래서 제가 오래오래 이 부분을 지금 강해를 하는 건데 여러분, 차곡차곡 한절한절 지금 이해를 하고 계시는 거죠? .

오늘 이 부분도 그동안에 제가 말씀드렸던 설명해드렸던 그런 부분에 다 나와 있는 것이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제가 나중에 원어를 가지고, 오늘은 좀 그렇게 원어를 가지고 많이 설명을 해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조금 무리인 거 같아요. 그래서 한두 달 후에 그렇게 할 것이고 오늘은 제가 조금만 이렇게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에 관해서 공부했죠? 모든 피조물이 수평적 시간,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역사적 시간이죠? 이 수평적 시간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게 되지만 그중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이 진리 안에서의 그 수직적인 시간, 그 수직적인 시간인 카이로스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이들에게 있어서의 그 크로노스의 시간은 그건 모형이요, 벗겨져야 할 껍질과 같은 것, 것,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진리는 그 껍질을 뚫고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투시의 안경 같은 거다, 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묵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되면 그 모형으로서의 역사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요즘 우리 교인들이 이렇게 글 쓰는 것들을 보면 아, 드디어 그분들이 이 일상 속에서 진리를 읽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제가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 겁니다. ,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게 카이로스의 눈을 가진 사람들인 거죠

그렇게 묵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아 그 모형으로서의 역사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잘 보게 되면, 그럴 때 그 피사체의 상태 어, 누가 나를 진짜 나의 목적대로 진짜 나의 그 역할 대로 읽어 주네? 나를 봐 주네? 할 때, 그 피사체의 상태가 자유! 혹은 풀려남이라고 하는 거예요.드디어 풀려나는 거예요. , 진짜 내가 뭔지. 내 내용을 누군가가 봐주네? 라고 했을 때에 그 피사체의 상태가 자유, 풀려남. 그런 겁니다.

그러한 이들은 이 역사 속 사건들이나 맞닥뜨리는 현실이나 감정까지도 진리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과를 갖게 되죠. 물론 완벽하진 않아요. 그러나 점차 점차 깊어진단 말입니다. 그런 것이.

그렇게 크로노스를 카이로스 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그 은혜는인간 쪽에서의 그 어떤 탐구나 노력이나 열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그 주권 안에 들어있는 거죠? 능력, ‘엑수시아라는 하나님의 권세 안에 들어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 자기 엑수시아, 자기 능력 안에 두셨다.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사도행전 1 7절에

그때의때와 기한이 크로노스, 카이로스예요.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아버지가 자기 능력 안에 두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때, 크로노스 속에서 그 기한, 카이로스를 볼 수 있게 된 그런 이들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속에 이미 들어가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을 존재케 하는 법칙이나 원리, 모든 것다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저 나타난 모양이나 인식되는 원리나 법칙으로만 이해되면 안 되는 게 이 크로노스, 그 물리의 세계, 이 세계 속, 물질세계 속의 존재들이나 원리나 법칙 그런 것의 실체란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이 크로노스 속의 그 어떤 것도 우발적으로나 우연적으로 생겨난 게 없다는 거예요. 진화? 이런 거 없어요

실지로 그 다윈 자신이 자기의 친구인 신부에게 그건 음모였다, 라고 자기가 고백하고 죽었단 말입니다. 죽기 전에 그건 학자로서의 나의 어떤 업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나의 거짓말이었다, 고 그랬단 말이에요. 나의 이 거짓말이 세상을 이렇게 뒤집을 줄 몰랐다, 라고 그 사람이 얘기하고 죽었는데 그걸 인간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걸 그래서 묻어 둬버렸다니까요. 그 유언은. 아니라고, 이게 맞는다고. 저거 죽기 전에 노망든 거라고.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음모라니까요.절대 우발적으로나 우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 크로노스 속의 모형들 안에는 우리의 육신도 들어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라는 책도 이 아래의 것이고 성전도 그러하고 그것도 하늘을 설명하는 거였잖아요? 성전이. 그리고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러해요

모든 것은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거예요그것이 밖으로 나타나서 누군가에게 감지가 될 때 그걸영광이라고 그런다. 그랬잖아요. ‘독사. ‘독사’. 그죠그렇다고 예수님이 피조물이란 그런 얘기가 아니라, 진리를 담고 오신 예수님이 육신으로만 이해되어지고 그분이 이 땅에서 행하신 기적이나 아니면 그분이 일으키신 어떤 사건, 그리고 그분이 당하신 수난의 삶. 이런 거에만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면 그분은 우리 밖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거고. 그걸 우상이라고 한단 말이에요그러면 그건 표피적으로 이해되어진 크로노스적인 예수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그 예수는 절대 우리의 메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우리를 못 구원하니까. 그래서 그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 예수는 그리스도죠. 그리스도를 담고 왔잖아요. 진리의 영을 담고 온 분이니까.그러니까 그걸로 이해가 되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 예수님은.

그래서 바울은 예수가 어떤 이들에게는 모퉁이 돌이 되지만, 그런데 그 모퉁이 돌이라는 건 뭐냐 하면 그 돌을 기준으로 딱 갖다 세워놓으면 그거와 똑같은 돌로 옆에서 계속 세워서 집을 지어야 된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그렇게 죽어야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이들에게는 그 예수가 모퉁이 돌이 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거치는 반석, 부딪치는 돌이 된다, 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입니다. 그 돌에 맞아 죽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에 돌로 쳐 죽여라는, 그 예수에 맞아 죽는다는 뜻이에요. 너희들이 율법을 율법으로 보면 그 예수에 맞아 죽는다, 이런 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에서도그 돌이 벌써 던져졌는데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거예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가 아니라니까요.‘그 돌은 이미 던져졌는데이런 말이에요. 원어로 보면

그렇게 예수라는 돌과 그 돌에 관해서 적혀있는 그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하늘의 떡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게 마귀의 시험이었잖아요. 돌로 떡을 만들어봐라! 거기에 끝이면 안 돼요. 그 떡은 진리지. 말씀이지! 라고 예수님이 완성시켜준단 말에요.거기에서이라는 예수는 하늘의 떡으로 그 떡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에게 이해되어져야 된단 말입니다.

그렇게 해 아래 모든 것이 그 모형으로서의 그 외양 그 안에 진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건데피조물들이 그 나타난 모양으로만 인식되고 평가되고 이해되면 그건 사실 오해되고 있는 거잖아요. 너희들 희생제사 들여, 라는 그 말속에는 그 희생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드리는 그 진짜 제사가 뭔지를 알아라, 는 의미였잖아요. 그런데 그 희생제사 드려라 는 말을 그 껍데기로만 알고 계속 드리면 그건 오해죠?마찬가지란 말에요. 모든 것들이 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냥 우리의 이성의 수준에서 그냥 그 수준으로 이해해버리면  그들의 진짜 존재 목적, 그들의 진짜 가치는 진짜 진리를 설명하는 건데 아무도 그 안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게 되는 거예요아닌데, 나는 그런 내용으로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데 그런 목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데  다른 이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 평가해버리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단 말에요.

