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41장 보이는 모습 너머의 삶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성실하게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일부만 간직하고 일부는 잊어버리고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조롱하며 비웃는다.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그것은 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진다. 밝음으로 향하는 길은 어두운 듯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물러서는 듯하며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다. 진정한 힘은 약한 듯하고 진정한 순수함은 탁한 듯하며 진정한 맑음은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위대한 예술은 정교하지 않은 듯하고 위대한 사랑은 무심한 듯하며 위대한 지혜는 철없는 듯하다. 도는 숨겨져 있고 이름도 없지만 도만이 온갖 것을 기르고 완성한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도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현실”이라고 불러온 것이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에고 중심의 습관이 하나 됨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을 가로막을 것이다. 익숙해 있던 것이 여전히 내면에서 생생히 울려 퍼지고, 도 중심의 세상은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너머의 진실을 확인하고 도를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갖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도를 따르기로 결심하면 자신의 내면과 주변에서 겪는 경험만이 보이던 이전과는 세상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무시하고 진실 안에 머무르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놀려댈 테지만 그 조롱과 비웃음이 없다면 도가 아니라는 모순을 기억하라. 암울한 시간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비전이 내면세계를 밝게 비출 것이다. 때때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도는 숨겨져 있고 이름도 없다.”는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라. 곧 열릴 문 앞에서 그 문을 두드리고 있거나, 삼키기만 하면 되는 알약처럼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잠시 멈춰 서라. 그리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노자가 평범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진정한 힘은 약한듯하다고 말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강하다고 느끼기 위해 안달복달하거나 다른 사람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내면의 평화가 곧 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애쓰지 않을수록 더 쉽게 이룬다.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도에 따라 저절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둘 때 일이 이루어진다. 이는 목표를 갖고 다른 사람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에게 맡겨라. 그렇게 함으로서 순수함과 맑음을 봐라.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은 변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선함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숨겨져 있고 이름도 없으니 찾아서 꼬리표를 붙이는 데 집착하지 마라. 그러다 보면, 여전히 분명치 않더라도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이를 적용하라. 무심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 안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라. 도는 성실함을 증명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언제나 그 자리, 모든 곳에 존재한다. 에고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초월한다면 빛나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에고는 우리가 사는 이 별을 차갑고 냉정한 곳이라고 세뇌시켰다. 그러나 도는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모두에게 순수한 사랑의 빛을 비춘다. 성실하라. 단약 당신이 “일부는 간직하고 일부는 잃어버리는” 어중간한 사람이라면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헌신하라. 여기에 담긴 통찰 중에 몇 가지를 매일 실천하면 된다. 이를 실행하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라. 분석하고 따지는 버릇은 옆으로 치워두라. 끈기를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 하루에 한 장씩 읽고 다짐하는 작은 일이 도를 따르는 삶의 여정 위에 서게 한다. 노자는 온 힘을 다 해 실천함으로써 그 길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이 단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월트 휘트먼의 시가 여기에 있다. 오, 난 당신의 고귀함과 영예로움을 노래할 수 있어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내 선잠에 빠졌던 당신, 당신의 눈꺼풀은 닫힌 것과 같았지요.······ 당신이 누구이든, 어떤 위험 앞에 있던 당신만의 소리를 내요! 세상의 온갖 볼거리도 당신에 비하면 그저 평범하지요. 광대한 초원과 끝없는 강줄기처럼 당신은 크고 길어요.······ 도의 진실은 언어로 증명할 수 없다. 무언가를 진실로 받아들이려면 물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도는 영원히 숨겨져 있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그러니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여라. 물질적인 형태 속에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직접 보지 않고도 모든 입자가 형태 없는 에너지나 정신의 파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처럼, 당신도 도를 믿기에 앞서 그것을 보고 만지려는 욕심을 버릴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어둠, 어려움, 결점, 무관심, 죽음 그 너머의 영역을 보게 될 것이다. 42.
42장 조화로 어우러지는 삶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陰)을 등에 업고 양(陽)을 품는다. 이러한 기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은 부모가 없거나 먹을 것이 없거나 재산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왕과 군주들은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칭했다. 잃음으로 얻기도 하고 얻음으로 잃기도 한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 또한 가르친다. 난폭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이것이 내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노자는 앞선 41개의 장을 통해 이야기해온 내용을 여기서 다시 되풀이한다.. 도는 우리가 하나됨 혹은 온전함이라고 생각하는 무형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과 물질을 낳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만물은 서로 반대되는 음과 양 또는 여성상과 남성상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장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서로 반대되는 기운들을 융합하면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견해에 무게를 더한다. 노자는 부모를 잃는 것, 먹을 것이 없는 것, 재산이 없는 것을 고통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도의 관점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잃음으로써 얻는 것을 강조한다. 집, 부모, 재산, 자존심까지 잃으면 필요한 전부를 얻게 된다는 것일까? 도에서 태어났고, 도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무한한 자아는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세속적인 자아만이 부모와 재산과 자존심을 필요로 한다. 노자는 하나 됨 안에서 이 차이를 알아차리라고 이른다. 노자는 물질적인 조건들을 덜어냄으로써 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 됨 안에서 세속적인 욕망이 커지면 거기에 비례해서 도적인 감성은 자리를 잃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세속적인 자아는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살아 있는 동안 죽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죽게 될 운명을 타고난 자아를 위한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도의 진정한 조화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사고가 필요하다. 도를 품고 폭력과 증오를 멀리하는 사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 또 죽게 될 것이며, 이는 도의 완전함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죽음’이라고 불리는 그 순간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결국 생명이 태어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폭력은 삶과 죽음의 조화로움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폭력과 관계된 모든 일을 끊고 조화롭게 살겠다고 다짐하라.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라면 어떤 형태의 오락거리도 멀리하라. 예를 들어, 증오를 일으키거나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도록 부추기는 표현들을 삼가라. 다툼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고 폭력에 반대하는 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라. 야만적인 폭력을 지지하는 것은 똑같이 야만적인 최후를 예약하는 것과 같다는 도덕경의 근본 원칙을 기억하라.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복수와 증오 대신,, 관대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추구하라. 폭력 없는 조화 속으로 녹아든 한 폭의 그림을 바라보듯 삶을 대하라. 덜어냄으로써 얻고, 더함으로써 잃는다. 당신의 집착을 점검하라. 물건, 지위, 문화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애착도 위대한 도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막는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지켜보고, 걱정하고, 보호하고, 다듬고 구분한다. 그리고 그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달리 말하자면, 얻기 위해 애쓰느라 조화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재산을 대가 없이 나누어 주고, 가지고 있는 물건과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놓아 버리는 연습을 하라. 당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사물들과 연결된 끈을 상상하고 그 끈들을 끊어버려라. 소유자가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 서라. 이것이 바로 당신이 도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방법이다. 시인 하피즈는 말한다. 이제 모두를 산처럼 바라보라 그러나 이를 비밀로 하라. 43.
43장 부드러운 삶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형태 없는 것은 공간이 없는 곳으로도 들어간다. 그러기에 나는 무위(無爲)의 유익함을 안다. 말 없는 가르침 움직임 없는 행함 세상에 그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구나. 그것이 성인의 길이다. 이 세상은 아낌없이 주는데 이를 얻는 이는 참으로 드물다. [도덕경]은 자연에 대한 비유로 가득하다. 그러한 가르침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성인들을 따라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 장 첫 부분, 물은 도교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된다. 부드럽게 사는 것은 물 흐르듯이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자는 단단함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우리에게 단단함의 개념은 강함과 같다. 손에서 쉽게 부스러지는 화산재보다 다이아몬드가 더 가치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물을 보라. 지구와 우리의 몸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보라. 확 움켜쥐어서는 느낌이 없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그 안에 손을 담가 보라. 물이 어떻게 단단한 돌과 바위를 뚫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부드러운 물은 단단함을 넘어선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의 계곡은 수 세기에 걸쳐 고요하고 묵묵하게 흐르는 물에 의해 만들어졌다. 공간이 없어 보이는 곳에도 흘러갈 수 있다. 말없이 온전히 놓아둔 채로 낮은 곳,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다른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로 오기를 희망하는 그곳으로 천천히 흐르는 상상을 해보라. 이것이 바로 물이 흐르는 방법이다. 물처럼 힘들이 지 않고 흐를 수 있는 무위(無爲)는 유익하다. 이것은 간섭하지 않는 행함이다.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고 머리가 몸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알아서 나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삶에 노자의 행하지 않고 이루는 것을 적용하라. 일은 단순해지고 성취도는 높아질 것이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감도 사라질 것이다. 무술에서 상대방의 힘을 거꾸로 이용하는 것처럼 평화로운 조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넘어선다. 골프 선수가 스윙할 때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다. 훌륭한 선수들은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다. 뛰어난 예술가는 힘들이 지 않고 부드럽게 춤을 추고, 힘들이지 않은 채 고요하게 그림을 그리고, 적절한 단어가 찾아오게 내버려 둠으로써 쉽게 글을 쓴다. 이들은 노자가 전한 성인의 방식을 실천하는 드문 사라들이다. 이들은 “세상이 아낌없이 주는 것을” 얻는다. 세상은 당신에게도 똑같이 준다. 부드러운 무위의 방식을 삶에 도입하라. 무위의 방식 혹은 애쓰지 않는 행함을 실천하라. 밀어붙이라는 내면의 요구를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애쓸 때보다 더 잘하게 됨을 깨달을 것이다. 일할 때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부드럽게 함으로써 성취에 대한 압박을 견뎌내라. 더 많은 고객과 기회가 당신에게 올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도의 완전한 흐름에 자신을 맡기기 때문이다. 마치 왜가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썰물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주목하라. 마라톤 선수들이 골인 지점을 남겨놓고 극도로 피로해지면 억지로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몸에 대한 간섭과 지시를 멈출 때 불가사리 하게도 결승점을 통과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부드러움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욕망들이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라. 잠겨 있는 문 밖에 서 있는 것처럼, 가질 수 없지만 늘 갖고 싶었던 것을 떠올려 봐라. 당신이 갈망해 온 그러나 가질 수 없었던 재산, 건강, 행운, 성공 등에 대해 스스로 뭐라고 말해 왔는지 점검해 보라. 이제 막힌 벽을 넘어 마치 물처럼 흘러들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음속으로 부드럽게, 온화하게 그리고 조용히 그렇게 해보라.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도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부드러움을 인생이라는 그림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 단단하고 어려운 길도 부드러워질 것이다. 당신이 가진 욕망의 모든 영역에서 이 같은 애쓰지 않음을 연습하라. 44.
44장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삶 내 몸과 명성, 무엇이 더 귀한가? 내 몸과 재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무엇이 더 문제인가? 사랑은 희생의 열매이고 풍요로움은 후한 마음의 결실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욕되지 않고 그칠 때를 아는 사람은 위태롭지 않다. 그러기에 오래 갈 수 있다. 44장은 우선순위의 기준을 바꾸면 많은 결실을 얻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대한 생각을 전환하면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노자는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고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지 점검해 보라고 한다. 지금까지 노자는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조언했다. 이것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순간을 살면서 우리의 근원인 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본질적인 자아로 가는 여정의 일부이다. 그곳에 명예나 재산,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사물이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도와 당신 사이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방해가 되는 것은 명예나 재산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다. 성공이나 소유에 대한 가치의 의미를 바꾸라. 그것들은 도와 당신 사이의 유대감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힘을 쓰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는 혹은 만족을 찾아 끝없이 애쓰는 불합리한 순환의 덫을 경계하라. 이 장은 당신에게 멈추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조언한다. 더 많이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재산, 명예, 친구, 여행, 음식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쫓는다. 당신도 이 같은 인생관을 갖고 산다면 만족과 좌절로 가득한 삶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 추구 자체가 당신을 감옥에 가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자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큰 병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삶에 있어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따져보면, 사랑과 충만한 감정은 언제나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원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에 당신은 온전히 사랑받고 있으며 모든 면에서 풍요롭다고 느낄 것이다. 노자는 또다시 모순으로 보이는 말을 건네고 있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달리하면 그 바라보던 대상이 변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는 온 천지에서 사랑과 풍요로움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쫓아서는 결코 잡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들은 언제나 손에서 잡을 수 있는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도가 그 생명을 주는 본질을 모두와 나누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도 없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줄 때 큰 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맹목적인 추구를 멈추면 풍요로움과 사랑이 당신 앞에 전개된다. 당신과 도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라. 이를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의무로 삼아서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라. 근본적인 관계는 바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이다. 가족, 사업, 국가, 문화 혹은 민족과의 관계가 아니다. 스스로 다짐하라. “내 삶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는 내 존재의 근원과 나 사이의 관계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다른 것들도 더 많이 바라지 않게 될 것이다. 지상 낙원에 살며 애쓰지 않고도 도를 따르게 될 것이다. 멈춰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라. 너무 많이 요구하고,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말하고, 걷고, 일하고, 자고, 놀고, 쇼핑하고, 불평하고, 애쓰는 중에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깨어 있으라. 멈추는 연습을 통해 그 순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이 잘 되고 있는가? 너무 급하게 커가는 것을 멈추게 하라. 배가 부른가? 지금 당장 먹는 것을 멈추어라. 은행 잔고가 충분한가? 그렇다면 그 중에 일부는 기부하라. 소득공제를 받거나, 베풂의 대가로 좋은 평판을 얻는 일 같은 건 잊어버려라. 바라고 원하고 소유하는데 매달릴수록 당신은 도와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멈추어야 할 때를 알면, 평생 애만 쓰고도 성취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이별하게 된다. 45.
45장 표면적인 것 너머의 삶 진정으로 완벽한 것은 모자란 듯하지만 그 쓰임에 다함이 없다. 진정으로 가득 찬 것은 빈 듯하지만 그 쓰임이 끝이 없다.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빼어난 솜씨는 어리석은 듯하고 훌륭한 웅변은 어눌한 듯하고 진정한 진실은 거짓인 듯하고 위대한 논쟁은 침묵인 듯하다. 움직이면 추위가 물러가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가 물러간다. 고요함과 평온함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든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 당신은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통해 모든 것들을 평가하도록 배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제 더 이상 에고가 지배하는 문화를 통해 바라보기를 멈추라고 요구한다. 그 대신 내면에 존재하는 고요하고 평온한, 그 보이지 않는 공간에 주목하라고 이른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넘어서면 기존에는 불완전하고, 텅 빈 듯하고 서투르며, 심지어 어리석어 보였던 것들이 완전하고, 충만하고, 능숙하며, 총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존의 사고방식은 이 세상이 불안정하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극히 상식적이어야 되고, 날씨는 믿을 수 있어야 되며,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그동안 우리가 받아온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분별 있는 상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겉으로 드러난 표면만을 살핀 결과이다. 노자는 “잠시 멈추어 서서 다르게 보라.”라고 말한다. 노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불완전하고 어리석다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지 말고 내면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발견하라고 한다.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모순적이게도 당신은 변화의 도구가 된다. 모자란 듯한 것은 쓰임에 다함이 없고 빈 듯한 것은 쓰임에 끝이 없다. 이것은 도가 하는 일이다. 도는 결코 마르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도는 고갈될 수가 없다. 노자는 당신에게 다함이 없고 언제나 가득한 도처럼 되라고 말한다. 편협해지지 말고 고요하며 평온해지라고 한다. 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생명들을 존재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들이 펼쳐지게 하라. 내면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부터 느껴지는 그것으로 하여금 참된 운명의 방향으로 이끌게 하라. 비록 당신의 에고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불완전한 것들을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라 무의식중에 사람, 장소, 환경들에 대해 완벽하지 못하다고 딱지를 붙이고 있는 당신 자신을 알아채라. 결함 속에 감춰진 완전함을 보라. 나는 아이들이 자랄 때 특정한 나이가 되면 그들의 도발적 행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을 자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몸에 좋은 음식들을 안 먹겠다고 버티는 아이들을 나는 그냥 지켜보았다.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채소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아이들이 어리석거나 생각이 꼬여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시기에 필요한 것이다. 당신도 이와 같이 느긋한 고요함을 즐겨라. 그럼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완전함을 허락하라. 겉으로 들어난 당신의 모든 불완전함에도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를 신의 피조물이라고 인식하라. 이것은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어떤 실수나 실패를 저질렀는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비록 이러한 표면적인 문제들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해도 말이다. 자아의 근원인 영원한 도는 흠이 없고, 곧으며, 완전하고, 진실하다.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들을 싫어하고 비판하느라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결점 투성이라고 여겼던 도이자 완전한 자신의 자아에게 도움을 청하라. 스스로 애정을 갖고 감싸 안으면 사랑받지 못해서 상처받은 겉모습과 감정은 평온하게 가라앉을 것이다. 46.
