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깊더니 해방가. 나중에 이 노래의 지은이가 친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다. 어머니도 이 노래를 알고 계셔서 놀랐던 적도 있었다.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 왜 나를 울리나 새. 김지하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재수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처음 듣고 전율을 느꼈던 노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양성우 시인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그냥 시인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것을... 훗날 가슴이 아프게 만든 노래기도 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김민기의 아침이슬. 나는 이 노래를 84년 2월에 처음 들었다. 무슨 의미를 가진 노래인지 몰랐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역시 김지하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 최루탄을 뒤집어 써보면 안다. 타는 목마름이 뭔지.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오 어머니 당신의 아들" 뒤에는 꼭 "딸!"이라는 외침이 들어갔었다. 혈진 함성 나를 부른다 쏟아지는 빗발 뚫고 오던 무거운 어깨 이 노래는 비장한 맛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비오는 날 부르면 어울렸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껍데기를 벗고서 이 세상 사는 동안 내 흘릴 눈물들 낮은
어둡고 밤은 길어 논도 빼앗겨 밭도 빼앗겨 전형적인 데모가...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개래요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데모를 알리는 노래. 나는 "물가에 심어진"이 항상 "물가 심어진"으로 들렸는데, 어떤 가사집에도 다 "에"가 들어있더라.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세상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60년대 6명만 통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90년대에는 4사람만 통하면 된다고 한다. 넘쳐넘쳐 흘러가는 러시아 민요. 어느날 라디오에서 듣고 정말 러시아 노래라는 걸 알고 웬지 감격해버렸다. 바람이분다바람이불어연해주에서불어온다로스케대사관에불이붙었다잘탄다잘탄다신난다신난다로스케는시곗줄만돌린다 이리저리 변형해서 부르던 노래.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녹두장군 말달리던 호남벌판에 신대한의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가장 많이 불린 데모가. 저 청한 하늘 저 흰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 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새라 아~ 끝없는 새하얀 사슬소리여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넘어 멀리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눈부신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나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날씨와 더불어 청춘들의 민주화 열기도 뜨거웠던 80년대 중반. 9월에 복학한 후에도 학교내,외는 여전히 어지러웠다. 우린 자주 시장에 있는 이모집(대체로 외상 긋는 집은 이모집이다)에서 순대국에 막걸리 먹으며 울분도 토하고 노래도 부르고 했다. 아주 가끔 공부도 하고 그랬다. ^^ 그 때 이모집에서 같이 합석했던 84학번 여자 후배가 불렀던 "새" 복학 후라 새로운 민중 가요를 잘 모르고 있다가 들어서 그런지 매우 좋았다. 그 때만해도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김지하 시인의 시 <새>에 곡을 올린거라고 했다. 당시엔 노래 두 세번만 들어도 가사며 코드가 저절로 나와주던 때.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쥐....) 바로 따라 부르며 지니고 다니던 기타로 반주를 했던 기억. 그 후배는 이른바 운동권, 그것도 학교외에서 활동하던 여전사(!). 후에 둘이 술 마시다가 그 후배가 그 사실을 슬쩍 알리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멋있더구만. 용캐 잡히지 않고 졸업은 했고 ㅎㅎㅎ 한국에 가면 아내나 나나 꼭 연락하는 사이. 용인에서 마당 큰 집에서 잘 살고 있더구만. 오랜만에 옛 추억과 더불어 가제트 기타치며 부르는 애창곡 안치환의 노래 <새>올려보지만 사실 난 노래방에선 이 노래보다 안치환의 <광야에서>를 더 자주 부르곤 했었다. 어수선하고 조용히 칩거하는 이 봄에 어울릴지 잘 모르겠지만 뭐 어떠리 봄은 봄이고 추억은 추억인걸.... <새>는 후에 안치환의 5집(Nostalsia, 1997년) 3번째 트랙에 수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