나타난 모양으로만 그것들을 보는 이들은 보이는 그 표피적인 것만으로 판단을 해서 아름답다, 추하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거칠다, 부드럽다, 멋지다, 슬프다, 기쁘다 등등의 평가를 한단 말에요.그런데 하나님은 그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을 메시지로 담아 놓았단 말이에요.그럼에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지 못하고 표피만을 인식해서 그것으로, 그걸 내용으로 받아버리면 그리고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해버리면 그 피조물이 거짓말쟁이가 된다니까요. 본의 아니게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진짜 그 진의로 봐주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누가 그 피조물을 보이는 모양으로만 보지 않고... 성경말씀을, 이렇게 이해해보세요. 성경말씀을 보이는 모양으로만 보지 않고, 문자로만 보지 않고 진리라는 내용으로 볼 수 있겠어요? 누가? 진리라는 생명의 씨를 그 마음으로 가진, 선물 받은 그 하나님의 아들들 밖에 없단 말에요아들이라는 건 그 안에 씨를 가졌다는 뜻이거든요. 그들의 눈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떨어지고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가뭄이 오고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일식이 생기고 월식이 생기고 일식이 생기는 걸 보면서 아! 해가, 빛이 있는 것은 달이 해를 가리면 저렇게 되는구나, 라고 아는 거죠?

이 땅의 달이, 달은 반사첸데 율법이 진리를 가리면 해가 빛을 잃는 거 그게 심판이란 말입니다. 일식이 생기고 월식이 생기고 노을이 지고 새가 날고 어미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젖을 먹고 젖 먹던 아이가 밥을 먹고 이 모든 게 성경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진리로 보이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그 속에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예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진리로 나타나게 되는 피조물은 비로소 그들의, 그들의 진의를 봐주는 그 아들들 때문에 껍데기, 허물을 벗게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자유라 그래요. 풀려남이라고 그래요.오늘 분문의 이야기가 그거예요. 본문 19절 보세요.

8 :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뭘 고대한다. 그래요. ‘아포카라 도키아’.... 이건 정말 뭔가를 간절히 열망하는 거예요. 이거 없으면 죽어요. 

그래서 다른 것들이 안중에도 없는 상태. 열망하는 거.

그런데 피조물이 무얼 그렇게아포카라 도키아한다. 그래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그죠? 여기서 나타나다,라고 번역이 된아포칼립시스가 나타나다, 라는 뜻도 있지만나타내다, 덮개를 벗기다라는 뜻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직역을 하면 이런 거죠. 의역을 한번 해볼게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그 진리의 씨를 가진 그들이 나타나서, 그들이 나타난다, 라는 건 그들의 껍질을 먼저 벗는 거죠. 진리로. 자기부인이에요. 그것이. , 이건 아니구나! 라고 자기들의 그 아포칼립시스,껍질을 벗은 어떤 이들이 나타나서 그 피조물들의 껍질을 벗기고 덮개를 벗기고, 아포칼립시스, 그 안에 내용을 나타내게 하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거예요. 뭐가? 피조물이요.

덮개가 벗겨져야 되는 거예요. 이 세상 것들은. 그때에 피조물은 그 크로노스의 썩어짐을 이제 벗게 되고카이로스의 영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물질 속에 갇히면 반드시 늙고 썩게 되어 있어요. 시간 안에 갇히기 때문에. 크로노스에 갇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영원으로 다시 살잖아요? 그 내용으로 살아버리면 그게 카이로스, 수직적인 시간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영원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영생이라고 한단 말입니다.그렇게 위로 똑바로 서는 걸 뭐라 그런다고 그랬어요‘아나’, 위로, ‘이스테미’, ‘아나스타시스’, 부활이라 그래요. 그거를.위로 똑바로 서다! 라는 뜻 아니에요

부활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다시 위의 것으로 똑바로 세우다, 이 말이에요. 그게 부활이에요. 그러니까 이 크로노스의 역사 속에서 다시 위의 것으로 똑바로 서지 못하면 절대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지.‘아노뗀’. 위로 다시 나야지. 그러는 거예요. 아래에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난 자는 반드시 위의 입, 이라고 그래요. 히브리문자로는,위의 입, 말로 다시 낳아야 된다는 거. 말씀으로. 그걸 거듭남이라고 한다니까요

그렇게 크로노스의 역사가 카이로스로 해석되지 못하면 절대 온전함으로 성취될 수가 없다는 걸 확실하게 밝혀주는 게 

히브리서 11장의 마지막 절이에요.

11 : 39-

39.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 ‘이브리가 뭐라 그랬어요? 건너간 자라 그랬죠? 그래서 히브리서는 전부 아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아들이 된 자. ‘그 아들이 된 자’. 그들이 아니면 그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는 그들이 온전하지 않은 거예요. 거짓말쟁이가 된다니까요. 그런 말이에요

그 약속이라는 건 약속의 실체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말하는 거죠? 증거는 이미 받았죠.눈에 보이는 것들로는 하나님이 다 설명해줬단 말이에요. 그러나 이제 약속의 때를 받아야 돼. 그런데 그 약속의 때는 못 받았단 말이에요. 구약의 사람들이. 왜냐하면 십자가 이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게 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요. 그런데 구원의 차서, 우리 교회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십자가라는 어떤 분기점. 분수령을 딱 세워놓고 그 이전과 이후로 이렇게 설명해주는 거예요.

23 : 49-

49.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약속이 뭐예요. 그러니까 약속하신 거? 예수님께서 올라가서 보낸다는 게 뭐예요? 그리스도의 영. 그죠? 그게 위로부터 입히게 되면 그게 약속이다, 그런단 말에요. 그런데 그거를, 십자가 이전이니까. 그 이전에 히브리서

 11장에 쭉 나열된 그 사람들은 그때를 못 살았잖아요? 그러면? 그 십자가 이후에 그리스도의 영을, 그 약속을 받은 어떤 이들이, 그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구원받은 거야. 라고 설명을 해줘야 그들이 참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 십자가 이후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이 약속도 못 받고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지도 않고 설명도 못 해주면? 거봐. 거짓말이지! 이렇게 되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그 아들들이 나타나야 되죠? 그 씨. 그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가, 그거 우리예요. 우리. 그래서 우리가 아니면 그걸 진리로 설명해줄 수 있는 우리가 아니면 그들도 온전하지 못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들이 구원 못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구원, 그 영생 주심이라는 건 이런 거야, 라고 말씀하신 성경, 그리고 그걸 삶으로 몸으로 이야기하러 오신 예수, 그리고 그 이야기의 출처인 하나님까지도 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예요. 줄줄이 다. 이렇게 아들들이 안 나타나면. 그리고 이들이 그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줄줄이 하나님까지 전부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나타나야 되는 거예요.

