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은 왜 흘러가 는가

시간 은 왜 흘러가 는가

지난 번에 소개드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 이어 오늘도 시간에 대한 책을 소개드리겠다. 이번에는 도대체 (사람 관점에서) 시간이란 무엇이고 흘러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이다.

이 책은 크게 짧은 시간을 다루는 '시간들', 긴 시간을 다루는 '날들', 두뇌에서 시간을 처리하는 방법을 다루는 '현재', 마지막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를 다루는 '시간은 왜 빨리 가는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시간의 세계는 (원래) 복잡하므로 의도한 바를 넘어서 가능하다고 상상한 시간을 훨씬 초과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거의 5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에 밀도 높은 텍스트로 인해 시간을 들여서(응?) 읽어야 완독이 가능하므로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시간들'에서는 시작하자 마자 협정 세계시(UTC, Coordinated Universal Time)로 혼을 빼놓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면 시각 동기화의 중요성과 UTC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이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유일한 UTC 시각이 존재한다는 잘못된 지식이 머리 속에 탑재되어 있었는데, 국제 도량형국에 속한 58개 회원국이 제출한 시각으로 합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는 여러 데이터를 검토하고 분석한 결과로 나오는 서류 상에만 존재한다. 주기적으로 발간되는 이 서류를 토대로 58개 회원국은 자신의 시계를 나노초 단위로 '조타'해야 하는데, 시계를 정확하게 유지관리하려면 고도의 기술과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므로 예상한 바와 같이 전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시계를 관리하는 기관은 GPS를 운영하는 미해군관측소다.

다음으로 '날들'에서는 사람의 몸이 하루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신비를 풀기 시작한다. 시간이 과연 지각 가능한 대상인지 아닌지에 대해 여러 다양한 생물들의 생체리듬을 토대로 생물이 자각하는 시간을 탐험한다. 시간이 무엇인지를 논의할 때 사람마다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는 이유 중 하나를 시간에 대한 경험이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분류를 제시한다.

  • 지속성(duration): 두 시간이 일어나는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알아내는 능력, 또는 다음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
  • 시간의 질서(temporal order): 연속적으로 사건이 일어날 때 각각의 시간을 구분하는 능력
  • 시제(tense): 과거, 현재, 미래를 식별할 수 있고, 내일은 어제와는 다른 시간 방향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
  • 현재성에 대한 감각(feeling of nowness): 바로 지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는 주관적인 감각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네 살이 넘어야 시간이 방향성을 띈다는 '시간의 화살' 개념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시간이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적인 시간의 개념도 모두 학습에 의해 습득한 셈이다. 생체리듬과 관련해 CPU처럼 중앙의 마스터 클럭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세포별로 분산된 클럭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24시간 주기로 동작하는 내부 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하지만 내부 시계도 시계이므로 오차가 나므로 '조타'를 위해 햇빛의 노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광합성을 위해 가장 처음으로 생체 시계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남조류로부터 진화가 일어나면서 어떻게 고등 생물들의 세포 내부에 클럭이 탑재되었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한다. 그러고 나서 지은이가 직접 북극으로 가서 생체 시계가 교란될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한다(스포일러: 시간이 흐르지 않는 느낌!).