46장 평화로운 삶 세상이 도를 따르면 전장에 있던 말이 땅을 갈기 위해 돌아오고 세상이 도를 따르지 않으면 전쟁터에 끌려갔던 말이 새끼를 낳는다. 도를 잃는 것보다 큰 잃음이 없고 지나친 욕심보다 더한 재앙이 없으며 만족을 모르는 것 보다 더한 비극이 없다. 가장 큰 허물은 언제나 더 많이 원하는 것이다. 만족만으로 충분하다. 만족 안에서 진정으로 영원한 환희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성취를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기준을 두고 있다면, 이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도덕경] 46장은 성공을 위해 더욱 평화로우면서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유혹한다. 더 많이 얻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면 그로 인해 그동안 알고 있던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이 성취의 진정한 척도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도와 관계를 잃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국가는 더 많은 영토를 정복하려고 한다. 그래서 넓은 땅, 강력한 힘, 다른 국가에 대한 지배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한다. 노자는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도와 준비를 이루면 말들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도에서 멀어지면 말들은 전쟁터로 끌려간다. 이 세상이 지금 도와 관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여러 자원들을 고갈시키면서 군마를 키우고 있다. 세상은 이미 살상 무기로 가득하건만 계속해서 파괴를 위한 폭탄들을 만들어 낸다. “민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비극은 없다.” 없다.”라는 노자의 말은 도처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의 화염이 우리의 신성한 자아를 집어삼킬 것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은 노자의 조언에 따라 실천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평화롭게 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때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망은 사라지고 만족감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런 다음 당신의 가족, 이웃, 직장동료, 궁극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와 이 별 전체의 삶들을 어루만져라. 더 많이 요구하는 자신이 느껴지거든 간단히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떠 올리는 것으로 시작하라.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그 평화의 도구로서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전하게 될 것이고, 새롭게 특별한 성공의 불빛을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방황하든, 세상이 무엇을 세상이 무엇을 하라고 정하든 간에 당신은 도를 잃어버리지 않음으로써 조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매일 감사하고 만족하라 매일 아침, 당신의 발이 땅을 딛고 일어설 때마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 당신을 통해 자유롭게 흐르는 도의 신비로운 힘을 불러들이고 하루 동안 당신의 반응을 살펴보라. 이러한 방법으로 감사와 만족을 간절히 원할 때 당신의 근원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본성을 따르라. 점점 더 강한 폭력을 만들어 내는 세상 속에서 평화의 도구가 되기로 결심하라. 땅을 갈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불완전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馬)이 되라. 마치 당신과 도가 하나인 것처럼 살라.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결정적 다수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위대한 도가 에고의 요구들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47.
47장 존재함으로 사는 삶 문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알고 창을 통해 내다보지도 않고도 하늘의 방식을 본다. 멀리 나갈수록 아는 것은 줄어든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꿰뚫고 애쓰지 않고도 성취한다. 노력하고 힘을 써야만 성공한다는 믿음을 버려라. 47장에서 노자는 이러한 믿음이 우리가 완성을 이루고 조화를 경험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애쓰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사는 삶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노자가 말하는 것처럼 창문을 내다보지 않음으로써 더 많이 깨닫고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심장의 소리를 들어보자. 언제나 고동치는 신비한 생명체를 당신은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닌다. 심장은 잠을 잘 때도 멈추지 않고 펌프질을 계속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완전하게 작동한다. 심장은 스스로 생명을 전하는 놀라운 존재이다. 이것이 곧 당신이다. 당신 안에 있는 심장은 “존재함으로 사는 삶”의 교훈을 이해하고 작용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다. 심장은 지금 당신을 살아 있게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미처 느끼지 못한다. 본성에 따라 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심장처럼 당신의 온전한 자아에 대해 생각하라. 세상을 알기 위해 방황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이미 그 세상이기 때문이다. 심장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런 노력이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당신의 심장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고 도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류라는 심장 속에서 뛰는 하나의 박동이다. 창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고 앞으로 나설 필요도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심장과 마찬가지로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2,50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도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정보에 미친 세상 속에서 당신은 그저 존재함으로써 도의 지혜가 자유로이 흐르게 하는 심장의 박동이다. 노자는 나를 통해서 당신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효과를 시험해 보라고 재촉한다. 당신의 심장을 신뢰하라.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우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모순적인 도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가장 깊은 느낌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심장의 소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내면의 깊은 곳을 움직이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심장이 말하게 내버려두라. 고요하게 계속되는 박동에 주목하고 감사하라. 박동에 에너지를 주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 가슴 속에 있는 그 힘이 바로 도가 작용함을 알려주는 신호임을 깨달아라.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는 깨달음의 느낌을 믿으라. 내면의 깨달음은 당신이 앞으로 나서는 것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깨달음은 당신이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다. 당신에게 방 안에 틀어박힌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구가 태양을 돌게 하는 그 힘이 당신을 이끌도록 하라하고, 그 힘이 당신을 완벽하게 인도할 거라고 믿어야 한다. 모든 일이 이치에 맞게 돌아갈 때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어서 타고난 창조성을 경험하라. 마치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당신은 간섭할 필요도 없이 내면에서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48.
48장 덜어내는 삶 학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고 도는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고 무위에 이르면 못하는 것이 없다. 진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각자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둘 때 이루어진다. 간섭해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질수록 인간으로서 가치가 있다.”라고 외치는 듯한 세상에 살고 있다. 48장에서는 이런 식의 관념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라고 한다. 재산을 모으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삶의 기준으로 삶던 생각들을 바꿀 수 있다. 덜어내는 삶은 세상을 다른 불빛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완전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규교육을 통해 자신에게 부과된 모든 것을 배우고 채워야 한다고 배웠다. 배움의 여정보다는 성적 증명서, 졸업장, 학위에 집중했다. 그러난 도는 학벌을 나타내는 외부적인 표시와 상징들에서 벗어나라고 이른다. 학문이 정보와 지식의 축적에 대한 것이라면 도는 지혜에 대한 것이다. 도는 자신의 근원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이야기한다. 도를 경험하고 도에 생기를 불어넣고 또 원칙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물질에 의지하는 마음을 덜어내야 한다. 이 장에서 자주 언급하듯이 자신의 삶에 추가한 외적 요소들은 결국 그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외부로부터 지켜야 하고 보호해야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닦고, 칠하고, 청소하고, 보관해야 한다. 노자가 보여준 개념들, 특히 그중에서도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줄임으로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무한한 지혜가 깃들여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들은 땅을 소유한다는 용어가 없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땅 한 평을 사는 것부터 모든 법적 공작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구매하는 땅은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그러나 소요하기 위해서는 소유권 저당권, 유치권 등등 장애물을 만들어 낸다. 노자는 이 땅의 소유주가 아니라 손님이 되라고 한다.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자연계에 간섭하는 것을 멈춰라. 즉 태어났고 결국은 다시 돌아 갈 운명인 ‘아무것도 없음’과 조화를 이루어 살라. 빼기 혹은 ‘일상의 줄임’ 속에 담긴 가치를 보라.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구를 덜어내라. 광고는 그들이 선전하고 있는 모든 것이 행복과 직결된다고 설득한다. 무엇을 사는 대신 그동안 쌓아온 소요물들 중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보라. 그동안 모아온 세석적인 물건들을 내려놓으면 틀림없이 욕망이 잦아들고 상쾌한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여기 왔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겨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추가하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더 큰 기쁨을 만끽하라. 덜어내는 삶이 Rhe 도의 길이다. 소유를 통한 만족을 얻지 말고 자연에서 기쁨을 느껴라.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우주 속에서 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아라. 본질은 형태가 없기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노자가 말한다. 사물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내버려 둘수록 당신은 도와 더 조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꽃과 구름, 석양과 폭풍, 별, 산, 그리고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즐겨라. 세상과 함께 하라. 그것과 열애를 하며 그 속에 살되 소요하려 들지는 마라. 이것이 평화의 길이다. 500년 넘게 인도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카비르는 그의 글에 이 48장의 지혜를 다음과 같이 담았다. 물속에 살면서도 목이 마른 물고기는 전문가의 진지한 상담이 필요하다. 49.
49장 비난하지 않는 삶 성인은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차린다. 착한 사람에게는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역시 착하게 대한다. 존재의 본성이 착하기 때문이다. 어진 사람에게는 어질게 대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에게도 역시 어질게 대한다. 존재의 본성이 어질기 때문이다. 신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신의가 있게 대하고 신의가 없는 사람에게도 역시 신의가 있게 대한다. 성인은 하늘 아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어 산다. 모든 것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모든 이를 자기 아이처럼 사랑한다. 모든 사람들이 눈과 귀를 그에게로 돌리고 그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온화함으로 기득 한 이 장을 통해 노자는 우리에게 이 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비난하지 않은 삶을 통해 함께 조화롭게 존재할 가능성을 발견한 노자는 그 평화로운 세상을 탐험하라고 우리를 이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고 그들을 인정하라고 한다.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하늘 아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세상을 떠올려보라. 자기 자신에게 쏟아내는 순간을 직시함으로써, 비난에 대한 자신의 관찰을 바꿀 수 있다. 비난하는 대신 그냥 바라보라. 그러면 자신과 감정에 대한 꼬투리를 잡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경쟁, 처벌, 반감을 동기유발의 기제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랑, 친절, 포용을 믿지 못하고 증오, 분노, 협박을 필요로 한다. 자기비난에서 벗어나면 노자가 말한 “고정된 마음”을 필요로 하지도, 원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과 대립하게 만들었던 총성이나 현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신분의 꼬리표를 나타내는 수많은 구분과 범주들은 당신이 그것들의 가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순간 불필요하고 대수롭지 않게 된다. 가족이나 국가에 의해 길들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비난하지 않은 삶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도의 하나 됨이 사람들을 배척하는 당신 마음을 돌려 놓을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나 충돌을 막는 기본적 해결 방법이다. 비난을 멈추고 다른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들을 마치 친자식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에는 도의 하나 됨이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한다. 우리 신이 우리나라만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우리를 구하고 알라신이 당신과 믿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축복한다. 신은 온 인류에게 은총을 베풀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스승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처럼, 당신도 선함과 어짊으로 모두를 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라. 세계관이 변하면 당신의 그 선함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갈 것이다. 노자가 일깨워주는 것처럼 “우리 존재의 본성이 어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진짜 모습뿐이며, 당신 모습은 비판적이지 않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본다. 그들도 당신 자신도 비난할 필요가 없다. 생각을 바꾸고 비난하지 않는 삶을 살라. 이런 관점에서 잠시 흔들렸다고 해서 자신을 ‘그르다’고 비판하거나 잘하고 있다 해서 ‘대단하다’고 판단하지 마라. 당신은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무한한 ‘개방성’과 유한한 ‘한계’가 함께 뒤섞인 존재임을 명심하라. 때때로 비난하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라. 자신에게 확고한 관점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보통 편견으로 나타나곤 한다. 확고한 관점을 버리고 자신을 유연하게 바라보라.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더 높은 덕이다. 기존에 배워온 것과 배치될지라도, 모든 면에서 선함과 어짊을 펼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비난하는 사람이 아닌 지켜보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라.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의 관점에 매달리는 것은 삼가라.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라.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어질게 대하면서,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야 함을 잊지 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라. 이 장의 여러 번역본 중 하나는 “나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을 믿는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믿는다. 만약 내가 충분히 진실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심장 박동을 내 것보다 먼저 느낄 것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것을 ‘비난하기’라고 하든 아니면 ‘등급메기기’라고 하던 간에 다른 사람에 대해 악하고, 게으르고, 불성실하고, 어리석고, 못생겼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라.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다짐하라. ‘나는 이 사람에게서 나를 본다. 그리고 비난이 아닌 선함의 자리에 머물 것이다.’ 산스크리트 어로 ‘나마스테’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하나다. 당신을 존경합니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나는 사람에게 소리 없이 혹은 소리를 내어 “나마스테”라고 말하기 시작하라. 그 말이 모든 사람을 당신의 아이처럼 사랑하도록 일깨울 수 있게 말이다. 50.
50장 불멸의 존재로 살아가는 삶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삶을 따르는 사람이 열중에 셋이요. 죽음을 따르는 사람이 열중에 셋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죽음으로 그저 흘러가는 사람이 또한 열중에 셋이다. 왜 그러한가? 지나치게 삶에 매달리고 흘러가는 세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중에 하나가 있어 삶을 잘 다스린다. 호랑이와 코뿔소가 그를 피하고 전쟁터의 무기도 그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 코뿔소는 그 뿔을 박을 곳이 없고 호랑이는 그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으며 적군은 그 무기로 찌를 곳이 없다. 왜 그러한가? 그가 죽음에 이를 수 없는 곳에 살기 때문이다. 본질을 이해하라. 그러면 끝남이 없는 끝을 보게 될 것이다. 노자는 당신의 운명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라고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이 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이 이를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상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 목록의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이를 수 없는 곳’이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이다. 그것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당신은 그렇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이 육신을 거쳐 가는 영혼의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면 무한이라는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삶을 위협하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나 우아하고 능숙하게 움직여 나갈 것이다. 눈 덮인 산과 혼연일체가 된 대담한 스키 선수처럼 그냥 삶과 뒹굴도록 내버려 두는 도와 당신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당신은 소문, 관료적인 복잡한 절차, 무관심, 자연재해, 범죄자, 계속해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오롯이 바라보게 될 것이다. 도를 중심에 둔 이상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가볍게 다루게 될 것이다. 자신의 무한한 본질을 이해하고 깨달음이 이끄는 대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것이다. 도의 흐름을 통해 불멸성을 이해하게 되면 세속적인 관념과 형식적인 종교에 의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날고 지친 겉옷을 벗을 때가 오면 노자가 말한 것처럼 “끝남이 없는 끝을 보게 될 것이다.” 도덕경의 가르침을 천천히 되새겨 보라. 삶에 대해 이런 시각을 가지면 내면의 전쟁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결코 당신을 위협하거나 상하게 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없다. 그들이 들이박고 할퀼 만한 단단함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죽음이 꿰뚫을 수 없는 곳에 머문다. 더 이상 만물을 움켜쥐려고 하지도 않고,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그 짧은 여정을 하나뿐인 삶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긍정의 주문을 만들어라. 스스로에게 말하라. “나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다.” 당신은 절대로 상처를 입거나 파괴되지 않는다고 단언하라. 왜냐하면 육신이 당신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실과 연결된다면 위험하게 다가왔던 요소들은 자동으로 비켜나가게 될 것이다. 인도의 성인 무크타난다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열광적인 추종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애원했다. “제발, 우리 곁을 떠나지 마세요.” 그러자 그는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어디를 가겠느냐?”고 대답했다. 이 위대한 성인은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이 “끝남이 없는 끝”을 맞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죽어라. 당신의 물질적인 외피, 즉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그 자리에 생명을 잃은 채로 누워 있는 장면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보라. 주검과 분리된 목격자로서의 당신을 관찰하라. 그리고 당신의 육신에 주목하라. 영혼이 빠져나온 당신의 몸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몸에서 빠져나왔으니 이제 당신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다. 당신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주던 세속적인 껍데기의 죽음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품고 머물러 보라. 이 새로운 깨달음 속에서 당신은 뚫리지 않을 만큼 강하고 자유롭다. 살아 있는 동안 죽어라. 51.