 십자가 이후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가. 그리고는 그 진리로 설명을 해줘야 하나님까지도 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러잖아요.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너희들은 왜 자꾸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언제 이스라엘이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어요?? 내 말을 곡해해갖고 그렇게 강도처럼 써먹어?? 그럼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잖아. 왜 그걸 진리라고 가르쳐? 그럼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잖아? 그런 말이에요.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그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다니까요.하나님은 성경에서 분명히 구원은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면 그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거지요

그런데 정말로 약속의 때하나님의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이 나타나서그 구약의 그 자손들도 바로 이 십자가라는 이런 방법,하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과 우리에게 영으로 오심에 의해 우리가 존재가 된 거야, 생명이 된 거야,라는 바로 이 방식으로 저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거야, 라고 설명을 해주면 그들이 비로소 참이 된다니까요. 그래, 너는 나를 제대로 봐주는구나! 이렇게. 너는 나를 제대로 봐주는구나. 이렇게. 그게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절이란 말에요.

아브라함도 그 하나님의 아들들의 올바른 진술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손아브라함으로 이렇게 밝혀지게 되는 거고.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모세도들의 인생이 담고 있었던 그 진리라는 내용으로 밝혀지지 않으면 그들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예요.

지나가는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여, 그런데 보니까 하나님이었어. 그래서 복을 받은 아브라함, 이거 얼마나 예화로 많이 쓰입니까? 심지어 아주 간증에도 나와. 자기들도 그렇게 했더니 진짜 그게 예수님이었대. 그 굉장히 유명한 어떤 의사가 그러고 다니잖아요.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도 그 열심과 열정으로 하나님마저도 감동시켜. 지지 않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얻어낸 야곱.  

그러니까 강청기도해라, 이러잖아요. 목숨 걸고. 요즘엔 일천 번제보다 뭐 더 어마어마하게 긴 기도가 나왔다고 그러던데. 그거 기도할 때마다 헌금 내는 거라면서요? 나 며칠 전에 처음 알았어요. 그냥 가서 맨으로 기도만 하는 게 아니라. 일천 번제라는 게 갈 때마다 돈을 갖고 가는 거라면서요? , 그런 걸 써먹었어야 되는 건데. 나는 몰랐어! 진짜~. 그런데 천오백 번 제 뭐 이런 것도 나왔대요. 이제. 형제들의 배신에도 인내하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잃지 않아서 결국에는 애급의 총리가 되는 복을 받은 요셉. 애급의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도구로 열심히 살다간 모세. 이미 경수가 끊어져서 태가 막혔는데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이삭이라는 자식을 얻은, 아들을 얻은 사라.

이런 건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의 핵심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이 믿음으로 누구는,,  이렇게 믿음을 주어로 해서 다시 쓰는 거예요. 믿음이 그렇게 했다, 라고.생각해 보세요. 모세가 사람 죽이고 도망 나온 거지 무슨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걸 애급의 모든 보화 보다 ㅎ 소중히 여겼습니까? 아니에요. 처가살이하면서 40년 동안 풀이 다 죽어 가지고 그냥 겨우 그 상태에서 그냥 하나님께 쓰임 받은 거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고 나오 사람 아니라니까요.사라가 언제 하나님이 자식 준다고 그랬을 때 믿습니다. 해갖고 자식을 낳았습니까? 휘장 뒤에서 비웃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히브리서 11장이 확 폭로시켜내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런 존잰데 믿음이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이 말은 너희들이 한 행함은 그따위 것이었는데 그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들어있어 너희들을 결국에는 그렇게 만들어 냈다, 라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안에서 일을 하신 하나님의 손길, 크로노스 안에서 일을 하신 카이로스의 하나님의 손길에 초점이 있는 거지. 그들이 행한 행함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따라서 그러한 방식으로 거저 구원을 얻게 된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 믿음의 선진들의 삶의 내용을 진리 안에서 올바로 이해해서 설명해주지 못하면 그들은 온전한 자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하늘에서 땅을 치고 있을 거라니까요. 내가 지나가던 길손을 대접한 게 그거냐? 모세도, 아냐, , 사람 죽이고 도망 나왔어​. , 너희들이 왜 나를 그렇게? 나 그거 기분 별로 안 좋아. 너희들이 나 칭찬해준다고 기분이 좋을 거 같니? 안 좋아. 나의 실체를 보고 나를 그렇게 만지신 하나님을 봐! 그럴 거란 말에요.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자꾸 존경하려고 해.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있거든요. 그게 인본주의라는 거예요.

그렇게 크로노스의 그 땅이 카이로스의 그 하늘적인 것으로 깨달아지면 그 상태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상태, 즉 연합의 상태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연합이라고 그래요. 성경이. 아래의 물이 위의 물로 깨달아지고. 위에 물이 있다. 라는 게 아니에요. 그 진리, 그걸 아래의 물로 설명해주니까 그냥 위의 물이라고 우리 수준에서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 아래의 물이 위의 물로 깨달아지면 그 아래와 위가 연합되는 거예요.그걸 짝이라고 해요.성경이. . 어두움이 빛으로 이해되어지면, 어두움을 통하여 빛을 알면 그 어두움이 그 빛이 되네? 짝이라고 그래요. 그걸 연합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짝은 반드시 하나로 연합이 되어야 돼요. 

그것이 창세기 1장의 자칼과 네케바의 이야기란 말에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그 남자는 반드시 여자 안으로 들어와, 여자의 반쪽으로 붙어서 사람, 하늘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그게 창세기 셋째 날의 완성이었잖아요. 창세기 셋째 날에는 씨 이야기가 나오죠? ‘제라’. 그 씨를 가진 자. 이것이 이제 완성이 돼야 되는데, 땅에서. 그게 바로 자칼과 네케바.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다. 라고 사도 바울이 이야기해주잖습니까?? 둘은 반드시 하나로 연합이 되어서 비로소 온전한 존재로 존재해야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마찬가지예요..땅의 것이 하늘의 것을 담아서 하늘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그걸 바로 완성이라 그래.

 언어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땅, 대륙 나라 모든 이름이 다 여성형인 거 아세요?아시아, A로 끝나면 전부 여성형이에요. 오세아니아, 영국-브리타니아, Japan? 자포니아예요. 원래가. Korea, Oceania, India, . America. 아메리카 대륙은 콜롬보스가 발견한 거 아닙니다. 아메리토가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여성형, 아메리카, 가 된 거예요. !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역사가 암묵적으로 그건 당연히 여자지. 이렇게 알고 있다니까요. 땅은.

