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토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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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학창 시절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순수한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살 때의 사랑은 뜨거운 열정과 기다림이라고 생각했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사랑은 이해와 배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첫 작품인 이 책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한 남자인 소설의 주인공은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클로이와 몇 마디 대화로 사랑에 빠지고,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남자는 이별을 견디지 못해 죽을 결심을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얼마 후 바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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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자가 쓴 연애소설이다.

젊은 남녀의 연애를 철학적 통찰로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을 얻게된다.

갓쓰고 양복입은 듯한 모습도 보인다.

밸런스가 안맞는 듯한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25세때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는 69년생이니까 90년대 초에 쓴 소설이다.

그 나이에 이런 소설을 쓰다니 저자를 다시 보게 된다.

나는 그 나이에 철부지였다.

지금도 철이 들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다.

주인공은 연인인 클로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온갖 철학적 이유를 갖다댄다.

연인과 권태기에 들어서는 과정을 현학적으로 설명한다.

헤어질 때는 세상이 끝난 양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연인 레이철이 자신의 식사초대에 응했다고 마음이 다시 떨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잊을 수 있어 감사하다.

저자는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의 미묘한 움직임들을 철학이라는 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소설 마무리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상식으로 끝낸다.

어쨌든 재미있는 소설이다.

수학적인 비율의 미모가 나오지 않는 클로이를 주인공은 사랑했다.

그녀의 치아와 같이 헝클어진 그녀의 미모가 주인공을 설레게 한다.

소설이 바로 그 클로이와 같다.

볼만하다.

다만 철학용어가 나오면 얼굴이 찌푸려지는 사람은 읽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토론

Image by S. Hermann & F. Richter from Pixabay

도서출판 청미래에서 출간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리뷰하고 있다.

알랭드 보통은 사랑을 철학에서 일상으로 옮겨 놓는다.

17챕터부터 끝까지 요약한다.

클로이의 관례적인 행동은 과장된 행동으로 바뀌었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사랑에서건 돈에서건 오직 빈곤만이 체제에 의문을 품게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그녀가 그것을 믿는다면 왜 나라고 못 믿을까? 그녀에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왜 나한테는 복잡해야 할까?

집안 언어를 풀어놓았으나 클로이에게는 점점 낯선 것이 되었다.

일은 희비극의 시나리오로 풀려나갔다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르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거의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또 훨씬 덜 즐거운] 질문이다.

사랑은 첫눈에 태어날 수 있다. 그런 그에 상응하는 빠른 속도로 죽지는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된 연인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다.

정치적 대화를 통해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피해를 입은 쪽은 필사적으로 테러 행동에 의존하게 된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상대를 협상으로 나오게 할 만큼 무시무시할 것이라는 가정에 도박을 건다.

테러리스트적인 삐침이 구조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아무리 사소하다고 하더라도 삐치게 만든 쪽에 어떤 잘못된 행동이 있어야 한다.

내가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 것 때문에 너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나는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는 더 폭넓은 메시지를 상징한다.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의미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그 상징이 해독되는 것을 반은 기대하고 반은 두려워하면서.

삐침은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성공은 공허했다.

내 강요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켜하지 않는 수용자에게 사랑을 강요할 의지를 잃었다.

관계는 끝이 나 있었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기로, 울지 않기로, 피해자나 처형자가 된 것처럼 느끼지 않기로 했다.

너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나는 그것을 너에게 줄 수 없게 되어버렸어.

그녀의 구문에서 묻어나는 의심과 양면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에도 메시지는 분명했다.

사랑의 거부가 종종 도덕적 언어, 옳고 그름의 언어, 선과 악의 언어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랑의 거부가 아무리 불행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이타성과 동일시하고 거부를 잔인성과 동일시할 수 잇을까?

비록 내 사랑에 희생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었다.

분노가 비난과 결합될 수 없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무엇인가 비참한 일이 일어날 때면 우리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끔직하고 견딜 수 없는 벌을 받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일상적인 인과론적 설명을 넘어서는 설명을 찾게 된다.

일상적인 잔인하고 무심한 행동들, 신들은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았고, 이제 나에게 무시무시한 복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저주의 핵심은 그 저주 아래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저주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도록 그녀를 사랑했다.

내 삶의 심술궂은 캐스팅 감독인 무의식이 그녀에게서 필요한 양의 고통을 준 뒤에 무대를 떠나는 데 적합한 인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통제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오직 나의 죽음을 통ㅎ서만 내 사랑의 중요성과 불멸을 주장할 수 있었다. 비극에 싫증을 내는 세상을 향하여 자기 파괴를 보여줄 때만 사랑은 치명적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일깨울 수 있었다.

나도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다오.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ㅎ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나 자신을 죽여 그녀가 나한테 한 일이 무엇인지 내 몸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클로이에게 준 충격을 보고 화를 풀려면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죽게 되면 나의 소멸이라는 멜로드라마로부터 어떤 기쁨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행동일 터였다.

고뇌에 괜찮은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런 비참한 상황을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슬픔에 취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만인으로부터 이해를 받는다면 그 사람을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나를 찬 것은 나에게 결함이 많다는 증거라기 보다는 그녀가 근시안적이라는 표시였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기분나쁘게 여기는 측면들에 집중했다.

고통을 겪으면서 무한히 지혜로워진 나는 물론 그녀가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녀를 용서하고, 동정하고, 그녀에게 선심을 쓸 수 있었다.

왜 나의 콤플렉스, 모든 결함과 수모를 그 정반대의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왜곡된 심리적 술수에 예수의 이름이 붙은 것일까?

자신의 미덕에 대한 느낌은 고통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예수콤플렉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정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크게 이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자기 혐오를 피해가려고 약점을 미덕으로 바꾸는 연금술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 클로이가 나를 찬 것은 클로이를 경멸할 만한, 잘해야 동정할 만한 증거로 해석되었다. 예수 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느릿느릿 뒤따라온다.

일주일 가운데 우리가 관례적으로 함께 행동하던 때가 돌아오면 과거와 현재의 평행선을 고통스럽게 떠올릴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세계는 내가 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적 세계는 나의 내적인 기분을 따라와주지 않았다.

변화의 거부는 세계가 내 영혼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거기 살든 살지 않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움직여가는 독립된 실체임을 일깨워주었다.

망각은 내가 한때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나는 점진적으로 자아를 다시 정복하기 시작했다.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현재라고 부르는 조그만 오아시스에서 이 지친 짐승은 나의 나머지를 따라잡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들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지혜는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가르친다.

베르테르의 무절제와 예수가 보여준 무혈의 형제애를 비교한다.

미성숙한 사랑은 타협을 용납하지 않으며, 일단 타협을 거부하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격변으로 가는 길에 올라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철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레이철의 모습은 나에게 금욕주의적 접근방법에 한계를 일깨워 주었다.

금욕주의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실망시킬 기회를 주기 전에 스스로 실망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 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그 후로 그녀를 생각만 해도 시인들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영역이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떨림은 한 가지를 의미할 수 밖에 없다 - 내가 다시 한 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1]유체이탈, 콤플렉스, 연애소설을 업그레이드 한다!

https://hajueun5.blog.me/221835189830

2]사랑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연인을 보는 눈"이 옳다고 생각한다.

https://hajueun5.blog.me/221835775977

3] 사랑은 철학으로 설명되는 게 아니다.

https://hajueun5.blog.me/22183740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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