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걸을 때 왜 팔과 다리의 방향이 다르죠

사리연구 26 - 정 기 신 이야기(4)

이론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이론은 짧을수록 좋을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조금 앉아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에는 짝이 있습니다. 음에는 양이 있고 어둠에는 밝음이 있고 모든 것은 홀로 있지 아니합니다. 그것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오늘의 바른 몸짓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이 동작이 바른 몸짓이 아닙니다. 그냥 편의상 움직이는 동작입니다. 때로는 편의에 의해서 움직입니다만 이것은 바른 동작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그 하나의 다음 동작을 위해서 어쩌면 그 이상의 이론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세요. 이렇게 해야만 이렇게 된다고 했을 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때 큰 탈 난다고 생각했을 때만 비로소 여러분 가운데 3할 정도가 이 명제를 지킬 것입니다. 늘 뒤집어서 경계하십시오. 방법입니다만 일단은, ~ 음과 양을 말씀 드리면서 하나의 명제인 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 기는 순환의 체계로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들을 각기 경이라고 합니다. 기의 길입니다. 경은 이것이 경입니다. 인간 몸의 경입니다. 이것은 씨줄입니다.

이른바 12주경맥이니 기경팔맥이니 하는 것이 이러한 기맥이 체계 순환의 차계에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이것들은 둘째, 기경은 어디를 타고 흐르냐? 그 받침대인 주된 받침대인 뼈를 타고 흐릅니다. 뼈있는 곳에 거의 대부분이 경맥이 있습니다. 그 다음 경맥에는 짝이 있어서 음경과 양경이 있는데 이 음경과 양경은 몸통을 제외하고 사지의 경우에는 봉합선이 있습니다. 붕어빵 장수가 붕어빵을 찍어낼 때 봉합선이 있듯이 인간에게도 봉합선이 있습니다. 명백히 앞뒤가 있습니다. 옷에만 재봉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내 몸에도 재봉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앞뒤가 있습니다. 이 몸의 재봉선을 중심으로 해서 음양경이 갈라집니다. 몸통에서는 아닙니다만. 그래서 중간 중간마다 이것들이 쉬고, 여기에서 요기(상완)까지 가는 가운의 성격과 요기서 저기(하완)까지 가는 기운의 성격이 얼핏 봐서 같을 것 같지만 다릅니다.

그래서 각 마디마다 작은 변환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을 혈이라고 합니다. 작은 변환 기관들~ 그 혈은 주로 운신의 핵심이 되는 뼈와 뼈 사이의 마디에 주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디를 골절이라고도 하지만 기의 관문이라는 의미에서 관절이라고도 합니다. 동양에서 는 골절이라는 표현보다는 드나드는 관문이라는 뜻에서 관절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씨줄입니다. 날줄이 있어야겠습니다. 경 속에도 음과 양으로 짝이 있어야겠지만 기경뿐만 아니라 기에는 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에는 또한 위가 있어야겠습니다. 의학의 영역은 아닙니다. 이건 다루고 있지 않는 부분입니다. 위는 경의 짝입니다. 우리 몸이 이렇게 하단전을 중심으로 해서 순환하고 이 순환덩어리를 중심으로 해서 사지로 뻗어나갑니다. 방사선으로, 반대로 원을 이루고 있는 선도 있습니다. 그것을 기의 위라고 합니다. 이 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음경과 양경은 뼈를 중심으로 봉합선을 중심으로 안쪽과 바깥쪽으로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몸 자체에서는 서로 만나서 교통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교통할 수 있는 내부 핏줄이 이 안팎을 연결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움직여주는 별도의 힘- 그것이 기의 위입니다. 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음경과 양경은 서로 만나서 조화를 이룹니다. 위와 경은 더욱 더 짝입니다. 그런데 이제 음양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단순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크게 보면 경과 위가 음양을 이루고 있고 경 속에서도 양경과 음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명제- 사람 몸뚱이 또는 사람의 몸은 자연과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자연과 보편성과 그 자체의 성격인 인간됨의 인위의 어울림입니다. 경의 흐름은 기경의 흐름은 자연입니다. 가만 두어도 저절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흘러갑니다. 쉼 없이 스스로 쉬지 않은 채 흘러갑니다. 주역의 표현을 빌리면 自强不息해서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 자연의 흐름 경류입니다.