하늘만 남자예요.. 남성. 그러니까 땅이 여자가, 하늘의 그 씨. 진리를 받아 그 아들로 태어나면 그걸 연합이라 그래요. 그걸 생명이라고 한다니까요. 아니, 엄밀히 말해서 땅이 씨를 받아 어미가 죽고 아들이 되는 거예요. 다른 말로, 아들로 다시 태어나요. 땅은, 육은, 모두 가. 진리로 다시 태어나야 돼요. 하늘의 씨를 받아.성경 전체가 그 이야기이고 이 세상이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땅의 것 조금 하늘 것 조금 이렇게 서로 내어놓아서 연합되는 게 아니란 말에요. 땅은 하늘로 완전히 함몰되어 들어가야 돼요. 이게 그거였어? 이렇게. 삭제당하는 거예요.따라서 크로노스의 죄와 악으로 카이로스의 의와 선을 배웠다면 그 땅의 죄와 하늘의 의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걸 알았다면. 그러면 당연히 땅의 죄가 삭제돼요.. 그걸 용서라고 한다 그랬잖아요. 땅의 어두움으로 하늘의 빛을 깨달아 알았다면 어둠과 빛이 하나가 되죠? 그러면 땅의 어두움은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카이로스를 사는 사람은 이 어두움인 이 땅에 살면서 그 어두움이 없는 하늘, 빛만 있는 세상을 여기서 산다니까요. 그것과 상관없기 때문에. 그걸 연합이라 그래요. 어두움의 삭제. 그렇게 되면 그 존재는 선과 악, 좌와 우, 어두움과 빛. 이게 뭐예요? 선악과 따먹은 아담이에요. 아담의 상태. 선악과 패러다임 하에, 선악 패러다임 하의 아담. , . 좌로 치우치고 우로 치우치고, 선으로 치우치고 악으로 치우치고. 어두움으로 치우치고 빛으로 치우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그들은 하나로, 똑바로 가운데로 서게 된단 말에요. 그걸 부활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 선, 악과 아무 상관없는 상태로 사는 거예요.착한 사람 되는 게 기독교의 목적이 아니라니까요.

시가서 다섯 편이 바로 제가 지금 말씀드린 그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인 거예요. 성경은 카이즘 구조로 기록되어 있다고 그랬죠? 카이즘 구조라는 건, A, B, C, D. C-, B-, A-. 요런 구조 있죠? 요렇게 확장되어져 가다가 가운데에 주제를 딱 놓고 다시 요렇게 축소되어 펼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요거(가운데)를 강조하는 거죠? 뭐 복음서도 대부분 요렇게 써져 있어요. 그래서 쭉 펼쳐져 가다가 가운데에 핵심적인 걸 놓고 다시 그걸 설명해주는 거거든요. 카이즘 구조. 그러니까 제일 가운데에 있는 걸 주제라고 보면 돼요. 그러면 성경을 딱 덮었다가 가운데를 쓱 열어보세요. 어딥니까? 시편이란 말에요. 시가 서란 말에요. 거기가.

그러니까 시가 서 다섯 편이 지금 성경 전체의 주제, 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전부 다.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관점으로 시가 서를 오늘 다시 가서 한번 읽어보세요. 그런 면에 시가서 다섯 편중의 첫 편인 욥기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의 시작. 아주 초보적인 단계를 설명하는 거예요. 욥을 본받자가 아니라니까요.

41장 이전의 욥처럼 살면 지옥 간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욥기는. 욥이 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이란 말에요. 런데 하나님이 욥을 들어 쓰지 않고 아브라함을 들어서 믿음은 이런 거야. 하나님의 씨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거야 하고 설명했단 말에요. 욥을 안 쓰고. 너무 버거워서? 아니라니까요. 그건 구원의 이야기의 초보의 이야기야. 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란 말입니다.

욥기를 열심히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욥은 아주 율법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는 잔치를 벌이고도 제사를 지냈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매일 같이 제사를 지냈어요. 무슨 결벽증 있는 사람처럼.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죄를 멀리하려 했던 사람이에요. 그 죄를 가지고 하늘의 의를 알라고 그랬더니 그걸 자꾸 멀리만 해. 그리고는 나 잘했죠? 라는 게 욥이라니까요. 욥기 1 4절 보세요.

1 : 4-

4.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나 같으면 잔치 다시는 안 할 거 같아요. 잔치할 때마다 사람 명수대로 짐승을 죽여서 피를 내어 제사를 지내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세요? 잔치 한번 하면 꼭 아버지가 다 불러다가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여러분 정말 제사를 열심히 지내면 죄가 용서됩니까? 그럼 히브리서는 찢어버려야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욥을 본받아야 할 욥, 이라고 일단 그렇게 시작을 한다니까요.  

성경은 이런 욥의 상태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되는가를 보여줘요. 율법적인 사람들은 반드시 크로노스의 세상 것에 묶여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욥이에요. 성경은 그걸 사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욥을 고소하는 것부터 이제 시작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세요. 그런데 이런 걸 보고 야, 하나님 나라에 가면 사탄도 있나? 성경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하나님은 영이라니까요. 그런데 자꾸 그렇게 그림을 그리지 마세요.

사탄, ‘싸탄나스라는 단어 자체가 비 진리, 대적자, 진리의 대적자라는 뜻이에요. 그 비 진리는 어떤 상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가를 욥을 통하여 보여주는 거예요. 얼핏 보면 하나님과 사탄이 짜고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냥 막 갖고 장난쳐도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아들까지 다 죽여 버리고 재산 다 뺏어버리고 독종까지 나게 하고. 하나님이 그냥 그렇게 갖고 막 장난쳐도 되는 거냐고요? 사람을 갖고. 그런 얘기는 아닐 거 아닙니까?

비 진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욥에게 그가 원하는 세상의 풍요를 다 허락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의인답게 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에요.  그러면서 그거 한번 다 뺏어 보세요. 그래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허락하시죠? 그래, 가서 다 뺏어 봐. 우리 얘기에요..  

성경은 우리에게 지금 뭔가를 설명해주고 싶으신 거예요.너희 같으면, 지금 너희의 이 신앙생활. 이 속에서 내가 만약 욥처럼 너희에게서 그걸 다 뺏으면 너희는 어떡하겠니?한번 생각해보라는 거예요.너희는 어떡하겠니? 이건 단순히 사탄의 모함이 아니라 욥의 신앙이 바로 그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크로노스적 시간 안에 머물면서 물리적 그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인본주의 속의 아담, 그것이 이런 모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주를 받은 사탄이 욥의 재산과 가족 몽땅 쳐버리죠.그거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내가 검으로 왔다, 뭐를 자르러 왔는지 알아이거 자르러 왔어.’ 했을 때 말씀하신 항목이 다 거기에 들어가 있어요. 예수님도 그거 자르러 왔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실지로 잘라버렸습니다. 그때 욥의 고백이 이러합니다.

1 21 -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모태라는 건 항상 어머니의 자궁, 옛 성전을 가리킨다고 보시면 돼요)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찌니라

어마어마한 고백이죠? 그런데 모태에서 적신이 나와서 다시 그 옛 성전으로 적신이 돌아가는 게 진리입니까?인간은 그 적신으로 다시 그리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그 적신은 반드시 삭제 당하고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돌아가야 돼요. 그런데 율법주의 아래에 갇혀 있는 이들은 이것이 굉장히 가치 있어요. 이 육신이. 이 호 코스모스의 아래 세상이 굉장히 가치 있단 말입니다.그래서 모태에서 나온 적신이 적신대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죠. 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 그 몸 갖고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서 뺏어간 거 있잖아요? 지금자식들 재산, 뭐 이런 거. 친구 다, 그걸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취해가셨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건 너무, 자기에겐 너무 가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취해가셨다, 라는 건 

하나님이 그걸 나에게, 정말 내 생명에 관계있는 소중한 것이라서 하나님이 주셨다가, 그것이 귀중하고 가치 있는 거니까 하나님이 다시 취해갈 만큼 가치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가지고 가신 자도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거 가져가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오셔서 하나님이 그거 가져가시나요?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가져가실 수 있는 건 그 안에 주신 당신의 생명. 그 진리밖에 없다니까요.  

