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플은 인문학 전공자를 선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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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인문대생 채용을 거부하는 한국 기업의 천박한 `인문 빈곤`에 대해

최근 유행어 중에 듣기 민망하며 부끄러운 말들이 있다. `인구론`, `문숭합니다`가 그런 말들이다. 인구론은 인문계 대학 졸업생의 90%가 취업을 못 한다는 뜻이고, `문숭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취업 시장에서 외면 받

입력 : 2015-06-02 13:42:22수정 : 2015-06-02 14:34:58

최근 유행어 중에 듣기 민망하며 부끄러운 말들이 있다. `인구론`, `문숭합니다`가 그런 말들이다. 인구론은 인문계 대학 졸업생의 90%가 취업을 못 한다는 뜻이고, `문숭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취업 시장에서 외면 받는 문과생들이 스스로를 자학하는 표현이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철학과 심리학, 역사학, 문학 등 주요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시장에서 홀대 받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인구론`이 나올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왜 이토록 한국 기업들은 문과 졸업생을 외면하는 것일까?

나는 한국 기업 문화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인문의 빈곤`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문학이라는 게 무엇인가?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나아가서는 내가 소속한 조직과 사회가 왜 존재하는지, 내 존재를 어떻게 내가 소속한 집단과 사회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 질문을 끈임없이 던지는 게 바로 인문학이다. 그래서 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타인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으면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횃불과 같은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철학과 심리학 역사학은 인간의 내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내적 자아를 외부로 확장하는 원동력이 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내적 성찰과 이를 통해 자아를 외적으로 확대하는 노력은 인문학의 근간이다. (사진 출처= commons.wikimedia.org/)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천박한 기업 문화를 감안할 때, 인문의 역할은 오히려 기업 경영에 방해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수 많은 한국 기업들은 숫자와 돈으로 표시되는 단기 성과를 추구하면서 각 개인을 `회사`라는 커다란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취급한다. 강고한 계층제 아래,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복종`과 `통제`의 문화에 젖어 있는 직원을 키워낸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는, 나아가 내가 속한 조직은 왜 존재해야 하며, 나와 내 조직의 존재이유가 되는 미션과 가치, 의미를 찾겠다`고 한다면, 아마도 부장과 임원, CEO의 비웃음을 사기 십상일 것이다. 통제와 복종의 문화가 뿌리내린 한국 기업에서 인문학적인 고민과 사고는 반골이나 말썽꾸러기의 치기 어린 투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기업일수록 인문학적 사고로 무장한 `인문계 출신`을 채용할 바에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갖춘 `테크니션형 인재`를 더욱 더 선호할 것이다. 오늘날 인문계에 대한 지나친 홀대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이런 기업들은 `경영`의 진정한 의미조차 모른다고 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경영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뜻 그대로 경영이 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그러나 인문이 곤궁한 기업은 사람에 대한 이해 역시 곤궁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문화가 직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인문의 본질을 거부하는 쪽으로 형성돼 있다면 사람에 대한 이해 역시 천박해진다.

수 많은 한국기업들이 쓰는 경영 기법은 이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의 그저 인간을 통제하는데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직원을 동물원의 물개 다루듯이 한다. 물개가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하면 먹이를 주듯이, 직원이 기업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하면 인센티브를 준다. 물개가 조련사의 뜻과 어긋나게 행동하면 벌을 가하듯이, 기업은 자율을 추구하는 직원에게 벌칙을 가한다. 국내 기업에서 점점 더 인센티브가 범람하고 점수로 직원들의 등수를 매겨 최하위 몇 %는 내보내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사례가 왜 늘어만 가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높아지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는 천박하니, 인간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영기법 외에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몇 개 안 되는 자리를 미끼로 직원들을 경쟁시키는 것을 경영의 금과옥조로 삼는다.