그러나 위류는 이미 위류가 없이 음경과 양경의 교통 없이 경류만 끊임없이 흘러가면 계속 형화가 진행되고 마침내 기화가 약해져서 곧 생사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물론 언젠가는 부딪히게 될 문제입니다만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보따리를 챙기지도 못했는데 기차는 이미 떠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류와 경류의 문제에 있어서 위류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위의 문제로서 무언가 해야 합니다. 경은 자연 유통하지만 위는 인위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가만 있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위라고 했을 적에 인위가 경류에 비해서 자연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이 망가지죠. 지나치게 위류가 경류보다 적어도 몸은 시들시들해지겠죠. 과한 것도 모자란 것도 그리하여 過猶不及이 됩니다. 위류와 경류는 늘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 인위를 하는데 위류를 제대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그릇된 틀린 움직임을 하게 되면 인위가 틀리게 되면 또한 어그러져서 몸이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인위가 필요합니다. 바른 인위, 그게 정행이죠. 그 다음에 이 인위를 하는데 바르게는 하는데 배분이 잘못되었습니다. 바른 행동을 하고 있지만 배분이 바르지 않다면 또한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배분이 바르지 않아도 또한 경류가 충격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매우 편벽한 성격과 편벽한 몸이 나올 것입니다. 그 시대적 배분에 의해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 시대적 틀에 갇힐 것입니다. 그 철학적인 틀에 의해서 살았던 사람은 그 철학적인 틀에 갇힐 것입니다. 마침내 작든 크든 사람은 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바른 몸짓을 통해서 인위와 자연을 위류와 경류를 조화시켜 나가는 어우러지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이제 인체에 있어서 음양조화는 자연과 인위의 조화요, 경류와 위류의 조화며, 한편 음과 양의 조화입니다. 그래서 정행이 거듭되면 자연으로 주어진 이 몸이 바르게 될 것이요, 몸이 바르게 되었다면 그 속에 있는 精은 빼고 그 마음이 또한 바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게 되고 그러기 위해서 몸이 바르게 되고, 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바른 몸짓이 일어나고 바른 몸짓이 있기 위해서 바른 앎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야만 바른 깨달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과 앞으로 계속 나누어갈 공부 가운데 바른 몸짓을 상징하는 표상이 바로 장틀입니다.

그러나 이 장틀을 바로 하려면 처음부터 되지 않습니다. 바닥이 다져져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기 위해서 그는 1년동안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만 걸을 수 있습니다. 이 때 했던 노력의 절반을 나머지 70~80년 살면서 하지 못합니다. 1년동안 했던 노력의 절반만 일생 동안 한다면 바른 길을 통해서 바르게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1년 동안 걸었던 이것은 바른 몸을 갖기 위한 아니, 바른 몸뚱이를 갖기 위한 기초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장틀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기초에 해당되는 바른 몸짓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먹어야 하고 바로 입어야 하고 바로 자야 하고 바로 걸어야 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손짓 발짓이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백학타사

그 가운데서 먼저 백학타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몸은 너무 과학적으로 짜져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도량형의 단위를 내 밖에서 찾습니다. cm든 몇 inch, 그것은 내 밖에 있는 너나 나나 할 것 없는 도량형입니다. 키가 큰 사람이라고 해서 1cm가 다를 수 없고 1inch가 다를 수 없습니다. inch라는 표현이 매우 인체적인 데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동양에서의 단위는 다 다릅니다. 그의 한 촌과 나의 한 촌이 같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체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내 밖에 따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여름, 가을, 겨울은 주체가 뱉어내는 삶의 징표이자 그가 살아있다는 에너지의 발산에 불과한 것입니다. 시간이 있고 그 속에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시간을 뱉어냅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루는 하루살이의 생사의 한 마디입니다. 그것은 하루살이가 뱉어낼 수 있는 삶의 시간입니다. 어쨌든 이 도량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이 1촌이 얼만데요 물으면 우물쭈물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이게 1촌이라고 했는데 사람마다 같을 수가 없죠.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 1인치 몇 인치 등 인체에 적용되는 모든 단위는 인체로 돌아갔을 적에는 너무나 정확합니다. 요기 엉치뼈까지 말입니다. 발끝에서 엉치뼈까지는 정확하게 38마디입니다. 키 작은 분은 작은 분대로 38마디요, 키 큰 분은 키 큰 분대로 38마디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심심해가지고 도저히 안되니까 남보고 재달라고 하면 38마디가 안 나옵니다. 키가 나하고 다르니까요.