하나님은 그 아들만 데리고 가세요.

하나님이 왜 여러분의 재산, 여러분의 자식을 갖고 갑니까? 어디에다가 써먹으려고 그거를? 그런데 인간들은 그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거 하나님이 가져가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깨져야 할 거지 이걸 우리가 본받아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 번째로 사탄에게 욥의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그 몸도 쳐봐라. 그래요. 걔가 지금 적신으로 나왔다가 적신으로 나한테 온다고 그러는데 그럼 그 몸뚱어리도 치면 이제 뭐로 올 건지 한번 보라는 거죠. 대신에 생명은 내 거다. 그건 만지지 마라. 하나님이 찾는 건 그거라니까요.그거는 내가 준 거 맞아.그런데 나머지는? 하나님이 준 거죠. 그러나 내가 그에게 생명으로 준 거는 아니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욥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어서 낭패를 당한 거라고 충고해요. 네가 죄를 지어서 그런 거야! 이게 다 굉장히 우리의 그 선악 논리에 맞는 이야기예요. 이 사람들이 한 이야기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니까요. 도덕 윤리로 읽어보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도 얘네들이 한 얘기 아니에요? 그걸 냉장고에다 붙여놓고 말이죠.

그들은 죄의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가 이 크로노스의 세상 속에서의 우리 육의, 나의 유익 그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원인이라는 엉터리 신앙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흥망성쇠도 결정이 될 뿐만이 아니라 그거의 연장선상으로 구원도 주어진다는 그런 신앙관. 이게 오늘날 왜곡된 개혁주의의 신앙관이에요. 왜곡된 개혁주의. 진짜 개혁주의 말고.자꾸 그냥 개혁주의를 떠났다고, ~. 자기들이 떠났지, 나는 거기 계속 있었는데. 진짜 개혁주의 안에. ㅎㅎ

그런데 욥이 친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임이 폭로가 돼요. 뭐라 그래요?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다고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십니까? 그게 똑같은 거지 뭐예요?내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습니까? 재물에 대해서 무슨 탐욕스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하고 따지고 든다니까요. 진짜 아니라면 그까짓 거 가져갔는데 왜 따지느냐고? 관심이 있었으니까 따지는 거죠. 그게 율법주의의 아주 위선적인 모습이라니까요.내가 언제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십니까?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이게 인과율에 사로잡힌 이 크로노스의 세상 속 아담들의 율법주의에요.  

복음은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구원은 인과율에 의해서 발생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성취되는 거란 말입니다. 지금 욥은 은연중에 자기 마음속에 내가 그렇게 열심히 율법 지켰고, 그렇게 열심히 죄를 멀리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시면 안 된다, 라는 이 율법주의적인 사고가 아주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니까요.

하나님께서 은혜의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땅이에요. 세상입니다. 어둠이라는 거예요.그 속에는 죄도 있어요. 그 땅을 그냥 땅으로 인식해버리면 그걸 죄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우린 그 땅의 것으로, 그 세상의 것으로 크로노스의 것으로 하늘의 것, 초월의 것을 깨달아 알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조건 어두운 거, 땅의 거, 이건 악한 거, 하면 안 될 거, 가요는 부르면 안 되는 거.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런 거는 불러도 되는 거, 이렇게 해버리면 그러면 하나님은 그걸 통하여 하늘의 것을 알라고, 다른 말로, 진리당신을 내용으로 담아 이 땅에 주셨는데 그게 성전이었고, 그게 성경이었고 예수였고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무조건 악하다고 치워버리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뭐? 악한 하나님!그걸 성경이 마귀라고 한다니까요.그래서 하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다!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은 네가 마귀의 새끼라는 말이 아니라 너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 하나님, 그건 너희들이 지금 악하다고 하는 그것 안에 들어가 계신 그분인데 그러면 너희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악한 하나님이네? 그럼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야. 그게 율법주의, 선악과 패러다임 하의 그 인본주의, 율법주의를 항해 일갈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단 말이에요. 너희들의 아버지는 마귀야. 너희들의 하나님? 바알세불이야., 그렇잖아요? 바알세불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바울도 이야기하잖아요? 무슨 우상이 있냐? 그런 거 없는 거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왜 굳이 그런 이름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너희들이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그거 바알세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 너희들, 신을,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너희들 앞에 있게 하지 말라!그건 뭐 다른 신도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요. 없어요. 무슨 신이 있어요?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 그게 우상 섬김이라고 해요. 하나님은 진리라는 내용을 담아서 세상과 땅을 주셨습니다. 빛이라는 내용을 담아 어두움이라는 걸 주셨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내용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나쁘다, 악하다, 더럽다고 판단해버리면그 안에 내용으로 담긴 하나님이 악한 하나님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그 세상임금으로 죽을게. 라고 하신 거예요. 내가 그 세상임금으로 죽을게. 그 율법으로 내가 죽을게. 그래야 너희들은 진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잖아. 그 진리. 그리스도의 영.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욥기 36장에 엘리후라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청년이 등장해서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걸 사용해서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고 

그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의 귀와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거다. 라고 욥기 36 15절에서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당신들은 이 고통을 갖고 이걸로 왈가왈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것 안에도 메시지를 담아서 무언가를 전달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이거에만 묶여서 이것이 옳으니, 그르니 내가 과연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느니 안 되느니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예요.왜 크로노스의 사건 속에만 묻혀 있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당신이 아무리 이 세상의 방법으로 그 형벌에서 벗어나오려고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 땅의 행위, 당신의 자원, 그 제사,

 그것으로는 거기서 못 빠져나온다는 거예요.뭘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당신. 깨닫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서.당신이 뭘 잘못해서 이렇게 준 것도 아니고 뭘 잘해서 그런 복을 줬던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건 사단이 주던 뺏어가던 하나님은 I don't care! 아무 상관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온통 교회가 전부 거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은 아무 상관 안 한다는 그거. 진짜 하나님이 찾는 그 생명에는 아무 관심을 갖지 않고 전부 그거. 

하나님이 마귀 새끼를 시켜서라도 야, 그거 쳐서 가져가, 다 가져가 괜찮아, 라고 한 그것만 안달복달하며 붙들고 있다니까요.

엘리후가 땅의 자원, 땅의 회개로는 절대로 그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려요.하나님의 죄 사함은 이 크로노스의 땅의 것들, 땅 적 차원의 열매와 노력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을 천명해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드디어 38장에 하나님이 나타나세요.그리고는 뭐라 그래요? 그게 오늘 본문의 이야기예요. 우리가 공부하는. 보세요.