51장 숨은 덕에 의한 삶 도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근원과 이어준다. 도는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완전하고 자유롭게 생겨난다.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주변 환경이 이를 완성하도록 놓아 둔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존중하고 그것이 더욱 귀하게 여긴다. 도를 숭배하고 덕을 공경하도록 요구한 적이 없지만 만물은 항상 자연스레 그리한다. 도는 만물을 낳는다. 덕은 만물을 기르고 자라게 하고 양육하고 안식처가 되어주고 보호한다. 도는 낳으나 소유하지 않고 주지만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르나 지배하지 않는다. 이를 일러 숨은 덕이라고 한다. [도덕경] 51장은 우리를 보호하고, 기르고, 안식처가 되어주면서도 지배하려 하지 않는 내면을 발견하라고 한다. 숨은 덕에 의해 산다는 것은 만물의 장대한 계획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 시작은 신비로움을 설명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만약 생물학적 방법으로 탄생의 비밀을 설명한다면 이는 숨은 덕의 자연스러움과 신비로움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의 관점이 달라짐으로 세상도 변한다. 숨은 덕에 따라 살면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의 선택과 책임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숨은 덕에 따라 살지 않으면 태어날 때 가족과 문화 안에서 이미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고 확신한다. 삶이 정해져 있으므로 일상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지게 되고, 가족 내의 성별이나 사열에 의한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동시에 그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끈질긴 자기비판을 경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노예나 아첨꾼의 역할 속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시야를 넓혀 자신을 도의 창조물로 보라고 요구한다. 당신이라는 작고 어린 묘목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떠 올려보라. 생명을 불어넣은 ‘도’라 불리는 이 근원은 우리가 해야 할 일, 귀 기울여야 할 사람, 살아야 할 곳, 숭배하는 방법 등에 대한 일정한 원칙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위대한 어머니인 근원은 당신 삶의 여정 속에서 내리는 결정에 대해 참견을 하지 않는다. 근원은 당신이라는 묘목이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그 안에서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하고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이 숨은 존재를 ‘덕(德)’이라 한다. 덕은 당신과 만물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다. 이것은 육체라는 껍데기를 죽지 않도록 보장하는 힘이나 기운이 아니다. 그보다는 창조적이고 근원적인 힘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육체를 젊어진 채로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이것은 현상의 세계에서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헬렌 켈라가 “안전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미신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이다.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연습하라 . 자기 내면과 근원의 덕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라. 보살핌, 보호받고 있다는 안전한 느낌은 당신 소유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 안에 있는 덕의 기운과 당신이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숨은 힘이 당신의 존재를 책임진다. 당신은 도에게서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행동은 삶 그 자체인 내면의 덕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힘은 이 글을 요약하는 내 손안에 담겨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머릿속에 존재한다. 그 힘을 믿어라. 그 숨은 힘 안에서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껴라. 이것이 완전함을 느끼는 데 필요한 전부이다. 도는 낳지만 소유하지 않는다는 기억하라. 도처럼 살라. 소유하기보다는 돌보는 사람이 되라. 그 누구도 통제하려 하지 마라. 지배하거나 조종하려 들지 말고 그저 성장하게 도와주라. 당신이 만약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할 위치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숨은 덕을 가능한 한 많이 발휘하게 하라. 당신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고 생명을 불어넣은 보이지 않는 힘을 믿으려는 것처럼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도 그러하다. 예외란 없다. 만물은 그들이 의지하는 존재와 그 온당함에 보답한다. 소유자가 아닌 부모가 되고 주인이 아닌 돌보는 사람이 되라. 복종이 아닌 베풂에 관여하라. 이와 같이 하라. 그러하면 삶의 중심에 서게 된다. 52.
52장 어머니에게 되돌아가는 삶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공통된 시작이 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세상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를 알면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알면 다시 돌아가 어머니를 받들어야 한다. 입을 다물고 감각을 붙들어라. 그러면 삶이 늘 가득하다. 입을 열고 분주하게 살라. 그러면 희망이 저 멀리에 있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은 맑음이고 부드러움을 만드는 것은 강함이다. 반짝임을 이용하여 그 빛으로 다시 돌아가고 재난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일러 영원한 빛의 배움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순차적으로 겪는 경험 이상임을 깨달으라고 한다. 태어나서 성장의 단계를 거쳐서 죽음에 이를 것이고,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비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노자는 우리에게 이 별의 생명이 태어난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이라는 걸 알려주려 한다. 또한 우리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전에 이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깨달으라고 한다. 노자는 모든 만물 하나하나에 깃든 이 신비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는 태어나고 죽는 것들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상정한다고 말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공통된 시작이 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세상의 어머니이다.” 이 생각이 당신 존재 안으로 스며들게 하고, ‘아무것도 없음’에서 태어난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가져라. 보이지 않는 근원이 만물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낳았음을 기억하라. 마치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처럼 그 신비로운 ‘아무것도 없음’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타고 흐르며 그들을 지탱한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 나 냄새도 없기 때문에 당신의 감각적 자아는 감지하기 어려운 한결같은 기운이다. 나이 영원한 어머니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렵지 않다. 존재함을 믿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면 된다. 일단 그 존재를 알고 공경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의 자식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만물은 그 어머니의 소산으로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난 덧없는 모습 너머로 도가 펼쳐지는 세상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자식인 만물을 어머니와 별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머니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의미이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이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다시 돌아가 어머니를 받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노자는 세속적인 행위들이 연혼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고 귀를 덮으라고 충고한다. 달리 말하면 그 어머니를 닮은 내면의 부분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고 주변에서 도를 발견함으로써 밝음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경직된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강하게 하는 유연함을 길러라. 노자는 이것을 “영원한 배움”이라고 말하면서 장을 마무리한다. 아주 작은 존재에서 그 우주를 보라. 그것이 당신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고 빛이다. 직접 그 작음 안으로 들어가 밝음을 발견하라. 그러면 유연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입을 열면 영혼이 도망칠 것이고 입을 다물면 영혼과 하나가 될 것이다. 입은 영혼을 지키는 문이다. 대화를 나눌 때 그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라. 영혼이 당신 내면에 안전하게 숨도록 하라. 귀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풍문과 가치 없는 대화로부터 귀를 막아라.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함부로 충고하지 말고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며, 험담하는데 끼어들지 마라. 언제 말하고 언제 들어야 할지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면서 당신의 강함을 길러라.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고 싶을 때는 어머니의 음성은 침묵이다. 그렇게 하라. 그러면 자유 속에서 어머니를 받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신비를 깨달으면 가장 큰 신비가 밝혀진다. 작은 것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밝음을 향한 희망을 키우게 된다. 한없이 작게 보이는 삶의 신비를 통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지혜의 빛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과 당신을 낳은 영원한 어머니, 그리고 다른 모두는 하나이다. 작은 것을 이해하면 밝음을 얻는데, 이는 당신이 곧 살아 있는 동안 경험해야 할 되돌아가는 여행과 같다. 도처에서 당신을 낳아준 영혼을 발견하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엇도 더 이상 평범하거나 열등하거나 혹은 불필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53.
53장 부끄러움을 아는 삶 나에게 작은 지혜라도 있다면 오직 대도(大道)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두려워하리라. 대도의 길은 아주 평탄하고 곧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이것이 정부는 타락하고 밭은 황폐하고 곳간은 텅 빈 이유이다. 화려하게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며 물리도록 먹고 마시고 쓰고도 남을 재산을 모으는 것은 도둑과 같아지는 것이다. 남을 희생시키는 이런 호사는 도둑이 물건을 훔치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이는 도가 아니다. 완벽한 존경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눈길이 가는 곳마다. 대도를 발견할 것이고, 그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전에 존재했거나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은 당신 근원이 낳은 당신의 일부이다. 동물과 식물, 땅과 바다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결정적 다수의 사람들이 이 같은 관점을 갖는다면, 지구 전체를 자신의 일부로 보듯 개개인의 몸인 생명체들을 똑같이 존중하게 될 것이다. 기술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였지만 2500년 전에 쓴 이 글은 지금도 고스란히 들어맞는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도의 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우리는 통일된 하나 됨이 아닌 분열을 향하고 있다. 이는 도가 아니다. 소수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와 화려함을 누리며 사는 반면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배고픔을 경험한다. 수백만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살상 무기를 만드는 위한 자금은 쌓여간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순간에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넘쳐흐른다. 우리는 에두르는 길을 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 매일 너무나 큰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누군가가 배고픔에 허덕이고 빈곤에 시달린다면 이를 당신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품어라.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라. 그러면 남들과는 다른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과 믿음을 대신할 연민의 사랑, 그리고 기꺼이 행하는 마음을 발견할 것이다. 노자는 그가 살았던 고대 중국의 냉혹하고 냉담한 환경을 비통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분열된 에고의 관점을 버리라고 한다. 도를 따라서 부끄러움을 아는 삶을 살면 세상이 어떻게 도와 조화를 이루게 되는지에 주목하라고 한다. 그러면 이 세상의 불균형을 바라보는 방식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궁전은 저리도 훌륭한데 농토는 어찌 이리도 황폐한가? 지주는 날카로운 검을 차고 자수 놓은 천으로 치장할 때 소작농의 곳간은 텅 비었구나. 그들은 더 가질수록 더 움켜진다.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은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마신다. 연민을 개인의 철학적 토대로 삼아라. 재산을 쌓아온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굶주리는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슬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연민을 철학적 토대로 삼으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것은 변화를 이루어내는 결정적 다수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그러한 무리가 커질수록 어진 마음과 행동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별을 새롭게 조율할 것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이 나타나고, 부조화와 부조리는 사라질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방식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의 더 비참한 가면 가운데 하나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 54.
54장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삶 도에 굳건히 선 사람들은 쉬이 뽑히지 않고 도를 끌어안은 사람은 쉬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자손 대대로 제사가 멈추지 않는다. 도를 자신에게 실천하면 덕이 분명해지고 도를 가정에서 실천하면 덕이 확장되며 도를 나라에서 실천하면 덕이 풍성해 진다. 도는 어디에든 무엇이든 있다. 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도를 보아야 한다. 자신으로 자신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세상으로 세상을 보라. 내가 어떻게 세상이 이러한 줄을 알겠는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을 보기 때문이다. 이 장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한다. 당신이 전 우주에 무한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깨달음을 품고 살면 도가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당신은 마치 방을 비추는 빛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도의 본성을 눈치 채지 못한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차릴 것이고 삶을 소중이 여기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빛에 매료되어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도의 일부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세상 속으로 균형을 불어넣어라. 54장에서 노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누리라고 한다. 도가 모든 숨결과 생각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 바로 당신의 내면에 자리한 그 침묵의 공간 속에서부터 삶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집중할 분야를 선택하라. 당신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품지 마라. 세상을 위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에 온전히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증오도, 경멸도, 폭력도 없는 세상을 그려보라. 자연이 존중되고 보살핌 받는 세상 말이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마라. 진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잇는 사람은 그들뿐이다.” 당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라. 나비가 그 날개를 펄럭이면 거기서 나온 에너지가 수천 킬로미터에 영향을 미친다고들 말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증식된다. 당신이 선택한 변화가 파괴가 아닌 온전함을 향한 것임을 명심하고 살라. 분명 어질지 못한 하나의 행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칠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침묵 속 축복이나 사랑의 마음은 우주 전체에 걸쳐 울림을 준다. 당신이 모든 생명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를 깨달아라. 55.
55장 내려놓는 삶 덕과 조화를 이룬 사람은 마치 갓난아기와 같다. 독이 있는 벌레도 쏘지 않고 사나운 맹수도 덤벼들지 않으며 무서운 날짐승도 덮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우나 잡는 힘은 단단하다. 남녀의 교합을 알지 못하나 음경이 일어서고 정기가 가득하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조호가 지극하다. 조화를 아는 것은 변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고 변하지 않음을 아는 것은 통찰을 갖는 것이다. 도와 조화를 이룬 것은 살아남고 억지로 된 것들은 잠시 자라는 듯하나 이내 시든다. 그것은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를 거스르는 것은 무엇이든 일찍 그친다. 모든 혜택을 다 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생명을 빼앗을 만큼 위험한 공격도 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치명적인 독감이 유행하는 동안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다친 사고 현장을 조그만 상처 없이 벗어난 사람은 어떤가? 이렇게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은 “독이 없는 벌래” “사나운 맹수”라고 표현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저 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듯 보이고, 어떤 이들은 돈이 필요할 때 그 돈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노자는 에고가 자리 잡지 않은 갓난아기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들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큰 소리로 울어대도 결코 목이 쉬지를 않는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이것이 노자의 조화이다. “행운”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내려놓는 삶을 선택한다면 행운은 살아가는 내내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순간, 도의 힘을 끌어당기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라. 당신 삶이 얼마나 행운 가득한 모습으로 변하는지 바라보라. 면역체계를 강화하여 질병을 견뎌낼 수 있는 “행운”을 얻기 위해 도의 조화 속으로 내려놓아라. 그리고 존재하라. 보호받기 위해 내려놓는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들린다. 내려놓는 삶은 걱정, 긴장, 공포를 말한다. 위험해 보이는 일에 직면해서도 평안과 행복의 느낌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근원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강압에 따라 행동하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노자는 말한다. “억지로 된 것들은 잠시 자라는 듯하나 이내 시든다.” 파괴할 수 없는 자신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품어라. 위험한 상황을 지나는 동안 자신을 지탱해 줄 내면의 이미지를 만들라. 물질적인 육체의 이미지를 버리고, 정신이나 사고처럼 당신의 한결같은 부분을 보라. 이것이 당신의 본질이며, 본질은 어떤 식으로도 해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범죄자에서 사나운 맹수, 감기에서 암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당신을 파괴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비하려고 애쓰지 마라. 삶을 살아가는 내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그 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라. 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당신의 잠재력을 새롭게 바라보라. 스스로에게 “난 운이 없는 사람이니까, 일이 제대로 될 일이 없어.”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행운이 나를 이끌어 줄 거야.”라고 다짐하라.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도의 흐름 속으로 당신을 안내 할 것이다. 조화가 수고의 자리를 채우며, 수용이 간섭과 강압을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행운이 공포를 몰아낼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심지어 이전에는 불운의 증거라고 믿었던 것들도 이제는 더 큰 조화를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상징으로 보일 것이다. 56.
56장 말없는 앎을 따르는 삶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모든 통로를 막아라. 입을 다물고 감각을 차단하라.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라.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을 가라앉혀라. 이를 태초의 하나 됨 혹은 신비의 포옹이라고 한다. 이 신비를 아는 사람은 집착이나 싫어하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얻음과 잃음에 동요하지 않으며 명예와 불명예에 좌우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 저 너머에 있지만 그들의 가슴속 가장 소중한 부분을 얻는다. 이것이 사람의 가장 귀한 모습이다. 어쩌면 이 장이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대중에 널리 알려진 장인지 모른다. 특히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은 너무 유명하다. 그럼에도 이 말의 근본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이를 실천하는 더욱더 찾아보기 힘들다. 노자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 없는 앎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이 장을 통해 그동안 지혜롭거나 박식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싶어질 수도 있다. 좋은 언변을 가진 연설가는 자신의 주장에 자신감이 넘치고, 이를 힘 있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들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서 존중받는다. 그러나 진실은 이와 정반대라고 노자는 말한다. 말하는 사람은 말 없는 삶으로 살지 않고, 따라서 그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전과는 다른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똑똑한 척 말하고 설득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일종의 집착에 얽매여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집착이란 하나의 이론, 정의, 승리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기 이익과 관련 있을 수도 있다. 더 많이 말할수록 더욱 그런 집착들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발견은 당신 내면에서 벌어진다. 남을 설득하고 설득시키려는 성향과 욕구를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노자가 말한 “태초의 하나 됨” 혹은 “신비한 포옹”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더 기울여 듣게 된다. 박식하고 우월하고자 하는 욕심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이해한다. 인정받고 애쓰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말 없는 앎을 통해 당신의 존재는 다른 빛을 향하게 된다. 당신은 덜 날카롭게 되고, 안정되며, 부드럽고, 진중한 느낌을 갖게 된다. 총명하고 지혜롭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모순적인 아이러니와 마주치게 된다. 노자는 도에 따라 사는 성인은 “사람들의 관심 저 너머에 있지만 그들 가슴속 가장 소중한 부분을 얻는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더 인정받게 됨을 깨닫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명에나 불명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기에 칭찬을 구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고요한 지혜로 인해 다소 냉담한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모든 통로를 막아라!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당신 자신에 대해 솔직해져라. 당신은 누구에게 무엇도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계속해서 떠들어봐야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입을 다물어라. 침묵은 깨달음의 증거다.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하는 것은 들으려는 사람의 필요보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설득하려 애쓰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그저 깊은 만족을 주는 내면의 깨달음을 즐겨라. 이 장의 네 가지 지침을 기억하라.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라] 당신의 판단이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라. 더 좋은 방법은 우선 그냥 듣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애정이 담긴 연민의 마음을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건네라. [얽힌 것을 풀라] 당신을 세속적인 규칙에 붙들어 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라. 이익을 자랑하고 승리를 증명하는데 몰두하는 삶과 연결된 매듭을 풀어라. ‘신비한 포옹“ 속에서 고요히 도를 바라보아라. [빛을 부드럽게 하라] 옳고자 하는 당신 욕심이 분명해지는 순간에 주목하라. 그리고 정직된 태도 대신 당신 존재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모습을 찾고 그 방향으로 변화하라.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불쾌한 눈으로 노려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면 이응 당신 자신이 내면의 말 없는 앎과 멀어지고 있다는 경고이다. [티끌을 가라앉혀라] 소동을 벌이지 마라. 다른 사람들의 행동방식에 분노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그러한 자신의 성향을 자각하라. 화가 나서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다면 멈춰 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라. 마치 커다란 바다의 파도와도 같은 당신의 감정이 광대하고 차분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라. 57.
