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는 왜 토르를 안 죽였을까

“난... 아이언맨이다.”

“토니 스타크에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

토니의 아내 페퍼가 딸 모건과 함께 토니의 장례식에서 아이언맨의 첫 아크 리액터를 화환과 함께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아크 리액터는 아이언맨의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장치입니다. 스티브, 피터, 토르, 헐크, 스트레인지, 웡, 가디언스, 네뷸라, 스콧, 트찰라, 완다, 클린트, 캐럴, UN 정보기관 실드의 국장 닉 퓨리까지 모두 모여 애도합니다.

기념일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광복절은 조국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선열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만난 지 100일 기념일은 사랑의 시작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잊으니까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시간은 시든다.

시간은 인류 최초의 문화인 원시 시대의 신화부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화는 시간이 흐르면 생물처럼 시든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간은 주기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시인들은 시간을 회복하는 제의를 주기적으로 치릅니다. 기념일도 시드는 시간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토니의 장례일은 토니의 기념일이 되고 시드는 토니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회복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캐럴이 산소 고갈로 다 죽어가던 토니의 우주선을 어벤져스 본부에 데려옵니다. 어벤져스는 인류를 되살리기 위해 타노스의 장갑, 인피니티 건틀렛을 찾으려 합니다. 어느 별에서 은퇴한 타노스를 발견하고 토르가 건틀렛을 끼고 있는 타노스의 왼손을 잘라냈으나 인피니티 스톤들이 없습니다. 타노스는 악용을 막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들을 원자 단위로 분해해 우주에 뿌렸다고 말합니다. 토르가 타노스의 목을 칩니다.

2023년. 지구에서 절반의 인류가 사라진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황폐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어느 창고의 고물 밴에서 쥐가 전원을 건드리자 양자 통로가 열리고 양자 세계에 갇혀 있던 앤트맨 스콧 랭이 현실로 돌아옵니다.

스콧의 딸 캐시는 훌쩍 자랐지만 아내 호프가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로 죽었습니다. 스콧은 곧 어벤져스 본부로 가 스티브와 나타샤에게 양자 통로 시간 여행으로 6개의 스톤을 찾아와 인류를 되살리자고 제안합니다. “시간 강탈” 작전입니다.

토니가 시공간 GPS를 만들어 합류하고 흩어진 동료들, 토르, 클린트도 가세합니다. 어벤져스는 팀을 넷으로 나누어 6개의 스톤이 있는 과거 위치로 시간 여행을 가 모두 찾아옵니다.

그러나 나타샤가 영혼 스톤을 얻기 위해 클린트 대신 목숨을 희생합니다. 또 타노스의 양녀이자 가모라의 의붓자매 네뷸라가 돌아오지 못합니다. 타노스는 네뷸라를 붙잡아 메모리에 접속해 자기가 죽는 미래를 봅니다. 그리고 현재 네뷸라 대신 2014년의 네뷸라를 첩자로 2023년에 돌려보냅니다.

브루스가 나노 입자로 만든 새 건틀렛을 끼고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손가락을 튕깁니다. 인류가 되살아납니다. 그때 네뷸라가 양자 통로를 열고 타노스 군단이 들어옵니다. 어벤져스 본부가 폭격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겨우 살아남은 토니, 스티브, 토르가 타노스와 맞섭니다. 타노스는 이젠 인구 절반이 아니라 우주와 인구 전체를 산산조각내고 새 우주를 창조하겠다고 말합니다.

세 어벤져스가 타노스와 맞서 싸우고 건틀렛을 차지하려는 두 세력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트찰라, 완다, 스트레인지, 가디언즈, 피터가 모두 되살아나 전쟁에 합류합니다. 그러나 결국 타노스가 건틀렛을 차지합니다.

“난... 필연적 존재다.”

타노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깁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토니가 건틀렛과 같은 나노 입자로 만든 자기 수트에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빼돌렸습니다.

“난... 아이언맨이다.”

토니가 손가락을 튕깁니다. 타노스와 군단이 재로 변합니다. 토니도 스톤들의 막대한 에너지로 치명상을 입고 숨을 거둡니다.

비연대기 시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 Deleuze)의 눈으로 보면 흥미로운 시간을 보여줍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순으로 흐르는 연대기 시간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비연대기 시간입니다. 오늘의 철학 한 마디입니다.