그런데 그 가운데 발 하지 상지가 있다면 말입니다. 상지가 열 아홉, 하지가 요기서 요까지가 열 아홉, 그리고 이 폈다 굽혔다 하는 무릎의 길이가 3마디입니다. 그리고 이 19마디는 각각 이 위류가 돌고 가는 중요한 지점들이기도 합니다. 위류는 내 몸 형체 있는 것에서 없는 것 사이를 다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지구에는 어느 것이 팔다리고 눈이고 귀고 코냐? 이 사람의 질문은 매우 기가 찬 질문입니다. 매우 놀랄만한 질문이지만 그러나 매우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불완전한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불완전한 나를 기준으로 해서 이것을 이해하려 합니다. 인간은 사실 위류까지 따지면 이 모습(지구처럼 둥근……)입니다. 돌이 깎여서 이렇게 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이 밖에도 내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위류니까요. 이것들이 경류고, 경류는 몸밖에 없지요.

이 위류를 다스려주는 것, 인위를 다스려주는 것, 이 흐름을 다스려주는 것, 그게 바른 몸짓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는 19마디, 19마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학타사를 해보셨겠습니다만, 왜 백학타사를 하면서 다리를 들었다 놓으면서 이렇게 안차고 이렇게 차느냐? 왜 밑을 차느냐? 뻗어 차느냐? 똑같아야 됩니다. 상지와 하지는 길이가 같아야 됩니다. 발을 안 뻗어도 19마디, 19마디 같은데 왜 발을 뻗어야만 되느냐? 이 무릎이 바로 3촌을 잡아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3촌을 발을 뻗음으로써 다시 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위류의 균형을, 이 위선 궤도를, 내 단전부를 중심으로 위류가 계속 궤도를 그리고 있다면 이 궤도를 안정적으로 낮추거나 높이지 않고 유지해주는, 그러기 위해서 무릎을 굽힘으로써 3촌이 줄어든 것을 다시 발을 뻗음으로써 낮추어주는 것, 단 발끝에서 3마디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용천부에서 확보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족장심인 용천부에서 확보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백학타사를 좌우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론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왜 뻗느냐?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그러지, 속도는 다르게 이야기하고 왜 무릎은 굽히라고 그러느냐, 그러면 두 발 다할 수는 없겠지만 물론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위류를 강화시켜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중급반에 가시면 손동작까지 아울러지는데 그 또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위류의 조화들은 이 마디를 중심으로 해서 한 곳인데 특히 여기가 문젭니다. 백학타사의 중요한 부분은 이 무릎 부위에서 위류가 잘 통하도록 해주는데 기본 1차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동작에 있어서는 90도가 유지될 때 위류가 잘 통합니다. 그래서 위류를 통해주기 위해서 한쪽은 뻗지만 한쪽은 90도를 유지해서 굽혀줍니다. 이 각도가 서있는 다리의 각도가 90도 되게끔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위류가 경류를 제대로 탁탁 쳐서 음경 양경 조화를 맞추어줍니다. 그리고 찰 때는 느리게 너무 빠르지 않게…… ? 몸에 있는 양경의 기운이 밖으로 빠르게 나가지 않게, 물론 빠르게 나가게 함으로써 무예로써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반대로 거둘 때는 빠르게 기운이 강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나갈 때는 기운이 갈무리되어서 함부로 쏟아져 나가지 않도록 천천히, 거둘 때는 빨리 땅겨서 기운이 빠르게 들어오도록, 그렇게 백학타사를 해야 합니다. 찰 때는 차는 발이 양입니다. 선 발이 음입니다. 거둘 때는 차는 발이 음이고 선 발이 양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발을 찬다 해서 왼 발의 위류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요, 왼 발을 찬다 해서 바른 발의 위류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음양의 조화를 도와주기 위해서 손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동작들을 합니다. 찰 때 이 동작에서 잡아주고 제대로 동작이 되도록 땅겨주고,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들이 중급에 가서 하시게 됩니다.

