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한 하늫 저 구름 왜 나를 울리나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깊더니
삼천리 이강산에 먼동이 튼다
동포여 자리차고 일어나거라
삼천리 바다 건너 태평양까지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해방가. 나중에 이 노래의 지은이가 친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다. 어머니도 이 노래를 알고 계셔서 놀랐던 적도 있었다.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새라 아아 끝없는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 김지하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재수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처음 듣고 전율을 느꼈던 노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기나긴 어둠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신새벽 안개 뚫고 떠났다고 대답하라
저 깊은 곳에 영혼의 외침
저 험한 곳에 민중의 뼈아픈 고통
내 작은 이 한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양성우 시인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그냥 시인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것을... 훗날 가슴이 아프게 만든 노래기도 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오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김민기의 친구. 80년 봄에 잠깐 이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탔다. 성대를 다니던 사촌형이 얼마나 놀라워했던지...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의 아침이슬. 나는 이 노래를 84년 2월에 처음 들었다. 무슨 의미를 가진 노래인지 몰랐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역시 김지하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최루탄을 뒤집어 써보면 안다. 타는 목마름이 뭔지.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고향집 언덕 위엔 굴뚝 연기가
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
이 몸과 이 혼으로 다져나가리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자랑스런 통일의 전사
영광의 장정, 뿌려진 피땀, 어머님의 눈물이런가
파도가 되어 노농의 물결
민족아 내 사랑아 통일의 선봉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뒤에는 꼭 "딸!"이라는 외침이 들어갔었다.

혈진 함성 나를 부른다
침묵 강토 나를 부른다
춤추는 언덕 뛰어올라가
깃발 꽂으리 외쳐불러라
의기신념 뚫어 솟아올라라
통일 그날까지 밀어부처라
혈진 함성 나를 부른다
외치는 강토 나를 부른다
적산에 언덕 뛰어 올라가
전진전진 외쳐 불러라


80년대에는 신나는 노래가 적었다. 그 중 하나다.

쏟아지는 빗발 뚫고 오던 무거운 어깨
말없이 동녘 응시하던 동지의 젖은 눈빛
이제사 떠오니 당신의 깃발로
두견으로 외쳐대던 사선의 혈기로
약속한다 그대를 딛고 전진하는 새벽
어느새 닥친 조국의 아침
그대를 기억하리라

이 노래는 비장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비오는 날 부르면 어울렸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껍데기를 벗고서
자유의 세상에 살련다 나 이 어둠 뚫고 싸운다
저 간악한 무리들 기만에 살찌는 무리들
나 이 어둠 뚫고 싸운다 자유의 세상에 살련다

자유, 평등, 해방으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마음대로 변주가 가능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내 흘릴 눈물들
이 생명 다한 후에 다 씻어지리니
이 길을 가는 동안 지쳐 쓰러져도
그보다 더 귀한 건 생명을 봄이라
곤한 내 혼아 눈을 들어 저 빛을 향하여
아무도 뺏지 못할 생의 자유를 되찾자

이 노래가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참 좋아했던 노래.

낮은 어둡고 밤은 길어
허위와 기만에 지친 형제들
가자 가자 이 어둠을 뚫고
우리 것 우리가 찾으러

논도 빼앗겨 밭도 빼앗겨
착취와 수탈에 지친 형제들
가자 가자 이 어둠을 뚫고
우리 것 우리가 찾으러

전형적인 데모가...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개래요
시퍼런 절단기에 뚝뚝 잘려서
한개에 오만원씩 이십만원을
술퍼먹고 돌아오니 빈털털이래

경쾌한 음이 무시무시한 내용을 더 무섭게 만들어버리던 김민기의 노래.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잖게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잖게

데모를 알리는 노래. 나는 "물가에 심어진"이 항상 "물가 심어진"으로 들렸는데, 어떤 가사집에도 다 "에"가 들어있더라.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세상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60년대 6명만 통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90년대에는 4사람만 통하면 된다고 한다.

넘쳐넘쳐 흘러가는
볼가강물 위에
스텐카라친 배 위에서
노래 소리 드높다
페르샤의 영화에 꿈
다시찾은 공주의
웃은 띠운 그 입술에
노래 소리 드높다
동코삭의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다시 못올 그 옛날의
볼가강은 흐르고
꿈을 깨친 스텐카라친
장하도다 그 모습

러시아 민요. 어느날 라디오에서 듣고 정말 러시아 노래라는 걸 알고 웬지 감격해버렸다.

바람이분다바람이불어연해주에서불어온다로스케대사관에불이붙었다잘탄다잘탄다신난다신난다로스케는시곗줄만돌린다

이리저리 변형해서 부르던 노래.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는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농민가. 대학 와서 처음 배운 노래.

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판에
황토길 달리며 우린 자랐다
노령의 험한 산맥 정기 받아서
바위같이 굳세게 힘을 길렀다

농민가 II.

신대한의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가장 많이 불린 데모가.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 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새라 아~ 끝없는 새하얀 사슬소리여


낮이 밝을수록 어두워가는 암흑속에 별발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넘어 멀리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눈부신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나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날씨와 더불어 청춘들의 민주화 열기도 뜨거웠던 80년대 중반.

9월에 복학한 후에도 학교내,외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우린 자주 시장에 있는 이모집(대체로 외상 긋는 집은 이모집이다)에서

순대국에 막걸리 먹으며 울분도 토하고 노래도 부르고 했다.

아주 가끔 공부도 하고 그랬다. ^^

그 때 이모집에서 같이 합석했던 84학번 여자 후배가 불렀던 "새"

복학 후라 새로운 민중 가요를 잘 모르고 있다가 들어서 그런지 매우 좋았다.

그 때만해도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김지하 시인의 시 <새>에 곡을 올린거라고 했다.

당시엔 노래 두 세번만 들어도 가사며 코드가 저절로 나와주던 때.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쥐....)

바로 따라 부르며 지니고 다니던 기타로 반주를 했던 기억.

그 후배는 이른바 운동권, 그것도 학교외에서 활동하던 여전사(!).

후에 둘이 술 마시다가 그 후배가 그 사실을 슬쩍 알리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멋있더구만.

용캐 잡히지 않고 졸업은 했고 ㅎㅎㅎ

한국에 가면 아내나 나나 꼭 연락하는 사이.

용인에서 마당 큰 집에서 잘 살고 있더구만.

오랜만에 옛 추억과 더불어 가제트 기타치며 부르는 애창곡 안치환의 노래 <새>올려보지만

사실 난 노래방에선 이 노래보다 안치환의 <광야에서>를 더 자주 부르곤 했었다.

어수선하고 조용히 칩거하는 이 봄에 어울릴지 잘 모르겠지만

뭐 어떠리 봄은 봄이고 추억은 추억인걸.... 

<새>는 후에 안치환의 5집(Nostalsia, 1997년) 3번째 트랙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