토니의 장례식을 치른 뒤 스티브는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제자리에 돌려주러 다시 한번 시간 여행을 갔다 돌아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스티브는 스톤들을 돌려놓은 뒤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다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왼손에 결혼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돌아온 스티브가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한 페기 카터와 집에서 행복하게 춤을 추며 키스를 나눕니다. 오늘의 영화 한 컷입니다.

들뢰즈는 영화에 나오는 여러 이미지 가운데 시간 이미지가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차례대로 거치고 거꾸로 흐를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 시간은 연대기 시간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필름을 편집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를 섞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차례대로 만나지 않고 다른 순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비연대기 시간을 보여줍니다.

클린트가 딸 라일라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고 화살을 챙겨 점심을 먹으러 뒤돌아본 순간 가족이 없습니다. 클린트는 가족을 애타게 부릅니다. 우리는 가족을 애타게 부르는 클린트를 보며 조금 전 손가락을 튕긴 타노스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튕긴 과거의 타노스가 가족을 부르는 현재의 클린트와 함께 있습니다.

페기와 춤추며 키스하는 스티브를 보며 우리는 미래에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돌려주러 다시 한번 시간 여행을 떠났다 백발이 되어 돌아온 스티브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백발이 된 미래의 스티브가 춤추며 키스하는 현재의 스티브와 함께 있습니다.

스티브가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미래의 스티브가 현재의 스티브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가 미래의 스티브를 먼저 보여주고 현재의 스티브를 나중에 보여주기 때문에 미래의 스티브가 현재의 스티브와 함께 있습니다.

클린트가 시간 여행을 테스트하기 위해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로 가족이 몰살하기 전 자기 집에 도착합니다. 클린트는 아직 살아있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라일라!”를 부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다 원래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라일라가 이층에서 내려와 “아빠”를 부르지만 아빠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빠”를 부르는 라일라를 보며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로 죽을 라일라를 함께 봅니다. 죽을 미래의 라일라가 “아빠”를 부르는 현재의 라일라와 함께 있습니다.

클린트가 시간 여행을 떠나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미래의 라일라가 현재의 라일라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가 미래의 라일라를 먼저 보여주고 현재의 라일라를 나중에 보여주기 때문에 미래의 라일라가 현재의 라일라와 함께 있습니다.

영화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연대기 순으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섞어 시간을 비연대기 순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 덕분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시간, 비연대기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야말로 시간 조작 능력을 가진 시간 스톤입니다.

세계관: 시간, 가족, 죽음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세계관에 우선 시간을 추가합니다. 여기서 시간은 들뢰즈가 말한 비연대기 시간이 아니라 타임머신의 시간입니다. 시간 스톤은 시간 조작 능력을 지닙니다. 시간 스톤은 시간을 과거로 역행할 수도 있고 미래로 가속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 스톤은 시간 역행이 가능하니까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도 있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비전을 되살려 이마에서 정신 스톤을 뜯어내는 모습은 시간 스톤을 이용한 시간 역행을 보여줍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어벤져들이 시간 스톤 없이 양자 통로를 이용한 시간 여행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역행과 시간 가속을 보여줍니다. 세계는 타노스가 지배할 수도 있고 어벤져스가 세계와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도 있으며 시간 여행도 가능합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시간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족 때문입니다. 클린트 가족, 스콧 가족, 트찰라 가족, 피터 가족, 가디언스 가족이 토니의 손가락 튕기기로 되살아납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세계관은 가족도 포함합니다. 세계는 타노스가 지배할 수도 있고 어벤져스가 세계와 개인의 자유를 지킬 수도 있으며 시간 여행으로 가족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 남았습니다.

죽음. 나타샤도 가고 비전도 가고 토니도 갑니다. 죽음은 타노스도 피하지 못합니다. 두 번이나 죽습니다. 초인 병사 계획에 자원해 특수 혈청을 맞고 늙지 않는 몸을 가진 스티브도 백발이 되어 돌아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세계관은 6개의 형이상학 개념으로 완성됩니다.

세계는 타노스가 지배할 수도 있고

어벤져스가 세계와 개인자유를 지킬 수도 있으며

시간 여행으로 가족을 되살릴 수 있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김성환

김성환은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다. 영화로 철학 강의를 오래 전부터 했고 <김성환의 영화철학에세이: 나는 본다, 철학을>(동녘), <영화로 생각하기>(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등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