~ 다시 한번 백학타사와 관련되어서 있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음과 양이라는 면과 인위와 자연이라는 면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은 짝이 있으니 음과 양이 짝이고 특히 기경에 있어서도 기경은 결국 벼리 씨줄, 뼈를 타고 흐르고 음경과 양경으로 나뉘고, 사지의 봉합선을 중심으로 해서 안으로는 음경과 밖으로는 양경이 흐르고 몸통은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와는 다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굽힐 수 있는 골절이 있는 이것은 뭔가 작은 변화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조그마한 어댑터가 필요합니다. 그 어댑터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혈이고 그래서 혈은 대개 뼈마디 부근에 있으며 이를 일러 골절이라 하지 않고 관절이라 이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은 경에 관한 것이고 자연적인 것이고, 반대로 위가 있어서 음양을 조화시켜주며 그 조화로 말미암아 위는 경과 짝을 이룹니다. 즉 위는 음양의 교통로이자 조화를 상징하는 흐름입니다. 경은 죽든 살든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흐릅니다. 지구의 만유인력이 지구가 파괴되는 날까지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유지되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관련된 위선궤도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듯이 이 지구 자체의 변화에 의해서 경의 흐름 정도에 따라서 변화하듯이 위는 매우 인위적이고 인간적입니다. 그래서 자연 유통하는 경에다가 인위 유통하는 위를 맞추어주어야만 됩니다. 인위가 많아서도 안되고 인위가 적어서도 안됩니다. 또 인위가 잘못, 그르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인위가 옳다 하더라도 그 배분이 제대로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바른 조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인위를 가지고 자연을 조화시켜나가는 바른 몸짓을 정행이라고 합니다. 정행의 상징으로 여러분께 드리는 것이 장틀입니다. 장틀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기초에 해당하는 바른 몸짓이 있어야 하며 그 가운데서 백학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위와 경의 조화를 시켜주는 몸짓이 백학타사이며, 백학타사를 통해서 하신기경의 몸짓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특히 무릎 주위를 중심으로 하는 위의 흐름을 통해서 무릎에서는 위선이, 육체화 되어있는 위선이 72개가 서로 만납니다. 그것을, 가장 많고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특히 조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패철돌리기

이어서 같은 차원에서 장틀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또한 상신기경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몸짓으로서 패철돌리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백학타사를 하면서 사람의 다리가 무릎을 중심으로 해서 위가 19촌이고 아래가 19촌이고 이 중간이 결국은 3촌이 되어서 밑의 3촌을 더해주기 위해서 다리를 뻗는다고 말했습니다. 즉 인체의 다리의 길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이 19마디는 각각 위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위의 흐름이 바르게 되었다면 바로 경의 흐름을 확인해야 될 것이고 그래서 백학타사를 했다면 반대로 백학타사와는 다른, 이것은 위의 흐름을 익히는 몸짓이었으니까 이제는 경의 흐름을 확인하는 몸짓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백학타사와 짝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패철입니다. 이것은 경의 흐름을 확인하는 바른 몸짓입니다. 그래서 패철돌리기와 백학타사의 순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리처럼 사람의 팔도 우연하게 길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팔을 그려보겠습니다. ~ 사람의 팔의 뼈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여기 뼈까지 나머지는 여기 뼈가 조금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기까지의 길이가 이렇게 보면 똑같아 보이거든요. 오히려 이렇게 하면 짧아 보이거든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가 9마디 그리고 밑에는 12마디입니다. 12마디와 9마디는 각각 어디와 상응하느냐~ 여기와 똑 같은 길이가 내 몸 안에 있습니다. 바로 배와 가슴에 있습니다. 여기 천돌에서부터 앞에 잣대뼈가 있습니다. 그래서 횡경막으로 끝나는 이 길이가 12마디입니다. 그 다음 횡경막 밑에서부터 복궐이 있는 뼈까지, 관원까지 여기가 9마디입니다. 그것에 완전한 반영입니다. 만약에 이런 반영이 없았더라면 백학타사와 패철돌리기의 동작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 9마디의 경의 흐름들이 여기에 그대로 반영이 되게 되겠습니다. 여기 12마디에 흐르는 12주경의 흐름들이 그대로 여기에 반영되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각각을 일치시키듯이 패철돌리기의 공부까지는 여기까지입니다.