57장 권위주의를 버린 삶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도를 따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지배하려 애쓰지 말고 고정된 계획과 개념을 놓아버려라. 그러면 세상이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세상에 금기와 제약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날카로운 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혼탁해지며 사람들이 잔꾀가 많을수록 괴상한 것들이 더욱 많아지고 법이나 명령이 요란할수록 도둑이 더욱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한다. 내가 억지로 행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저절로 바뀌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므로 사람들이 저절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꾸미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저절로 소박해진다. 이 장과 앞으로 이어질 몇 개의 장을 통해 노자는 2500년 전의 통치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리더십을 보여야 할 이유와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57장의 기본 메시지는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갓난 아이를 찻길로 기어가도록 내버려 두거나 수영장 옆에서 혼자 놀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누군가를 감독해야 하는 경우에는 분명 상식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리더십이라는 점이다. 그는 과다한 제약과 금기를 가진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진다.”라고 말한다. 이는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권위적인 체제일수록 더 많은 무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에 아이들은 규칙이나 제제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호기심을 탐구하도록 격려 받을 때 자신감을 얻는다. 당신이 규율을 바라보는 방식을 달리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십대 자녀들에게 적용하던 엄격한 귀가 시간을 없애고, 그들에게 언제 올 것인가를 알아서 정하게 한다. 그리고 평소보다 늦을 경우 연락하도록 부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히려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격한 귀가 시간이 있을 때보다 더 일찍 집에 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강요하던 제약들을 살펴보라. 바람직한 부모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기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기댈 필요가 없도록 교육한다. 당신은 자녀들이 책임감 있고, 건강하고, 성공하고, 거기에 더해 정직하기를 바랄 것이다. 감시하고 간섭해서가 아니라 그들 내면에 있는 본성에 따라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모법을 보여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 무엇을 결정할 때마다 지침서보다는 자신들의 고귀한 본성을 믿고 따르도록 하라. 자신을 내버려 두는 기술을 연마하라. 자신을 더 자연스럽게, 덜 통제 받도록 놓아두라. 아무런 계획 없이 짧은 여행을 떠나라. 본능적으로 끌리는 곳으로 가라. 당신이 가진 권위적인 부분에게 잠시 휴식 시간을 갖자고 말하라.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어느 누구의 규칙에 따라 살 필요도 없으며, 나의 행동을 가로막던 규칙들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면을 보여주라. 다른 사람을 내버려 두는 기술도 연마하라. 자녀나 다른 누군가를 향해 “안 된다."라고 말하며 규칙을 들먹이려는 자신을 붙잡아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해 보라.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바꾸면, 사람들이 직분을 수행하는데 규칙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자신들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도의 방식대로 존재하라. 다른 사람을 내버려 두라. 권위적이지 않은 당신의 리더십이 다른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을 찾아가도록 영감을 불어넣고 있음을 즐겨라. 58.
58장 행운과 불운에 흔들리지 않는 삶 통치자가 자기 자신을 알면 백성들은 순박해진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삶을 간섭하면 백성들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해진다. 화(禍)에는 복(福)이 기대어 있고 복에는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옳음의 기준이 있는가? 옳은 것이 변하여 이상한 것이 되니 사람이 미혹된 지가 실로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성인은 기꺼이 모범을 보이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예리하나 찌르지 않고 곧으나 분열시키지 않고 빛나나 눈부시지 않는다. 만물의 세상은 ‘변화의 세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모든 것이 안정되고 예측 가능하기를 바라면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세상은 한결같이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58장은 세상을 보는 다른 방법, 사실상 행운과 불운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장은 물질세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 흐름에만 집중하지 말고 결코 변하지 않는 도에 초점을 두라고 안내한다. 대부분 사람들처럼 당신 또한 변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들을 통해 그와 정반대인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요구한다. 결국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질서 정연한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 화창한 날에는 폭풍이 숨어 있고, 폭풍이 끝나면 가뭄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내리며 예기치 못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자연계에는 그저 일상적인 일일뿐이다. 삶의 꼭대기와 바닥에 대한 당신의 관점을 바꿔라. 그 경험들 안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라. 행운과 불운이 아닌 온전한 전부를 보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하나 됨의 일부로 보라. 도의 세상에는 행운이나 불운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둘로 나뉠 수가 없다. 당신이 불운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행운이라는 나머지 반쪽을 포함하고 있다. 행운이나 불운이 아니라 온전함을 보라 . 당신이 생각하는 행운의 한복판에 삶이 있다면 그 삶이 언제라도 변할 수 있음을 깨달아라. 부유함은 그 속에 빈곤함을 감추고 있고 인기 있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잊혀진다. 불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삶은 행운이나 불운에 흔들리지 않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의 장이다. 당신에게 온전함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젊음을 행운, 노년을 불운이라 보는 대신 지나온 세월의 온전함으로 받아들여라. 삶은 죽음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의지를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 조화를 이루도록 행동하라. 불운의 상황이 버거워서 거리를 둘 수 없다면 거기에 기대어 있는 행운을 보라. 지금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버티기 힘들 정도로 낙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삶의 전 부인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황을 더 큰 그림의 일부로 볼 수 없다면, 가장 어두운 밤을 따라 아침이 오는 것과 같이 행운은 불운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온전함을 배경으로 밤이 지나면 낮이 찾아온다는 경험에 의지하라. 당신이 골짜기 바닥에 이르렀다면 이제 갈 수 있는 방향은 오로지 위쪽뿐이다. 모든 일들은 분명 나아질 것이고, 당신의 운도 틀림없이 바뀔 것이며, 결핍은 풍요로움으로 변할 것이다. 모든 절망의 순간 속에는 행운이 숨어 있고, 당신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59.
59장 절약과 절제의 삶 사람을 다스리고 자연을 섬기는 데 절약과 절제보다 나은 것이 없다. 자제함은 자신의 의도를 포기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이는 그동안 쌓은 덕에 달려 있다. 덕을 많이 쌓으면 불가능이 없고 불가능이 없으면 한계가 없으며 한계가 없으면 나라를 이끌 만하다. 이것이 바로 도에 깊고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길이며 영원한 삶과 깊은 통찰력의 비밀이다. 이 장의 주요 메시지는 자제. 검소, 절제, 그리고 절약이다. 노자는 사람을 관리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당신의 역할에 있어 이러한 덕목을 점검하라 한다. 방관자처럼 물러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진정한 자기 관리를 실천하라고 조언한다. “덕을 많이 쌓으면 불가능이 없다.”없다."라는 말처럼 덕을 쌓는 리더십을 갖추면 한계가 사라진다. 절약과 절제의 삶이란 당신의 너그러운 본성을 통해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재촉하고 지시하고, 명령 내리고, 규칙을 정하고, 복종을 강요하기보다는 도에 따라 덕을 쌓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해오던 이런 방식을 버리면 자연스레 덜 간섭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울 것이다. 이것이 도 중심의 리더십이다. 노자가 말하듯 “한계가 없으면 나라를 이끌 만하다.” 규칙과 도덕, 공포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저 지시 받은 것만 할 수 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방향성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제, 검소, 절제, 그리고 절약을 실천하라. 순종만을 강요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심한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충분히 따져 보기보다는 그들을 이끌어주는 위치의 누군가를 따라서 결정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한층 높은 기준에 따라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노자는 “불가능이 없으면 한계가 없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덕을 쌓고 이를 본받음으로써 한계 없는 삶을 실천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이끌어야 했던 사람들 안에서 “깊은 통찰력의 비밀”을 발견할 것이고, 그 사람들은 반대로 당신 안에서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덕을 쌓아라.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그러면 들어내지 않고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가라. 그들을 도우면서 덕을 쌓아라. 덕을 쌓으면 사람은 항상 꼭대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봉사는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는 노력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고행의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덕을 쌓은 사람은 고통과 시련이 오더라도 그 곳을 벗어났을 때 사실상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다. 그 이유는 덕을 통해 외부 환경과는 무관한 통찰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에고를 다스리는 연습을 하라 에고를 다스림으로써 이전과는 다르게 살라. 모아서 쌓아 두는 존재가 아닌 나눠주는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고, 과시하며 소비하는 대신 필요한 것만 쓰며 살라. 당신의 삶이 에고의 요구보다는 도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욕구를 다스려서 자신과 가족에게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할 때 당신은 축적하지 않고 베풂으로써 덕을 쌓게 될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영원한 삶과 깊은 통찰력의 비밀”이라고 상기시킨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헨리 6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의 왕관은 머리 위가 아닌 마음속에 있다. 다이아몬드나 인도의 보석으로 치장된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나의 왕관은 ‘만족’이라 불린다. 그것은 왕들이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왕관이다. 60.
60장 악에 흔들리지 않는 삶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지나치게 들쑤시면 망치기 마련이다. 도(道)로 세상을 다스리면 악(惡)은 힘을 쓰지 못한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인 자신도 해를 입지 않는다. 군주의 그 백성들이 서로 해치지 않는다면 덕은 그 나라에 쌓일 것이다. 이 장의 주제는 당신 개인 안에 존재하는 악을 새롭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도의 보호막 안에 머물면 악은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한 해로운 생각들을 거부하고 도에 따라 살면 사악하고 나쁜 기운들은 힘을 잃고 물러날 것이다. 도는 누군가를 파괴하거나 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 원칙을 벗어난 사람들은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때만 겨우 성공할 수 있다. 이때 벌어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며 가족과 공동체의 불화이다. 부정은 더 큰 부정을 초래하고, 집단에 큰 혼란이 가중되면서 지도자와 군주는 결국 몰락할 것이다. 악을 새롭게 바라보라. 그리고 다짐하라.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악의 존재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고, 끼칠 수도 없다.’ 그러면 당신 내면의 풍경은 즉시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폭력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빛과 사랑의 존재이며 나에게서 쏟아지는 생각들은 사랑이 깃든 도와 어우러진다.’ 달리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 때문에 증오를 품고 복수의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도에 집중하면 부정적인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정적인 생각이 당신을 향하거든 마음속에 자리한 어짊과 사랑의 공간으로 물러서서 그 나쁜 기운을 피하라. 싸움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싸움을 거부하는 것이 악에 대항하는 당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해코지하려는 성난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고약한 사고 수준만큼 자신을 낮추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으면 이러한 감정의 폭발을 쉽게 피해갈 수 있다. 그런 해로운 생각과 행동이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것들에 대해 무감각해져라. 노자는 많은 사람들이 경쟁과 복수 대신 협동과 사랑의 정신으로 산다면 상처는 주는 행위는 무력해 짐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지혜를 받아들여라. 해로운 생각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을 조절하여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라.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을 잡아라. 자신이 존경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울해진다. 그런 생각이 들면 자신에게 속삭여라. “나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또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그 사랑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내 안에 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증오와 악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북수를 떠올리지 마라. 그런 행위는 자신을 해치는 일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기운을 담아 생각하라. ‘나는 모두에게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이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 증오의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당신의 모든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그 흐름을 변화시켜라. 도의 이로움을 세상에 전하는 한 사람이 되라. 해로운 요구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라. 당신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을 떠올려보라. 이 보호막은 세상에서 악이라고 인식되는 것들로부터 당신을 지킨다. 오직 도와 조화를 이루는 기운만이 이 막을 통과할 수 있다. 사랑, 어짊, 자비 등의 기운은 모두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해로운 무엇이 당신에게 다가오면 이 막에 의해 튕겨나갈 것이다. 이는 당신이 도 안에서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내면의 이런 믿음이 있다면 악의 기운이 아무리 사납게 몰아친다 해도 당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가 없을 것이다. 당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사랑으로 다스리고, 그 무엇에도 상처입지 않는 사람이 되라. 그렇게 선언하고 실천하라. 위험의 한복판을 자유롭게 걸어라. 이것은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당신과 도가 하나라는 깨달음이다. 61.
61장 낮은 곳에 머무르는 삶 큰 나라는 모든 물줄기가 흘러들어오는 낮은 땅과 같다. 하늘 아래 만물이 고여 있는 저수지이고 세상의 여인이다. 여성이 언제나 남성을 이기는 것은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작은 나라 앞에 스스로를 낮추면 우정과 신뢰를 얻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앞에 스스로를 낮추면 큰 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자신을 굽혀 이기기도 하고 낮은 곳에 머물러 남을 얻기도 한다.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정상을 차지해야 한다고 배웠다. 세상은 우리에게 ‘승자가 되라.’ ‘승자를 존경하라.’ ‘돋보이는 사람이 되라.’ ‘최고가 되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보통 돈을 가장 많이 벌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채 공포와 복종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렇게 잘난 체하며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존경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 장은 우리에게 승자에 대한 믿음들을 다시 평가해 보라고 요구한다. 넓은 바다를 보라. 바다는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 힘은 다른 물줄기보다 낮은 곳에 머물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강물들이 바다와 하나가 되고자 흘러든다. 그래서 바다는 온 세상이 모여든 저수지가 된다. 노자는 [도덕경]의 전체에 걸쳐 이것을 “위대한 어머니‘ 또는 ”세상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여성적인 음의 에너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고요히 그리고 조용히 머물러서 결국에는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남성적 양의 기운을 압도한다. 노자는 이 장에서 사람들을 이끌 때 낮은 곳에 머무름으로써 얻는 유익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모두 넓은 바다와 같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을 관찰한 결과, 그곳에 평화와 조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를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정복해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에고임을 깨달은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깨달음을 국가와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지만, 국가는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위대한 성인이 전하는 지혜를 실천하는 개인이 많아지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결정적 다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생각하는 방식에서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이를 위해 180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 에고 중심의 사고를 줄인다면 세상은 노자의 이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강함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겸손함, 고요함, 그리고 낮은 자리에 머무는 태도에서 힘을 느낄 수 있는가? 무도의 세계에서 최고의 고수는 적은 힘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폭력을 보라. 권좌에 눈이 멀었던 사람은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지만 나중에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개인 삶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띄지 않고 고요히 머물면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로 흘러와서 우정과 신뢰로 어우러질 것이다. 이 여성적인 음의 존재 방식 안에 머물면 당신은 강한 기운을 내뿜어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중에는 변화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넓은 바다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낮은 곳에 머물라. 머물기로 한 그 자리가 어디든 간에 그 자리는 큰 자리가 될 것이다.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본받아라. 고요함과 음의 기운으로 낮은 곳에 머무는 삶을 산 본보기는 도처에 있다. 예수, 부처, 무함마드, 조로아스터, 성 프란체스코, 간디, 테레사 수녀 등은 우리에게 훌륭한 모델이 되고 있다. 그들은 권력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통해 인류 역사의 행로를 바꾸어 놓았으며 세월이 지나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당신도 이들과 같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저 낮고 변함없는 바다처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하다. 당신을 누르고, 당신 위에 서고자 발부 둥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고요함과 겸손에 무너지고 당신에게로 흘러 들어온다. 62.