그러나 혁신적인 외국 기업들은 다르다. 그들은 인문학적인 질문에서부터 기업을 시작한다. 미국 창업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창업자 겸 CEO가 그런 경우다. 그는 창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미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그녀가 19세에 스탠퍼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질병 진단기업 테라노스를 창업한 것도 스스로 설정한 미션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무 이르게 작별하지 않도록 돕겠다는 데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았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피 한 두 방울로 수백 가지의 혈액 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검사 비용 역시 경쟁 기업의 4분의 1~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었다. 자신이 설정한 미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조직으로 확장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한 홈즈의 성공은 진정 인문적인 가치에 기반했다고 할 것이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항상 애플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사업을 고민했다. 유명한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 광고 캠페인도 그 같은 질문에서 나왔다. 애플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잡스 스스로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추구하지 않았다면,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면 불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더욱이 잡스는 공대가 아니라 인문학으로 유명한 리드 칼리지 출신이다. 비록 그가 대학을 중퇴했으나, 리드 칼리지에서 `서체`를 공부한 덕분에 맥킨토시 컴퓨터의 아름다운 폰트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맥킨토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맥킨토시를 개발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 음악가, 예술가, 시인, 역사가였는데, 이들이 마침 뛰어난 컴퓨터 과학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잡스가 인문학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애플과 같은 위대한 혁신 기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인문적 사유는 인간을 돈이나 권력 지위가 아니라 일 자체의 의미와 가치에 집중케 한다. 덕분에 인간은 일에 더욱 더 몰입하고 더욱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한국 기업이 인문적 사유를 거부한다면 몰입과 창조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 기업에서 인문학은 CEO의 사치품이 됐다. 대학에서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를 수강하고는 `나도 인문적 소양이 있어`라는 자격증을 받는데 그치고 있다. 이들은 자기 기업의 진짜 문제가 인간에 대한 천박한 이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 결과, 구성원의 자아실현과 가치를 추구하는 `인문의 문화`를 거부하고, 복종과 통제의 문화에 집중한다. 그로 인해 조직 구성원을 동물원에서 조련 받는 물개 취급한다. 이런 문화에 젖은 기업으로서는 인문적 사유를 훈련 받고, 인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생리적으로 거부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동물원의 문화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인 중 어떤 이들은 인문학을 공부한 공대생을 뽑으면 그만이지 굳이 인문대 출산을 뽑을 필요까지 있느냐는 말도 한다. 엘리자베스 홈즈도 화공학과 출신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공대생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문학 서적에 인쇄된 문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 이를 내면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인문의 가치를 삶의 지표로 삼기까지에는 인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오랜 성찰과 고민이 필수다. 인문학도는 그 같은 성찰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고, 인문의 가치를 좀 더 빨리 내면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조직에는 공대생 외에 인문대 출신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은 인문적 가치를 실현하고 직원들에게 자아실현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인문대생들 입장에서는 기업의 천박한 문화를 비판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자신을 단련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적 사유에 IT 기술을 접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에 좀 더 많이 진출해 그들 스스로가 인문적 사유를 확산시키는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나서서 인문계 전공자들에게 IT와 소프트웨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상당수 인문대생들도 배울 의사를 밝혔다. 대학 3~4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훈련 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과 계열 학생의 56.2%가 이공계 분야로의 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 과정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적 사유에 IT 능력을 접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인문대생이여.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혁신하라.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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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인문계열 전공자보다 이공계나 상경계열 전공자를 선호하는 것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기업 입장에선 아무래도 이들 전공의 업무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문계열 전공자에 특화된 일자리는 어떨까.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에서 역사학과 문헌정보학을 복수전공한 박모씨(29)의 ‘취업 도전기’는 인문계열 졸업생이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박씨는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 전공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다. 고3 때도 EBS 수능 영어교재보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펼친 적이 더 많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미학 오디세이>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주변에서는 교직이나 행정고시에 도전할 것을 권했지만 박씨는 흥미와 적성을 택했다. “언론사 영화담당 기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매체가 별로 없어 어렵겠다 싶었고, 책과 관련한 일을 하면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박씨가 찾아낸 꿈은 ‘도서관 사서(司書)’였다. 박씨는 2009년 대학 연구소 도서관에서 인턴을 했으나 5개월 만에 그만뒀다. 월급이 자주 밀렸다. 박씨는 2년 동안 본격적으로 사서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정규직 공채는 국립중앙도서관, 서울시, 국회도서관 단 3곳뿐이었다. 채용인원은 서울시는 1명, 나머지는 3~10명 수준이다. 대학 도서관 사서는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지역 도서관은 채용이 없었다. “국립도서관은 3년, 국회도서관 사서도 5년 만에 채용공고가 나지요.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 포기했어요.”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뒀지만 가정 형편상 도저히 오래 공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대형 온라인 서점에 입사했다. 그러나 6개월이 되지 않아 회사가 도산했다. 도서시장 불황과 부실경영이 맞물린 탓이다. 출판사에 계약직으로 재취업했으나 그만뒀다. 업무는 많고 야근이 잦아 건강이 나빠졌다. 그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여러 기업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후반인 데다 인문학 전공자인 박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박씨는 현재 온라인 쇼핑몰의 계약직으로 2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그는 “정규직만 되면 다시 책도 읽고 블로그에라도 쓰고 싶은 글을 써볼 생각”이라고 했다. 박씨의 ‘취업 도전기’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