패철돌리기가 만약에 손가락 끝까지 합해서 12마디가 됐다면 이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래서 손목에서 만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패철돌리기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9마디는 배 하단 부위의 9마디, 12마디는 중단부위의 12마디와 상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패철돌리기의 동작과 관련해서 의문을 제기하므로써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패철돌리기의 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패철돌리기를 할 때 발의 자세는 왜 역근도 반역근도 아닌 11자로 서야만 하는가? 그 다음 둘째~ 왜 팔을 올리는 높이가 손목과 손목이 맞닿는 부분이 상단전 높이에서 일치해야 하는가? 그 다음에~ 패철돌리기를 할 적에 왜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젖히고 하면 안되고 똑바로 서서만 해야 하나? 네 번째로~ 왜 패철돌리기를 할 때는 이렇게 하면 안되고 꼭 바른쪽이 올라가라고 하는가? 4가지 의문을 놓고 패철돌리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패철의 발 자세가 안으로 역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역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왜 11자로 서게 되는가? 여러분은 장틀을 서면서 앞으로 이해를 하게 되겠습니다만 이렇게 가만히 11자로 서서 가만히 발만 안으로 역근을 시키면 기운은 관원에서 꽉 막힙니다. 이 상황에서 역근시키면 배의 복막이 있는 부분에서 기가 꽉 막히는 것을 1초 이내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막힌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둘째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막에 있는 기운이 순식간에 발바닥으로 퍼져 나가버립니다. 여기가 텅 빌 정도로 밖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힘을 철저하게 밖을 향해서 폭풍노도처럼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흘러나가도 안되고 이것이 막혀도 안되고 적당하게 가장 자연스럽게 두는 것~ ? 이 공부는 위의 공부가 아니라 경 자체를 확인하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경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다리로도 적당히 팔을 이렇게 하는 것만큼 다리로도 기운이 가고 더도 덜도 아니고 팔의 움직임에 비례해서 다리로 기운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역근을 하면서 이것을 해보면 다리는 힘이 안 들어가고 여기는 꽉 막힙니다. 역근을 했다가 가만히 풀어주면 기운이 쑥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걸어 보겠습니다. 이렇게(역근) 하고 걸으면 이상하겠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팔자로 걸으면 금방 죽겠죠. 다 나가서 물이 고일 틈이 없이 소실되어버릴 테니까 이렇게 하면 걸을 수가 없습니다. 역근을 하고 걸으면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어서 몸이 파괴될 것입니다. 걸을 때는 바로 걸어야 됩니다. 바로 걸을 때 그러나 그렇게만 걸을 때에는 약간의 힘의 의지가 부족해질 것이니까 약간은 섞어서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습성이 되면 섞을 필요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걸어도 됩니다.

어쨌든 패철돌리기가 역근도 반역근도 아닌 까닭은 너무 역근을 해서 하단의 기운을 막지 앟기 위해서 또 반역근을 해서 하단의 기운이 발로 강하게 흘러가서 하단의 기운과 그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다음 두 번째 이유로 넘어가겠습니다. 팔을 올리는 높이는 왜 상단 높이인가~ 왜 눈썹 앞에서 교차시켜야만 되는가~ 여러분 앞으로 장틀을 서시면 아시겠습니다만 팔이 교차되어서 반드시 전기현상이 있습니다. 즉 좌우가 지나치게 교감함으로써 경의 활동이 아니라 위의 활동이 촉진되는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천천히 교차시켜보면 이 손목과 손목이 닿는 부분에서 찌릿한 느낌이 옵니다. 더 지나가면 이렇게 까지 겹치면 후끈한 느낌이 옵니다. ? 그 상황에서는 경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의 선 이 선에서는 반드시 어디에서 위가 흐르고 있습니다. 위의 흐름과 경의 흐름이 바로 직접 만나는 곳입니다. 다른 어는 곳으로 오더라도 경의 흐름과 위의 흐름은 만나서 경의 흐름 자체를 자연 자체로써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렇게 해도 여러분은 독특한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경의 흐름이 위의 흐름에 방해받지 않고 무인 공백지대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교차할 수 있는 곳은 상단부의 눈썹 있는 부분밖에 없습니다. 이곳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해도 느낌은 다릅니다. 그것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동작을 또한 만들어내고 이것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어디에도 경과 위가 만나서 경의 흐름이 위의 흐름에 의해서 영향받지 않고 정 자체 흐름만으로 자연스럽게 유통할 수 있는 곳~ 만났을 때 적에 편안한 곳~ 그 곳은 상단전 부위 높이밖에 없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다른 데서 만나면 패철돌리기를 해서 교차시키는 순간 독특한 느낌들이 오게 됩니다. 패철과 비슷하게 응용을 시키면 여기에서 교차시킵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이렇게 하고 계서 보십시오. 소름이 자르륵 등뒤로 타고 흐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장틀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소름이 오는 부위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배있는 부위에 하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오고 떨립니다. 이른바 비정상적인 또 어떤 면에서는 뭔가 기력이 강해지는 삿된 동작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을 즐기면 공부는 거기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 다음 세 번째 질문~ 왜 몸을 젖히거나 앞으로 꺾으면 안되는가? 앞이든 뒤든 옆이든 젖히게 되면 기운은 자기도 모르게 팔로만 전달됩니다. 팔로만 기운이 전달되고 (  )로는 기운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개를 젖히고 손 높이는 그대로 하고 패철돌리기를 열심히 했다~ 이것을 끊임없이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하면 그의 정신이 결코 온전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는 팔에 엄청나게 강한 힘을 얻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그의 일생은 끝이 납니다. 인간이 지향하는 바가 이미 틀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을 젖히거나 앞으로 숙이거나 하는 행위는 자연스런 경의 흐름들이 방사선으로 흘러가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 가운데 하나를 꺾으므로 상승하는 것을 하나 꺾으므로 그것이 상승하는 힘을 잃어서 굉장히 과격하게 팔다리로 나가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예를 단련하는 분들이 너무 속공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목을 젖히는 수가 있지만 그 폐해는 오래가면 오래 갈수록 자기에게 돌아오는 그 마음이 온전치 못하게 됩니다.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모든 기준을 상실하게 됩니다.