62장 「道」라는 보물창고 안의 삶 「道」는 보물창고이자 진정한 본성이며 만물의 근원이다. 「道」는 선한 삶의 보배이며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은신처가 된다. 악한 사람이라도 내치지 마라. 좋은 말로 그를 깨우치고 행동으로 그를 일으키며 어진 마음으로 그의 무례에 대응하라. 악한 사람을 내치지 말고 다만 악함만을 내쳐라. 그러므로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을 때 부의 지식으로 그를 돕기보다는 원칙을 되새기도록 돕고 도를 받치는 것이 낫다. 어찌하여 옛사람은 「道」를 이리도 귀하게 여겼을까? 모든 선의 근원이요. 모든 악을 치료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道」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만물의 신성한 근원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에 다가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곳에서 우리는 선한 사람에게는 보배요.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용서받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위대한 통치자와 현명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기도할 것이고, 우리는 사람을 내치지 않고 악함만을 내쫓을 수 있는 비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악을 치료하는 방법은 물론 선의 원천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장은 의식 있는 다른 모든 존재처럼 나 역시도 내면 깊은 곳을 다가갈 수 있는 등불이 되었고 세상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도록 해주었다. 또한 나도 모르는 나 안의 도가 있으며, 우주의 한 존재로서 내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증오, 시기, 질투 등을 짊어진 사람들을 살펴봄으로서 만물을 대하는 편파적인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노자의 말처럼 악하고 나쁜 사람은 없다. 그저 「道」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이 악하게 보일 뿐이다. 「道」와 조화를 이루어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중심을 지켜라. 도의 근원은 어느 누구도 헤치지 않고, 가로막지 않으며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道」는 오직 생명을 줄 뿐이다.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지거든 신성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순수한 사랑과 어짊 쪽으로 시선을 바꿔라. 부정적인 기운은 강력하다. 그것은 근원으로 돌아가 영적 순환 속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멀어지게 한다. 악함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차이를 깨달을 수 있도록 안내하라.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함을 지녀라. 당신은 물질 세상에서의 만족과 도의 풍요로움에 대한 차이를 편안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의 보물창고에 이르는 지도를 그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아푸 팽과 제인 잉그뤼쉬가 번역한 [도덕경]에서 이 62장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왜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도를 좋아하는가? 찾는 것을 얻고 저지른 죄를 용서받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까닭에 도는 우주의 가장 위대한 보배이다. 당신에게 열려있는 보물창고의 문을 열어라. 언제나 열려 있는 「道」, 그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라. 또한 자신을 도의 신성한 창조물로 바라보라. 지금껏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라도, 보배로 가득한 도 공간 안에서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음을 이해하라. 내부의 신성한 온기에 몸을 맡길 수 있는 편안한 집을 떠올려보라. 모든 불안과 공포를 뒤로한 채 그 문으로 들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명상 기술을 이용해서 이 집을 언제든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피난처로 삼아라. 그것은 신성함 그 자체이며, 언제라도 당신의 성소가 되어줄 것이다. 악의 있고 비난받을 만한 것들을 보았을 때 용서하고 비난하지 않는 연습을 하라. 악한 행동과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을 분리함으로서 악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대하는 노자의 조언을 받아들여라. 그들은 에고가 삶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을 뿐, 그들도 역시 도의 신성한 피조물임을 기억하라. 비열함, 중독증, 해로운 행위 등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려라.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벗어나 그냥 거기에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라. 그들 안에서 도가 펼쳐지는 것을 보라. 일시적으로 자극받았을 뿐인 순수한 아이들의 이미지로 마음속에 그려라. 가슴으로 악한 행동을 용서하고, 사랑의 마음을 담아 눈앞에 서 있는 그 아이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하라. 노자는 자기 자신도 유사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행동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모두 던져버려라. 고통이 느껴지더라도 그대로 놓아두고, 자신을 용서하라. 자신을 포옹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자신이 밝게 빛나는 존재임을 알아차려라. 도에 어울리는 행동으로 자신을 끌어 올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어진 마음을 베풀어라. 이것이 이 장의 가르침을 당신 삶에 적용하는 방법이며 진정으로 모든 악을 치료하는 길이다. 63.
63장 어려움 없는 삶 힘없이 힘을 실천하고 일 함 없이 일하며 맛없이 맛보라.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작은 것을 많게 보며 원한을 덕으로 갚으라. 복잡한 속에서 단순함을 보고 사소함 속에서 위대함을 이루라. 어려운 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쉬울 때 하고 큰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작을 때 하라. 성인은 큰일을 벌이지 않기에 결국 큰일을 해 낸다. 너무 쉽게 대하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성인은 언제나 모든 일을 어렵게 대하기에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이 장은 짧은 문장 안에 함축적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노자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삶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여러 날이 아니라 지금, 여러 달이 아니라 현재, 전 생애가 아니라 매 순간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언제나 우리가 가진 전부는 바로 지금뿐이다. 오직 그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사건을 확대하거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는 버릇을 버려야만 한다. 세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들이며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면 혼란은 사라진다.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보고... 큰일을 하려거든 그 일이 작을 때 하라.” 사실 [도덕경] 81장을 블로그에 옮기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지겹고 대단히 두려운 작업이다. 더군다나 독수리 타법으로 읽고, 음미하고, 깨닫는 전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쉽게 “단순함을 보고”, “그 일이 아직 쉬울 때 어려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아침에 명상을 한 후, 하나의 장에 몰두했고 글이 저절로 내 가슴을 지나 키보드에 옮겨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일을 어렵게 대하기에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이 63장의 모순적인 끝맺음을 깨우친 듯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지금하며, 항상 현재 순간에서 살아간다면 어려움은 없다. 이것이 이 장에 담긴 지혜이다. 삶에 있어 골칫거리라 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당신의 시선을 점검하라. 모든 일을 ‘그저 할 만하다’ 가 아니라 ‘쉽고 작다’ 로 받아들이도록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겠는가? 끝마치려면 수년이 걸리는 학습 과정을 어떻게 따라 갈 수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서 헤매거나 현재의 순간을 걱정거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출산하는 길고 어려운 과정을 어떻게 견뎌 내는가? 시시각각 조금씩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에 숨은 간결함을 찾아라. 미래를 구성하는 모든 내일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필요하다고 믿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다.” 여기에 생각을 보태면 “ 미래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정신 이상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보라. 그리고 당신은 바로 이 순간에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지금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라도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깨달아라. 이것이 간결함이다. 작게 생각하라 ‘크게 생각한다.’는 개념을 ‘작게 생각하고 크게 이룬다.’로 바꿔라. 너무 거대해 보여서 시작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겁이 나는 일이 있다면 천천히 살펴보라. 오늘 당신의 소중한 현재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전체 그림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하라. 당신이 작은 일에 착수하면 그것이 크게 확장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역설적이게도 큰 결과를 이룰 것이다. 64.
64장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삶 평온할 때 다루기가 쉽고 아직 분명히 나타나지 않을 때 막기가 쉽다. 약한 것이 잘 부서지고 작은 것이 잘 흩어진다. 일이 생기기 전에 행동하고 무질서해지기 전에 다스려라. 기억하라. 아름드리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자라고 아홉 층 건물도 한 줌 흙에서 쌓여 올라가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억지로 하면 실패하기 마련이고 얻으려고 하면 잃을 수밖에 없다. 성인은 억지로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지 않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의 직전에서 실패하고 만다. 그러므로 마지막에도 처음처럼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성인은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값비싼 것을 모으지 않으며 생각이 고정되지 않는다. 그저 만물이 제 본성을 찾도록 도울 뿐 함부로 끌고 다니지 않는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는 [도덕경]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말이다. 이 구절이 그토록 자주 인용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라며 다독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씨앗을 심고 가꾸면 숲으로 자란다. 마라톤도 첫 한 걸음을 내딛는 데서 시작한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괴테가 이 고대의 가르침을 운율이 있는 언어 속에 아주 멋지게 담았다. 그저 몰두하라. 그러면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그저 시작하라. 그러면 어느새 이루어질 것이다. 64장의 정수는 바로 이것이다. 모든 목표는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라. 이러한 생각은 너무 어려워서 엄두가 안 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면 당신 앞에 놓인 문제들의 어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성인은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큰 문제를 나눠서 작은 단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꾸짖거나 지시를 내리거나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혼란을 일으키기 전에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다. 노자는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이 하라고 이른다. 가족, 공동체, 국가의 문제는 물론이고 자기 앞에 놓인 어려운 난관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라. 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고방식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일이 커지기 전에 다스림으로써 그것들을 얼마나 쉽게 다스릴 수 있을지 느껴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명함에 이르기 위해 거치는 세 가지 단계를 살펴보자 1. 고통을 통과하는 단계 이 단계는 “얻기 어려운 것을 귀하게 여김”으로 인해 삶의 문제들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비참한 생활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처럼 보이는 시기다. 당신은 질병, 사고, 중독, 경제적 손실, 자녀들의 반항 그리고 이혼과 같은 커다란 문제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들 또한 삶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도의 길이 아니며, 성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아니다. 2.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단계 여기서 당신은 위기 상황이 터졌을 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지금, 이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나는 이 불행 속에 나를 위한 선물이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찾는데 집중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도에 중심을 둔 것이기는 하지만 노자가 이 장을 통해 당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부는 아니다. 3. 커다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빠져나오는 단계 이것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움직이고, 다가오는 혼란을 감지해서 사전에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도의 방식이다. 노자는 “작은 것이 잘 흩어진다.”고 말한다. 당신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관찰자가 된다. 통찰을 가지고 다툼을 예견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속으로 이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결국 그 부정적인 기운을 가라앉힌다. 당신의 생각이 다툼보다 앞서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전에 문제를 일으키던 방식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따라서 도와 조화를 이룬다. 당신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방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구절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일깨워라. 최종 결과는 잊어라. 가고 싶었던 곳에 도달하면 어느새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매 단계에서 모든 것을 즐겨라. 모든 목표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저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라. 술을 끊겠다고 결심을 하면 그 계획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목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된다. 우리 미래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다. ‘그저 순간순간, 하루하루씩 술을 마시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라고 계획하고 실천하면 된다. 내 삶의 매 순간 도가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의 달인이 되라. 삶에서 여러 문제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것들을 완벽하게 예방하겠다고 마음먹어라. 예를 들어, 자신의 건강을 예측하라.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예방하라. 균형 있게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택하라.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보조 식품을 복용하고, 장을 깨끗이 하고, 채소와 과일을 먹고, 육류 섭취는 줄이고 운동을 하고 명상도 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문제가 벌어지기 전에 그 문제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작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예측하고, 큰 문제가 벌어지기 전에 도와 조화를 이루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다. 65.
65장 우직한 삶 옛날,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우직했고 백성들과 잘 어울렸다. 그들은 앞으로 나서서 빛나지 않았고 총명함으로 다스리지 않았기에 나라에 복이 있었다.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다스리기 어렵고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는 각자 자기들만의 길을 찾는다. 속임 수 없이 다스리는 것이 그 나라에 복이 된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명확한 것이다. 평범한 삶에 만족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 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나라를 다스리거나 또는 공동체를 이끄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면, 이 장을 가슴속에 담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면, 당신 개인의 삶에서 이 장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모든 삶 속에는 다른 사람을 이끄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규칙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지성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힘 있는 사람은 교활하지 않고, “나서서 빛나지” 않으며 “총명함으로 다스리거나” 공포를 심어주지도 않는다. 노자의 말처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는 각자 자기들만의 길을 찾는다.” 달리 말하면 유능한 지도자는 사람들을 그들만의 본성으로 이끈다. 노자는 모르고 있음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임무라고 말한다. 그들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면, 결코 자신들이 품고 있는 도의 본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에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할 뿐이다. 우월함이나 지적인 재주를 자랑하지 않음으로써 이 장이 주는 가르침을 실천하라. 사람들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조차 전혀 모른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도의 방식에 따라 사는 법을 보여주라. 당신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라. 당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솔직하게 들어내 보여라. 겸허하고, 인생의 순한 속에서 평화롭게 살며, 우직하게 머무는 자연인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라. 리더십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에고를 단념하는 사람만 이 도의 기운과 하나 을 누리고 우직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도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는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 안에서 모든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놀라운 모순을 전하면서 노자가 심술궂게 미소 짓고 있는 듯하다. 이 새로운 사고와 존재 방식을 통해 당신이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라.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라. ‘모른다.’는 말은 강함을 상징한다. 그 안에는 약함의 흔적이 없다. 그러므로 거리낌 없이 “모른다.‘고 말하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라. 그러면 도가 그들의 고귀한 자아를 인도할 것이다. 자연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한다. 당신도 가능한 다른 사람에게 당신 자신과 당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마라. 다만 어리거나 미숙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명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소리 없는 운명은 항상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개인적인 의견과는 관계없이 모든 삶에는 불행과 행운이 함께 찾아든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사는 연습을 하라. 당신이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모델이 되라. 다양한 각도에서 상황을 따지면서 눈에 보이는 분명한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처음의 직관을 믿어라. 가장 단순하고 의지의 여지가 적은 길을 택하라. 엉뚱한 곳에 힘 빼지 마라. 당신에게 주어진 많은 선택 사항들을 곰곰이 살피다 보면 문제 스스로가 쓸데없는 자잘한 부분들을 알아서 정리하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단순하게 살라.” 이것은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의 진창에 빠져 헤매는 국가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훌륭한 조언이다. 66. 66장 바다를 닮은 삶 바다가 모든 물줄기의 왕인 까닭은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다 겸손은 바다에게 그 힘을 준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 서고자 하는 이는 겸손하게 말해야 하고 백성을 이끌고자 하는 이는 먼저 그들을 따라야 한다.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들이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앞에 있어도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성인은 낮은 곳에 머무르기에 세상은 그를 칭송하고 스스로 하인처럼 백성들을 섬기기에 세상은 그를 왕으로 삼는다. 사람들은 보통 신에 대해 생각할 때 잘못을 저지르면 영원한 저주를 내릴 수도 있는, 세상을 창조한 백발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반면에 도는 자연스러운 기운이라고 이해한다. 삶의 근원인 도는 왕이나 독재자처럼 사람들을 감시하는 신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도는 처벌을 내리거나 보상을 나중으로 미루지도 않는다. 도는 그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도록 할 뿐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노자에게 물은 자연을 나타내는 훌륭한 상징이며, [도덕경] 81개 장의 곳곳에서 물을 언급한다. 물의 성질을 본받으면 도 안에 비판과 배척의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노자는 바다처럼 되라고 한다. 그러하면 세상은 당신을 칭송할 것이다. 바다는 낮은 곳에 머물 줄 안다. 모든 물줄기는 흘러서 결국 바다에 이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바다는 모두를 섬긴다. 여기에 담긴 가르침은 명쾌하다. “겸손하라.” 절대로 다른 사람 위에 서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가장 높은 힘은 자신을 낮추는 골짜기에 있다. 지배하지 말고 섬겨라. 가장 작은 물줄기조차도 자신만의 길을 열어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거대한 바다는 그 위대한 힘을 강과 골짜기에 뽐내지 않는다. 그들 위로 솟아오르거나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며, 자신을 거스른다고 해서 처벌이나 사멸을 내세워 위협하지도 않는다. 바다는 강과 시내가 중력에 이끌려 낮은 곳으로 향할 것임을 알고 있다. [도덕경]의 곳곳에 담겨 있는 이 은유는 사람들이 낮은 곳에 머무르는 태도와 겸손함의 위염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흘러들어오는 강물보다 스스로를 낮추며 끈기 있고 순응하는 거대한 생명의 바다로 시선을 돌려라. 그동안 모범적인 지도자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들을 버려라. 에고를 내려놓고 뽐내려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물을 본받아라. 그러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그리고 물줄기 같은 도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강하게 끌릴 것이다. 노자는 물이 흐르는 방식을 배우고 가능한 한 따라 하라고 말한다. 당신이 오늘 바다의 지혜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모든 방법을 알고 있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버려라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연륜이 있고, 지혜롭고, 부유하고 거기에 대해 큰 영향력과 권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누군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작은 물줄기들이 흘러오도록 허락하고 격려하는 거대한 바다를 닮은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라. 낮은 곳에 머무르고 부드럽게 말하며 겸손함을 잃지 마라. 사람들이 최대한 자신들의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라. 자기 자신을 바다처럼 여기면 에고는 사라지고 그럼으로써 당신은 이 장에서 언급한 지도자의 모습과 닮아간다. 아무도 당신이 내리는 지시를 무겁게 느끼지 않고, 명령을 해롭게 여기지 않는다. 섬기는 마음을 유지하라.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땅에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특히 당신의 리더십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찾아라. 바다는 그 풍요로움을 함께 하고자 하는 모두를 받아들이고 그 생명을 유지해줌으로써 그들을 섬긴다는 것을 기억하라. 바다를 닮아라. 67.