미시적인 시간에 이어 거시적인 시간을 소개하는 '현재'에서는 시간을 놓고 고민한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시간이란 마음의 속성이라는 이론에서 출발해 정밀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세계 제작과 관련된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역사를 풀어낸다. 그러고 나서 두뇌가 시간을 자각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신경의 느린 전파 속도로 인해 사람들은 항상 80밀리초 과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두뇌가 이런 간극을 매우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략을 소개한다. 그러고 나서 지은이는 직접 놀이 공원에 가서 정말 사고가 날 때 시간이 느리가 가는지를 측정하는 자유낙하 실험을 진행한다. 몸이 자유낙하를 할 때 패닉 상태에 빠져서 편도체가 고해상도로 사건을 녹화하기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을 보면 (정말 다행히도)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주관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왜 빨리 가는가'에서는 시간이 왜 빠르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사람의 두뇌는 시간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대신 시간이 담고 있는 내용(즉 사건)으로 지각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을 경험하는 대신 시간의 통과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무척 중요하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을 놓쳤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현재의 시간을 쫓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계속해서 두뇌가 시간 지각과 시간 사이의 간격을 알아내는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철학자 존 로크가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떠올림으로써 과거의 시간의 길이를 판단하게 된다"고 말한 바와 같이 기억할만한 사건들이 많았던 과거의 시기는 천천히 흘렀고 특별한 사건이 없는 시기는 매우 빨리 흘러간다는 이론을 소개한다. 그리고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빨리 흐른다는 사회적인 통념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론도 소개한다.

정리: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인식하는 시간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 추천드린다. 특히 앞 부분에 나오는 협정 세계시에 대한 내용은 무척 흥미진진하므로 두 번 읽어보시라.

EOB

美 과학저술가 앨런 버딕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출간


美 과학저술가 앨런 버딕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출간

시간 은 왜 흘러가 는가

앨런 버딕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 1962년 프랑스 지질학자 미셸 시프르는 남부의 한 동굴에서 2개월간 동물처럼 살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동굴에 머무르면서 매일 기록한 달력 기준으로 35일째가 된 날, 시프르는 바깥세상에서는 목표 기간인 60일이 흘렀다는 전갈을 동료로부터 받는다.

#2. 은행에 강도가 들이닥치면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담긴 영상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연구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영상 속 사건이 진행된 시간을 실제 시간보다 더 길게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신간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Why Time Flies)에 등장한 '시간'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시간(time)은 미국 영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명사 중 하나이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째깍거리는 시계 속 바늘의 움직임만으로 시간을 규정할 수는 없다.

위 사례들처럼 상황별, 개인별로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한 개인에게도 손목시계처럼 외부에서 인지되는 시간과 몸, 마음을 통해 흐르는 시간은 똑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 '시간을 축내다' 등에서 보듯이 시간을 보다 구체적인 무엇으로 표현해보려는 비유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를 쓴 저자는 '뉴요커' 수석편집장 출신의 과학저술가인 앨런 버딕이다.

어릴 적 손목에 시간을 매어두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손목시계도 차지 않았다는 저자는 자신을 계속 끈질기게 따라다닌 궁금증,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아내고자 10여 년간 시간을 추적했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 국제도량형국, 미국표준기술연구소 등 시간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는 다양한 기관을 방문하거나 직원들을 만난다. 알래스카 북부의 기지에서 생물학자들과 2주간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과 연구, 철학을 망라한 이 책이 가장 주목하는 '시간'은 우리 몸속 시간, 즉 생체시계다.

우리 신체기관과 세포에는 많은 시계가 퍼져 있고 그 시계들은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보조를 맞춘다. 근육세포, 지방세포, 췌장세포, 간, 허파, 심장 세포를 포함해 모든 인체기관이 자신만의 시계를 갖고 있다. 각자 리듬에 맞춰 째깍거리는 이 시계들의 지휘자 역할을 하는 것이 뇌 아래쪽 시상하부의 시교차상핵이다.

'시간의 노예'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시간을 향한 현대인의 적대감을 꾸짖은 부분도 흥미롭다.

사회운동가 제레미 리프킨은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던 때 "인류가 (디지털을 통한) 인공시간에 둘러싸이게 됐다"고 비판했지만, 기원전 2세기에도 로마 희극작가 플라우투스가 해시계 유행을 두고 "나의 하루를 비참할 정도로 토막토막 조각내 버렸다"고 독설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매인 삶의 양식이 문제인 것이지, 인공시간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영기 옮김. 엑스오북스. 496쪽. 2만7천 원.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7/11/24 07:00 송고