다음 네 번째 질문~ 왜 패철돌리기를 할 때 꼭 오른 손이, 제가 오른 손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여러분들은 앞으로 함께 바른 손이라는 표현으로 나가실 수 있도록 합시다. 옭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 바른 손은 해를 받는 손이고 왼 손은 해를 여인 손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바른 손과 왼손은 다릅니다. 똑 같은 팔이지만 하는 기능과 경락의 흐름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은 육체로소 팔이 있고 팔이 있다면 여기에서 터미널이 끝나버립니다. 터미널이 끝나는 것을 精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육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기운은 더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더 나가고 있으면서 위는 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남이 있습니다. 이 때 만났을 때 두 곳의 작용이 다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고 있을 때하고 이렇게 하고 있을 때하고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쪽은 받은 만큼 내보내고 여윈 쪽은 그만큼 들어오고, 그래서 기운의 조화를 맞추어주되 이 조화를 맞추는 것을 일러서 용탄호라 합니다. 용이 호랑이를 삼킨다는, 좌가 우를 삼키는, 용은 여기서 좌를 말하고 호는 바른 쪽을 말합니다. 좌가 우를 삼켜야 됩니다. 좌가 우를 삼키는 것을 지키지 않으면 호흡할 때도 나름대로 부작용이 있습니다. 손을 바꾸면서 호흡을 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죠. 용탄호가 되면 호흡은 느려집니다. 반대로 호탄용이 되면 빠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감내할 것은 감내해야 될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 공짜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용호비결을 말씀 드릴 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른 손과 왼손은 반드시 교차를 시키되 그 원칙은 자세하게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용탄호를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왼손이 호고 바른 송이 용인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라서 남자는 이렇게 하고 여자는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간혹 개별적으로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런 분들은 대개 수련을 싫어하고 다른 쪽을 좋아합니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많이 공부하신 분들 가운데에서 그런 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대개 용탄호라고 생각하시고 예외가 아니라고 믿으시면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예외가 없는 것으로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 가지는 첫 째 왜 발 자세는 십 일자야만 하는가~ 왜 높이는 상단에 있어야 하는가~ 목은 왜 젖히거나 수이면 안 되는가~ 왜 손 동작은 바른 손이 왼손 위에 올라가야 되는가~ 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다음에 자세와 방법으로 들어가서, 백학타사에서 이 각이 90도가 되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패철돌리기도 그렇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패철돌리기는 자체로서 원을 그리듯이, 나무를 감싸 안듯이, 그런 느낌을 유지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 팔은 여기밖에 굽혀지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도 안 굽혀집니다.

그래서 이 전제로 중요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와 달리 관절부위에 있는 것만 중요한 경혈이 아닙니다. 똑 같은 배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경혈들의 흐름이 관절부위에서 지나치게 모이는 것을 막고 팽팽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 원을 그리게 됩니다. 나무를 감싸주는 느낌으로 해주셔야 됩니다.