67장 세 가지 보물이 이끄는 삶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도를 잘 안다고 말하지만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도는 저잣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거나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잊는다고 해서 잃는 것도 아니다. 만일 도가 그와 같았다면 오래전에 잊혀 사라졌을 것이다. 나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꽉 쥐고 가까이 살핀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겸손이다. 자애로움에서 용기가 나오고 검소함에서 너그러움이 나오며 겸손함에서 통솔력이 나온다. 용감하되 자애로움이 없거나 너그럽되 검소하지 않거나 앞으로 나서되 겸손하지 않으면 이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사랑으로 싸우면 이기고 사랑으로 지키면 튼튼하다. 하늘이 사람을 구하고자 하면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를 지킨다. 노자는 67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바라봄으로써 그 안에서 변화를 일궈내라고 한다. 이 장은 도의 관점에서 성공한 삶을 이루는데 필요한 세 가지를 루고 있다. 1. 자애로움 당신은 어쩌면 재산, 권력,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이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배우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면 자신들의 목표에 편협하게 집중한 사람을 떠올린다. 오로지 정상에 오르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자비하게 훼방 놓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노자는 가장 중요한 이 보물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용기는 차갑고 냉정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애로움에 빠진 대담함은 죽음의 처방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므로 외적인 성공의 척도를 추구하기보다는 섬김과 어짐, 애정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검소함 검소함은 절제, 절약 혹은 간소함이다. 오늘날 성취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검소함과 절제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노자는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적은 것에 만족할 때 너그러움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것만 취하고, 지나치게 모으거나 저장하지 마라. 덜 집착할수록 더 너그러워진다. 더 매달릴수록 더 필요해지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는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3. 겸손 겸손은 ““자연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음”,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않음”, “일등이 되려고 애쓰지 않음“이다. 노자는 이런 특성이 도의 기운을 갖는 진정한 리더십을 만든다고 일깨워준다. 힘, 강함, 승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종종 거만함, 고상함, 자만심과 같은 남성적인 양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현명한 리더십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버리면 앞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배웠던 것을 당신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도나 신 혹은 뭐라고 부르든 간에 당신으로 하여금 쓰고, 말하고, 발명하게 하는 에너지의 매개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겸손함은 당신의 에고보다 더 거대한 힘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그 근원을 믿고, 그 힘이 당신에게 준 지혜와 영향에 감사하는 것이다. 겸손하라. 낮은 곳에 머물러라. 항상 너그럽고 감사하는 지도자가 되라. 무수히 나타나는 도의 징후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라. 조화로운 삶의 열쇠는 연민과 자애로움이다. 당신은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을 물리쳐야 한다거나 자신을 어떤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자애로움과 연민을 모든 형태의 생명에게로 뻗어라. 당신 자신에게도 그렇게 하라. 모두를 향해 애정과 존중을 보낼 때 당신은 도와 조화를 이룰 것이고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보호받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나약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라고 비난했을 사람들 속에 숨겨진 간절함과 겸손의 힘을 발견하라. 재산을 축적하거나 소비에 빠져들지 않고 겸손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지도자의 모범이다. 이에 비해 물질만을 추구하며 강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도에 어긋나 있다. 그런 사람의 행동은 불화를 일으키기 쉽다. 노자가 말한 것처럼 자애로움이 없이 대범함만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마저 죽음으로 이끌게 된다. 검소함과 겸손함이 있는 지도자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이를 본받도록 최선을 다하라. 68.
68장 서로 돕는 삶 훌륭한 무사는 난폭하지 않다. 훌륭한 전사는 성내지 않는다. 훌륭한 승리자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훌륭한 고용주는 일꾼을 섬긴다. 최고의 지도자는 사람들의 뜻을 따른다. 이 모두가 지루하지 않음의 덕을 나타낸다. 이를 일러 싸우지 않음의 덕이라고 한다. 이를 일러 사람들의 힘을 쓴다고 한다. 이것을 하늘과 짝을 이룬 지극함으로써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장은 어떻게 해야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는 다툼과 경쟁을 의미한다.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차지해서 상대를 물리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꾸고 “겨루지 않음의 덕”을 실천하라고 충고한다. 이 덕목은 일등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 안에서도 도움이 된다. [도덕경]은 만물이 존재하지 않음의 상태에서 나온다고 알려준다. 경쟁이 아니라 완벽하게 협력하는 하나 됨이 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 안에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면 누구를 무찌를 수 있겠는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싸움을 거는 셈이 되는 꼴이 된다. 노자는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 서로 돕는 삶을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이것은 운동경기도 적용된다. 상대를 적으로 여겨 대응하거나 화내지 말고 이때 노자의 말을 떠올려 보라. “훌륭한 무사는 난폭하지 않다. 훌륭한 전사는 성내지 않는다. 훌륭한 승리자는 맞서서 싸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상대를 자신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인생이라는 춤을 함께 추게 동료를 받아 들인다. 그러니 시합을 할 때 상대에게 화내거나 증오의 마음을 품지 마라. 오히려 자신의 발전을 돕는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라. 그들이 없다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없고, 더 나의 질 수도 없으며, 승리를 거둘 수도 없다. 노자가 이르는 대로 “사람들의 힘을 쓰라” 그 힘을 통해 자신을 승리자의 위치로 끌어올려라. 상대가 최고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그들과 협력하라. 화내거나 자책하지 말고 바로 앞에 놓인 임무에 집중하라. 공을 보고 공을 움직여라. 무술 시합에서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균형을 유지하라.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면 경기는 새로운 수준에 도달한다. 싸우면 약해지고 협력하면 강해진다. 그러므로 일은 물론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모색하라.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라 감기나 질병 혹은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을 굴복시키려 하지 마라. 가족들과 논쟁하지 말고,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격론을 벌리지 마라. 중독 증상과도 다투지 마라.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마라. 그 대신 서로 돕는 삶으로 이동하라. 만약 관절염이나 암에 걸렸다면 이렇게 말하라. “내 몸에서 살아야겠다면 함께 살자꾸나. 그러나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건강하게 같이 살도록 하자. 그럴 수 없다면 내 몸에서 떠나길 바란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나면 당신은 한 걸음 물러서서 조화 속에 머물게 된다. 그 안에서 당신은 화내거나, 난폭해지거나,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라.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면 당신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픈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는 자신에게도 똑같이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인식하고 이 기운을 인류에 적용하라. 결국 우리는 하나인 도를 이 우주 안의 모든 존재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 모든 존재들과 따뜻하게 포옹한 채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본다면 노자가 말한 “하늘과 짝을 이루는 지극한 원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표현한 파블로 카잘스의 멋진 글이 있다. 언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 줄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니? 너는 경이롭고 유일한 존재야. 지나간 온 시간을 통틀어 너와 똑같은 아이는 없었단다. 너의 다리, 팔, 귀여운 손가락 그리고 네가 움직이는 모습. 너는 셰익스피어가 될 수도 있고, 미켈란젤로가 될 수도 있어.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가 될지도 모르지. 네 안에는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능력이 숨어 있단다. 넌 정말로 놀라운 존재야. 그런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너와 같은 존재인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니?“ 69.
69장 적이 없는 삶 군인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먼저 움직이지 말고 손님처럼 행동하고 한 치 전진하지 말고 한 자 물러선다. 이를 일러 나아감 없이 나아감, 무력을 쓰지 않는 물리침이라 한다. 적이 있다고 느끼는 것 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 ‘나’와 ‘적’이 함께 존재하기에 내 보물이 있을 자리가 없다. 따라서 두 상대가 만나면 적이 없는 자가 이길 것이다. 군대가 대등하게 맞서면 연민을 가진 쪽이 이긴다. 이 땅의 존재들이 서로 연결된 공동의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세상을 떠 올려보라. 적이라는 말조차도 모르고, 우리 모두가 존재하지 않음의 근원에서 태어난 하나임에 기뻐하던 세상 말이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임을 이해했던 그런 세상을 상상해 보라. 안타깝게도 인류의 문명이 기록된 이래로 그런 세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런 세상이야말로 노자가 이 장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다. 이 장대한 비전은 바로 지금, 여기서, 당신과 함께 시작된다! 삶에서 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 버려라. 이 결심을 주변 사람들에게 실천하라. 그 실천이 결국에는 전 세계인을 움직여 적이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 몇 년 전에 총기를 가지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침입해 여러 명의 소녀들을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학교는 장례식에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살인범의 가족들도 함께 초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에겐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들이며 용서야말로 우리 믿음의 가장 핵심입니다. 길을 잃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말은 노자가 말한 내용과 참으로 비슷하다. “적이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 그리고 “두 상대가 만나면 적이 없는 자가 이긴다.” 노자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저 공격할 것이 아니라 방어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교전을 먼저 시작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설사 전쟁이 일어나도 그 자체가 몹시 가슴 아픈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적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가슴속에 연민이 가득 차면 도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언어에 의한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전쟁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도와의 연결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모든 전쟁과 충돌은 장례식처럼 다루어져야 한다. 이겼다고 축하할 것이 아니라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 누구도 적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 장의 가장 중요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상기하라. “‘나’와 ‘적’이 함께 존재하기에 내 보물이 있을 자리가 없다.” 여기서 보물이란 당신과 도의 관계 그리고 마음의 평화이다. 사업 경쟁자, 운동경기에서의 상대편,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정당의 당원들은 나의 적이 아니다. 그리고 적이라고 선언한 그 사람들도 결코 적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라. “나에겐 적이 없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그들로부터 내 삶의 방식을 보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적이 없는 자가 이긴다.“는 노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라. 절대로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논쟁이 생기면 방어하는 입장에 서라. 먼저 움직이지 말고 손님처럼 행동하라는 노자의 조언을 따르라. 다툼의 상대로 생각하는 동료의 모습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라. 적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당신의 한 부분인 상대에게 연민과 보살핌의 마음을 전하라. 싸움을 거부하라. 싸움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 다투는 것임을 기억하라. 마주침 들 속에서 하나 됨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우리 모두가 도이기 때문이다 70.
70장 신의 존재를 깨닫는 삶 내 말은 이해하기도 아주 쉽고 행하기도 더할 나위 없이 쉬운데 세상에는 이해하는 이가 드물고 행하는 이가 거의 없다. 내 말에 근본이 있고 내 행위에 주인이 있다. 사람들이 이를 알리지 못하기에 나를 알지 못한다. 성인은 거친 베옷을 걸치고 있지만 가슴에는 아름다운 옥을 품고 있다. 이 장이 21세기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시 노자에게 길을 묻는다. 노자는 도에 뿌리를 둔 삶을 즐기고 다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권했던 도의 지도자였다. 이 신성한 존재가 자신을 따르는 고대 중국인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노자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만 하면 인류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간직한 체, 그들의 호전적인 행동에서 느낀 회의적인 마음을 갖고 글로 써 내려갔을 것이다. 자유, 마음의 평화, 만족 등 모든 원리들은 그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 쉽고, 간단해서 누구라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펼쳐진 낙원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노자는 “내 말에 근본이 있고 내 행위에 주인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곧이어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덧붙인다. 노자의 근본은 도다. 그 행동의 주인은 한결같은 존재의 근원이다. 노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신이 생각하는 듯 생각하고, 우주의 창조자인 신이 말하듯이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당신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 삶을 지탱하는 도에 자신을 맡기고 그 힘이 당신을 인도하도록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툼을 멈추라. 폭력적인 생각과 행동을 멀리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들지 마라. 겸손함 속에 머무르고, 간섭하지 마라. 타인과 당신 자신이 타고난 창조적 재능을 존중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당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라. 말썽만 부리는 에고에게 결별을 고하라. 만약 이 모두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비난하지 않고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려울 것 같지만 실로 간단하다. 선택과 행동만 남아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것이 노자가 이 단순한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털어놓으며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도덕경]을 이해하라. [도덕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는 대중의 하나가 되려는 마음을 버려라. 노자는 [도덕경]을 따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당신의 신성함이 곧 도의 일부라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기적 수업 A Course in Miracles]에 따르면 “당신의 신성함은 세상의 모든 법칙들을 뒤집어 놓는다. 그것은 시간, 공간, 거리의 제약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한계도 뛰어넘는다.” 스스로에게 이런 지혜를 품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다짐하라. 그리고 매일 신의 존재를 깨닫는 삶을 기꺼이 실천하라. 모든 곳에서 신을 발견하라. 보고 듣는 모든 것 속에서 신의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는 연습을 하라. 에크하르트Eckhart는 이 70장의 지혜를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충고를 던져 주었다. “이 신성한 탄생을 경험하였는가? 잘 들어라. 만약 이 탄생이 온전히 당신에게 일어난 것이라면 모든 창조물들이 당신을 신으로 여길 것이다.” 그의 조언은 이어진다. “전 생애에 걸쳐해야 할 기도는 ‘감사합니다.’ 하나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범사에 신께 감사한다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라. 이것이 신을 깨닫는 길이다. 71.
71장 병들지 않는 삶 모름을 아는 것은 강함이다. 앎을 묵살하는 것은 병이다. 병을 병으로 알때만 병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성인은 병이 없는데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건강의 비결이다. 이 장에 담긴 이야기는 대단히 보수적이다. ‘병이, 병이 될 때 병은 사라진다.“는 의미는 모순적으로 들린다. 노자는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실재로 아파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장에서 ’병‘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게 있어 병은 육체나 정신적 일부가 최초의 좋은 상태에서 멀어져 균형을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즉 도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열, 통증, 호흡곤란, 피로, 코 막힘 등등의 증산은 병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리고 공포, 불안, 분노, 증오, 좌절, 죄책감, 스트레스, 조급함 등은 정신적 측면에서 그런 징후를 나타내는 증상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근원과 조화를 잃었다는 신호들이다. 성인은 오랫동안 병을 관찰했고, 마침내 그것이 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고의 육체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병, 감기, 통증 등은 모두 도와 어울리지 않는 조급함, 공포, 분노, 혹은 에고가 이끄는 다른 충동 등의 표현들이다. 성인들은 이런 사고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음에 동참하기를 거부한다. 성인은 이야기한다. “아픈 생각이 병을 만든다.” 이러한 생각이 결국은 병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남인도에 도덕경을 실천하는 사티아 사이 바바라는 성인이 있다. 그는 엉덩이뼈 복합골절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한 신자가 그에게 물었다. “신을 깨달은 존재가 느끼는 육체적인 고통은 어떵 것입니까? 왜 자신을 치료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사이 바바가 대답을 한다.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신성함을 경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고통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요. 나는 괴롭지 않습니다. 육체가 나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이 바바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한다. 도와 조화를 이루고 살면 병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은 선택 사항도 되지 못한다. 행복한 마음을 품어라. 중국 속담에 ‘마음이 행복하면 몸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행복한 마음은 병을 병으로 아는 것이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감기, 복통, 관절통, 피로 같은 증상들을 원래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몸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복한 마음은 육체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도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마음은 질병이나 그로 인한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 육체의 능력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을 유지하라. 습관을 점검하라. 타고난 습관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상적은 습관은 무엇인가? 모든 중독은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그 속으로 완전히 빠져 들도록 당신을 유혹한다.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몸이 쇠약해진다면 그것을 병으로 받아 들여라. 당신은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잡아끄는지 알고 있다. 또한 음식, 술, 약물 혹은 그것들을 탐닉한 뒤에 이어지는 죄책감과 수치심이 자신을 괴롭히도록 방치했던 순간들도 기억하고 있다. “앎을 묵살하는 것은 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당신이 어떤 병적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라.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신이 깨달은 바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72.