욥기 38 1

 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누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이렇게 까불어? 누가 그 지혜로 이렇게 까불어? 이런 말이에요)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너는 진리의 띠로 이제 허리를 묶고 내 말을 잘 들어. 그리고 대답해))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39 : 1-

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2. 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이건 뭐예요? 알죠. 그 나열하신 거중에 욥이 아는 거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이 진리로 담은 그 내용. 그거 아니?)

38 : 32

32.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여러분 열두 궁성을, 그 열두 궁성이 세 개씩 세 개씩 되어 있죠? 그럴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놨는데 그걸 따라가면 그게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세요? 하늘의 열두 궁성. ? 성경에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나와 있다니까요. 내가 거기에다가 무슨 이야기를 심어놓은 건지 너 알아? 그런데 도대체 너 그런 거 하나도 모르면서 뭘 갖고 날 지금 탄핵하는 거냐

네 율법적인 그 사고. 네 이성. 그 수준 갖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네가 탄핵하는 거야?그러는 거예요.선악과 따먹은 알량한 네 뇌로 나를 지금 가늠하고 나를 판단하느냐? 내가 그 천지만물 안에 심어둔 그 메시지, 그 진리가 뭔지 알아?모르죠. 그래놓고 제사만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니까요.다 듣고 나서 욥이 그럽니다.하나님이 이제 말씀하셨으니까. 뭔가 알았을 거 아니에요)

  42 : 3-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내가 몰랐습니다. 진짜. 그러면? 그동안 욥이 드렸던 제사를 하나님이 단 하나라도 받으셨다는 얘기에요? 못 받으셨다는 얘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제사만 드린 그 제사를 하나님이 그걸 흠향하시고 그에게 복을 줬단 말에요?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아무 상관없는 거라는 걸 보여준 거예요.)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이거는 명백한 오역입니다. 표준 새 번역이나 공동 번역은 잘 번역해 놨더만 개역성경만 이렇게 번역해 놨어요. 이거는-

 “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사마‘, 내가 말하겠다. ’대답해라내가 묻겠다!”이런 말이에요

먼저 들어라! 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먼저 들어라. “사마’, 들어라! 그리고 대답해.. 들어라.)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호라호합니다. , 주님은 이런 분이군요?하나님이 그 천지만물에 담긴 그 진리를 설명을 해주시자

, 그렇군요! 하나님. 그런 거였군요. 제가 몰랐습니다. 모르고 인간의 지혜로 이렇게 까불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그러자 하나님이 욥에게 그래, 그 진리를 네가 가졌다면 이제 그걸 누군가에게 흘려주고 그들을 용서해야죠? 그래서 욥에게 네가 기도하면 쟤도 산다. 친구들, 똑같은 놈들이란 뜻이에요.네가 기도하면 쟤들이 산다. 이거 우리 얘기하는 거예요. 중보자의 역할. 우리의 역할이 그런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아랫것으로 위의 것을 알아버린 진리의 사람들이 그 진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 그 진리를 독백처럼 이렇게 흩날리는 이걸시편이라고 그래요. 시편,그러니까 무슨 시로 된 책, 그게 아니라 독백이란 뜻이에요. 그렇죠? 이런 거죠? 그런데 하나님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요? 세상은 왜 이래요? 이렇게. 독백. 이게 시편이에요. 그 내용이에요. 하나님이 들려준 거 그건 이건데 왜 저들은 아직도 저래요? 그리고 그걸 진리로 가진 이들이 진리 안에서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잠언. 그러면 그 씨를 갖고 이제 해 위의, 그 진짜 해. 그리고 그 진짜 새것, 성경에서 새것은 새, 새것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그 새것예요. 완료.

그 새것을 안 그에게 있어서 해 아래 이것들은? , 이건 다 모형이네. 그러니까 해 아래 새것은 없는 거네. 새것은 거기에 있는 거네. 라고 알면 그 사람의 그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Vanity, 허무, 라고 하는 거예요. 헛되고 헛되네! 난 이 껍데기가 같이 있는 건줄 알았더니 그 새것, 그 씨, 그 진리를 알고 나니까 헛되고 헛되네! 그게 전도서에요

그걸 알았어요. 헛되고 헛돼. 그래서 이제 그 하늘의 것에 내가 연합이 되면 그걸 짝!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짝, 아가서. 그래서 하나님이 그 여자를 내 비둘기라고,, 짝이란 뜻이에요. . 내 비둘기야. 그러니까 시가서 다섯 개는 그래서 다섯 개예요. 하나님의 그 말씀, 성경 전체를 그냥 알기 쉽게 오히려 풀어놓은 거지 그걸 여러분이 어떤 교훈적인 도덕과 윤리로 읽어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가치 속에서 진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는 거예요.율법 안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되고,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세상 속에서 그 묵시의 완료를 볼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율법을 그냥 행해버리면, 예수를 그냥 섬겨버리면 믿어버리면, 어떻게 믿는지도 모르면서 믿는대 무조건. 그리고 세상의 가치에 장악되어버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거예요. 주님은 그것을 멸망의 가증한 것, 우상숭배라 그래요. 마가복음 13 14절 보세요.

13 : 14-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서지 못할 곳이 어디예요? 성전이에요.)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다니엘서에 나오는 거요.)-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 이게보델리그마인데요 이게 우상이에요. 지긋지긋하게 싫어.그동안에는 이 율법, 그 율법으로 보이는 도덕 윤리로서의 성경 이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매일 30분씩 큐티하고 그거 행하는 걸 내 낙으로 살았어요. 오늘도 난 지켰습니다. 이웃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고 나니까 그 삶 자체가 그것이 얼마나 큰 위선이며 죄인 줄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성전의 자리에 그것이 이제 나에게 지긋지긋하게 싫은 거. 우상, ‘보델리그마’로 보이면 유대에 있는 자들아! 그 산으로, 그 진리의 성전으로 가라

그 성전이 선 자리에 이슬람 사원이 서 있으니까 이제는 마지막 때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거기에 뭐가 서있던 무슨 문제에요? 하나님은 그거 없애버린다고 했는데. . 아니, 절이 서있으면 어떠냐고 거기에? 그건 이미 그 역할을 끝내고 다 부서졌는데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얼마나 율법주의가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파괴됐잖아요. 돌 위에 돌, 예수, 껍데기.그 껍데기로서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게 AD 70년이에요. 완성의 해에 거기에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타이타스에 의해서 박살이 났다고요.

예루살렘은 성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산지였기 때문에 로마 군대도 못 쳐들어갔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타이타스가 원래 베스파시안이 공격하다가 전쟁 중에 황제가 되는 바람에 아들이 그냥 그걸 완성을 시켜버려요. 그 전쟁을. 꽁꽁 둘러싸고,. 거기는 산위에, 반석 위에다 지은 거니까. 성을.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요. 밖에서 안 들어가면. 그래서 꽁꽁 묶어놓고 그 성의 높이에 맞게 여기서 산성을 지어서 들어가 보니까 공격할 필요도 없어.  