그 다음 지나치게 빠르게도 지나치게 느리게도 해서는 안됩니다. 기운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빨리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기운이 흩어질 만큼 천천히 해서도 안됩니다. 적당한 자기 나름의 흐름을 찾아야 됩니다. 물론 함께 공부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속도를 맞추어서 하기 때문에 규정속도가 있겠습니다만 그 규정속도를 잡으면서 상하로 조절하면서 자기의 시간 흐름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몸뚱이가 대충 이만하기 때문에 침대를 짤 수 있고 사람의 눈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안경 길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일관성이 있는 겁니다. 수련장에서는 공부하는 것은 다만 일관성에 기인한 겁니다. 자기 나름의 시간을 찾아주셔야 하겠습니다.

다음 세 번째~ 빠를 곳에서는 빠르고 느릴 곳에서는 느려야 됩니다. 동작 속에서 완급이 조화를 이루어야 됩니다. 완급 조화를 맞추되 그 조화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어디까지나 느낌은 자신이 가져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주의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다음 네 번째~ 패철돌리기를 어디까지 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기준은 없습니다. 대개 한 번 시작해서 20회 정도는 하는 것이 좋습니다. 20회 정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손바닥과 손목 등에 나름대로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털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털어줄 때 흔들어서 털지 마십시오. 반드시 털 때는 손을 원으로 돌려서 터십시오. 돌면서 털면 기운이 갈무리되어 기운이 정리되고 이렇게 털면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허한 상태에서 기운이 정리됩니다. 마찬가지로 백하타사를 다하고 나서 혹시 흐름을 이을 경우에나 아니면 다른 몸짓을 하고 풀어줄 경우에도 피곤하다고 해서 다리를 이렇게 툭툭 차서 털지 마십시오. 반드시 뒤로 털어주십시오. 그래야 그 또한 기운이 갈무리되면서 몸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툭툭 털면 그 앞에 열심히 발짓을 했던 것이 허무해집니다.

그래서 반드시 정리도 깨끗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패철돌리기는 백학타사와 달리 옷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조금씩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 먼저 11자로 서주시길 바랍니다. 다리를 벌리는 넓이는 발과 발의 내부가 대개 자기의 어깨넓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더 정확하게는 느낌을 이 넓이가 자기 어깨라고 생각하면 실제로는 이 정도 서게 됩니다. 11자로 서서 천천히 완급조절 없이 천천히 팔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내려보십시오. 그 감각을 그대로 갖고 계십시오. 자 이제 발끝을 안으로 역근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해보고 앞에 했던 것과 비교를 해보십시오. 복막을 중심으로 해서 기운이 닫힌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반역근을 해보십시오. 반역근이 심하면 심할수록 기운이 밑으로 황당하게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1자를 택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다음,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상단 높이가 아니라 똑바른 높이에서 천천히 잡아주십시오. 먼저 잠았다가 앞으로 당겨보십시오. 나름대로 느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상단에서 하면 그 느낌은 편안합니다. 그 다음 목을 젖힌 상태에서 해보시고 목을 안 젖힌 상태에서 해보시길 바랍니다. 기운의 느낌이 차이가 있을 겁니다.

기운이 팔로 잘 들어간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뒤집어서 왼손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느낌이 올 것인지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왼손을 가지고 하는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왼손으로 패철돌리기를 50회만 하시고 주무시기 바랍니다. 다음날 아침에 못 일어납니다.

이제 이렇게 해서 한 높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배꼽 사이에서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예민한 분들은 소름이 올 겁니다. 약간 직각보다 펴서 자연스럽게 하면 소름이 옵니다. 자 이런 이유에 주의하면서 다했습니다. 털겠습니다. 앞으로 털지 말고 옆으로 벌려서 털겠습니다. 백학타사도 했습니다. 뒤로해서 털겠습니다. 말발굽 질 하듯이 조금 볼 상 사나울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이것도 유행이기 때문에 문화가 바뀌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정도로사 자기 흐름을 가지고 패철돌리기 10회만 천천히 해보시고 앉으시기 바랍니다. 패철돌리기를 하면서 11자로 서는 것과 역근을 했을 때의 차이를 안다면 왜 장틀을 하게될 때 역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서 역근으로 들어가는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작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라고 얘기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 박현 강의록(‘9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