72장 경외하고 수용하는 삶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하면 재양을 겪을 것이다. 세속적인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자신의 시야에 한계를 두지 마라. 태어난 환경을 원망하지 마라. 삶의 자연스러운 행로에 저항하지 마라. 그리하면 세상에 지치지 않는다. 그러기에 성인은 스스로를 알되 스스로를 드러내 뽐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되 스스로를 치켜세우지 않는다. 성인은 외면의 것을 버리고 내면의 것을 취한다. 이 장은 조화로운 삶을 위한 두 가지 요소를 밝힌다. 그중 하나는 경외하는 마음이고 나머지는 전적인 수용이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도의 존재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16세기 고난의 성자 요한의 글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내가 사랑한 것은 산과 수풀이 우거진 외딴 골짜기 낯선 섬과 메아리치는 강 사랑을 자극하는 산들바람의 휘파람 소리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고요한 음악 울려 퍼지는 고독 사랑을 새롭고 깊게 만드는 저녁 만찬 환희와도 같은 절박함을 가슴에 품고 나만의 신성한 공간에 앉아 있으니 노자가 “경외하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전하라고 재촉한다. 말에 담긴 의미는 시간을 초월한 거대한 힘만큼 깊고 크다. 나는 바로 지금 내 주변의 아름다운 환경에서 그 힘을 느낀다. 지구의 심장박동과도 같은 파도가 끊임없이 철썩거리는 것처럼, 자연의 숨소리가 대기를 가득 채운다. 쪽빛의 밝은 하늘, 초록으로 빛나는 나뭇잎, 먼 하늘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창문에 닿을 듯 보이는 무지개, 이 모든 것에 담긴 색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72장은 자신과 자신의 관심사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당신에게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온전한 창조물로서 받아들이며, 타고난 본성과 삶이 조화를 이루게 하라고 제안한다. 나는 자연에 대한 비유를 좋아하는데 이는 성인의 태도에 대한 훌륭한 지침이 도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 전체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13세기 신비주의 철학자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무지한 사람들이 잘못 상상하듯 신은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만물을 창조했다. 반대로 모든 피조물들은 밖을 향해 흐르지만 신의 안쪽에 머문다.”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도를 배워라. 비, 눈, 추위, 바람을 견디는 나무들을 생각하라. 혹독한 시절이 오면 그들 내면의 자아는 충실하게 이내를 가지고 기다린다. 등명도는 자신의 책 《마음의 눈을 밝혀주는 도 365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서 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들이 자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안쪽에서는 조금씩 싹이 자라고 있다. 행운이나 불운은 그들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만물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싹을,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될 보이지 않는 내면의 그 본성을 사랑해야 한다. “성인은 외면의 것을 버리고 내면의 것을 취한다.”고 한 노자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하되 뽐내지 마라. 경외하고 받아들여라. 모든 일에서 기적을 보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 기적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모든 일을 기적으로 바라보라.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정신적인 권태나 실망을 피할 수 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통해 흐르며 그들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도를 보라고 노력하라. 폭풍우가 불가사의한 사건이 되고, 번개는 매혹적인 사건이 된다. 그리고 천둥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일깨우는 놀라운 충고가 된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봄으로써 신비로운 삶을 경험하라. 자신의 몸과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사랑하라.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모든 면을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그리고 이렇게 다짐하라. 나의 몸은 완벽하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태어났고, 지금 내 나이도 딱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우주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몸의 자연스러운 행로에 나를 맡긴다.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자신을 몸을 보라. 그러면 노자가 말한 것처럼 “세상은 지치지 않는다” 73.
73장 하늘의 그물 안에서 사는 삶 다른 이들과 부딪치는 용감한 행동은 죽음으로 향하고 도와 조화를 이루는 용감한 행동은 삶으로 향한다. 이 둘 가운데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충분히 이기고 말하지 않고도 적절히 답하며 요구하지 않아도 충분히 채우고 서두르지 않고도 제때에 이룬다. 하늘의 그물은 모두를 제때에 붙든다. 굵고 거칠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 다시 한 번 모순의 렌즈를 통해 도를 보라. “하늘의 그물”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만물이 시작된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그 그물에는 많은 빈틈이 있고, 그 틈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무엇도 도의 조화를 피해서 존재할 수 없다. 73장은 우리에게 하늘의 그물 아래에서 정중하고 주의 깊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여기에 그 핵심을 찌르는 글이 하나 있다. 부주의한 용맹 = 죽음 신중한 용맹 = 삶 그러므로 성인은 신중하게 생각한다. 노자는 우리에게 용기와 허세를 새롭게 바라보라고 한다. 그것을 흠모하며 영웅이 되려 하지 말고 더 주의 깊고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이른다. 무모한 행동을 삼가고 신중하게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하늘의 방식임을 명심하라. 노자는 하늘의 그물이 강압적이거나 무모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어떻게 모두를 그 품 안에 가두는지 네 가지 보기를 제시한다. 1. “싸우지 않고도 충분히 이긴다.” 평화롭고 고요한 도가 어떻게 해서 항상 이기고 있는지 보라. 태양열을 식히고, 포효하는 바다를 진정시키고, 바람을 가라앉히고, 비를 멈추게 하고, 작물이 그만 자라게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의 노력 없이도 도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자연은 항상 이긴다. 도는 애쓰지 않고도 이 모두를 행한다. 이렇게 하라. 하늘의 그물 안에서 편히 쉬라. 2. “말하지 않고도 적절히 답한다.” 하늘의 그물은 고요하고 보이지 않는다. 그 힘은 명령을 내리거나 고함을 치거나 구슬리지 않고도 당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우주를 하나로 결합시킨다. 그러므로 더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하늘의 방식에 따르라. 더 많이 듣고 덜 말하라.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대답은 아무런 예고 없이 당신을 찾아올 것임을 믿어라. 3. “요구하지 않아도 충분히 채운다.” 당신은 필요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할 필요가 없다. 하늘의 방식에 따라 신성하고 완벽한 질서 속에 모든 것이 이루어가고 있으며 당신은 그 질서의 한 요소다. 다가오는 모두를 기꺼이 맞아하면 필요한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늘의 그물에 수많은 틈이 있다 하더라도 쉽게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정해진 때에 맞춰서 이루어진다. 당신은 운명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요구하거나 애쓰지 않고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경탄할 것이다. 4. “서두르지 않고도 제때에 이룬다.” 도가 어찌 서두를 수 있을까? 하늘에게 다음과 같은 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겨울이 지겨워요. 이 길고 추운 밤이 다 가기 전에 아름다운 봄꽃을 가져다줘요. 그리고 감자가 먹고 싶어요. 그 씨를 어제 심었지만 빨리 여물게 해 줘요.” 도는 신의 적절한 타이밍에 따라 적용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 이루어진다. 도는 하늘의 방식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속도를 조금 늦추라고 조언한다. 당신이 더디다고 생각할지라도 사실은 모두 제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서두를수록 더 적게 이룬다. 10킬로미터를 달린 후에 급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면 땀이 멈추기는커녕 계속해서 흐른다. 그러나 마음을 늦추고 긴장을 푼 채로 땀이 몸을 타고 흐르도록 내버려 두면, 서둘러 샤워를 하는 것과 같은 시간에 땀은 멈추고 더 상쾌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당신의 에고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진실이다. 모든 것은 하늘의 그물 아래 자기만의 때가 있기 마련이다. 신중함이 약점이나 공포를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신중함을 한 걸음 물러서는 방법으로 받아들여라. 자연스럽게 상황이 펼쳐지게 하라. 용기는 훌륭한 덕목이지만 무모함, 즉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것은 재앙을 불러들인다. 노자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와 다퉈서 이기려 하지 말고 하늘이 그만의 방식으로 이기도록 내버려 두라. 능동적인 경청자가 되라. 소리 높여 말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 들지 말고 능동적인 경청자가 되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말하지도, 묻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대답과 결과들이 나타날 것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살라. 원하고, 애쓰고, 밀어붙이는 대신 먼저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74.
74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모든 것이 변함을 알면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언제나 죽음을 관장하는 이가 있는데 죽음을 관장하는 이를 대신하여 죽이는 것은 위대한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베는 것과 같다. 위대한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베는 자는 자신의 손을 베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죽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죽음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려 놓을까? 아니면 죽음은 모든 생명과 의식의 끝일까? 한 가지만 분명하다. 죽음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수수께끼라는 점이다. 도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죽음을 시간과 공간과 모든 만물이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하나 됨의 장소로 생각해 왔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인 셈이다. 외면적인 껍데기 안에 존재하는 형태가 없는 그 무엇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질 것이다. 자신이 가진 무한한 도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다. 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태어남, 삶,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니 어떤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 하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다른 무언가를 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속적인 재물뿐만 아니라 당신의 육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각을 하든 못하든 간에 당신의 몸은 이 글을 읽기 시작할 때와 다르며, 같은 상태에 머무르려고 시도하는 순간 또 다시 변화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본질이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 불안해 할 것이고, 결국에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노자가 단언하듯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당신이 가진 도의 본질은 무한하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사물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당신을 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육체는 없다. 당신은 참이며 참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진정한 자아는 도의 일부분이다. 무한한 도와 조화를 이루어 살 때 죽음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가장 고귀한 자아를 깨달아라.당신이 이룰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라. 이 장의 두 번째 단락은 죽이는 것에 다루고 있다. 여기서 노자는 “언제나 죽음을 관장하는 이가 있다.”라고 아주 명확하게 말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 이 여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이에 의해 결정된다. 노자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은 T. S. 엘리엇의 시 [리틀 기딩 Little Giddind] 속에 아름답게 담겨 있다. 우리는 탐험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탐험이 끝날 때면 출발했던 곳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죽음이다. 두려워할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다. 나는 이것이 노자가 이 장을 통해 당신에게 말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피부색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는 태어남, 삶, 죽음, 그 모든 과정 속에 있다. 죽음으로 돌아감으로서 당신은 진정으로 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생명을 죽이는 습관을 점검하라. 더 이상 사형 집행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조차도 죽이지 않게다고 마음먹고 그렇게 행동하라.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이가 돌아갈 시기를 결정하게 하라. 입을 크게 벌리지 말고 그저 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자신만의 약속으로 삼아라. 그리고 절대로 당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마라. 간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도덕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75.
75장 덜 요구하는 삶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세금을 지나치게 거두어 가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영혼을 잃는 것은 나라가 지나치게 간섭하기 때문이다. 백성의 이로움을 위해서 행하라. 그들을 믿고 그냥 내버려 두라. 이 장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 계층과 귀족들을 향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군주들이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재화를 계속해서 거둬들였다. 과중한 세금과 부역의 부담을 짊어진 사람들은 충성심과 영혼을 잃어갔고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씌워진 굴레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당신은 어쩌면 자녀들이나 직장의 부하직원들같이 당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요구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자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말한다. 너무 많이 요구하지 말고 가능한 그냥 내버려두라. 정치인이 대중에게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당신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거둬들이고자 한다. 그들은 특권을 이용해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이 자신들에게 급여를 주고 자신들의 모든 유익을 제공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향해 악용되도록 방치한다. 사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세금을 거두는 사람에 비해 그 혜택을 헐씬 덜 누린다. 달리 말하면 규칙을 만드는 자와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지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나치게 되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갈등이 생기며 권위를 인정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그렇게 “백성들은 영혼을 잃는다.”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세금을 강요하지 마라. 너무 많은 세금을 거두면 사람들의 영혼이 피폐해질 거라는 노자의 조언은 당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서 부담을 갖게 되면 당신은 우울, 불안, 근심, 심장질환, 혹은 다른 수많은 육체적 질병에 시달리거나 지쳐서 쓰러져버릴 것이다. 부담을 떠안은 중압감에서 쉴 수 있도록 자신에게 휴식을 주라. 자연을 가까이하고, 아이들과 어울리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혹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시간을 충분히 허락하라. 당신이 이끌도록 위임받은 사람들을 신뢰하라. 당신이 돌보고 감독해야 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려 하지 마라. 그들이 능숙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들을 신뢰하라.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의 운명을 충실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덜 요구하고 더 많이 격려하라. 자기만의 탁월함을 갖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라. 당신이 그들을 믿으면 그들도 스스로를 그리고 도의 지혜를 믿게 될 것이다. 76.
76장 굽힐 줄 아는 삶 사람이 태어날 때는 온화하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뻣뻣해진다. 만물 초록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해지만 죽으면 마르고 쉽게 부서진다. 그러므로 단단함은 죽음의 동반자요. 유연함은 삶의 반려자이다. 물러설 줄 모르는 군대는 패하고 굽힐 줄 모르는 나무는 부러진다. 단단하고 뻣뻣한 것은 깨지고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널리 퍼진다. 노자는 강하다는 개념을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는 부드럽고 유연하고 심지어는 약하기도 한 것들이 어떻게 해서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고 오래가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단단하고 경직되고 완고한 것을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인식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노자에 따르면 삶은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들을 바라보라. 그 아이들은 너무나 유연해서 자신의 발가락을 입으로 빨기도 하고 발을 쉽게 목뒤로 올리기도 한다. 태어 난지 몇 달이 지나면 아이들은 요가의 달인이 된다. 좀 더 크면 더 경이로운 모습과 마주친다. 아이들은 넘어져 머리가 땅에 부딪치기도 하고, 앞을 보지도 않고 달리다 벽을 들이 박기도 한다. 또 지저분헤 보이는 도랑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금세 털고 일어난다. 어른들은 뼈나 관절이 상했을 만한 일을 겪고도 아이들은 상처하나 입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고목은 죽음에 다가설수록 단단하고 부서지기 쉬워서 불이나 바람을 견디기 어렵다. 잘 굽혀지지 않기 때문에 강한 바람이 불면 꺾여 넘어질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무가 약해지는 것은 바로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강함이라고 생각하는 이 단단함이 사실은 나무를 약하게 만들어버린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은 죽음을 맞으면 사후 경직이 일어난다. 이는 완벽한 단단함이며, 그러한 강함은 결국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굽힐 수 있고 유연하다는 것은 노화의 과정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원리를 당신의 사고 과정과 행동에 적용하라고 말한다. 또한 유연함과 약함이 곧 삶이며, 단단함과 뻣뻣함은 죽음을 동반한다고 일깨워준다. 그동안 얼마나 굳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지로 강함을 가늠하고, 굽히는 것은 약함이라고 배워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직되어서는 오래갈 수 없으며, 유연해야만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음을 잊지 말라. 굽힘으로써 강해져라. 태풍의 한복판에 서 있는 갈대가 되라. 갈대의 약함이 혹독한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강함이 된다. 당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더 많이 들어라. 사람들이 당신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라. 필요하다면 굽혀라.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은 강함을 선택하는 길임을 이해하라. 다름을 거부하고 경직된 방식으로 생각할수록 더 쉽게 깨진다. 노자가 말해 주는 것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은 널리 퍼지는” 반면 “단단하고 뻣뻣한 것은 깨지게” 된다. 굽힐 줄 모르는 태도를 점검하라. 사형제도, 특정 약물의 합법화, 낙태, 총기 소지, 산아 제한 방법, 세금제도, 에너지 절약, 그리고 당신의 확고부동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기타, 다른 문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지켜보라.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 보라고 노력하라. 그들이 제시하는 반론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래의 오래된 농담 속에 뼈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 네 방식은 어떤 것이냐? 그런 방식은 없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양쪽의 지도자들이 최소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면 죽고 사는 정도로까지 대립이 악화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귀를 기울이고, 굽힐 줄 알고, 온화해질 때 우리는 모두 삶을 통해 배우게 된다. 77.