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그 사람들이,,요세푸스의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자식을 다 잡아먹었어요.. 요세푸스의 책에 보면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죽였는지가 나오는데. 다리를 부모가, 다리를 잡고 빙빙 돌려서 성벽에다가 던져서 머리가 깨지면 삶아 먹었어요. 그리고는 그 먹는 게 누구에게 들키면 또 싸움이 일어나서 그냥 귀신들의 소굴이 되어 있더라는 거예요. 가보니까. 그러니까 칼 한 자루 안 쓰고 이겼어요

그리고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을 너무 소중하게 여겨서 성전 벽돌 하나하나 사이에 전부 금을 깔아놨다고 헛소문을 퍼트려갖고 다 깨버렸어요. 그 사람들이. 금 찾는다고.법궤? 다 벗겨갔어요. 금으로 둘렀었잖아요? 그런데 왜 찾느냐고요. 그걸. 뜯으면서 그 모양은 놔뒀겠어요? 로마사람들이. 요건 법궤니까 요건 놔두고 가자 그랬겠느냐고요. 다 뜯어갔다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밟아 부수던지, 불태우던지 그랬다고요. 그걸 왜 찾으러 다녀요? 잃어버린 법궤를 찾아서. 그 역할은 이미 끝났잖아요.찾아서 뭐 할 건데요

그렇게 옛 성전은, 이 세상을 모형 하는 그 옛 성전,그 예수까지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박살나고 진리의 영이 오셨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그리고는 이렇게 참 성전으로 만들어 놨다니까요.그러니까 당연히 여러분은 그 아래 것, 그 율법은 바로 그렇게 지긋지긋한 우상으로 보여야 되는 거예요.그러면 유대에 있는 자들아, 율법주의 속에 빠져있는 자들아 그 산, 참 성전으로 도망가! 도망가. 그래서 도망 와있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도 율법주의에 치여 가지고. 하나님이 롯에게도 그 산으로 도망가. 그러잖아요. 그 산으로 도망가.왜 소돔과 고모라에 있어? 그 산으로 도망가.그런다니까요.

온 세상 천지만물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예수가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당신들을 진리로 설명해주기를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그들을 진리로 읽어낼 수 있는 그 눈을 가지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그 세상에서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에서도 좀 자유로워지시라고요.

제가 여기에다가 히브리어 몇 개를 적어놨는데요.요게 성경의 첫 글자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그러면 이 레쉬트로 바꿀 수 있어요. 전치사를 붙여서베레쉬트로 바꿀 수 있어요. 이 안에 성경이 다 들어가 있어요.여러분 이거는 성전입니다. ‘’, 히브리어의 두 번째 글자에요. 하나님은 일부러 우리에게 첫 번째 글자를 안 주세요. 하나님의 글을 주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데 이 첫 번째 문자를 안 주신다니까요. ? 베레쉬트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베 전치사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로쉬가 머리에요. 그 머리를타우완성해서 우리에게 넘겨준다고. 그런데 그 머리는 뭐라고 해요? 예수님이 머리를 둘 곳이 없다, 라고 했을 때, 예수님 자신이 머리죠? 머리,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 그 진리.

성전으로 시작해서, 그 성전은 뭐? 이 세상에 진리를 담아 주신 모형들 전체를 다 성전이라 그래요. 그것, 이 아래 것으로 시작해서 그 머리, 그 말씀을 완성하여 넘겨주는 게 성경이란 뜻이에요.그래서 이베레쉬트안에 모든 성경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한자 한자 나눠도 그렇고.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성전 안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 분석해서 우리에게 완성하여 넘겨주신다. 이것도 되고요

바라가 이게 바로 요 단어거든요. 창조에요. 하나님이 창조를 가지고 고걸 분석하여 완성해서 우리에게 넘겨준다

그런데 이게 창조라는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성전으로, 아래 것으로 시작해서 우리에게 주는데.하나님이 시작하시는 그 성전. 이 아래 것들, 이걸 뭐라 그래요? ‘창조라 그래요. 이걸. 성경이. 그런데 이게 남성 단수에요. 그리고 이엘로힘이 성경에는 쌍수라는 게 있는데, 히브리어에는. 복수라기보단 짝, 그리고 뭐 공성이라는 게 있는데 공성은 이제 함께 일하다, 이런 뜻의 문법인데요.엘로힘은 남성 복수란 말에요. 그러면 요 창조라는 단어의 주어가 요게 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바라’, 창조라는 이 동사의 주어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왜 숨어 있어요? 우리가 이 분은 누구인지 이야기를 해줘도 우리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몰라요 그분을.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 무로 밖에 인식을 못하는 그분이라 성경이 아예 주어는 생략을 해버려요.  ‘아마르’라는 단어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할 때도 주어는 항상 생략되어 있어요

러면 이 주어는 여기에 그냥 놔두고. 그 하나님이, 어떤 그분이, 그 하나님, 그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그 진짜 그분! 진짜. 그분이 시작을 하셨어요. 우리에게. 이 아래 것으로 뭘 설명하고 분석하고 완성하여 우리에게 넘겨주기로 시작을 하셨어요. 그래서 뭔가를 만들어 내야 돼. 눈에 보이는걸.. 그래서 그걸 창조, ‘바라라고 한단 말에요. 바라’, 이걸 통하여 뭘 준다고 그랬는데 그 진리, 그 진리의 내용이 뭐예요?그 누군지 모르는 그 하나님, 그죠? 그게엘로힘이에요.우리의 수준에 맞게 우리가 인식할 수 있게 아래 것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그분. 그래서 그걸 하나님이 태초에엘로힘으로 그 하나님, 그 진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창조라는 걸 하셨는데. 어떻게?‘에트 샤마임 에트 에레트그 하늘과 그 땅으로 우리에게 설명하시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늘의 그거는 우리가 잘 모르니까 그러면 땅으로 내가 설명해줄게 그래서 2절에서 땅은, 하고 시작되는 거예요. 그럼 한번 보잔 말에요.

요 땅으로 요 하늘을 알면 요 엘로힘, 하나님을 아는 게 되겠죠? 그게 창조의 목적이라니까요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은 이 땅의 것으로 이 하늘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디에서도 땅이 악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여기에 묶이고 여기에 멈춰버리면 그걸 죄, , 이렇게 이야기 했지. 이것 자체를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니까요. 

어두워요. 혼돈이에요. 공허에요. 그래? 그럼 하나님이, 내가 채워줄게. 빛으로 보여줄게. 그걸 알으라는 거지. 

이걸 너희들이 선악과 따먹고 요건 악한 거니까 필요 없는 거. 너희들이 뭔데 그러느냐는 거예요

욥이 그렇고 세 친구가 그런 거예요. 율법주의가 그러고 있는 거란 말에요.

성경에 소라는 단어가 세 개 나온다고 그랬지요? 알레프’, 요 단어를 지금 설명해드릴게요. 왜 생략됐는지.  