77장 남는 것을 나누는 삶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아서 높으면 누르고, 낮으면 올린다. 하늘의 도가 남는 것을 덜어내고 모자란 것을 채운다면 사람은 그와 반대다.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데 바치고 넘치게 가진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곤궁한 사람에게서 빼앗는다. 넘치게 가진 사람 중에 세상을 위해 그것을 내놓을 자 누구인가? 오직 도를 품은 사람만이 남은 것을 남에게 준다. 성인은 끊임없이 주는데, 이는 그의 넉넉함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대 없이 행하고 공을 이루고도 주장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누구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의 도를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자연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도는 보이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가뭄, 홍수, 태풍, 폭우와 같은 자연 현상들이 때로는 매우 끔찍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현상들로 인해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실은 곤충이나 새, 동물 무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취미와 오락을 위해 생명을 죽이는 것은 넘치는 과잉을 스스로 해결하는 자연의 체계를 뒤엎는다.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고,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 자연을 관찰하고 만약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그 모자란 데서 덜어내지 말라고 노자는 말한다. [도덕경] 마지막 부분의 장들은 도를 통해 대중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노자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수탈하는 정치권력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악습의 증거들을 무수히 발견한다. 특히 법률을 만드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법안에 동의한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로부터 빼앗아서 넘치도록 가진 사람들을 섬기고 스스로에게 후하게 베푼다. 기아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서도 한쪽에선 영양실조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다른 한쪽에선 음식과 생필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77장은 세상의 다른 한편에 존재하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남는 것들을 다시 순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제안한다. 노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필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도를 실천할 기회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장의 지혜가 우리 삶 속에 살아 움직이게 하라고 요청한다. 정부 정치 지도자들은 혹은 산업계의 장들이 아닌 바로 우리를 향해 이야기한다. “남도록 가진 사람 중에 세상을 위해 그것을 내놓을 자 누구인가? 오직 도를 품은 사람들뿐이다. 많은 사람이 도를 품으면 그중에서 다스리는 위치에 오를 사람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 장에서 제안하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남는 것을 덜어 내라. 삶에서 남는 것을 덜어내어 그것이 활용할 수 있는 곳에 가져다주라.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부터 시작해 보자. 옷, 가구, 공구, 비품, 라디오, 카메라 등 지나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 가능하면 팔지 말고 그냥 주라. 베풀었으니 알아달라고 보채지 마라. 남는 것을 덜어 내는 것으로 도와 조화를 이루어 행동하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건강, 기쁨, 어짊, 사랑, 그리고 내면의 평화와 같은 무형의 풍요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러한 멋진 감정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부족함을 채우는 도구가 되라. 순환을 통해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자연처럼 결핍이 있는 곳이 눈에 띄거든 그 부족함을 채우는 도구가 되라. 벌어들인 것 중 일부는 부족함을 채우는 데 쓰일 수 있도록 하라. 노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성인은 끊임없이 주는데, 이는 그의 넉넉함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주기 어렵다면 고요한 축복의 말을 건네라. 구급차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기도를 올려라. 돈이나 재물과 같은 물질적인 수단을 통해서 혹은 어짊, 열정, 환희, 용서와 같은 비 물질적인 형식에 담긴 사랑으로 빈 공간을 메울 수 있는 기회를 찾아라. 78.
78장 물처럼 사는 삶 세상에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하고 단단한 것을 부수는 데는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세상에 이를 대신할 것이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넘어선다는 것을 온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지만 누구도 이를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불행의 한복판에 고요하게 머무름에도 나쁜 기운이 그의 심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도우려고 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가징 큰 도움이 된다. 진실의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노자는 바다, 비, 안개, 눈, 그리고 강과 작은 물줄기의 비유를 통해 계속해서 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노자는 정신적인 힘을 모든 자연 속에서 찾고 있지만, 특히 물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특별히 경외의 마음을 품고 있다. 물과 같아야 한다는 말은 [도덕경] 전체에 걸쳐서 계속 등장한다. 물은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도에 가깝고, 따라서 이는 도를 가르치는 데 있어 완벽하게 어울리는 상징인 셈이다. 물은 우리에게 도만큼이나 신비롭고 오묘하다. 당신이 강물 속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려고 하면 결국 모두 잃고 만다. 잡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손에 힘을 뺀 채 물과 하나가 되기 전에는 붙잡을 수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놓음으로서 그것을 얻는다. 노자는 신비로운 물의 모든 방식들을 따르라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해도 말이다. 1. 굽힘으로서 삶의 단단한 부분들을 극복하라! 부드럽게 흐르는 물이나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수처럼 뻣뻣함과 경직됨은 지속된 온화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부드럽게 행하고 기꺼이 굽혀라. 가혹함과 무자비함의 저항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라. “강하고 단단한 것을 부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2. 물은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은 매우 유연해서 강한 것들 아래에서 자신만의 높이를 찾고, 단단한 것들이 방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제방을 쌓아 물이 새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라. 그러나 그렇게 해보았자. 시간이 흐르면 물이 승리할 것이다.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에는 당신을 위한 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부드럽게 행하고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약함을 드러내 보여라. 그러면 나쁜 기운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3. 물은 너무 부드러워 해칠 수도, 상처를 입힐 수도, 부술 수도 없다. 물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끓여보라. 그러면 그것은 증기가 되어 공기 속으로 되돌아간다. 마셔보라. 그러면 그것은 당신의 몸을 적시고는 마찬가지로 되돌아간다. 더럽혀 보라. 충분한 세월이 흐르면 다시 이전의 맑은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다. 당신도 부드러움을 실천해서 단단함을 넘어 선다면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강함과 약함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라. 단단함, 경직됨, 강압, 독단 등과 같은 상투적인 이미지는 결코 강함의 속성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부드러움 혹은 약함이라고 불러온 것들에게 압도되고 제압당할 것이다. 이 모두를 이제는 다르게 바라보라. 그리고 당신의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라. 약하고 부드러운 상태에 머무르는 사람에 감탄하고 그들을 따라할 때 자신의 내면에서 도를 실천하는 진정한 강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간섭하고 도와주는 것은 그만 두라. 그 대신에 당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물처럼 흐르는 쪽을 택하라. 온하하게. 부드럽게. 겸손하게. 물처럼 부드러워 져라. 마치 물처럼, 열린 곳이라면 어디로든 흘러라. 우격다짐으로 지배하려 들지 마라. 반대되는 의견들을 너그럽게 받아 들여서 자신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라. 덜 간섭하라. 말하고 지시하기보다는 귀를 기울여라. 다른 누군가가 무엇을 제시하면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고려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하도록 노력하라. 79.
79장 원한을 남기지 않는 삶 크게 다투면 화해를 하더라도 원한이 남는다. 거기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언제나 결국에는 최선이다. 손해가 있어도 어진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적의는 결코 선의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은 항상 주되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줄 방법을 찾고 덕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받을 방법만 찾는다. 주는 사람에겐 삶의 충만함이 함께하고 받기만 하는 사람에겐 빈손만 남는다.
논쟁 후에 짜증과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무엇인가? 대대의 경우 다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고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했는지 상세한 목록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그따위로 말하면 나에게도 충분히 화를 낼 권리가 있다!”라고, 그러나 당신이 도를 따르는 삶을 원한다면 이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원한은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한이라는 것은 어진 마음이나 사랑, 진정한 용서를 통해 그 다툼을 끝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돌아오는 손해를 어진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적의는 결코 선의가 되지 못한다.”라고 노자는 말한다. 악쓰고,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나면 고요함을 위한 시간이 찾아온다. 영원히 몰아치는 폭풍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나 평온함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대립하는 순간이 있다면 평화를 위한 시간도 있게 마련이다. 다툼의 폭풍이 잠잠해지면 당신의 에고는 옳음을 주장하려고 하는데, 이런 욕구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분노를 내려놓고 어진 마음을 펼칠 시간이다.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상대방과 자신을 용서하고 원한을 날려 버려라. 노자가 이 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 당신이 진정한 덕을 품고 산다면 언제나 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도와 완벽하게 어우러진 삶이다. 즉 생명의 창조자는 언제나 주되 결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족함과 원한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을까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 보라. 온 우주가 반응할 것이고, 당신도 결국 행하게 될 것이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향해 나아가라. 싸움이나 격렬한 논쟁을 끝마친 당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 분노와 복수에 대한 욕망 그리고 상처를 남기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어짊과 사랑과 용서를 건네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이렇게 진정한 덕을 통해 당신이 지금 품고 있는 모든 원한들을 녹여내라. 미래에 어떤 다툼을 겪게 되더라도 다음과 같은 대답을 기본으로 삼아라. “나는 무슨 일리 있어도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 주는 연습을 하라. 논쟁과 다툼이 생기면 먼저 주는 연습을 실천하라. 헐뜯고 비방하기보다는 어진 태도를 보이고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는 존중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도와 덕을 실천하라. 주는 것은 에고를 잊는 것이다. 에고가 우월함을 뽐내고 이기기를 원하는 반면에 도의 본성은 화해하고 조화롭게 살기를 바란다. 이처럼 받는 대신에 나눠줌을 실천하면 다투는 시간을 없애 수 있다. 80.
80장 자신만의 낙원에서 사는 삶 백성이 적은 나라를 떠올려보라. 그들은 무기가 있으나 쓰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 손을 써서 일하기를 즐기고 도구를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멀리 가지 않는다. 거처가 편안하여 이동에 관심이 없다.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이가 없다. 그들은 음식이 좋아 만족하고 옷이 편안하여 기뻐하며 집이 아늑하여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풍속을 이어간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평화롭게 내버려 둔다. 이 장에서 노자는 충돌이 없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무기가 있을지언정 쓸 일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고대 중국의 성인은 자연에 가까이 머무르고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기술문명의 이로움과 고급 자동차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만족을 준다고 말하는 듯하다. 땅을 가까이하고, 직접 손을 써서 일하며 이웃과 경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250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세상이 엄청나게 변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 장에 담긴 노자의 충고는 21세기를 위한 지혜 그 이상을 전한다. 무기라는 것이 그저 과거의 흔적으로서 존재하며 폭력적이고 어리석었던 역사를 보여주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박물관에 전시된 세상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거기에 전시된 다양한 다툼들을 보면서, 같은 몸에 기생하고 생존을 위해 그 몸과 서로에게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죽이고 결국에는 그 숙주마저 파괴하는 미생물과 인류가 서로 닮아 있다고 느낄 것이며, 전쟁은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 도처에서 벌어졌던 다툼들을 살펴보면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증오와 대립이 이치에 맞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째서 땅을 공유하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 수 없었을까? 무엇이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할 만큼 중요했던 것일까? 최근에는 앙숙이었던 나라들이 서로 동맹을 맺기도 한다. 그토록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그 모든 다툼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생명을 주는 도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대단히 복잡하게 뒤얽혀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질문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이 장은 자신만의 낙원에 살고자 한 당신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증오, 살인, 전쟁, 그리고 뒤를 잇는 협력을 거쳐 다시 폭력의 사이클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순환에서 빠져나오라고 제안한다. 단순하게 살고 누군가를 지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평화로운 존재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전쟁 도구들을 자꾸 만들어내려는 낌새가 보인다면 충돌을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라. 당신은 그런 선택을 통해 본질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새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하는 쪽을 택할 수 있고, 손으로 직접 글을 쓰며 그 느낌을 택할 수도 있다. 차를 운전하는 대신에 걷기를 선택할 수도 있으며, 계산기의 도움 없이 셈을 하고 관계를 친밀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수고를 덜어주는 수많은 기구들이 있지만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유지하고 싶은 삶의 영역들을 깨닫고 동시에 현대 사회가 정보와 기술을 매개로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도구와 복잡함이 느껴지는 순간을 찾아내라. 그리고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옮겨가라. ◎ 작은 것에 감사하라. 당신이 당연히 여기는 것들과 행복한 전투를 시작하라. 거기에는 당신이 매일 접하지만 결코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집, 정원, 식사, 옷, 가족 그리고 친구들처럼 편암함을 주는 존재들이 있다. 관심을 기울여라. 애정이 깃든 감사를 표현하라. 당신의 삶을 구성하는 작은 보물들에 대해 경외의 마음을 갖고 가까운 주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라. ◎ 주위에서 친구를 발견하라. 더 나은 삶을 찾아 여행을 하고, 세속적인 이익을 구하고,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사람들을 경험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려라. 실제로 당신은 일생 동안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같은 곳에 살면서도 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볼테르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천국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명심하라. 만약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사진들, 그리고 똑같은 기구들로 인해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곳을 다인의 천국으로 삼아라. 단순한 삶에서 기쁨과 위로를 발견하라. 당신이 가진 것, 머물고 있는 곳,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 안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도록 사고방식을 전환하라. 모든 공간 속에서 도를 느낌으로써 당신만의 낙원을 가꾸어라. 81.
81장 쌓아두지 않는 삶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못하다. 선한 사람은 따지지 않고 따지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덕이 있는 사람은 흠을 찾지 않고 흠을 찾는 사람은 덕이 없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모두 준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준다. 하늘의 도는 모두를 이롭게 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성인은 이를 따라서 모두를 이롭게 하고 누구와도 겨루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도덕경]에 담긴 모든 생각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당신은 아무것도 없음(no-thing-ness)'에서 태어났다. 당신이 시작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당신이 돌아갈 그곳에도 역시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노자는 물질을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도의 ‘형태 없음’ 속에 순수한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처럼 당신의 진정한 본질은 형태가 없다. 바로 당신이 도이기 때문이다. [도덕경]은 ‘아무것도 없음’이 곧 도임을 인식하는 존재의 방식으로 당신을 이끈다. 이것은 신을 인식하는 존재의 방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쌓아두지 않는 삶을 통해 자신의 비존재(nonbeing), 즉 도적인 자아에 다가서라고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더 많이 내주고, 덜 따지며,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당신의 생명과 육체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살아서 이를 실천할 수 있다. 고난의 성자 요한은 삶을 대하는 이런 방식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것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로 소망하라.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않기를 소망하라.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소망하라.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를 소망하라.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지혜는 누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고대의 현인은 우리가 쌓아두지 않는 아무것도 없음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존재 자체를 축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물들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런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말이 필요 없다. 묘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다툴 것도 없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소유물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도의 숨은 덕뿐이기에 비난하거나 흠잡을 일도 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으고 축적하고, 쌓아 올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당신은 가진 것을 나눠주고, 다른 사람을 지지하게 된다. “하늘의 도는 모두를 이롭게 한다.”고 노자가 말했는데, 여기서 이롭다는 것은 곧 신의 덕목이며, 신은 참으로 도와 같다. 에크하르트는 신과 도라는 말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신은 존재 너머의 존재이며 존재 너머의 존재하지 않음이다. 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신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그럼에도 신은 대단한 무언가이다. [도덕경]은 이 마지막 장을 통해 당신이 육신을 갖고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하늘의 도를 따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하라고 격려한다. 당신의 생각이 변하고, 결국에는 삶이 영원히 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하라. ◎ 점수 쌓기는 이제 그만 두라 따지고 다투려는 성질을 버리고 당신과 의견이 다른 누군가가 옮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 상대방에게 그저 “당신이 옳다. 당신의 의견을 들려줘서 고맙다.”라는 의미의 말을 전함으로써 다툼을 마무리 지어라. 이렇게 하면 싸움은 끝나고 동시에 비난과 책망도 남지 않는다. “당신이 옳다."라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 자신만 옳기를 바라는 에고를 다스려라. 이 한마디가 당신의 삶을 훨씬 더 평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스스로를 ‘아무것도 없음’의 수준까지 낮춰라 당신의 몸과 모든 소유물을 관찰하라. 그러고 나서 그 모두가 변화하는 세상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여라. 마하트마 간디는 “당신이 진실의 대양 한복판에서 헤엄칠 거라면 당신 자신을 ‘0’의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명심하라. ‘아무것도 없음’ 혹은 ‘0’의 자리에서 관찰자가 되어 물질의 세상 속에 당신이 쌓은 것들을 살펴보라. 그럼으로써 세상에 확실하게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유물이나 사고방식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이 느껴질 때마다 이를 실천하라.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 기쁘게 변화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