요게 알레프에요. . 애급에서 430년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신, 하면 떠오르는 게 소 밖에 없었다고요. 애급의 소가, ‘라아라는 신의 이 땅적 현현이 소였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소로 설명해주는 거예요. 알레프라는 소가 있고 바카르라는 소가 있어요

그런데 이거는 (바카르) 일을 하는 소예요. 성전에서 부수고 다시 세우기 시작하는 그 하나님. 그 일을 하는 바카르라는 소

이거 알레프는 우리가 모르는 이 소. 그걸 아래 것으로 이 위의 그 하나님을 알아버리면 그걸 토르라고 해요. 이 소. 요게 비둘기에요.이 소(토르)를 비둘기라고 한다고요. 

물론요나라고, 나쁜 놈 있잖아요. 그거? 이게 비둘기라는 뜻이에요. 이것도.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도 내 짝으로 만들어 낸다, 라는 것이죠. 그 니느웨 성에 구원받아서는 절대 안 될 것 같은 그 인간들이 바로 요나였다니까요. 내가 너 같은 놈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살려낼 것이다. 요나야, 네가 내 짝이 될 것이다,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께 그냥 툴툴 거리는 그런 장면으로 끝나는 거예요 

요걸로 위의 것을 알아버리면 이토르가 되고 이 토르가 뭐냐 하면토라’, 성경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 아래 것으로 위의 것을 알아 뭐로? 성경을 통하여, 알아, , 하나님이 이렇게 해서 이 아래를 창조하신 거구나. 라고 알면 그 피조물들을 이제 설명할 수 있단 말에요. 이게 이거고 이게 이거고 이렇게. 그게 아담이 만물에게 이름을 주었다, 라는 게 그거란 말에요. 그게 우리가 하는 거라니까요.너희들의 이름, 너희들의 내용은 이런 거야, 라고 우리가  그 아들들이 하는 일이란 말에요. 그게요

그것 보세요. , 에벤이 돌이에요. 에벤 에셀 아시죠?에벤이 돌이에요. 돌이 뭐예요? 하나님, ,(쥬다 벤 허에서 벤)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써놓고 돌, . 그런데 이 돌을 이렇게 끊어보면아브’, 아버지. ‘’, 아래 것.  아래에 계신, 아래로 오신 아버지가 또 돌이래요. 그러면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네요?성경이 이야기하는 건 그런 이야기하는 거지. 이런 육신적 아버지와 아들 뭐 이런 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와 아들이 어떻게 하나예요? 이런 거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아래 것으로 위의 것을 알면 돼요. 그리고 거기서 자유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에, 호 코스모스, 이 아래 세상에, 그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거기에 묶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것으로 희로애락 이런 거 결정지어지는 거, 거기서 풀려날 수 있다니까요

우리 둘째 아이가 어저께 서클에 가가지고 운동을 하다가 싸움이 났다 그러더라고요. 애가 미국에서 와서 한국말을 조금 하긴 하지만 어눌하죠. 그러니까 거의 왕따가 되는 거야. 그냥 미국에서 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데 우리 둘째 놈이 어떤 놈이냐 하면 중학교 때부터 진짜 총 가지고 다니는 히스패닉 갱 이런 애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애예요.

그리고 정말 얼마나 악바리 같으냐. 하면 운동을 하면 토할 때까지 하는 거예요. 제가 가끔 같이 데리고 운동을 하는데 이렇게 킥 패드 같은 걸 제가 대 줘요. 차라고. 그러면 아파. 그만큼 강단이 있어요. 태권도 승단 심사를 볼 때 걔랑 상대했던 백인 애가 그만뒀다니까요.. 태권도를. 하도 맞아가지고. 악바리 같은 애예요.그런데 이제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일찍 철이 들었어요. 미국에 그 자기 중 고등부를 해줬던 선생님이 그런 애였어요. 그 친구가. 제이라는 친구가. 그런데 그렇게 잘 이해해주고 감싸주고 하니까일찍 철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학교에서 한국 애들이 어설프게 욕들을 하고 그러는데 와서 물어봐요. 나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난 깜짝 놀랐어요. 애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고할까?? 그 더럽고 지저분한 그런 욕들을 그냥 막하는 거야, 버릇처럼. 습관처럼. 그리고 괜히 무슨 논두렁 양아치 흉내나 내고하는 게 얘한테는 우스운 거예요. 그래서 애들이 그럴 때마다 웃었다는 거야. 얘는. 그러니까 더 기분 나쁜 거지. ㅎㅎ 

왜냐하면 자기는 미국 경찰들하고 상대했던 사람인데. 그런데 이게 진리를 알고 그렇게 얼굴도 오늘 보니까 되게 애가 이렇게 귀엽게 변했어요. 옛날엔 쟤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이상한 욕이나 하고 그러면서 자기를 해코지하려고 하니까 얘가 너무 웃긴 거야. 어제도 뭐 그러면서 웃었대요. 선배가 뭐라 그러기에.

그랬더니 옆에 있던 백을 지건 줄 알고 걔가 뻥 찼는데 그 안에 다른 선배 거였대요. 만두가 이만큼이 들었는데 그 만두가 다 날아가고. ㅎㅎ 오늘 그 얘기를 제 형한테 막 해주니까 제 형은 그 만두를 집어서 걔 얼굴에 던졌어야지. ㅎㅎ. 지들끼리 농담하던데. 그런데 우리 둘째가 그러더라고. 자기가 웃으면서 그거를 다 치웠대요. 왜냐하면은 별로 자기가 상대할만한 대상이 아닌 거야. 얘는. 다 치우면서,,. ‘ 어떻게 너 그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어? 옛날 같았으면 아빠가 또 학교 갈 뻔했는데.’ 그랬더니, , 아버님한테 배운 거래요. 저한테. 뜨끔했죠. 저는 여태까지 만두를 차는 입장이었지 절대 주워 담아 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너무 애들이 어려서 상대를 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제가 깊이 깨달은 게 있어요.

 진짜 강한 사람은 세상이 강한 척하려고 자기 앞에서 거들먹거릴 때, 그래 그러면 너 강한 거 해. 그리고 만두는 주워 주는 거라. 그 사람이 진짜 그 진리를 안, 진짜 센 자라는 것임을 오늘도 배웠어요.몰라요, 언제 또 학교에 끌려갈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오늘은 그렇게 끝났어요. 정말이요.

여러분 세상이 이건 강한 거야. 이게 가치야, 라고 우리를 미혹하려고 해요. 시험에 들게 하려고 할 때, 진짜 그 가치 그런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은요 조용히 만두 주워 주는 거예요. 그러고 웃는 거예요. 웃는다고 또 때려? 또 주워 주고,,잘 안 되죠. 그렇지만 진짜 진리는 그만큼 가치 있는 거예요. 이 육적 세상에서 풀려나게 할 만큼 가치 있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리로 한발 한발 가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진짜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잘 못 판단하여 그것을 향해 이토록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 화내고 분내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그 하나님 나라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주어지면 기뻐서 희희낙락거리는 그 수준에 여전히 머물고 있습니다.하나님 도와주옵소서.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의 그런 자기자랑 앞에서 그냥 묵묵히 웃으며만두를 주워줄 수 있는그 상황

우리에게도 경험되어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